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57
제157화
라울 자작령-베이츠 영지와 자이에르 남작령의 접경 지역.
“이, 이건 꿈일 거야.”
자이에르 남작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삐를 잡은 손을 부르르 떨며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울 자작의 기사들은 칼립스 성에 집중배치 될 거라며?’
물론 그러지 않을 경우까지 생각하여 기사를 50명이나 대동했다.
그중 아머유저만 해도 10명.
이 정도면 일반적인 남작가 정도는 삽시간에 쓸어버리고도 남을 전력일 텐데….
쾅! 우지직!
“으악!”
전장에서 날뛰고 있는 저 하얀 갑옷의 기사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무려 100명이나 되는 엑스퍼트 급 기사가 마나 블레이드를 뽑아들고 아군 기사 전력을 박살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앞에서 그들을 이끄는 커다란 체구의 기사는 말 그대로 적수가 없었다.
축 늘어뜨린 두 팔에는 남들은 양손으로 들 법한 대검이 각각 들려 있었다.
마나 블레이드는커녕 마나 소드조차 맺혀 있지 않은 대검은 겉으로 보기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쉬익. 슉!
잔상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그의 팔이 잠시 흔들거리면,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갑옷이 통째로 베여 말에서 떨어졌다.
중요한 건, 자이에르 남작이 가장 믿고 있던 기사, 후원자가 보내준 엑스퍼트 상급의 아머 유저가 딱 네 번의 검질에 목이 날아갔다는 사실이다.
‘X발. 숨어 있던 마스터야 뭐야? 어떻게 아머유저를 순식간에 베어 버리냐고!’
검이 목표를 타격하는 바로 그 짧은 순간에만 ‘임시 오러’를 발동하는 수준 높은 검술.
엑스퍼트도 아닌 자이에르 남작이 알아볼 만한 기예가 아니었다.
자이에르 남작의 절망을 불러온 기사.
퍼스트 기사단 단장 필립은 담담한 표정으로 적진을 가로지르며 생각했다.
‘손맛이 영 별로군. 재미있는 검술도 없는 것 같고.’
* * *
“으라차!”
휘이이잉!
서컹!
말 그대로 거대한 노란빛 오러가 반경 7m 전방의 모든 것을 잘라버렸다.
말, 갑옷, 사람, 무기, 파워아머까지.
단번에 기사 열 명이 분쇄되며 피분수가 솟구치자 적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마, 마스터?”
“괴, 괴물이다. 도망쳐야 해!”
그들이 멈칫거리는 사이.
검을 휘두른 주인공, 퍼스트 기사단 부단장 제이크가 호탕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크하하하! 쥐 새끼같은 놈들이 쫄았구나! 얘들아, 모두 쓸어버려라!”
“네, 부단장님!”
마치 노란 파도가 밀려가듯 마나 블레이드를 뽑아 든 퍼스트 기사단원들이 달려 나갔다.
이미 기세가 꺾이고 머릿수마저 부족한 적 기사들은 도저히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뒤에서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 부하들의 모습을 감상하는 제이크는 당당해 보였다.
‘허이구야. 이거 두 번 써먹었다가는 내가 먼저 골로 가겠구나.’
최상급 엑스퍼트에 오른 후 첫 실전이었기에 기분 좀 냈을 뿐인데, 온몸의 마나로드가 욱신거리는 느낌이었다.
‘뭐, 결과가 좋으면 만사 오케이지.’
익숙해질 때까지 실전에서 임시 오러를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필립의 조언은 이미 기억 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어쨌든 라울 자작령-프랑노아 접경의 전투는 제이크의 활약(?)에 힘입어 손쉽게 마무리될 것 같았다.
* * *
쒜애애액, 쾅!
“허억!”
방패를 들고 있던 기사 하나가 벌러덩 뒤로 넘어졌다.
“제길!”
퍼엉!
또 다른 기사가 넘어진 기사 앞에서 방패를 들어 무언가를 막아내곤 신음을 흘렸다.
“빨리 다른 방패!”
황급히 소리치는 기사의 뒤쪽으로 거의 고철 수준으로 찌그러진 방패 더미와 신체 일부가 사라져버린 사체 몇 구가 쌓여 있었다.
“큿, 우리 기사들은 아직 멀었는가?”
“이제 곧 적진에 돌입합니다!”
“빨리 저 미친 궁수를 처리하지 않으면 우리가 다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불과 몇 분 전부터 시작된 장거리 공격.
분명 적진과는 500m가 넘게 떨어져 있었지만, 거리 따위 상관없다는 듯 날아온 화살은 기사 셋과 참모 둘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은 몇몇 기사들이 방패로 화살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력한 마나가 깃든 화살은 막아내는 순간 폭발하며 방패까지 박살내고 있었으니까.
‘이건 절대 일반적인 엑스퍼트 기사가 쏘아낸 화살이 아니야!’
마나가 깃든 방패를 화살 하나로 이렇게 박살내다니, 소문으로라도 이런 무시무시한 궁사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사들은 부서진 방패를 통해 몸으로 침투하는 서늘한 마나의 기운에 몸서리치며, 어떻게든 아군이 저 악마 같은 궁사를 멈춰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어엇! 저게 뭐야?”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런 일이!”
기세 좋게 달려간 기사단과 기마대가 적진에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다.
마나 블레이드를 활활 불태우는 엑스퍼트급 기사 백여 명과 마나 소드를 발현하는 수련 기사급 기마대 수백에 둘러싸였으니.
“제길! 믿을 건 헤이어드 경과 아머 유저들뿐인가?”
지원 나온 그들이라면 이런 지방의 기사들은 뚫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슈우웅! 퍼석!
“맙소사!”
방금까지 그들을 노리던 화살보다 훨씬 굵고 기다란 화살이 섬광처럼 날아가 헤이어드 경의 파워아머를 가격했다.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나뒹군 그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가 했으나.
쾅! 채쟁!
라울 측 아머 유저들이 내지르는 파상공세에 밀리다 결국 검에 찔려 쓰러지고 말았다.
역장이 이미 파괴된 이상 아머유저라 해도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슈웅! 쐐액!
그리고 악마의 화살은 연신 날아들어 남작 측 아머 유저들의 역장을 깨부쉈다.
그와 함께 단물을 빨아먹어 보고자 했던 브레넌 남작의 얄팍한 꿈도 깨져나갔다.
“후, 후퇴하지.”
기사들이 쓸려나간 이상 승부는 결정되었다.
남작이 일단 몸을 피해야겠다고 결심한 바로 그 순간.
“조심하십시오!”
슈아아악!
세 발의 화살이 지휘부를 향해 날아오다가 허공에서 ‘분열’했다.
갑자기 수십 개로 늘어난 화살 조각들이 그들을 덮쳤다.
콰과광!
“끄악!”
“치, 치료사!”
기사들은 어떻게든 막아냈지만, 무위가 떨어지는 지휘관들은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 말들이!”
호위 기사들이 남작은 지켜냈지만, 말은 살려내지 못했다.
이제 도망치려면 뛰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
적진에서 수백 기의 기마대가 이쪽을 포위하듯 좌우로 산개하자 남작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네 번째 전장.
라울 자작령-루이신 영지 경계의 전투는 퍼스트 기사단 부단장 피어스 경의 손으로 마무리되었다.
* * *
네 곳의 전장에서 모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라울 자작군은 회군하지 않고 바로 남작령들을 향해 진격했다.
총 6개의 남작령이었기에 각 영주성으로 향하는 병력은 적으면 천오백에서 많아야 2천정도.
포로로 사로잡은 병력을 관리할 병사도 남겨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어찌 보면 공성전을 벌이기엔 부족해 보이는 병력이었지만, 실제론 충분하고도 남는 전력이었다.
남작가의 본대 병력을 쓸어버렸기에 그들이 성에 남겨둔 예비병과 징집병 정도는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각 부대에 포함된 기사와 아머유저를 생각하면 병력의 수는 크게 의미 없는 지표였다.
“보고 드립니다. 왕실 참관인 일행이 마스터를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한참 브록스 남작성을 향해 진군하던 도중,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왕실 참관인이 나타났다.
처음 남작 연합이 전면 승부를 제안한 날짜는 5월 20일.
하지만 라울은 그보다 훨씬 이른 15일에 승부를 내버렸다.
덕분에 왕실 참관인은 실제 전투는 구경도 해보지 못하고 부랴부랴 라울의 부대를 향해 달려온 것이다.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이 가긴 한다만, 모셔 오게.”
식사 시간이라 임시 막사를 펼쳐놓은 상태였기에 참관인 때문에 행군을 멈춰야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크흠. 설명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만?”
호위기사 셋과 함께 막사로 들어온 왕실 참관인은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아니, 앞뒤 다 잘라먹고 무슨 소리요?”
라울의 옆에 서 있던 달튼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묻자 참관인이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자작 본인도 아니면서 감히 왕실 관리의 말을 잘라먹는 너는 누구냐?”
잘하면 삿대질까지 해댈 기세라 달튼이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참, 나. 참관인이라고 해봤자 기껏 남작에 말단 관리 아닌가? 내 정체가 궁금하면 말해주지. 달튼 드 템플턴 남작이다. 마르퀴스 드 템플턴 공작님이 바로 내 친 할아버님 되시지. 어떻게, 대답이 되었는가?”
“헉! 검공님의 손주?”
그제야 달튼의 정체를 알게 된 관리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재빨리 사과했다.
“이, 이런. 미안하오. 템플턴가의 공자님이 이런 곳에 계실 줄은 미처 몰랐소. 내 사과하리다.”
태도를 보아하니 자작인 라울보다 템플턴 가의 손주가 더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됐고, 무슨 용건인지 빨리 설명이나 해주시오.”
그러자 참관인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돌려 라울에게 말했다.
“어째서 참관인도 없이 전투를 벌인 겁니까? 분명 20일에 영지전을 벌이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라울의 변덕스런 행동 덕분에 관리는 전투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상관에게 거하게 깨진 후에 황급히 포털을 타고 이곳까지 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반드시 중재를 성사시키라는 특명까지 하달 받고 왔기에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뭐가 문제지?”
하지만 라울은 거리끼는 것이 없다는 듯 오히려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아니, 자작님. 아실 만한 분이 왜 그러십니까? 왕실의 허가 하에 벌어지는 영지전이면 당연히 왕실의 참관인이 보는 가운데 진행돼야 할 것 아닙니까?”
“글쎄. 나는 그런 법이 있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보게 체드. 혹시 그 사이에 왕국 법이 개정되기라도 했나?”
라울이 고개를 돌려 학자풍의 참모에게 묻자 그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법은 없습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법률서에 기록된 적도 없는 사항입니다. 그런 관행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긴 했습니다만, 아무런 강제성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럴 경우에 대비해 라울이 전장에 대동한 인물로, 수도에서 영입한 행정가였다.
“그렇다는군. 참고로 이 친구는 수도에서만 15년 가까이 법률 관련 업무를 보던 사무관 출신일세. 혹시 잘못된 점이라도 있는가?”
라울의 말에 기가 막힌 참관인이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법이야 그렇다 해도 관행, 관습이란 게 당연히 있는 거잖아!’
하지만 대놓고 말하기엔 상황이 영 좋지 못했다.
“크흠. 그래도 왕실의 행사에 협조하는 것이 영주된 자로서 당연한 도리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막무가내로 영지전을 진행한다면 왕실에서 결코 좋게 보지 않을…”
“미안하지만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군. 용건은 그게 다라면 이만 물러가게. 이제 행군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니 말이지.”
가차 없는 라울의 축객령에 왕실 참관인이 황급히 말했다.
“아니, 그래도 사람 말은 끝까지 들으셔야 할 것 아닙니까.”
‘이 자는 왕실이 두렵지도 않은가?’
속으로 궁시렁대며 참관인이 황급히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게 뭐지?”
“왕실에서 전하는 중재안입니다.”
휘리릭.
라울이 거칠게 두루마리를 펴고 내용을 한 번에 읽어 내려갔다.
꿈틀.
라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고, 읽고 난 두루마리를 달튼에게 넘겼다.
“당신도 여기 적힌 내용이 뭔지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걸 위해 제가 이 먼 곳까지 달려왔으니 말이죠.”
그때 탁 소리가 나며 달튼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따위가 무슨 중재안이야? 이건 누가 봐도 일방적으로 남작들에게 유리한 조건 아닌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