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68
제168화
처음 스킬도감을 얻었을 때, 라울은 기대를 품었다.
모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올 마스터’ 플레이어.
얼마나 멋진 어감이란 말인가?
무기술, 초능력, 마법, 신성력까지 모두 다루는 무결점의 플레이어가 된다면, 아무도 적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파이어볼!”
화염계 공격 마법의 대표 스킬이라 할 수 있는 4서클 마법 파이어볼이 배도현의 지팡이 끝에서 발현되었다.
화르륵.
머리통만 한 크기의 화염구가 대기를 불태우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표적지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표적지에 화염구가 부딪치는 순간.
푸시식.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화염구가 성냥불처럼 사그라들더니 이내 꺼져버렸다.
“아 진짜. 왜 안 되냐고? 역시 지팡이가 문젠가?”
배도현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들고 있던 마법 지팡이를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그런다고 갑자기 지팡이가 바뀔 리는 없었다.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라벨이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배도현이 움찔했다.
얼마 전 제이크가 필립과의 대련에서 대차게 깨진 뒤, 검이 어쩌고 핑계를 댈 때 라울이 그에게 해줬던 말이었다.
“그러고 보면 참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검을 쓸 때는 그렇게 마나에 민감하고 하나하나 컨트롤을 잘하던 사람이, 왜 지팡이만 들면 바보가 되는 건지. 쯧쯧.”
라벨이 혀까지 차는 모습에 배도현의 어깨가 더 움츠러들었다.
“아니, 그게 검을 쓰는 것과는 매커니즘 자체가 아예 다르잖아. 몸에 밴 습관을 고치는 게 쉽지 않은 건 당연하지.”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는 배도현이었지만, 라벨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스킬 발동 시 마나의 흐름과 구동 원리를 파악하면, 어떤 스킬이든 체득하는 게 가능하다고 큰소리치고 다니던 사람 어디 갔나 몰라. 그리고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 고집 피운다고, 갑자기 안 되던 게 되나? 하여튼 고집만 세서는.”
배도현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졸업의 탑, 마법 시험 코스 3층.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할 수 있다는 기초시험 단계였지만, 정면의 판정 화면에는 [탈락(Fail)!]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불행 중 다행히 기초시험 단계인 5층 이하에선 바로 재도전이 가능했기에 쫓겨나진 않았지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라벨의 눈초리가 무서웠다.
“이제 안 되는 걸 알았으면 얌전히 스킬을 사용하세요, 배. 도. 현. 씨!”
“…넵.”
애초에 이 사태가 벌어진 건 배도현의 오기 때문이었다.
스킬도감의 사기적인 특성 때문에 배도현은 스킬 슬롯의 세 칸에 마법을 지정해 사용할 수 있었다.
그간 스킬도감 랜덤 퀘스트를 깨면서 숙련도를 중급 1레벨까지 올려둔 마법도 꽤 많았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는가?
라울은 평소 스킬은 몸소 체득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왔기에 마법도 체득하길 바랐다.
그 때문인지 시스템의 도움 없이 직접 마법을 사용해 시험을 통과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평소에도 시스템 보조가 없으면 서너 번 시도해야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했던 마법들이 오늘따라 잘 발현될 리가 없었으니.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말해두지만, 라울에게는 마법사의 재능이 정말 눈곱만큼도 없어. 그러니까 제발 마법을 체득하겠다는 무모한 생각은 그만뒀으면 좋겠어.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훈련을 하라고!”
“하, 하지만 나에게도 ‘올 마스터’라는 꿈이….”
활짝 펼쳐져 있던 스킬도감이 탁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리고 라벨의 눈꼬리가 심상치 않은 각도로 휘어 올라가기 시작하자 배도현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있었지만, 이제 그만두는 게 좋겠지? 진즉에 그러려고 했어.”
아무래도 당분간은 그의 소중한 꿈을 접어두어야 할 것 같았다.
“정말 마법을 사용하고 싶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그냥 시스템 보조를 받아서 ‘스킬’로 사용해. 모든 스킬을 체득해서 사용한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고 멍청한 짓인지 잘 알잖아?”
배도현은 말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라벨의 말처럼 굳이 마법에 목맬 필요는 없었다.
발현 방식은 다를지라도 마법과 초능력은 상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파이어볼의 효과를 내는 스킬이라면 초능력 ‘화염술’로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었다.
짧은 거리 순간이동 마법인 ‘블링크’는 초능력 ‘플리커’로 대체할 수 있었고, 플라이 마법처럼 하늘을 나는 것은 라울의 염동력으로도 가능했다.
그리고 배도현의 초능력 적성은 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였으니.
‘쩝. 왜 안 되는 거지 진짜? 분명히 머리로는 다 알겠는데.’
아무래도 커넥트의 마법은 배도현에겐 아픈 손가락이 될 운명인 모양이다.
이후 탑 등반은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라벨의 잔소리에 굴복한 배도현은 순순히 시스템의 보조를 받아 마법 스킬들을 발동했고, 이미 중급 숙련도에 도달한 마법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마법사들에겐 보조 스킬이나 다름없는 ‘지팡이 전투술(곤봉술)’이 배도현의 손에서 재현되자 살벌한 스킬로 재탄생했다.
실제로 6층부터 9층까지 실전 시험에서 절반 가까운 몬스터들이 마법이 아닌 배도현의 지팡이에 머리가 깨져 절명했으니까.
‘영화 반지의 대왕에서 보면 건달프도 지팡이로 몬스터들을 때려잡았으니 반칙은 아니지 뭐.’
물론 라벨의 눈초리가 무서웠지만, 배도현은 떳떳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10층.
하얀 수염이 무성하고 로브를 걸친 전형적인 마법사 교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게, 도전자여.”
여느 교관들과 똑같은 대사를 내뱉은 늙은 마법사가 갑자기 눈을 번뜩이더니 탄성을 내뱉었다.
“허어, 마도서의 주인이라니! 굉장히 희귀한 마법을 익혔구려, 도전자여.”
교관의 말을 받은 것은 배도현이 아니었다.
배도현의 가슴 앞쪽에는 스킬도감이 활짝 펴진 채 둥둥 떠 있었고, 그 위에 작은 지팡이를 든 라벨에 앉아 있었다.
“내가 상대해도 되겠지? 인간 마법사여.”
라벨의 말에 잠시 멈칫했던 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하여 그곳에 묶였는지는 모르지만, 당신을 마법사의 서번트(하인)로 인정하오.”
“그렇다네. 어쩔래?”
라벨의 물음에 배도현이 양손을 펴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번엔 맡길게. 뒤에서 열심히 응원하면 되는 거지?”
“뭐 그러던가.”
애초에 마법시험에 도전한 것은 라벨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두 시험에서 너무 손쉽게 이겨서 그렇지, 원래 플레이어가 교관을 이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레벨과 숙련도를 동일하게 제한한다고 해도 그게 실력이 같아진단 뜻은 아니니까.
체득하지도 못하고 시스템의 보조를 받으며 숙련도를 올린 마법으로 수십 년간 마법을 수련해온 교관을 이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 지팡이 신공이라면 가능할지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자칫 ‘마법’만 사용해야 한다는 추가 목표에 위배 될 가능성이 있었다.
여기선 조용히 라벨을 응원하는 게 답이었다.
화르륵!
퍼엉!
구르르르.
어느새 시작된 마법 대결은 화려한 이펙트를 자랑하며 배도현의 눈을 어지럽혔다.
마치 자존심 대결이라도 하듯 라벨과 교관은 처음 선 자리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입술만 움직이며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바람 화살 소환. 많아져라!”
라벨의 언령 마법은 순식간에 십여 개의 반투명한 바람의 화살을 만들어냈다.
숙련도 제한 덕분에 숫자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그에 대항하여 교관은 스태프를 휘두르며 작게 읊조렸다.
“어스 실드! 허공을 떠도는 화염의 마나여, 나의 부름에 응하여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적을 꿰뚫어라. 파이어 애로우, 샷!”
메모라이즈 마법(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미리 비축해 놓은 마법 주문)인지 아니면 아티팩트인지 알 수 없지만, 교관은 단번에 연무장 바닥에서 자신의 키보다 커다란 돌의 방패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정석적인 마법 캐스팅을 통해 다섯 발 정도의 화염 화살을 만들어 쏘아냈다.
“엘레멘탈 실드!”
라벨의 몸 앞에 그녀의 대표적 방어 마법인 연녹색 방패가 생성되어 화염 화살을 막아 냈다.
그와 동시에.
“번개 소환. 내리꽂아라!”
쿠르릉.
마른하늘에서 한 다발의 번개가 생겨나더니 교관의 머리 위에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어느새 교관의 머리 위엔 푸른색의 실드가 생성되어 번개를 땅으로 흘려냈다.
그렇게 빠르고 격렬한 마법의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배도현도 머릿속으로 가상의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교관이 메모라이즈 해둔 스펠들이 있겠지만, 숙련도 상 열 개 정도에 불과하겠지. 그 마법들을 먼저 소진시키는 걸 목표로, 가장 빠른 마법이 매직 미사일이었던가? 어엇, 파이어 애로우가 날아오면 워터 실드를 써야 하나? 주문이 뭐였… 아이고 머리야.’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공방의 속도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최대한 마법만으로 상대해 보려 했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아, 귀찮아. 그냥 염동력으로 비수 날려서 실드 갉아먹고 딱 달라붙어서 칼질 서너 번 하면 끝나겠구만.’
결국 자신이 마법과는 안 어울린다는 사실을 인정한 배도현이 미련을 버리고 둘의 전투를 감상했다.
이미 수십 개의 마법을 주고받은 상황에서 누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확연했다.
“일어나라, 돌 가시! 무거운 바람아, 내리눌러라!”
메모라이즈 해두었던 마법과 착용하고 있던 아티팩트의 주문을 소진한 교관은 라벨의 언령 주문 속도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직접 움직여 마법을 피하면서 캐스팅하는 ‘무빙 캐스팅’까지 보여 줬지만, 그가 소환해 두었던 방어 마법들은 하나둘 라벨의 연환 공격에 깨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마법 방어막이 깨져나가고, 라벨의 소용돌이 마법에 휘말린 교관이 수십 미터 상공까지 떠올랐다가 추락하는 것으로 대결이 마무리되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라벨은 대결을 시작했던 그 자세 그대로 스킬도감 위에 앉아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었다.
배도현은 감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이로써 배도현이 도전했던 세 가지 시험 ‘근접 전투’, ‘초능력’, ‘마법’에서 모두 합격했다.
또한 ‘교관을 이겨라’ 이벤트도 추가 목표까지 모두 달성했으니, 이제 졸업의 탑 개인 목표는 모두 이뤘다.
‘보상은 돌아가서 살펴봐야지.’
첫 장소로 돌아온 배도현은 복잡하게 팝업된 시스템 메시지를 잘 정리해 한쪽에 내려놓고는 탑을 떠났다.
그가 탑의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자 광장 앞에 모여 있던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아무리 빠르게 통과했다 하지만, 세 개의 시험을 치르느라 반나절은 지났다.
해가 진지도 오래 지나 시간은 자정에 다가가고 있었고, 광장은 마법등에 의지해 빛을 밝히고 있었다.
‘어째 사람이 아까보다 더 많아 보이냐?’
혹시나 이런 상황이 생길까 봐 시간을 맞춘 것인데 쓸데없는 배려였던 모양이다.
“어, 어떻게 되었습니까?”
“탑은 통과하신 건가요?”
“역시 ‘초능력’ 시험을 보신 거죠?”
잠시 머뭇거리던 플레이어들이 배도현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탑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오는 데는 대여섯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거의 한나절을 탑에 있다가 나왔으니 플레이어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배도현은 입을 여는 대신 한쪽에 미뤄 두었던 시스템 창을 펼쳤다.
-무사히 졸업 시험을 통과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시작의 도시를 졸업하고 진짜 커넥트의 세상에 도전장을 내미시겠습니까?
-YES(24시간 경과 후 자동 선택됩니다)
배도현은 깜빡이는 YES 문자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단번에 터치했다.
바로 그 순간.
피이이잉!
마치 폭죽이라도 터지듯 졸업의 탑에서 솟구친 푸른 빛줄기가 허공에서 12개로 나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미라의 상공에 그간 보이지 않았던 반투명한 푸른 장막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고운 빛의 가루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공지 사항]축하드립니다! 배도현 플레이어가 가장 먼저 [졸업의 탑]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이로써 이방인이었던 플레이어들이 커넥트 세상의 구원자가 될 자격을 갖추었음을 세상에 증명하였습니다.
-이 시간부터 [자유 도시 이동제한]이 사라집니다. 자유롭게 커넥트 대륙을 탐험하며 이 세상을 위협으로부터 지켜내세요.
-스스로의 자격을 증명한 만큼, 지정된 구역 이외에서는 플레이어들도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주민들과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세요.
-대륙은 여전히 게이트의 침공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다음 시나리오 개시 전까지 ‘게이트’와 ‘던전(고착화된 게이트)’에서 얻는 경험치와 보상이 두 배로 증가합니다.
-플레이어 전용 메인 퀘스트 [구원자의 등장]이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대륙을 탐험하며 주민들을 위해 공적치를 쌓으세요. 가장 훌륭한 성과를 거둔 플레이어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제공될 것입니다.
플레이어들이 본격적으로 커넥트의 세상에 개입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