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67
제167화
“여기도 오랜만이네.”
백색의 벽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방 안에 들어선 배도현의 모습을 한 라울이 말했다.
“아, 전생에서도 한 번 통과했었다고 했지?”
어느새 배도현의 어깨 위에 모습을 드러낸 라벨이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받았다.
전생에서도 게임 초반에 들어왔던 곳이니 이미 1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주변에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졸업의 탑이 등장하고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이곳을 찾은 만큼 북적여야 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굉장히 정교하게 구성된 환상 마법과 공간 마법이네. 솔직히 나도 완전히 파악하긴 어려울 것 같아.”
라벨이 안경을 고쳐 쓰며 흥미롭다는 듯 마법진을 살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을 만들어 낸 것은 커넥트 시스템.
거의 신과 다름없는 권능을 발휘하고 있는 사기적인 존재였으니까.
탑에 들어선 다른 플레이어들도 아마 홀로 이런 방 안에 진입했을 것이다.
그때 아무것도 없는 정면의 하얀 벽에 마법처럼 글자가 떠오르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졸업의 탑에 방문하신 플레이어님을 환영합니다. 이곳에선 여러분이 그동안 커넥트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시험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벽에 간단한 설명이 나타났다.
크게 개인 시험과 단체 시험으로 분류되었고, 거기서 다시 전투 직군과 비전투 직군 시험이 있었다.
탑의 시험은 총 10층.
간단한 능력 측정부터 실전 시험까지 다양한 시험이 준비되어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해서 플레이어님의 특성과 스킬, 성장 방향에 따라 시험형태를 추천해 드립니다. 물론 추천 시험이 아닌 다른 클래스의 시험도 도전할 수 있지만, 해당 직군이 아니라면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설명이 끝나고 벽의 마법 스크린에서 ‘플레이어님의 상태를 측정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전에는 볼 것도 없이 초능력 계열 시험을 추천받았었지. 이번에는 어떻게 되려나?”
“그러게. 그런데 이 시험, 혹시 라울의 본래 능력을 기준으로 설정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러면 시험 보기도 전에 ‘플레이어님은 시험을 치르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멘트가 나오는 거 아닐까?”
굳이 시험해 보고 싶지는 않았다.
쓸 만한 보상들이 많은데 시험 기회조차 박탈당하면 그게 무슨 손해란 말인가?
그리고 다행히 그런 불상사가 생기진 않았다.
하지만 화면에 표시된 내용은 확실히 평범하지 않았다.
근접 전투. 원거리 전투. 초능력. 마법. 소환. 정찰. 암살. 제작. 조리. 채취. …….
거의 모든 직군의 시험 목록이 빼곡히 나열되고도 모자라 화면을 넘기라는 표시까지 나와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스킬 도감 탓인 듯하네. 어쩔 거야? 이거 다 돌려면 한세월 걸리겠는데.”
배도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스킬 도감에는 어느새 천오백 개가 넘는 스킬이 등록되어 있었다.
스킬 도감의 숙련도 보정에 도감 경험치를 채우기 위해서 매주 랜덤으로 정해지는 스킬 퀘스트를 깨다 보니, 전투와 상관없는 스킬까지 중급 1레벨을 달성한 것들이 꽤 되었다.
어차피 모으는 김에 가리지 말잔 생각에 비전투 직군 스킬까지 긁어모았더니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중요한 몇 개만 깨면 되지 뭐. 어차피 전부 다 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숙련도를 중급까지 올려뒀다고 해서 시험을 무조건 통과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노리는 것은 단순한 시험 통과가 아닌 [교관을 이겨라] 이벤트 보상.
어정쩡하게 올려둔 스킬 믿고 도전했다간 시간 낭비만 할 게 분명했다.
특히나 비전투 직군 계열은 굳이 손댈 이유도 없었고.
하지만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1인당 도전 가능한 개인 시험 종류는 3개로 한정됩니다. 신중하게 선택하십시오.
“훗. 고민할 필요도 없었네. 그러면 일단은 초능력부터 가볼까? 몸풀기에 딱 좋을 거 같네.”
대충 시험 내용도 다 알고 있으니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라울, 이번에 꼭 얻어야 하는 게 있다는 거 잊으면 안 돼!”
“알았어. 별로 내키진 않지만 어쩔 수 없지.”
배도현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라벨이 입술이 삐죽 내밀고는 도감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내 도움은 필요 없지? 나중에 그 시험 때나 부르라구.」
혼자 남게 된 배도현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그의 주력 전투 시험은 라벨이 모습을 드러내면 곤란했다.
영상으로 제작해서 올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배도현이 [초능력 시험]을 선택했다.
* * *
파죽지세로 탑을 등반한 라울은 어느새 마지막 층인 10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1층과 2층은 플레이어라면 직업에 상관없이 누구나 갖춰야 할 기본적인 지식과 능력에 대한 시험.
3층에서 5층은 초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각종 기본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6층부터 9층까지는 초능력을 이용한 실전 테스트와 대련, 사냥, 전투 관련 시험이었다.
배도현은 적당히 50레벨 초반과 중급 초반의 숙련도에 맞춘 염동력만 사용하면서도 아주 간단하게 그 시험들을 통과했다.
나중에 영상이 공개된다면 마치 정석과도 같은 배도현의 공략을 보고 다들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마침내 10층.
문을 열고 들어선 배도현의 눈앞에 햇살이 내리쬐는 커다란 광장과 그 가운데 마련된 연무장이 나타났다.
“어서 오게나, 도전자여.”
연무장 위에는 적어도 4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평범한 인상의 사내가 배도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석안으로 살펴본 교관의 이름은 스테판 레이크.
A랭크 신체강화술과, B랭크 바람조종술을 사용하는 듀얼 초능력자였다.
‘교관이 달라지긴 했지만, 능력 조합은 비슷하군. 일반적인 초능력자라면 까다롭겠어.’
초능력 계열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강화술’ 계열.
자신의 몸이나 물체를 강화 혹은 변형시켜 사용하는 종류였다. 일반적으로 근접 전투에 적성이 맞는 경우였다.
두 번째는 ‘현상간섭’ 계열.
염동력이나 원소를 다루는 초능력처럼 자연을 변형시키고 일그러뜨리는 종류.
이쪽은 원거리 전투를 선호하거나 다양성(유틸성)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인 초능력자는 어느 한쪽에 특화된 경우가 많기에 연무장에 나타난 교관처럼 양쪽을 다루는 상대를 만나면 곤란함을 겪게 마련이었다.
물론 배도현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호오. 염동력을 다루는 플레이어인가? 범용성이 높은 초능력인 만큼 잘 활용한다면, 뛰어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
교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덕담을 흘리자, 배도현도 슬쩍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바로 시작하겠는가?”
“네, 부탁드립니다.”
“그래, 그럼 시작점으로 가게.”
공간상의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해서인지 연무장은 굉장히 커다랬다.
거의 한 변이 200m에 가까운 정사각형 연무장의 끝자락에 서자 교관의 모습이 자그마하게 보였다.
그리고 라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등급 : A
목표 : 졸업의 탑 10층의 초능력 교관에게 승리할 것
추가 목표 : 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초능력’ 스킬만 사용해서 승리할 것
제한 : 플레이어와 교관 모두 LV50, 스킬 숙련도 중급 1레벨 수준으로 고정됨
보상 : 랜덤 전용 장비 상자(A), 칭호(A), 대량의 경험치, 5만 코인
추가 보상 : 전용스킬 효과 강화
‘역시. 보상이 어마어마하네.’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추가 보상.
제이낙의 던전에서 염동력을 강화하고 얼마나 덕을 봤던가?
이번에도 절대 놓칠 생각은 없었다.
‘전생에는 얻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다.’
애초에 그때와는 전투 경험 자체가 달랐다.
이미 초능력 마스터까지 발을 들여봤던 배도현 입장에선, 중급 1레벨로 제한을 걸어봤자 아무런 문제 없었다.
게다가 비밀병기까지 있었으니.
허공의 ‘도전’ 버튼을 누르자 드디어 교관과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 * *
“쿨럭. 이런 말도 안 되는….”
라울의 염동력에 목을 붙들려 허공에 매달린 교관 스테판이 피를 뚝뚝 흘리며 목소리를 흐렸다.
그의 온몸은 상처로 가득 했고, 다섯 개의 단검이 자루까지 그의 몸을 파고들어 있었다.
그에 반해 라울은 멀쩡한 것을 떠나 전혀 전투를 치른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트리플(triple)? 쿼드라(quadra)?”
교관의 입에서 알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글쎄요.”
하지만 배도현은 묘한 미소만 지은 채 답해주지 않았다.
“내가 졌다. 축하한다 도전자여. 앞으로 그대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그 말을 끝으로 교관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시합이었다.
서로의 스킬 숙련도에 제약을 두었다지만, 배도현은 스킬에 의존하는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이미 그는 시스템이 표시하는 숙련도 이상의 것을 사용할 수 있는 경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스킬 도감’이라는 치트키가 있었다.
도감이 제공하는 추가 스킬 슬롯은 모두 세 가지.
배도현은 그곳에 플리커(B), 빠른 몸놀림(B), 중력장(B-) 스킬을 장착했다.
염동력까지 포함하면 총 네 가지의 초능력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라울에게 교관은 일방적으로 유린당한 채 패배한 것이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염동력과 플리커만 사용한 것처럼 보였기에, 교관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것이었다.
‘적절한 페널티였군.’
하지만 애초에 ‘초능력만’ 사용하라는 제약이 없었다면 더 손쉽게 마무리했을 것이다.
거의 마스터에 근접한 배도현의 검술 실력이라면, 중급 1레벨 수준의 제약을 받더라도 겨우 신체 강화 초능력자는 정도는 쉽게 베어버렸을 테니까.
파앗.
10층 공간이 사라지고 배도현은 어느새 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의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눈앞에 졸업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퀘스트 완료에 따른 보상 메시지 등이 줄줄이 팝업되었다.
‘나중에 확인하고.’
메시지창을 내려버린 라울이 바로 다음 시험에 도전하기를 선택했다.
당연히 종목은 [근접 전투].
어쩌면 이번 시험이 더 간단하게 끝날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스승님도 오랜만에 바람이나 쐬시렵니까?”
“그래. 어디 ‘졸업의 탑’이 뭔지 구경이나 해보자꾸나.”
레그나토르 1단계를 활성화하자 반투명한 상태의 카르데나스가 나타나 관심 있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애초에 그는 ‘신력(神力)’에 의해 긴 세월을 봉인되어 있었던 인물.
신이나 다름없는 커넥트 시스템의 이적(異蹟)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배도현은 순식간에 탑의 10층에 도달했다.
“어서 오시게, 도전자여!”
마찬가지로 연무장 위엔 커다란 체구의 기사 하나가 배도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알아채지 못하는군.’
레그나토르의 특수기능 중 [은밀한 포식]이라는 것이 있었다.
다른 하위 파워아머를 흡수하여 그 기능을 흉내 낼 수 있는 기능이었다.
그리고 라울은 지난 영지전과 백작가 내전을 통해 얻은 파워아머 중 하나를 레그나토르에 포식시켰다.
등급 : D
출력 : 0.55 CP(Core Power)
가동시간 : 1h/max
가동형태 : 마나석 소모형
방어술식 : 3서클
특이사항 : 갑옷 안에 착용하는 파워아머. 외부에서 착용여부를 알 수 없다.
내부장착용 파워아머.
특수한 소재를 사용하여 갑옷 내부에 파워아머를 감출 수 있는 특이한 제품이었다.
적의 빈틈을 노리거나 적진에 침투할 때 노출을 막아주는 괜찮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는 거의 사장된 물건이다.
이유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비해 형편없는 성능 때문이었다.
보급용 F등급 파워아머의 출력도 0,7 CP에 가까운데 겨우 0.5 수준의 출력.
거기다 가동시간도 짧고 방어 역장도 수준 이하.
제작 의도는 좋았으나 실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레그나토르에겐 딱 맞는 녀석이지.’
온몸을 감싸지 않는 특이한 형태의 파워아머인 레그나토르는 어딜가든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을 포식함으로 인해서 그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실제로 눈앞의 교관은 배도현이 파워아머를 장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애초에 플레이어가 파워아머를 장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도 못했겠지.’
이런 맹점을 써먹지 않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대번에 드러났다.
이어진 교관과의 대련에서 배도현은 아무런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검술만으로 교관을 가볍게 꺾었다.
원래 수준도 엑스퍼트 중급 정도였는데 파워아머까지 착용한 배도현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가볍게 두 번째 시험을 클리어한 배도현에게 마지막 시험만이 남았다.
“드디어 내 차례구나.”
기다리던 라벨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