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85
제185화
“나, 남작님. 급보입니다! 다리엔 마을이 결국, 몬스터에게 점령당했다고 합니다!”
“크윽….”
작은 남작령의 영주 제르도는 들고 있던 지도를 구기며 침음성을 흘렸다.
1개의 남작성과 12개의 소규모 마을로 이뤄져 있던 제르도 남작령.
인구는 다 합쳐야 겨우 1만을 넘기는 정도였고, 제대로 된 병사는 겨우 삼백여 명.
하지만 천운이 따랐는지, 게이트 사태 당시 성과 마을 근처에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았다.
덕분에 다른 영지들과 달리 조금은 평안한 시간을 보내는가 싶었지만.
‘불과 6개월 만에 몬스터들이 그렇게 창궐할 줄이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게이트들을 방치한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게이트가 고착화되어 던전으로 변하고 방치되자, 어느 순간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이 지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연히 병력이 턱없이 부족한 남작가로선 마을을 지킬 수 없었다.
그렇게 하나둘, 마을을 몬스터들에게 빼앗기기 시작한 지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갔고, 마침내 오늘 아침부로 모든 마을을 빼앗기고 말았다.
“소, 소식은? 전령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는가?”
“…송구합니다.”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경비대장의 모습에 남작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처음부터 신전의 권고를 들었어야 했어. 적어도 그때부터 병력을 훈련 시켰다면, 그래도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
제르도 남작이 위기를 눈치챘을 때는 이미 한참이나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게이트 사태가 터지고 몇 달이 지난 뒤.
어렵사리 수도에 보낸 부하가 전해온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왕실은 수도인 투리엄 주변만 신경쓸 뿐, 외부로 병력을 파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없는 재산을 쥐어짜서 용병이라도 고용하려 했지만, 수도의 용병이란 용병은 씨가 말랐고, 병사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F급 용병들조차 몸값이 두 배 이상 폭등했으니.
또한, 왕국 전체에 게이트가 등장하는 바람에 선뜻 멀리 떨어진 다른 영지를 신경 쓸 가문은 없어 보였다.
혹시나 하고 소문이 자자한 퍼스트 길드를 방문했지만, 이미 의뢰가 가득 차서 파견할 병력이 없다는 안타까운 대답만 돌아왔을 뿐.
‘그나마 여유가 생기면 도와주겠다는 대답을 들은 건 그곳뿐이었지.’
하지만 6개월 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다른 곳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제 남작령은 사방이 몬스터의 영역에 포위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남은 것은 남작성 내에서 버티고 버티며 어떻게든 누군가가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성내에 무기를 들 수 있는 모든 이들은 훈련에 들어간 상태.
그나마 몬스터들에게 영지를 빼앗기기 전에 충분한 식량을 확보해 놓은 것이 위안이랄까.
‘하아, 정말 이렇게 끝인가? 내 대에서 가문이 멸망하고 마는 것인가?’
오로지 농사만으로 유지되는 남작령은 가치가 없는 영지였다.
덕분에 주변 영주들의 위협 없이 가문이 이어져 왔지만, 지금 와선 뭐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러면 적어도 영지민들은 살릴 수 있었을 테니.
“말은 얼마나 남아 있지? 친서를 써줄 테니 다시 전령을 보내도록.”
애초에 작은 남작령에 말이 많을 리가 없었다.
하나둘 실종된 전령들 때문에 이제 남아 있는 말도 몇 필 안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전령을 보내는 것은 어떻게든 영지를 구해보고자 하는 발버둥이었을 뿐.
그때 누군가가 복도를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탕탕.
“남작님! 전령, 전령이 왔습니다!”
“……! 어디냐?”
말을 전해들은 남작이 방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저, 정말이오? 그 조건이라면 병력을 지원해 준다는 것인가?”
“물론입니다. 자작님께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병력을 파견하고 싶어 하셨지만, 아무래도 이방인들에게는 보수를 지급해야 하니까요.”
“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라울 자작님께 신의 축복이 있을 것이오.”
제르도 남작은 감격에 겨워 전령이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두 손을 모아 신께 기도를 올렸다.
“그럼 제안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가? 부디, 부디 하루라도 빨리 지원병을 보내주시오. 그리고 만약 영지의 안정을 되찾게 된다면, 무슨 수를 쓰던 내 라울 자작님께 이 빚을 꼭 갚고 말리다!”
남작성을 찾아온 이는 바로 라울이 보낸 전령이었다.
남작령의 위기를 못 본 척할 수 없어 병력을 파견하겠다는 소식과 몇 가지 가벼운 조건을 붙였는데, 남작이 생각했을 때는 말도 안 되게 자비로운 제안이었다.
– 병력을 파견하여 몬스터들에게서 영지를 지키고, 나아가 되찾게 도와주겠다.
– 대신 포털의 설치를 허용하고, 되찾은 영지에 있는 게이트(고착화된 던전)의 관리 및 소유권을 양도한다.
– 파견한 병력 중 이방인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들의 처우에 관해선 우선적으로 퍼스트 자작가에 일임해야 한다.
– …….
– …….
애초에 남작령의 병력으로 게이트를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오히려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영지를 돕기 위해 오는 이방인들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었고, 그를 위한 시설이나 부지를 제공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물론 아직 어느 정도의 병력을 어떻게 보내올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거의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남작이 생각했을 때) 이런 호의를 보이다니.
‘소문을 믿지 못했는데, 정말 다르긴 다르구나.’
투리엄의 수호자.
신의 대리인.
다른 명문 가문들은 제 이득을 챙기느라 영지전을 벌이기 바쁘다는데, 이렇게 소외된 영지를 챙겨주는 걸 보면 전혀 틀린 말이 아닌 듯했다.
꾸욱.
제르도 남작이 간소한 계약서에 가문의 인장을 찍었다.
“그래서 대략 언제쯤이면 지원군이 도착할 것 같소? 부끄러운 얘기지만, 몬스터들이 본격적으로 공성전을 벌여온다면, 우리 성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오.”
제르도 남작이 약간은 초조한 표정으로 묻자 전령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곧’ 도착할 겁니다.”
“……?”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병사 하나가 사색이 되어 들어왔다.
“여, 영주님! 성 밖에서 먼지구름이 피어오른다는 보고가…. 아마도 몬스터의 습격이 아닐까 합니다!”
“이, 이런. 서둘러 병력을 소집하라!”
하지만 전령이 그런 영주를 잠시 말리며 병사에게 물었다.
“방향은 어디요?”
“네?”
“어느 성문 쪽이냔 말이오.”
“그, 그게 남문 방향입니다만.”
그러자 전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럼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우리 병력이니까요.”
“그게 정말이오?”
남작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되묻자 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마중 나가심이 어떠실지.”
그렇게 그들이 남문 쪽 성벽으로 향했을 때.
“모, 몬스터다!”
“모두 활을 들어!”
성벽 위에선 난리가 나 있었다.
어느새 다가오는 것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화, 황야 하이에나야!”
“수, 숫자는 대략 수백 마리 이상!”
날카로운 갈고리 발톱으로 목책을 평지 걷듯 기어 올라오는 황야 하이에나(D)는 영지병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모, 모두 정신 차리고 발사 준비!”
성벽 경비대장이 외치자 병사들이 서둘러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때 부관으로 보이는 이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좀 이상합니다. 저건 마치….”
“……?”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같지 않습니까?”
어느덧 거리가 좁혀지고 보니, 부관의 말이 맞았다.
황야 하이에나들은 꼬리를 가랑이 사이로 만 채, 무작정 달려오고 있었다.
통솔도 되지 않고 제각각 움직이느라 뒤엉켜 바닥에 뒹구는 놈들도 제법 되어 보였고, 일부는 피에 젖은 듯 붉게 물든 놈들도 있었다.
“그래도 성에 접근시킬 수는 없다! 모두 조준!”
경비대장이 명령을 내리던 바로 그 순간.
슈우우웅, 콰광!
구르르릉!
퍽, 퍼버벅!
커다란 화염구가 하이에나들 뒤쪽에서 날아와 놈들의 진영 중간에서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살짝 진동하며 놈들의 다리를 묶었고,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들이 사정없이 놈들의 몸을 꿰뚫고 있었다.
“지, 지원군이다!”
“와아아!”
“살았다!”
하이에나 무리의 뒤쪽으로 천 명에 가까운 기병대가 화살을 퍼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또한, 말 위에서 각종 마법들이 날아들며 놈들의 진형을 헤집었고, 어느새 가속한 돌격대가 창을 휘둘러 하이에나들을 사냥했다.
기병대는 각양각색의 복장을 갖추고 있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망토.
황금빛 매가 새겨진 푸른 망토가 그들의 등 뒤에 펄럭이고 있었다.
* * *
확실히 케인의 수단은 놀라웠다.
충분한 지원이 주어지자, 불과 1년 반 만에 루벤 왕국 전역에 정보원을 심어둔 것이다.
덕분에 라울은 어렵지 않게 왕국 전역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병력은 잘 도착했는가?”
“네, 다섯 곳의 영지에 각각 1천명 씩 파병을 마쳤습니다.”
퍼스트 영지의 중앙군 5백과 플레이어 5백으로 이뤄진 혼성 군단이 파병되었다.
회의실 벽면 마법 지도에 황금 매의 마크 다섯 개가 박혀들었다.
왕국의 오지에 해당하는 남작령들이었다.
지금까지는 별 가치 없는 곳으로 여겨져 아무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라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곳이라도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점은 있기 마련이지.’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남작령들의 위치는 절묘하게도 각 명문가와 세력들의 경계 부근에 걸쳐 있었다.
게다가 나름 쓸 만한 부산물이 나오는 던전까지 있으니, 내버려 둘 이유가 없었다.
‘여태까지는 내 영지 챙기기에 바빴지만, 이제는 아니야.’
영지는 플레이어들의 유입으로 인해 더 빨리 안정되고 있었다.
라울의 정예병들이 관리하고 있던 던전과 게이트가 플레이어들에게 일부 이관되면서 여유 병력이 생겨났다.
또한, 경제력을 갖춘 1만의 플레이어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도 일조하고 있었다.
“다섯 영지의 영주 모두 계약에 동의했습니다. 몬스터를 몰아내는 즉시 기반 시설을 마련하고, 플레이어들이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하겠습니다.”
플레이어들을 꾸준히 유입시키려면, 그들에게 다양한 사냥터와 퀘스트를 제공해야 했다.
당분간은 퍼스트 자작령으로 충분하겠지만, 미래를 위해 왕국 곳곳에 퍼스트 길드의 깃발을 꽃아 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이제….’
라울의 심중을 알아차린 버나드가 마법 스크린을 조작했다.
파앗.
왕국의 영지 중 네 곳이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현재 영지전 신청을 받은 영지들입니다. 네 곳 모두 남작령이고, 특별한 세력에 속하지 않은 중립 영주가 다스리고 있습니다.”
네 영지 부근에 붉은색 영지들이 표시되었다.
“영지전을 신청한 곳입니다. 남작가 셋에 자작가 하나. 겉으로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조사 결과 남작령 한 곳은 랜달 백작가, 나머지 세 곳은 맥닐 후작가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쳇, 더러운 놈들.”
제이크가 얼굴을 붉히며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피빗.
영지 몇 곳이 보라색과 검정색으로 물들었다.
“보라색 영지는 게이트 사태 이후 랜달 백작가에 넘어간 곳입니다. 마찬가지로 검정색은 맥닐 후작가가 차지한 곳입니다. 랜달가가 6개의 남작령을, 맥닐 후작가가 8개의 남작령과 1개의 자작령을 흡수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거 참. 아주 속들이 시커멓네요.”
달튼이 확연하게 커진 두 세력의 크기를 보며 혀를 찼다.
“이처럼 놈들은 노골적으로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으며, 현재 영지전이 예고된 4곳 외에도 십여 곳이 영지전 절차를 밟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그들이 원하는 대로 확장을 마친다면, 왕국 전체의 대략 30%가량이 그들의 손에 들어갈 것입니다.”
버나드의 보고가 끝나자 좌중의 간부들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아무리 왕실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지만, 이렇게 명문가들이 막무가내로 확장을 지속한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내전.’
가뜩이나 게이트 사태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인간들끼리도 전쟁을 벌인다면….
짝짝.
“다들 주목.”
라울이 박수를 쳐 간부들의 시선을 모았다.
“여태까지는 여력이 없어 보아 넘겼지만, 이제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버나드!”
“네, 마스터.”
“영지전을 앞둔 네 영지에 전령을 보내라. 아마도 도움의 손길이 절실할 것이다. 그리고 케인.”
“네, 마스터.”
“영지전을 신청한 놈들의 배후를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지원을 받는다면 그 수가 어떻게 되는지, 기사단이 있다면 그게 누구인지. 알겠나?”
“맡겨 주십시오.”
케인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튼.”
“네. 마스터.”
“작전이 수립되는 즉시 플레이어들에게 공지하도록. 우리가 대놓고 나설 수 없는 만큼, 그들의 힘이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아마도 지원자는 충분할 겁니다.”
지시를 내린 라울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당분간 플레이어들을 통해 왕국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동안 기사단과 병력 양성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각 지부와 협력 영지들과의 연계도 준비해 두도록.”
“명령 받들겠습니다!”
라울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도를 바라봤다.
또다시 대륙이 불길에 타오를 날이 머지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