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86
제186화
와글와글.
칼립스 성, 제2외성 앞 광장.
꽤 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들어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떨려. 이제 본격적으로 전쟁인가?”
“너는 이번이 첫 영지전이랬지? 긴장되겠다, 크크.”
“몬스터 사냥하는 거 하곤 완전 다르다던데. 정말 그래?”
“한번 겪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냥 어버버하고 있다가 몇 번 스킬 쓰고 나니까 전투가 끝났더라고.”
친구로 보이는 둘의 대화에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끼어들었다.
“이번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 같던데.”
“왜? 어차피 영지전이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때는 퍼스트 길드가 압살해버린 전투였고, 이번엔 상대가 다르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봤자 우리가 이기지 않겠어?”
말하는 플레이어도 확신은 없는 듯 목소리가 흔들렸다.
이번 영지전에 대한 정보와 대략적인 작전은 이미 참가자들에게 전달 된 상태였다.
영지전이 벌어지는 곳은 루벤 왕국 남부.
셀피어드 남작가와 제레미 자작가가 그 주인공이었다.
셀피어드 남작가는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닌 가문으로, 대대로 커다란 목장을 운영해왔다.
남작가의 영지에는 특별한 식물이 자라는 초원 지대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자란 말은 같은 종보다 체격도 크고 지구력도 좋아서 전마로 제격이었다.
당연히 눈독 들이는 이도 많았지만, 남작가의 저력도 만만치 않아서 여태까지는 별 탈 없이 가문을 유지해왔다.
실제로 가주 자체가 엑스퍼트 중급의 실력자였고, 그 밑에 엑스퍼트급 기사만 5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또한, 목장을 경영하는 곳답게 강력한 기마대를 운용하고 있으니 일반적인 남작가와는 달랐다.
“그래도 역시 제레미 자작가가 유리하겠지?”
“그걸 말이라고 해? 기사 수도 병력 수도 차이가 심각하잖아. 게다가 후작가의 지원도 있다는데.”
셀피어드 남작가의 병력은 총 2천 500. 기사 수는 10명.
그에 반해 제레미 자작가의 병력은 총 5천. 기사 수는 30명.
아무리 셀피어드 남작가가 1천 명 규모의 기마대를 운용한다고 한들 두 배에 가까운 전력 차가 나고 있었다.
여기에 맥닐 후작가의 은밀한 지원이 더해지면, 전투가 성립되기 어려울 정도의 숫자 차이가 날지도 몰랐다.
그래서 처음 플레이어 협회에 의뢰가 전달되었을 때는 참전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 왜 굳이 불리한 영지전에 참가한단 말입니까? 기왕 전투에 참가할거면 이길 쪽에 붙어야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얘기였다.
라울은 불만을 듣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애초에 유리한 측이 굳이 돈을 써가며 용병을 고용할 이유가 없지. 게다가 그 대상이 정체도 불분명한 이방인들이라면야. 정 원한다면 직접 자작가 측과 교섭해도 말리지 않겠다고 전해.”
물론 그런 도전정신을 가진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2천 명 규모의 지원병을 파견하는 의뢰에 영지에 남아 있던 7천여 플레이어 대부분이 지원한 것을 보면, 어딜 가나 입만 살아 있는 이들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선발된 2천 명의 플레이어들이 준비를 마치고 광장에 모여 있었다.
“오오, 퍼플 길드다!”
“와, 이번엔 배도현 씨도 참가하나본데?”
제2외성의 문이 열리고, 백마를 탄 50명의 플레이어들이 광장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보랏빛 매의 문양이 새겨진 하얀 갑옷을 착용하고 등에는 파란 망토를 휘날리고 있었다.
아카데미 2기 졸업생과 추가 선발된 플레이어가 합류해 50명을 채운 퍼플 길드는 여전히 공식, 비공식 최고의 플레이어 길드였다.
구성원은 전원 전체 랭킹 300위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면면도 화려했다.
길드 마스터이자 커넥트 오픈 이래 부동의 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배도현.
부길마이자, 플레이어협회장을 겸임하게 된 랭킹 2위 김일우.
기검술의 달인이자 퍼플 길드 팀장인 랭킹 3위 왕천명.
그 외에도 랭킹 5위의 격투가 루이스 블레이크, 랭킹 7위의 환수 소환사 한서현, 랭킹 8위 마법사 사비에르 아델 등 쟁쟁한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했다.
“이거 정신 바짝 차려야겠는데?”
“갑자기 왜?”
“아니, 그렇잖아. 이렇게 되면 현재 플레이어 가운데 최정예라 부를 만한 구성인데, 만약 왕창 깨지기라도 하면 그게 무슨 쪽팔리는 일이겠냐고.”
“듣고 보니 그렇네. 어떻게 보면 이번 영지전이 우리 데뷔전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몇 달 전에 있었던 퍼스트 영지의 영지전은 사실 플레이어들의 활약은 거의 없었다.
강력한 퍼스트 기사단과 길드원들이 거의 박살내 버린 상대 진영을 뒤처리 하는 수준이었으니.
그 때문인지 커넥트 대륙에서 플레이어들의 위상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번 영지전이 중요했다.
플레이어들이 결코 무시할 만한 이들이 아니라는 걸 알리는 동시에, 그들이 누구의 통제하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회가 될 테니까.
퍼플 길드가 도착하고 나자, 본격적으로 부대 편제가 이뤄졌다.
미리 통지된 대로 길드, 병과, 랭킹에 따라 임시로 편성이 진행되었는데, 커넥트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 통신이 이뤄지니 나름대로 순탄하게 마무리되었다.
군부대가 아닌 이상 제대로 된 통합 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편제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진형 정도는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이천 명의 플레이어 부대가 편성을 마치자, 따로 대기하고 있던 백여 명의 병사가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일반 병사의 복장이었지만, 실제로 그들의 정체는 퍼스트 기사단원들.
플레이어 부대를 파견한다고 했지만, 진짜 그들만 보낼 수는 없었다.
맥닐 후작가가 함정을 팠다거나 제국의 첩보부가 움직이는 등의 돌발사태가 발생한다면, 플레이어들이 몰살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야했다.
또한, 아무리 퍼플 길드가 있다 해도 2천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을 통제하는 게 쉬울리 없었다.
플레이어 부대가 첫 선을 보이는 자리인 만큼, 그들이 사고를 치지 않도록 제어할 필요도 있었다.
우우웅.
마나가 진동하며 커다란 마법진 위에 텔레포트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척척척.
퍼플 기사단을 선두로 2천의 플레이어들이 갖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게이트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어디서 지원군이 도착했다고?”
“그것이… 퍼스트 길드라고 합니다.”
“퍼스트 길드…?”
잠시 머릿속을 굴려보던 쥐 상의 남자가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 라울인지 뭔지 하는 꼬맹이가 만들었다는 길드? 그게 왜 여기서 튀어나와!”
“그, 그건 저도 잘….”
퍽!
얄팍한 수염을 기른 남자, 제레미 자작이 던진 책이 부하의 면상에 부딪혔다.
“그걸 알아내라고 내가 비싼 돈 주고 너를 고용한 것 아닌가! 당장 나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봐! 밥값 하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자작님.”
정보 수집을 담당한 부하가 고개를 숙이고는 황급히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하아, 하여튼 맘에 드는 놈들이 없어!”
그리고 상황도 지랄 맞게 되버려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제길. 아무도 도와줄 이가 없다는 말에 영지전을 걸었는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제레미 자작가는 일반적인 루벤 왕국의 귀족가와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검을 잘 다루는 기사 출신도 아니었고, 딱히 정치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상인.
돈을 벌어 가문을 일으킨 만큼, 손익계산에 빠르고 시류에 빨리 올라타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 때문에 맥닐 후작가 측에 선을 댄 것이고.
이번 기회에 평소 눈독을 들였던 셀피어드 남작가의 목장을 빼앗을 작정이었는데….
끼이익.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갈색 갑옷을 입고 있는 거한의 기사였다.
갑옷에 새겨져 있던 문장은 지워버렸는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애초에 이런 둔탁한 색상과 모양의 갑옷을 입는 기사들은 맥닐 후작가 출신뿐이었다.
“아, 야닉 경. 어서 오시오. 그런데 소식은 들으셨소?”
제레미 자작의 물음에 야닉이 험상궂은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 지원군 말씀이십니까?”
“맞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분명 남작가에 지원은 없을 거라 장담하지 않았소?”
그러자 야닉이 드르륵 의자를 빼서 앉고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원군이 왔다고 해서 조사해 봤는데, 제대로 된 병사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병사들이 아니라니?”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올 초에 이방인이 어쩌고 하면서 신전에서 떠들어대지 않았습니까.”
“아, 그 이방인들.”
상단을 운용하는 제레미 자작가인 만큼, 한때 이방인들에게 관심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유 도시에서 올라온 보고를 받은 그는 이내 관심을 끊어버렸다.
‘웬 거지새끼들이 나타났다고 했지.’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는 놈들을 무슨 구원자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 신전 놈들을 비웃었던 기억이 여전했다.
“이번에 온 놈들이 바로 그 이방인들이라고 합니다.”
“그게 정말이오? 허, 참. 싸울 줄도 모르는 것들을 뭐 하러.”
“그러게 말입니다. 용병을 고용하고 싶어도 씨가 말랐으니 어쩔 수 없이 부른 것이겠죠. 그런 허수아비들은 우리 정예병에게 상대도 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야닉의 말에 제레미 자작이 조금은 진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퍼스트 길드라 하면, 바로 라울 자작. 그리고 애쉬튼 백작가를 뒤에 끼고 있는 곳 아닌가? 그들이 개입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텐데. 안 그렇소?”
“하하, 놈들이 나설 생각이었으면 저런 허수아비 이방인들을 보냈겠습니까? 뭐, 놈들도 귀가 없진 않을 테니 자작님 뒤에 누가 있는지 대충 알고 있겠지요.”
“하긴. 아무리 백작가라 해도 감히 그분에게 맞서지는 못하겠지. 그럼 나는 경만 믿겠소.”
“물론입니다. 걱정 붙들어 매시지요.”
말은 그렇게 하고 뒤돌아선 야닉이었지만, 그의 눈은 분노에 가득 차 번들거리고 있었다.
‘라울 자작, 네 이놈!’
얼마 전 벌어졌던 칼립스 성의 영지전에서 라울의 손에 목숨을 잃은 맥닐 후작가 출신 기사 재커리.
그는 평소 야닉과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다.
비록 실력은 그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같은 고향 출신에 훈련도 같이 받으며 성장했기에 친형제나 다름 없었다.
그런 그가 제대로 이름도 알리지 못한 채, 별것도 아닌 남의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으니.
‘복수하겠다! 이번에는 네놈이 보낸 이방인들. 그리고 조만간 네놈 목을 내가 직접 베어주마!’
하지만 그는 알고 있을까?
그 또한 이름을 숨기고 별것 아닌 타인의 전쟁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뿌우우.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너른 평원을 앞에 둔 채 야트막한 언덕위에 양측의 병사들이 도열했다.
“숫자는 얼추 맞춘 것 같군.”
“그나마 다행입니다. 영지전 날짜를 며칠 앞두고 그런 제안을 받게 되어서.”
기사들과 함께 언덕 높은 곳에 올라선 셀피어드 남작이 양측 진영을 살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라울 자작님께는 큰 빚을 지게 되었어.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2천이나 되는 병력을 보내주셨으니 말일세.”
“그렇습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이렇게 시간에 맞춰 병력을 보냈다는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합니다.”
그들의 머릿속엔 아직도 2천이나 되는 병력이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서 나오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고정 포털도 아니고, 임시 텔레포트 게이트로 그 정도의 대규모 병력을 옮기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마법사와 마나석이 필요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용병 2천명을 고용하는 것만큼 들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인데도 지원병을 보냈다는 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의지가 아니겠는가.
실제론 새로 합류한 마탑의 마법사들과 게이트에서 얻은 마나석을 통해 이동했기에,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라울이라서 가능했던 일이지, 다른 이들이 2천이나 되는 병력을 텔레포트 게이트로 이동시킨다는 건 정말 돈지랄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허허, 이렇게 보니 그래도 믿음직스럽지 않은가?”
“맞습니다. 처음 이방인들로 구성된 부대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는데 말이죠.”
남작가 진형의 정 중앙.
그것도 최일선에 자리 잡은 건 바로 2천의 플레이어 부대였다.
남작은 지원군을 앞세울 수는 없다고 했지만, 한사코 그들이 원하기에 이루어진 진형 배치였다.
복장도 제멋대로고 군기도 형편없어 보이는 모습에 처음에는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며칠간 영지에 머무르며 그들의 실력을 조금 엿본 뒤부턴 생각이 달라졌다.
‘준 기사급 실력자가 2천 명이라니. 어디 가서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겠군.’
도대체 이런 이방인들을 제 수족처럼 다루는 라울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뿌우우, 뿌우!
또다시 뿔피리가 울리고, 양측 진형의 가운데로 십여 기의 기마가 달려 나갔다.
노란 배경에 검과 주먹이 새겨져 있는 깃발은 바로 루벤 왕국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나가보지.”
셀피어드 남작이 기사들을 대동하고 깃발을 향해 말을 몰았다.
이제 왕실 참관인의 영지전 선포가 이뤄지면,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될 것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