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87
제187화
참관인의 형식적인 중재가 이뤄진 뒤 셀피어드 남작과 제레미 자작은 서로를 한번 노려보고는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작가의 병력 4,500명과 자작가의 병력 6,000명이 서로 마주한 채 천천히 언덕을 걸어 내려오며 거리를 좁혔다.
대략 서로 300m 정도 거리를 앞두고 마침내 전진을 멈춘 두 진형.
이제부터는 장궁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신중한 병력 운용이 필요했다.
잠시 서로의 진형을 바라보며 숨 고르기를 하는 사이.
다그닥, 다그닥.
제레미 자작가 진영에서 기사 하나가 튀어나왔다.
“내 이름은 크로닉 멜버드! 제레미 자작님을 모시는 기사다. 거기 오합지졸의 무리 중 감히 내 검을 받아낼 자가 있는가!”
갈색 말 위에 갈색 갑옷.
망토까지 갈색으로 완전히 깔맞춤한 멜버드는 커다란 배틀액스를 붕붕 휘두르며 위협이라도 하듯 말을 달려 셀피어드 남작가 진영 앞을 지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셀피어드 남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이렇게 나오는가.”
영지전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기사 대전이지만, 이렇게 체급 차이가 나는 전장에선 일방적인 폭력에 불과했다.
물론 본래 기사단의 수준은 오히려 셀피어드 남작가가 우위에 있었다.
‘만약 맥닐 후작가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당장 기사 대전을 걸어온 상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미 수십 년간 경계를 맞대 온 상대 가문인 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맹세코 저자는 제레미 자작가의 기사가 아니었다.
“영주님.”
엑스퍼트 중급 경지의 기사단장이 나지막이 그를 불렀지만, 셀피어드 남작은 고개를 저었다.
“미리 말했다시피, 기사 대전에는 응하지 않겠다. 불명예를 안기게 되어 미안하지만, 경들의 무위는 본 전투에서 발휘해주길 부탁한다.”
이쪽이 저들을 아는 만큼, 저들도 이쪽의 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사 대전을 걸어왔다는 건,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가뜩이나 부족한 기사 전력을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잃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도 없나! 셀피어드 남작가에는 일대일 대결에 응할 진정한 사나이가 정말 아무도 없단 말인가? 하긴, 말똥이나 치우는 마부 놈들이 검을 다룰 수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항복한다면, 말님들을 모실 마구간 정도는 남겨주마, 크하하!”
남작가에서 아무런 대응이 없자 멜버드는 아주 대놓고 남작가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적당한 수준으로 말하더니 잠시 후엔 패드립까지 들먹이며 남작 측의 속을 긁어댔다.
이런 도발은 상대방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병사들의 사기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
‘이렇게 욕을 먹고 조롱당하는데 우리 기사들은 뭐 하는 거지?’
‘저런 소리를 듣고도 참아야 할 만큼 우리가 불리하단 얘긴가?’
아닌 것 같아도 그런 의구심이 피어나는 순간, 승리에 대한 믿음을 잃은 병사들의 사기는 꺾일 수밖에 없었다.
“크윽….”
남작가의 기사들이 이를 깨물며 분노를 삼키던 그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기사 대전, 저희에게 맡기지 않으시겠습니까?”
병사로 분장하고 있던 퍼스트 길드의 기사가 셀피어드 남작에게 제안했다.
“아, 켄 경. 추태를 보이게 되어 부끄럽소.”
기사의 정체는 바로 켄.
라울의 아카데미 동기이자 그리어 후작의 딸인 그녀가 지원군의 책임자로 이곳에 와 있었던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승리를 위해 불명예의 멍에까지 감수하신 결단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다만 저자의 도발이 도가 지나치니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대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 저자는 맥닐 후작가의 기사요. 아, 물론 퍼스트 기사단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오. 하지만 분명 최대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소? 무슨 다른 방도라도 있는 것이오?”
“물론입니다. 굳이 저희 기사단이 나서지 않아도 저자의 입을 찢어놓을 이가 있으니까요.”
남작은 잠시 고민했다.
‘괜히 나섰다가 지기라도 한다면…. 어차피 이대로 있으나 나가서 패하나 사기가 떨어지긴 마찬가지긴 하지만.’
어쨌든 기사급의 인재가 대결에 나설 텐데, 괜히 남의 영지전에 지원 와서 목숨을 잃게 만드는 건 아닐지.
“…딸을 사로잡아서 말과 XX시켜 말 새끼를 낳게 하겠다! 남작가의 혈통에 강한 인자가 들어가니 이 어찌….”
빠직.
남작의 인내심에 한계가 다가왔다.
“…부탁하오.”
“알겠습니다.”
남작의 양해를 구한 켄이 길드 통신을 열었다.
「허가 받았습니다, 마스터.」
「수고했어. 돌발상황에 대비하도록.」
그리고 마침내 남작 진영에서 누군가가 말을 몰고 앞으로 나아갔다.
* * *
웅성웅성.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는 중앙 진영은 전투를 앞둔 이들답지 않게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진형을 갖추고 있긴 해도, 어차피 전투에 들어서면 각개전투 비슷한 상황이 될 것은 뻔한 일.
지휘를 맡은 플레이어들도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기에 그들이 떠드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다.
“후아, X발. 긴장된다!”
“어째 두 번째 참간데 심장이 벌렁거리냐.”
“아, 나 적진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뒈지면 어쩌지? 영상 녹화 중인데….”
“니가 뒈지면 다른 놈들이 다 찍어서 올리겠지. 뭐 그런 걱정을….”
“안 돼, 내 조회수!”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는 이유는 긴장을 풀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어, 저 새낀 뭐냐? 갑자기 혼자 튀어나오네?”
“호오, 이번에도 시작은 일기토인가?”
“일기토가 뭐야?”
“삼국지 안 해봤냐? 장수들이 전투 전에 맞짱 뜨는 거잖아!”
“아하!”
뭔가 이벤트가 생겼다는 생각에 플레이어들이 기대하며 줌까지 당겨서 영상을 찍었는데….
“…해서 네놈들 애미가 마구간에서….”
트래쉬 토킹을 하는 기사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동요했다.
물론 사기가 떨어졌기 때문은 전혀 아니었다.
“아따, 그놈 참 찰지게 욕하네.”
“지구로 가도 주둥이로 먹고살 인간일 듯.”
“근데 듣고 있자니 쫌 열받긴 한다. 누가 저 새끼 입 좀 다물게 못 하나?”
“앗, 내 영상! 이거 다 필터링되는거 아냐?”
“XX, 업로드 제한 걸리겠는데? 아 X같은 새끼가!”
공들여 찍어놓은 인트로 영상에 애먼 기사 놈이 똥을 싸버린 것이다.
동시에 각 지휘부의 음성채팅은 난리가 났다.
“내가 나가서 저 새끼 조져버리면 안 됨?”
“아가리 파이트는 내 전공인데 내가 입 좀 털면 안 될까요?”
“지휘부 뭐 합니까? 우리 애들이 보고 있어요!”
물론 플레이어들의 돌발행동은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민원 채팅에 지휘부들이 골치 아파하던 찰나.
따각, 따각.
“어? 누가 나간다!”
“어디? 누구야?”
“앗! 배도현이다!”
“우왓, 오졌다. 이거 제대로 찍으면 조회수 확보는 껌인데?”
이미 실시간 중계 송출 중이던 일부 플레이어들의 방제가 바뀌고 있었다.
– 속보! 랭킹 1위 배도현. 기사 대전 출격!
– 배도현 일기토 생중계.
– 정의 구현 나선다! 배도현 출격!
물론 가장 많은 시청자가 몰린 곳은 바로 퍼스트 길드 공식 채널과 배도현 개인 채널이었다.
-긴급. 퍼플 길드 마스터 배도현 기사 대전 출전!
-기사 대전 직캠! 배도현 개인 시점 대공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시청자 수를 확인하며 채널 매니저 라벨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휘웅, 붕붕!
말에 올라 천천히 진영을 벗어나는 배도현은 들고 있는 장창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몸을 풀었다.
방금까지 트래쉬 토킹을 일삼던 멜버드는 설마 누군가가 나설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 모양.
얼떨떨한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등 뒤에선.
“와아아!”
“배도현, 파이팅!”
“플레이어의 힘을 제대로 보여줘!”
2천의 플레이어들이 함성과 함께 그를 응원했다.
그리고 그에 휩쓸린 남작가의 병사들까지 악에 받친 듯 고함치듯 응원을 날렸다.
하지만 배도현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흠. 이 정도면 어색해 보이지 않겠지?’
연신 창을 쥐었다 놨다, 흔들어보며 힘 조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미 분석안으로 상대 기사의 수준은 확인이 끝난 상태.
엑스퍼트 중급의 끝자락에 도달한 기사긴 했지만, 마스터의 문턱을 기웃거리는 라울(배도현)의 상대는 전혀 아니었다.
남은 건 어떻게 하면 티 나지 않게 놈을 요리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배도현은 상대방 기사가 뭐라고 말해오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 뭐라고?”
“푸하하, 너무 긴장해서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구나 이방인.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면 살려는 주마. 어때?”
배도현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미안한데,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세계에서는 개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말이지.”
“뭣이! 이 건방진 X새끼가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이런. 유언 정도는 제대로 전해주고 싶은데 아쉽네. 아, 그냥 ‘멍멍’이라고 적어주면 되겠구나!”
“이런 미친 새끼가!”
멜버드가 열이 꼭지까지 올랐는지 자신의 상체만 한 배틀액스를 휘두르며 배도현에게 달려들었다.
후우웅!
무식하게 커다란 도끼답게 엄청난 풍압이 배도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휘잉, 후웅!
하지만 배도현은 무기를 휘두르지도 않고 마상에서 오로지 위빙(상체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는 것)만으로 도끼를 가볍게 흘려냈다.
“이,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멜버드가 연신 도끼질을 해댔지만, 그의 눈에는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땀을 식혀줄 생각이라면 사양하지. 아직 땀이 나지도 않았거든.”
연신 선풍기질을 해대는 멜버드를 놀리자, 돌연 그의 도끼에서 갈색의 마나 블레이드가 솟구쳐 올랐다.
“뒈져라!”
퍽!
물론 멜버드의 마나 블레이드가 배도현에게 닿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내지른 배도현의 창이 놈의 어깨를 찔러 뒤로 밀쳐냈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 마나를 불어넣는다는 걸 잊어먹었네?”
뒤늦게 배도현의 창날에 파란 마나 스피어가 튀어나왔다.
실수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명백한 조롱.
“이런 X새끼가. 누구를 바보로 아나!”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멜버드가 다시금 성난 멧돼지처럼 배도현에게 달려들었다.
‘거참. 남들에겐 그렇게 신나게 주둥아리를 놀리면서, 정작 지가 놀림당하니 참지를 못하는군. 뭐 이런 이기적인 놈이 다 있어?’
문제는 열 받아서 그런 건지 단순해서 그런 건지, 공격 방식이 너무 뻔하다는 것.
배도현은 재미없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무심하게 창을 몇 번 내질렀다.
슝, 푸슉, 푹!
“히히힝!”
첫 찌르기에 멜버드가 타고 있던 말의 가슴이 뚫렸고, 뒤이은 창질은 말에서 뛰어내리는 멜버드의 뺨과 옆구리에 자상을 만들어냈다.
우당탕탕.
“으아아!”
말에서 떨어진 그가 짐승처럼 괴성을 지르며 분노를 표출했지만, 배도현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 새끼, 너 진짜 죽었다고 복창해라! 아머 소환!”
꼴에 아머 유저였는지 그의 벨트가 변하며 전신을 파워아머로 뒤덮었다.
후우웅, 쾅!
확실히 몸놀림도 빨라지고 마나 블레이드의 위력도 상승했다.
배도현의 옆을 스쳐 지나가 땅을 내리찍은 배틀액스가 2m가량의 길쭉한 고랑을 만들어 버렸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지.’
맞히지 못하면 아무리 강력한 무기라 한들 무슨 소용인가?
그리고 애초에 창과 배틀액스.
상성이 좋지 않았다.
배도현은 굳이 땅에 내려서지도 않고 말 위에서 창을 내질러 멜버드를 공격했다.
창의 길이가 대략 3m.
거기에 마나 스피어 1m를 추가한 데다 말 위에서 공격한다는 높이 차까지 있었으니.
마나 블레이드까지 2m 길이밖에 되지 않는 배틀액스로는 도저히 배도현에게 도달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배도현은 엑스퍼트 중급 초입 수준의 마나만 사용하면서도 가볍게 멜버드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
‘굳이 퓨리 웨이브를 꺼내 들 필요도 없겠네.’
새로운 창술을 시험해 보기엔 너무 격이 떨어지는 상대였다.
퍽, 푸슉, 퍼벅!
물론 대결은 바로 끝나지 않았다.
파워아머의 방어 역장이 배도현의 마나 스피어의 위력을 적절히 줄여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파워아머가 무적은 아니지.’
물리 공격이라면 몰라도, 마나 블레이드의 공격을 계속해서 정타로 허용한다면.
급격하게 에너지가 소모된 파워아머는 역장이 소멸되고 강제로 착용 해제되어 버린다.
‘저렇게 말이지.’
슈우욱.
빛을 잃은 파워아머가 이내 본래 벨트의 모습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초라한 몰골의 주인뿐.
“자, 잠깐! 내가….”
쉬익!
푸화학.
뭐라고 소리치려던 멜버드의 입을 배도현의 창이 시원하게 베고 지나갔다.
“꾸워억!”
그리고 내뻗은 그의 창이 심장을 관통하자, 멜버드가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배도현이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며 조용히 읊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