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91
제191화
퍼스트 길드의 개입으로 한동안 끊이지 않았던 루벤 왕국의 영지전이 자취를 감췄다.
왕실이 혼란한 틈을 노렸던 야심가들은 영지전의 약자 편에 서는 퍼스트 길드의 행보에 쓰린 속을 달래며 욕심을 접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드디어 플레이어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용병만도 못한, 믿을 수 없는 이방인들.
이런 인식에서 ‘이제는 그래도 싸움 좀 할 줄 아는 쓸 만한 이들’ 정도로는 격상된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플레이어들에게 손을 내미는 이들은 없었다.
애초에 쓸 만한 이들은 대부분 퍼스트 길드나 라울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직접 고용하자니 이방인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유 도시에 다른 귀족들의 사용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제 자유 도시 주세크에 페레즈 자작가의 사용인들이 도착한 모양입니다.”
“페레즈 자작가라면?”
“왕국 북부의 평야에 위치한 곳입니다. 맥닐 후작가 계파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렇군. 이제 웬만한 가문은 다 자유 도시에 발을 들인 셈인가?”
“그렇습니다.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양이더군요. 그런데, 정말 이대로 방치해도 괜찮겠습니까?”
케인이 조금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는 퍼스트 길드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라면, 플레이어들의 실력이나 필요성에 대해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역으로 플레이어들이 퍼스트 길드가 아닌 다른 귀족 휘하로 넘어가게 되면 위험하지 않겠냐는 걱정을 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추세였으니.
하지만 라울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당분간은 저대로 놔두는 게 오히려 이득이야. 여태까지는 우리가 멱살 잡고 끌어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는 없어. 플레이어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만들어야지.”
“그 말씀은?”
“과연 이 왕국의 귀족들이 우리만큼 플레이어들을 대우해줄 것 같아?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제공할 수 있을까?”
라울이 생각하기에 그건 무리였다.
중세 신분제 사회의 귀족과 현대 자유민주 사회의 시민들.
과연 둘이 어울리는 조합인가를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왔다.
‘전생에도 이런 문제로 갈등이 많았지. 귀족들은 플레이어를 그저 쓸 만한 용병 정도로 생각하니 말이지.’
랭킹 1위였던 배도현도 자작 이상의 귀족을 독대한 일이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드물었다.
귀족들이 플레이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일정 수준 이상의 세력을 거느린 길드장들을 준귀족 정도로 대우했으니, 지금 당장 저들이 플레이어를 어떻게 다룰지 안 봐도 눈에 훤했다.
“이해했습니다. 혹시나 특이사항이 발견되면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내가 주시하라고 했던 길드들은 절대 눈을 떼지 말도록.”
“네, 마스터.”
이미 플레이어들의 판도는 퍼스트 길드가 사로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불만인 세력은 당연히 많을 것이다.
특히 전생에 커넥트를 쥐고 흔들었던 대형 길드 연합.
지금은 숨죽이고 있지만, 언제 다시 발톱을 드러내 플레이어들을 선동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번엔 너희들 생각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모르고 있겠지만, 라울은 조금씩 그들을 어느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그들이 미끼를 물게 된다면.
‘제법 아픈 꼴을 당하게 될 거다.’
라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 *
다각, 다각.
라울은 어딘가로 향하는 마차 안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차 안에는 조금 색다른 구성의 인원들이 자리했다.
“켄, 고향은 얼마 만에 돌아가는 거지?”
“아마도 2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오랜만의 귀향인데 떨리지는 않고?”
“글쎄요. 저를 반겨줄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라울과 켄이 대화를 시작하자 입이 근질거리고 있던 한 사내가 바로 끼어들었다.
“설마요. 오랜만에 돌아가는데 부모님께서 두 손 벌려 반기지 않겠습니까?”
해맑은 표정의 조쉬가 말했다.
18세에 가출하여 3년 만에 C급 용병이 되었던 조쉬는 라울과 만나 완전히 팔자가 핀 케이스였다.
훗날 용병왕 후보로 거론될 만큼 잠재력이 뛰어난 그는 어느새 엑스퍼트 중급에 다다라 퍼스트 기사단에서도 팀장을 맡고 있었다.
정식 서임을 받은 뒤 금의환향한 그는 소작농인 부모님과 6명의 동생들을 모두 퍼스트 영지로 데려왔다.
그의 부모님은 라울의 배려로 목 좋은 곳에서 식료품 상점을 운영하게 되었고, 동생들은 나이에 맞춰 교육을 받고 있었다.
“조쉬 경이 잘 풀린 거지. 사람은 각자 사정이 다 다르다고. 켄은 음, 좀 복잡한 가정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달튼이 조심스레 켄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이런. 제가 또 눈치 없이 나섰군요.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모 자식 간의 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니니까 말입니다. 정 마주하시기 어렵다면 이 ‘살아 있는 메신저’ 조쉬가 켄 경의 다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조쉬의 호언장담에 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참 볼 때마다 느끼지만, 조쉬 경은 정말 사람이 밝은 것 같아. 음, 참 밝아.”
“하핫, 또 밝은 것 하면 저 조쉬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밝게 밝게 살아야지요. 음하하, 분위기가 어두워진다? 고민하지 말고 이 조쉬를 불러 주십시오! 마스터를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서든 당장 달려올 준비가….”
입에 모터라도 달렸는지 끊임없이 주절대는 조쉬 덕분에 마차 여행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일행은 현재 왕국 5대 무가 중 하나인 그리어 후작가로 향하는 중이었다.
며칠 후면 현 그리어 후작가 가주인 피델 드 그리어 후작의 59번째 생일 축하연이 열릴 예정이었다.
대외활동을 자제 중인 후작가의 사정상 따로 초청장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왕국 유수의 가문들이 축하 사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와 함께 열리는 후작가의 기사 토너먼트에 참가하기 위해 많은 기사들이 후작가를 찾고 있었다.
일부 언론지에서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후작가에서 대외활동을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내놓았다.
라울은 애쉬튼 백작가를 대표하는 축하 사절 자격으로 후작가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정말 정체를 숨기고 갈 셈이야?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라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켄이 표정을 굳혔다.
“말도 없이 가출했는데 무슨 낯으로 당당하게 돌아가겠습니까. 그냥 먼발치에서 건강한 모습만 뵙고 돌아가면 충분합니다.”
“어휴, 참. 부모 자식 사이가 그런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조쉬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지만, 켄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제가 모습을 드러내는 건 후작가를 위해서도 좋지 못한 행동일 겁니다.”
뒷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대충 짐작이 가는 바는 있었다.
이미 케인을 통해서 후작가의 상황을 자세히 파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본인이 직접 깨닫는 수밖에 없지.’
제삼자가 아무리 간섭해봤자, 당사자가 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뭐, 좋아. 그 문제는 켄이 알아서 하도록 하고. 대신 약속했던 건 꼭 지키도록 해.”
“물론입니다. 마스터의 지시에 반드시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후작가행은 단순히 후작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었다.
라울은 다가올 왕국의 내전을 대비하고 막아내기 위해서 후작가의 협력이 필요했다.
그를 위한 밑 준비는 충분히 해왔지만, 만약의 경우라는 것도 있으니 켄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왠지 이번 축하연에서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단 말이지.’
이미 그가 알고 있던 커넥트의 역사는 많이 뒤틀려 있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변수가 터져 나올지 라울 자신도 알 수 없는 상황.
그러니 가능하면 중요한 현장에는 직접 방문하여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다.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다 밟아버릴 테니까.’
눈치 보며 몸 사릴 시기는 이제 지나갔다.
이제부터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그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는 수많은 이들의 운명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신중하고 또 과감하게 걸어 나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다시금 각오를 다지는 라울을 태운 마차는 천천히 그리어 후작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
“도착했습니다.”
케인의 목소리에 마차 문을 열고 나가니 언덕 아래 저 멀리, 거대한 세 겹의 성벽과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게이트 사태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바다 위에서는 크고 작은 범선들이 항구를 드나들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그리어 후작가의 수도 [포트 다시아]인가?”
라울이 오랜만에 마주하는 푸른 바다에 감탄하려던 찰나.
“오, 오오오오! 저것이 그 말로만 듣던 ‘바다’라는 곳입니까? 맙소사, 어떻게 저렇게 많은 물이 모여 있는 겁니까? 저러다가 넘치면 어떻게 하죠?”
내륙 태생, 자칭 천재인 조쉬가 바다를 마주하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달튼도 직접 바다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포트 다시아를 내려다보았다.
“마스터, 그럼 저는 먼저 가서 정보를 수집해 놓겠습니다. 저녁에 저택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케인. 부탁하지.”
라울에게 고개를 숙인 케인이 조쉬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쉬, 마스터의 호위에 만전을 기하도록.”
“물론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 조쉬, 마스터의 신변에 털끝 하나도 이상이 없도록 철저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호언장담하는 조쉬를 못 미더운 눈빛으로 한번 흘겨본 케인이 그림자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크흠, 자 그럼 지금부터는 이 조쉬가 마스터를 아주 편안하고 안락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관광 왔다 생각하시고 마음 편하게 즐겨 주십시오!”
피식 웃은 라울 일행이 마차에 오르자 조쉬를 비롯한 스무 명의 아머 유저로 이뤄진 호위기사대는 보무도 당당히 성문을 향해 말 머리를 향했다.
* * *
“어서 오십시오. 머무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라울 일행은 아주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후작가에서 내준 별관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 앞에는 수십 명의 사용인들이 마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후작 각하께 후한 대접에 감사하다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자작님.”
원래부터 애쉬튼 백작가와 그리어 후작가는 돈독한 사이였다.
왕국의 서남부와 남부에 자리 잡은 두 가문은 지리적으로도 가까웠고, 대대로 가주들의 성향도 비슷했기에 교류가 잦았다.
지난 제국과의 전쟁 이후 가문의 재건을 위해 양측 모두 소원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사이좋은 이웃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대충 짐 정리를 마친 라울에게 임시 집사가 찾아왔다.
“축하연은 이틀 뒤, 본가 저택의 연회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이라도 잠시 들러 주셨으면 한다는 후작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그러면 식사 시간 이후에 잠시 방문하겠다고 전해주게.”
“네. 그리고 그… 호위기사 두 분을 꼭 대동해 주셨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아무리 남장을 했다 한들 후작의 눈을 피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이미 켄의 곁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서로 간의 묵인하에 모른 척하고 있을 뿐.
“들었지, 켄 경? 준비 잘 해서 저녁때 같이 가자고.”
“아, 아니. 꼭 제가 아니더라도 달튼 경과 조쉬 경이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안절부절못하는 켄을 보며 얄궂게 웃음 지은 라울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는걸. 조쉬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안 그런가?”
“물론입니다! 이 조쉬. 당연히 마스터를 모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음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습니다. 부디 마스터를 잘 보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순발력 만점의 조쉬가 있지도 않은 임무를 들먹이며 라울의 말을 받아넘겼다.
“그런고로 나중에 보자고.”
“마, 마스터, 잠시만….”
켄이 울상을 지었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