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90
제190화
서컹! 파사삭.
“이런 잔재주를!”
야닉의 도끼가 김일우를 베어냈지만, 이번에도 역시 본체는 아니었다.
안개처럼 흩어져버린 김일우의 신형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시 불쑥 솟아올랐다.
“미안하지만, 당신이 날뛰면 좀 곤란하거든.”
“나 혼자 당신을 쓰러뜨리는 건 힘들겠지만….”
“잠시 붙들어 두는 정도는 가능할 것 같군.”
다섯 명의 김일우가 야닉의 사방을 둘러싼 채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그깟 조잡한 재주로 정말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쉬익!
투캉!
야닉이 날린 플라잉 오러 소드를 두 김일우가 마나를 씌운 방패로 막아냈다.
주춤거리는 그들을 노리고 재차 야닉이 달려들었지만, 어느새 날아든 창날과 검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챙! 채쟁!
어느새 김일우의 무기에도 묵빛 마나 블레이드가 솟아나 야닉의 도끼와 충돌하고 있었다.
물론 부딪칠 때마다 조금씩 깨져나가고 희미해지는 건 김일우의 마나 블레이드 쪽이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급한 건 기사 야닉 쪽이었다.
‘제길. 이렇게 묶여 있을 때가 아닌데!’
* * *
플레이어들의 급습으로 자작가의 기병대 300은 순식간에 전멸했다.
남은 건 40명 남짓한 기사들.
남작가 기사들과 상대하는 열을 제외한 이들은 어느새 플레이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간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정체불명의 기병들은 어느새 사라졌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그 자리를 플레이어들이 대체한 것이다.
“이미 요령은 파악했을 것이다! 다들 방심하지 말고 차분하게 사냥해!”
“역장이 없는 것들은 일반 기사다! 몸을 사릴 수밖에 없으니 연계 공격으로 정신 차리지 못하게 만들어!”
두 아머 유저를 상대하며 경험치를 쌓은 플레이어들은 어렵지 않게 기사들을 포위하여 상대했다.
비록 개개인의 실력은 떨어질지언정, 이미 엑스퍼트급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랭커 플레이어들은 아무리 기사라 해도 위협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뭐냐, 도대체 이놈들은 뭐냐고!”
“제길. 다 틀렸어! 도망쳐야 해!”
엑스퍼트급에 이르지 못한 자작가의 기사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플레이어의 파도에 휩쓸렸다.
그리고 엑스퍼트라 해도 아머 유저가 아닌 이들은 차근차근 데미지가 쌓이며 서서히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셀피어드 남작이 감탄했다.
“놀랍군. 정말로 저들만으로 기사단을 상대할 수 있을 줄이야.”
그리고 특히나 눈에 띄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켄에게 물었다.
“정말로 저들이 이방인이란 말인가?”
“물론입니다. 싸우는 방식이 우리와는 확실히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네만. 몇몇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강하군. 아까 기사 대전에서 승리한 자도 그렇고.”
수많은 플레이어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이들.
그림자 분신을 사용해 적의 기사단장인 야닉의 발을 묶어놓은 김일우.
오로지 검 한 자루만 가지고 적의 아머 유저를 상대로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치고 있는 왕천명.
곰과 여우를 소환해 기사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한서현과 무기도 없이 두 주먹과 발로 기사를 상대하는 루이스 블레이크 등.
퍼플 길드의 최상위 랭커들이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물론 직접 싸우고 있는 이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만.
써컹! 푹!
“제길!”
공격을 성공시킨 건 왕천명이었지만, 욕을 내뱉은 것도 그였다.
‘도무지 쓰러질 생각을 하질 않는군. 강시도 아니고.’
이미 대결 도중 급소로 생각되는 곳을 열 번도 넘게 공략했지만, 저 빌어먹을 역장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적은 기세를 피워 올리며 역으로 공격해 들어올 뿐.
그건 다른 퍼플 길드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
어렵사리 공격을 성공시킨다 한들, 상대 기사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하니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괴물을 그렇게 단시간에 혼자서 쓰러뜨리다니. 역시 배도현을 따라잡기는 아직 무리인가?’
왕천명은 아쉬운 마음에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시선은 또 달랐으니.
“와, 진짜 혼자서 상대할 수 있다고?”
“한 자릿수 랭커들은 정말 차원이 다르구나.”
수십 명이 달려들어 기사 하나를 상대하기도 만만치 않은데, 홀로 아머 유저의 발을 묶어놓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배도현도 적당한 아머 유저 하나를 맡아서 상대하고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상대 기사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슬슬 시간인가?’
적진으로 향했던 플레이어 본대가 슬슬 자작을 사로잡을 만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장이 사로잡히는 순간 영지전은 종료되니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어보였다.
「최종 페이즈로 들어갑니다. 이제부터 솔로 레이드는 그만두고 협력해서 최대한 빠르게 전장을 정리하세요.」
「벌써? 조금만 있으면 혼자 잡을 수 있는데!」
「이미 충분합니다. 불만 안 나오도록 공적은 나눠야지요.」
명령이 떨어지자 조금 뒤에서 대기하던 플레이어들이 신이 나서 달려들었다.
“아싸! 막타는 내 거다!”
“진형 지켜요! 괜히 랭커들 동선 방해하면 안 됩니다!”
“마법팀, 포격 준비합시다!”
균형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퍼플 길드원들을 비롯한 랭커들이 기사들의 손발을 묶어두는 사이, 다른 플레이어들의 공격이 작렬하자 굳건하던 역장도 점차 색이 바래져갔다.
그리고 역장이 깨지는 순간.
“이런 치사한 놈들!”
“바타르 신의 저주가 내릴 것이다!”
쏟아지는 공격에 기사들이 하나둘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결국, 남은 것은 엑스퍼트 상급의 아머 유저인 야닉뿐.
괜히 상급의 실력자가 아니라는 듯 수백의 플레이어들에 둘러싸였지만, 여전히 역장은 깨지지 않았고, 기세도 죽지 않았다.
“버러지 같은 것들! 네놈들의 잔재주가 나에게 통할 것 같으냐!”
확실히 격이 다른 실력자인 만큼, 플레이어들의 공격은 거의 먹혀들지 않았다.
랭커들도 그의 움직임을 막을 뿐, 공격을 성공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역시 최종 보스인가?”
“랭커들이 달라붙어도 소용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지?”
“배도현은 안 나서나?”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렸지만, 배도현은 굳이 나서지 않았다.
아쉽지만, 이자를 마무리하는 건 플레이어들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 물러서라.”
셀피어드 남작이 어느새 호위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남작가의 다섯 아머 유저와 기사들이 차지했다.
“이미 전황이 기울었다. 항복할 생각이 있는가?”
“웃기는군. 내가 고작 남작 따위에게 무릎을 꿇을 거라 생각하나?”
남작의 물음에 야닉은 콧방귀를 뀌며 마지막까지 저항할 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지, 남작이 검을 꺼내 들어 가슴 앞에 세우고는 말했다.
“그대의 결의에 경의를 표한다. 주인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깔끔하게 보내주겠다. 모두 공격.”
남작의 명령에 그의 기사들이 야닉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남작 그 자신도 검에 마나 블레이드를 불러일으키며 전투에 합류했다.
잠시 후.
절대 쓰러질 것 같지 않던 야닉이 남작의 검에 목이 달아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작 진영도 플레이어들에게 완전히 점령되었다.
생포된 자작이 남작의 앞에 끌려오는 것으로 길고도 짧았던 영지전이 마무리되었다.
* * *
“왕실의 중재안은 뭡니까?”
전투가 끝나고 다가온 참관인에게 남작이 묻자,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것이….”
애초에 남작이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에 왕실에선 남작가를 위한 중재안은 아예 준비하지도 않은 듯했다.
“뭐, 그럼 당사자끼리 해결하겠습니다.”
“아, 아니. 잠깐만! 참관인, 참관인 어디 가시오?”
남작이 참관인을 내보내자 사로잡힌 제레미 자작이 사색이 되며 외쳤다.
하지만 참관인이 당장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 이보게 남작. 오해가 생긴 건 미안하네. 하지만 우리 모두 루벤 왕국의 신하가 아닌가? 왕실에서 다시 교지가 올 때까지 좀 기다리는 것은….”
스르릉.
남작이 검을 빼 들어 자작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글쎄요. 나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만.”
“아, 알았네. 알았어! 목숨만 살려주게, 목숨만은!”
그날 셀피어드 남작은 자작령의 1/3에 해당하는 영토와 엄청난 배상금을 자작으로부터 뜯어냈다.
그리고 그중 일부가 퍼스트 길드와 플레이어들에게 전달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그날 영지전의 결과가 바로 왕국 전체로 퍼져나가지는 않았다.
자작가가 남작가를 털어먹겠다고 일으킨 영지전이었으니 처음부터 조용히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소문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게 정말이야? 셀피어드 남작가가 영지전에서 승리했다고?”
“그렇다니까! 왕실 참관인이 궁내부에서 탈탈 털렸다고 하더라고.”
“어떻게 된 일이지? 남작가가 자작가를 이길 수 있는 건가?”
그러자 소문을 전하던 남자가 상대방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는 작게 말했다.
“이건 비공식 정본데, 아무래도 라울 자작님의 퍼스트 길드가 손을 쓴 모양이야.”
“뭐?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그 후작가잖아.”
다들 쉬쉬하고 있긴 하지만, 이미 지금 벌어지는 각종 영지전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국정을 쥐고 흔드는 3왕자 헤르디안의 뒤에는 바로 맥닐 후작가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더 대단하신 거지. 게다가 이번에 동원한 병력이 다름 아닌 이방인들이라고 하더라고.”
“하긴. 신의 부름을 받고 왔다는 이방인들이니, 신의 사자이신 라울 자작님을 따르는 건 당연하겠군.”
그때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이들이 슬쩍 다가와 말했다.
“이보쇼, 좋은 정보는 같이 좀 들읍시다!”
“아니, 이게 정확한 소식은 아닌지라.”
“어허, 이거 한 잔 받고 그냥 시원하게 얘기하시라니까.”
어느새 사내의 주위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거 참. 그럼 내 다시 얘기해 보리다.”
그렇게 왕국 수도 투리엄에서 다시금 라울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 *
“그래,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던가?”
“다들 속 시원해하더군요. 아무래도 명문가의 횡포라는 게 시민들 입장에선 거부감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마스터에 대한 인상은?”
“역시 라울 자작님이다, 신의 사자다 이런 말들이 많았습니다. 약자의 편에 서는 정의로운 귀족이라는 이미지가 확실히 새겨진 듯합니다.”
“고생했군. 당분간 더 수고해주게.”
“물론입니다. 이런 일이라면 언제든지 맡겨 주십시오.”
퍼스트 길드 투리엄 지부장 앨리어스가 음유시인 사내의 어깨를 두드리며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사내는 잽싸게 주머니를 품에 넣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혼자가 된 앨리어스가 길드 통신을 열었다.
「네, 버나드 총관님. 지시하신 대로 밑밥은 잘 뿌리고 있습니다. 수도 시민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습니다. 네, 자료를 보내주시면 계속해서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라울은 그런 겸손을 챙길 생각이 없었다.
다른 귀족들은 간과하고 있지만, 여론이라는 건 굉장히 무서운 무기였다.
알게 모르게 형성된 이미지는 진실조차 왜곡시키는 힘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첫 영지전 승리로부터 한 달.
뒤이어 이어진 6차례의 영지전에서 라울과 플레이어들은 모두 승리를 거뒀다.
라울의 퍼스트 길드는 부당한 침공을 받는 약소 영주들에게 희망의 끈이 되어주었다.
그와 반대로 탐욕을 부린 영주들은 쓰디쓴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했고, 그건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던 맥닐 후작가나 랜달 백작가, 기타 세력들에게도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쾅!
“또 졌다고? 지원 보낸 놈들은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지원 나간 기사 열 명 중 절반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다섯도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다고….”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정말 그 이방인 놈들이 그렇게 위협적이란 말인가!”
맥닐 후작가의 대외총관을 맡고 있는 데니스 드 맥닐 자작이 호통을 쳤다.
하지만 그런다고 영지전의 결과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 어떻게 할까요? 레미유 남작가의 영지전이 바로 다음 주인데.”
부총관의 물음에 데니스가 이를 뿌드득 갈며 고개를 저었다.
“명령이 내려왔다. 당분간 영지전에서 손을 뗀다. 지원 나간 병력들 모두 철수시켜.”
“네? 전원 말입니까?”
“그래. 전부 다. 제대로 사태 파악을 할 때까지 대외활동은 자제하라는 가주님의 명령이시다.”
“그러면 지원을 약속한 영주들에겐 뭐라고….”
“알 게 뭐야! 알아서 하라고들 해! 지금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그깟 남작 놈들까지 신경 써줄 여유가 어딨는가?”
“아, 알겠습니다.”
부총관이 황급히 집무실을 떠나갔다.
쾅! 와장창창.
“으아아! 라울 자작! 애쉬튼 백작가!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한동안 데니스 자작의 집무실에선 집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