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18
제218화
챠라라락!
전장을 휩쓸던 무기 군단이 라울의 근처로 다가와 강철의 성벽을 만들었다.
“앱솔루트 엘레멘탈 실드!”
다시 한번 라벨이 만든 연녹색의 방패가 이번엔 라울을 보호했다.
“이런! 놈을 막아!”
이변을 눈치챈 제국 마스터 에제키엘과 스탠튼이 라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챙! 터덩!
“어딜!”
“절대 못 지나간다!”
하지만 로렌스와 제이크, 케인이 재빨리 그 앞을 막아섰다.
경지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치는 과정이 있었으니, 바로 신체의 재구성과 새로운 경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인간의 육체가 가진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몸속의 노폐물이 배출되고 골격이 재구성되어 전투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신체가 진화한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본인이 배우고 경험했던 무에 대한 지식이 정리되며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또한 보통의 인간이 느낄 수 없는 마나의 본질을 깨닫고 그에 가까워지기 위한 각성을 거치게 되니.
어찌 보면 축복과 같은 시간이지만, 적을 앞에 둔 상황이라면 아주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마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마나 역류 현상이.
위급한 나머지 제대로 깨달음을 정리하지 못하면, 차후 성장이 지체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스터뿐만 아니라 엑스퍼트급 기사가 각 단계를 뛰어넘을 때도 마찬가지였으니.
전투 도중 각성을 겪는 이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쐐애액!
자존심 싸움 중이던 제국의 보우 마스터 브라이스의 화살이 타깃을 바꿔 라울을 향했다.
마법이 깨져나가 충격을 받은 듯한 마법사 프라이도 두 눈을 부릅뜨고 메모라이즈해 두었던 각종 공격 마법을 퍼부었으며.
퍼벙! 쾅!
“구오오오!”
라울 근처에 있던 뼈와 시체가 맥클라나한의 마법 ‘시체 폭발’에 의해 터져 나가며 살아남은 언데드 군단이 라울 하나만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쾅! 퍼버벙!
챙! 챙!
적들의 공격이 모두 라울만을 노렸고, 그 공격은 라벨의 방어막과 무기 군단을 쉴 새 없이 두드려대고 있었다.
* * *
‘음, 이곳은?’
라울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귀를 울리는 전장의 소음은 어디 가고 완전한 적막이 주변을 맴돌았다.
악의를 품고 달려들던 언데드 군단과 위압적인 제국의 초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보이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새하얀 공간뿐.
“결국 다시 돌아왔네.”
라울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미 한번 겪어봤던 일이기에 긴장감은 없었다.
[깨달음의 방].플레이어들은 이곳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
스킬 숙련도 중급 10LV을 달성하고 캐릭터 레벨 100에 도달하는 순간 방문하게 되는 장소.
이곳에서 각 직업에 걸맞은 새로운 기술과 마나의 사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흠. 그나저나 교관은 어디 있지?’
그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지금쯤이면 새로운 경지에 대한 가르침을 내려줄 교관이 등장해야 할 시간이었다.
파앗.
그리고 때맞춰 하얀 공간이 일그러지며 누군가가 라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서 네가?”
라울은 눈앞에 등장한 인물을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파바바바밧!
하지만 그는 라울의 궁금증에 대답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느새 라울 전면의 하얀 공간은 수없이 많은 ‘무기의 군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이거지?”
챠라라락!
라울의 등 뒤에서도 수천의 무기 군단이 솟구쳐 올랐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너를 뛰어넘은 지 오래라고!”
라울의 손짓에 무기의 군단이 정면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라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
그것은 바로 전생의 그.
배도현이었다.
콰과과광!
* * *
“쿨럭.”
라울은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롱소드를 손으로 부여잡고 기침을 내뱉었다.
핏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며 그의 앞섶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실망이군.”
무표정하게 서 있는 배도현이 슬쩍 손짓하자 롱소드가 빠져나가고 라울은 힘없이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제길.’
바닥에 쓰러진 라울이 분한지 힘없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바로 다음 순간 그의 몸이 하얀빛에 휩싸이며 상처가 아물었고, 힘이 돌아왔다.
벌써 다섯 번째였다.
라울은 배도현과의 대결에서 내리 다섯 번을 모두 패배했다.
물론 핑곗거리는 많았다.
그의 또 다른 힘이나 다름없는 검술이 봉인되었다.
오러는커녕 마나 블레이드조차 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전생의 배도현과 달리 눈앞의 배도현은 라울과 똑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퀘르쿠스 명상법을 통해 얻은 막대한 영력.
제이낙의 던전과 시험의 탑에서 얻은 염동력의 파워업.
모두 배도현에게도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눈앞의 배도현은 모습만 배도현이지 현재 라울과 완전히 동등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라울은 그게 더 분했다.
그때 배도현이 입을 열었다.
“도대체 너는 2년간 뭘 한 거지? 어째서 이렇게 약해진 것이냐?”
“큭. 나는….”
라울의 몸으로 다시 깨어나고 2년.
라울은 최선을 다해왔다.
병약한 체질을 개선해 단기간에 마스터의 경지를 노리게 되었다.
퍼스트 길드를 만들어 자신만의 세력을 키웠고, 가문의 멸망을 막았으며, 왕국에서 튼튼한 기반을 확립했다.
플레이어들을 지원하고 랭커들을 모집하여 퍼플 길드를 만들었다.
또한 협회를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하지만….
“배도현, 아니 라울. 말해보아라. 너의 근본은 무엇인가?”
“나는….”
“너를 플레이어의 정점으로 이끌어 주었던 힘은 무엇인가? 플레이어, NPC 할 것 없이 너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염동력.’
라울이 입술을 깨물었다.
전생의 배도현은 오로지 염동력 하나로 커넥트 세계를 활보했다.
억에 가까운 플레이어들의 정점에 서서 가장 먼저 길을 개척해 나갔다.
플레이어 가운데 가장 먼저 초인의 경지에 올랐고, 유일하게 NPC 초인과 일대일로 싸울 수 있는 플레이어로 인정받았다.
‘전장의 지배자’, ‘1인 군단’이라 불리며 전장의 판도를 뒤흔들기도 했다.
오로지 ‘염동력’만으로.
하지만 이번 생의 라울은 달랐다.
훌륭한 가문의 검술, 훌륭한 스승을 만났기에 검술을 연마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미 한번 경지를 밟았던 염동력은 충분하다는 생각에 검술에 더 집중했던 것이다.
덕분에 마스터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긴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가?
‘그럴 리가 없지.’
검술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것.
물어볼 필요도 없이 엄청난 일이고, 선택받은 극소수의 기사만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하지만 과연 마스터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대륙 최고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아니다였다.
당장 아버지 멜빈 백작만 해도 마스터 상급이었고, 검공이라 불리는 템플턴 공작은 최상급 소드 마스터였다.
검술을 아무리 연마한다 한들 단기간에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네 정체성을 잊지 마라, 라울. 너는 애쉬튼 가문의 라울이기도 하지만, 최고의 염동술사 배도현이기도 하다.”
“아아, 맞아. 잊고 있었다. 뭐가 중요한지 말이지.”
챠라라랑.
라울의 등 뒤에서 다시 무기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붙어보자!”
달려드는 라울을 보며 배도현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와라! 제대로 상대해주마.”
* * *
‘후우.’
라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앞을 바라봤다.
배도현의 형상이 아지랑이처럼 흐물거리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마지막에 보인 그는 분명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우 동수를 이뤘구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수십 번이 넘는 대결의 끝에 겨우 무승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적으로 만난 배도현은 정말로 강하고 무서운 적이었다.
‘만약 소드 마스터 라울로서 상대했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 스승님! 어떻게?”
배도현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의 검술 스승 카르데나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허허허. 심상 공간이라. 나도 이렇게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다.”
카르데나스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밖은 어떻게 된 겁니까? 시간은 얼마나 지난 거죠?”
라울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묻자 카르데나스가 혀를 찼다.
“쯧쯧, 분명 경지를 한번 밟아봤다던 녀석이 그런 질문을 던지느냐! 지금은 온전히 새로운 배움을 깨우치는 것에 집중하거라.”
카르데나스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이 깨달음의 방, 심상 공간의 시간은 외부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이곳에서 무엇을 얻어가는가 하는 것은 오로지 라울 자신의 집중력에 달렸다.
“긴말 필요 없다. 바로 들어오너라!”
스승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라울도 사양하지 않고 검을 뽑아 들었다.
슈우웅.
검 끝에서 자연스럽게 오러 블레이드가 형성되었다.
“제대로 된 마스터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마. 그럼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하진 않겠지.”
아무래도 카르데나스는 마스터의 힘으로 염동술사 배도현을 이길 수 없을 거란 라울의 생각을 제대로 읽은 모양이었다.
챙! 채쟁!
심상 공간에서 모든 마스터의 스승이라는 카르데나스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 * *
파앗.
카르데나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라울은 비로소 후들거리는 다리를 바로 세웠다.
배도현과 달리 스승 카르데나스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존재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라울의 검은 스승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했다.
하지만 라울의 표정은 만족스러운 것을 떠나서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맙소사!’
어째서 카르데나스가 마스터들의 스승이라 불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지이잉.
라울의 검에서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2m 가까이 솟구쳤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곤충의 더듬이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움직이더니 이번엔 합쳐져 철퇴처럼 끝이 둥그런 형태로 변했다.
오러 블레이드의 자유로운 변형.
다름 아닌 마스터 중급의 경지를 의미했다.
마스터에 오르며 단번에 중급 경지에 도달하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연이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렇게 라울이 감회에 젖어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하는 거야?”
“……?”
분명 경지를 넘으며 얻은 두 번의 수련 기회는 끝났을 터인데, 또 누가 나타났단 말인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한 라울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너는…!”
* * *
“돌벽아 솟아나!”
“휘몰아쳐, 바람아!”
활짝 펼쳐진 스킬도감 위에 서서 마법봉을 휘두르는 라벨의 얼굴에 땀이 송송 맺혀 있었다.
쾅!
“엘레멘탈 실드!”
오러가 실린 화살이 라울의 무기 장벽을 뚫고 희미해진 라벨의 방패마저 뚫어내자 그녀가 황급히 또 다른 방패를 형성했다.
그사이 스켈레톤 제너럴이 언데드 군단과 함께 무기 장벽 바로 앞까지 도달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잇!’
라벨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마법봉을 휘둘렀다.
“바람 주먹! 날려버려!”
직경 2m 크기의 반투명한 바람 주먹이 나타나 제너럴과 언데드들을 강타했다.
콰아앙!
대다수의 언데드가 휩쓸려 몇 미터 뒤로 날아갔지만, 오러 블레이드를 앞세운 제너럴은 그 자리에 꼿꼿이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푸슛! 파바바밧!
날카로운 뼈 창들이 솟구쳐 오르며 라벨과 스킬도감을 노렸다.
“잇!”
미처 마법을 외울 새도 없이 라벨이 스킬도감과 함께 위로 솟구쳤고, 무기 군단 일부가 대신 뼈 창을 막고는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라울, 아직도 멀었어?’
라울이 눈을 감은 지도 어느새 십 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사이 제국의 보우 마스터 브라이스와 사령술사 맥클라나한, 바람 마법사 프라이가 파상공세를 펼쳐오고 있었고, 라벨 혼자 그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무리 라벨이 언령 마법에 통달한 7서클 마법사라 해도, 혼자 세 명의 초인을 막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라울이 미리 설정해둔 무기 군단의 보조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카르데나스라도 손을 보탰으면 충분했을 것인데, 무슨 이유에선지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가족 진영을 바라봤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열심히 화살을 날리던 대족장 라크네샤는 그저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하고 있었으니.
‘라울, 더 늦으면 위험하다고.’
어느새 스킬도감에 비축되어 있던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킬도감의 주인인 라울이 보충해 주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라벨은 아무런 마법도 펼칠 수 없게 될 것이다.
꽈과광!
그때 검은 오러 블레이드가 무기의 장벽에 커다란 구멍을 내버렸다.
무기 군단이 황급히 구멍을 메우려 했지만, 앞을 막는 속도보다 오러 블레이드가 휘둘러지는 것이 훨씬 빨랐다.
“날파리 같은 마법사여. 여기까지다.”
어느새 라울을 공격 범위 안에 둔 스켈레톤 제너럴이 전신에서 검은 마기를 내뿜으며 소리쳤다.
라벨이 황급히 제너럴을 밀어낼 주문을 외우려던 그 순간.
“웃기고 있네.”
꾸드득. 콰지직!
스켈레톤 제너럴의 두 팔이 거인의 손아귀에 잡힌 것처럼 뭉개지며 오러 블레이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