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17
제217화
검은 오러 블레이드가 십자형 궤적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맹렬한 기세로 대기를 갉아먹으며 다가오는 오러 블레이드는 단번에 간이 요새 성벽을 날려버릴 듯했다.
콰아앙!
하지만 그걸 두고 볼 리 없는 라울.
어느새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를 피워 올린 그가 스켈레톤 제너럴의 오러 블레이드를 가볍게 쳐냈다.
“호오, 한낱 인간 꼬맹이가 내 검을 막았단 말인가?”
마스터급 언데드쯤 되니 에고(자아)라도 생성된 모양이었다.
스켈레톤 제너럴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라울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못 막을 이유가 없지.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고작 사령술사 따위에게 휘둘리는 시체 아닌가?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스스로 해골에 검을 찔러 넣고 자폭이라도 하겠다.”
“죽음이 뭔지도 알지 못하는 필멸자가 주제에 넘는 말을 하는구나. 원한다면 직접 체험하게 해주지.”
라울의 도발에 넘어갔는지 스켈레톤 제너럴이 안구에 검은 귀화를 불태우며 라울에게 달려들었다.
쾅! 콰광!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와 검은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치며 주변을 휩쓸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콰지직. 퍼석!
스켈레톤 제너럴의 뒤를 따라 요새로 돌격하던 언데드 군단이 휩쓸리며 대열이 붕괴되었다.
‘멍청하기는.’
라울이 의도하긴 했지만, 스켈레톤 제너럴의 대검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주변의 언데드까지 함께 베어버리고 있었다.
개중에는 엑스퍼트 상급 이상의 고급 데스 나이트나 듀라한들도 있었지만,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 앞에선 평등했다.
“좀 더 힘써보는 게 어때? 그 정도 가지곤 내가 늙어 죽는 편이 빠르겠는데?”
라울은 계속 스켈레톤 제너럴에게 깐죽대며 그를 도발했다.
“그르르. 이놈.”
제너럴의 오러 블레이드가 더욱 길어져 이제 2m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걸 보는 라울의 표정은 더욱 여유로웠으니.
‘생각보단 약하군. 입을 터는 것에 비해 사고력도 많이 떨어지고.’
게다가 사령술사의 통제도 잘 먹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퍽! 콰광!
그러니 언데드 군단 사이로 뛰어든 라울을 따라다니며 함께 머릿수를 줄여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수준은 마스터 초입. 하지만 검술 실력은 오히려 엑스퍼트 상급에도 못 미치네. 그 말은….’
제대로 된 마스터급 언데드가 아니란 뜻이었다.
추측하기론 사령술사가 마스터의 사체에 부리기 편한 하급 영혼을 넣은 모양인데.
그런 어정쩡한 반쪽짜리 언데드로 라울을 막으려 하다니, 그저 웃을 일이었다.
하지만 라울은 바로 제너럴을 처리하지 않았다.
굳이 열심히 팀킬을 해주는 녀석을 없앨 필요도 없었고, 상대하는 데 크게 부담되지도 않았으니까.
그 증거로.
쒜에액! 퍼벅, 서컹!
요새 위쪽에 떠 있는 무기의 군단은 여전히 활발하게 적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마스터들의 전투를 비집고 요새를 노리는 마수와 언데드들은 1차적으로 라울의 무기 군단과 마주해야 했다.
그걸 통과한다 한들, 요새 위에는 특별 탐사대가 버티고 있었으니.
‘이대로 시간을 좀 끌어볼까?’
라울에겐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다.
* * *
“클클클. 자랑하던 언데드 군단의 위용이 말이 아니군그래.”
마법사 프라이가 주름진 턱살을 흔들며 맥클라나한을 비웃었다.
“지금 웃고 있을 상황은 아닌 것 같소만.”
맥클라나한은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전황 자체가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불편했다.
‘라울이라고 했나?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뒤늦게 본부를 통해 라울의 정체를 전해 들었다.
특별 탐사대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 로렌스 드 애쉬튼의 막냇동생.
추정되는 경지는 엑스퍼트 상급이고 손을 대지 않고 무기를 부리는 기묘한 술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나이는 이제 겨우 16살.
‘말이 돼? 엄마 배 속에서부터 검을 익혀왔다고 해도 고작 저 나이에 오러를 다룬다고?’
결계의 힘을 빌렸다고 해도 정도가 지나쳤다.
게다가 문제는 검술 쪽이 아니라 괴이한 술법 쪽.
마법 중에도 마력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텔레키네시스’ 계열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물건 한두 개를 움직이는 정도고 그 안에 에너지를 부여하는 건 불가능했다.
오히려 기사들 쪽에 비슷한 기술이 있긴 했다.
[고스트 소드]검을 손이 아닌 마나와 의지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
그리고 그건 무려 소드 마스터 상급에서 최상급 수준에 도달해야 다룰 수 있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무기 두어 개를 다루는 정도라고 들었는데….’
스스로 움직이는 수천 개의 무기 군단이라니.
비록 그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자율성이 떨어진다 한들 위력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정예 군단을 투입하면 컨트롤이 흔들릴 줄 알았는데 그런 느낌도 별로 없고.’
확실히 정예들이 포함된 언데드 군단은 기본 언데드처럼 움직이는 무기들에 확 쓸려나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쉽게 방어망을 돌파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멍청하게 아군을 베어버리는 스켈레톤 제너럴도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녀석을 놔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저 라울이란 녀석의 발을 묶어둘 수단이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이자를 믿어야 하나?’
누구 덕에 전황이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단순한 노인네였지만, 마법 실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자신과 언데드 군단이 라울이란 녀석을 붙들어 둔다면 충분히 마법으로 처리할 수 있으리라.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이오? 만약 일이 틀어진다면, 폐하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있소?”
“클클클. 꼴들이 우스워서 구경 좀 했는데 발끈하기는. 안 그래도 슬슬 정리하려고 했다네.”
품속에서 스태프를 꺼낸 프라이가 마나를 일으키자, 그의 발아래로 커다란 마법진이 생겨나며 로브가 펄럭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는 듯했지만, 실제론 고위 마법을 펼치기 위한 마법진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 하수인들이 좀 쓸려도 뭐라 하지 말게나. 천공을 맴도는 거친 바람의 힘이여….”
캐스팅을 시작하자 마법진이 더욱 환한 빛을 내뿜었고, 프라이의 머리 위쪽 허공에선 기분 나쁜 바람소리와 함께 구름이 흩날렸다.
“…할 지어다. 다 쓸어버려라! 메가 블레이드 오브 윈드 스톰!”
구르릉.
간이 요새 위쪽 하늘에서 심상치 않은 진동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거대한 회오리가 생겨났다.
휘우우웅.
회오리를 따라 날카롭게 벼려진 반투명한 바람의 칼날들이 공기를 산산이 갈라버리며 무섭게 회전했다.
“가랏! 다 갈기갈기 찢어버려!”
프라이가 충혈된 눈으로 외치자 상공에서 회전하던 바람 칼날의 회오리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크윽. 다들 자세를 낮춰!”
“으앗, 이러다 빨려 들어가겠어!”
요새 성벽에 올라 있던 대원들이 황급히 돌벽의 틈새나 부착물을 붙들었다.
강렬한 회오리바람에 어느새 몸이 반쯤 허공에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움머어어!”
“구오오!”
요새 아래까지 도달했던 일부 데빌 카우와 코럽티드 버팔로가 바람에 휩쓸려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츠가가각!
회오리의 중심부로 빨려 들어간 마수들이 바람의 칼날에 갈려 검은 핏물로 화했다.
요새 바깥에서 전투를 벌이던 마스터급 초인들도 어느새 무기를 땅에 박아 넣고 바람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상공에 떠 있던 무기 군단은 아예 요새를 벗어나 신전 외곽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정작 라울 자신은 마법의 중심축 바로 아래에 위태롭게 서 있었으니.
프라이가 시전한 7서클 최강의 범위 마법 ‘메가 블레이드 오브 윈드 스톰’.
제때 피하지 못하고 휘말리면 파워아머를 착용한 마스터조차 무사할 수 없다는 강력한 파괴 마법이었다.
그리고 이미 라울은 마법의 권역을 벗어나기엔 늦어 보였다.
“그래! 그대로 울부짖는 바람의 먹이가 되어라! 크하하하!”
라울의 최후를 확신한 프라이가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미친 듯이 웃었다.
‘아깝긴 하지만, 저 정도면 싸게 쳤다고 생각해야지.’
아끼던 정예 언데드 군단 일부가 회오리의 희생양이 되었고, 곧 스켈레톤 제너럴도 곧 소멸의 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맥클라나한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나름 이번 작전의 책임자로서 언데드를 잃더라도 결계석을 부수기만 한다면 충분하단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켈레톤 제너럴을 그저 희생시킬 생각도 없었다.
챠라락.
땅속에서 솟구친 거대한 뼈 무더기가 스켈레톤 제너럴을 뒤덮으며 뼈 무덤을 형성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바람 칼날 회오리를 바라보던 프라이와 맥클라나한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아, 아니! 저게 뭐야?”
갑작스럽게 생겨난 에메랄드빛 방패가 간이 요새 상공을 뒤덮으며 회오리를 차단했던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위로 솟구치며 내려오는 회오리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까드드득, 쿠구궁!
* * *
‘이게 웬 떡이냐!’
라울은 머리 위쪽에 생겨난 회오리를 바라보며 히죽 웃음 지었다.
적 마법사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광역 마법을 펼쳤는지는 대충 이해가 가긴 했다.
‘언데드로 발을 묶어서 내가 피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건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저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염동력자는 물리적인 법칙과 관련된 광역 마법과는 상극에 서 있었다.
명확한 물리현상을 관측한다면 그에 반대되는 힘을 부여하는 것으로 그걸 상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울의 주변에 있던 언데드들은 회오리의 흡입력에 버티지 못하고 하늘로 딸려 올라가고 있었지만, 라울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그저 그런 척 연기를 하고 있었을 뿐.
그리고 은근슬쩍 주변의 몬스터들에게 염동력을 투사하고 있었으니.
툭.
“꾸웨엑!”
탁.
“음머어어!”
손, 발, 무기 등을 바닥에 박고 버티는 몬스터들을 염동력으로 살짝 툭툭 쳐주기만 해도 균형을 잃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으니.
‘아, 재밌네. 경험치도 쏠쏠하고.’
별로 힘도 들이지 않았는데 경험치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같은 세력으로 구분된 경우, 아군을 죽이면 경험치를 거의 받지 못한다.
따라서 마무리를 지은 프라이가 아닌 그 직전에 관여한 라울에게 경험치가 전가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아무리 라울이 은근슬쩍 염동력으로 탐사대원들을 붙들고 있지만, 자칫 회오리가 더 근접하게 되면 위험할 수도 있었으니까.
“라벨, 부탁해.”
“맡겨둬. 누군지는 모르지만 참 운도 없네. 하필이면 바람 마법이라니, 훗.”
라벨이 스킬도감을 펼치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조화와 질서를 사랑하는 숲의 요정 라벨.
그녀는 각종 원소 마법에 두루 능통했지만, 그중에서도 강점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바람’ 속성 관련 마법이었다.
그녀의 마법이 에메랄드빛을 띠는 것은 바로 그녀가 숲과 바람 속성의 마나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앱솔루트 엘레멘탈 실드! 단단하게 버텨줘!”
요새 위를 뒤덮는 반투명한 에메랄드빛 방패가 생겨났고.
“솟아올라! 바람을 잠재우는 거야!”
방패가 솟구쳐 오르며 회오리와 충돌했다.
까드드득, 쿠구궁!
둘이 충돌하며 어마어마한 굉음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패를 갉아 먹으며 뚫어내려는 회오리와 그걸 하늘 위로 밀어내려는 방패.
겉보기엔 단순한 힘겨루기가 이뤄지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엘레멘탈 실드의 가운데 부분이 회오리가 회전하는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과 방패의 대결이 아니라, 창과 창의 대결이 된다면?
“어, 어째서!”
프라이가 경악하듯 소리쳤다.
엘레멘탈 실드와 맞부딪친 회오리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기운을 잃으며 소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시간을 역행하듯 그 기세가 풀리더니 결국 잔잔한 미풍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라울의 무기 군단이 다시 전장을 휩쓸었다.
바람에 휘말려 떠올랐던 마수.
균형을 잡으려 무기를 바닥에 꽂아 넣은 언데드.
7서클 마법의 위용에 정신이 팔렸던 마병과 제국 기사들까지.
빈틈을 노린 무기 군단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자 우후죽순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휘우우웅, 파아앗!!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찾아왔다.
라울의 몸에서 황금빛 서기가 뿜어져 나오며 주변의 마나가 그를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