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16
제216화
신전 출입구.
나가족 전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전투가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출입구 주변엔 마수의 검은 피와 언데드의 뼈 따위가 널려 있었다.
“샤아. 대족장. 계속. 구경만. 할 것인가.”
“샤아. 전사들이. 피를. 원한다.”
“샤아. 이곳은. 우리의. 성소다.”
일반 전사들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큰 족장들이 대족장인 라크네샤를 둘러싸고 얘기하고 있었다.
“샤아. 기다려라. 아직. 약속의. 시간이. 되지. 않았다.”
라크네샤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간이 요새의 기묘한 전투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암흑 게이트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소머리의 괴수들.
그리고 죽어도 계속 되살아나는 언데드 병사들.
그 둘이 주축이 된 침략자들이 쉬지 않고 결계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걸 막아내는 것은 인간족 병사들이 아닌 기묘한 무기들.
하늘 위에서 진형을 갖춘 각종 무기의 대군이 아무런 감정도 없이 기계적으로 결계를 넘어오는 적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벌써 하루가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 소모적인 전투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대족장인 그로서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전날 결계의 인간 무리와 나눴던 대화뿐이었다.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가 되고 순식간에 요새가 지어진 그때.
대족장 라크네샤는 젊은 전사장들을 대동하고 결계를 방문했다.
공중에 떠 있는 무기 군단이 그들을 노리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를 적으로 인식하지는 않았는지 별다른 충돌 없이 요새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인간족의 대표로 나온 것은 두 명.
부족민에는 미치지 못해도 봐줄 만한 키에, 가짜이긴 해도 전사의 팔을 지닌 이.
그리고 자신의 반도 안 되는 자그마한 어린 인간 하나였다.
“나가족이 여기에는 무슨 일입니까?”
어린 인간이 물어왔지만 무시했다.
야비한 인간 종족과는 말을 섞지 않는 게 최선이었으니까.
“샤아. 그분의. 유지를. 이어받은. 인간족 전사여. 혹시. 그분께서. 남기신. 말은 없는가. 샤아.”
“아쉽지만 직접 말을 나눌 기회가 없었소. 그리고 내가 부족하여 그분의 기억을 아직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소. 다만 어렴풋이 그대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떠오르는 듯하군요.”
“샤아. 그러한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분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신들이 부족한 탓이었으니.
“샤아. 인간족 전사여. 한 가지. 제안을. 하러 왔다.”
“말씀하시오.”
“샤아. 이곳은. 대대로. 전해온. 우리의. 성지. 더러운. 침략자들을. 몰아내야. 한다. 샤아. 우리와. 손을 잡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뤄진 임시 동맹.
인간족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결계를 지키겠다고 했다.
자신들에겐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가 저들에게 반격할 때 힘을 보태어 달라고 했는데,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야비한 인간족들의 싸움에 우리 종족의 피를 흘릴 필요 없지. 결계가 위험해지면 약속과 상관없이 참전하면 될 일.’
엄청난 힘을 보인 인간족의 수호자와 그분의 유지를 전해 받은 전사라면 어느 정도는 버텨줄 것 같았다.
하지만 설마 저런 식으로 전투가 흘러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샤아. 대족장. 굳이. 인간족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
족장들이 계속해서 다그쳤지만 라크네샤의 생각엔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당장 전투에 참가하기엔 아직 ‘고급 전력’이 부족했다.
다른 대족장들과 대전사장들이 도착한다면 모를까.
‘이대로 인간족들이 버텨준다면, 나쁠 게 없지. 그들이 도착할 시간이 멀지 않았으니까.’
그때가 된다면 이 성소에 인간족들이 발붙일 자리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분의 후계는 제외하고 말이다.
“샤아. 저게. 뭐지.”
“샤아. 인간족이. 하늘을. 날고. 있다.”
족장들의 말에 고개를 드니 검은 그림자 셋이 신전 밖에서 하늘을 통해 날아들고 있었다.
놈들이 향하는 방향은 바로 제국 쪽 진영.
‘불길하군.’
“샤아. 활.”
그가 손을 내밀자 부족민 둘이 낑낑대며 커다란 활을 건넸다.
끼이이익.
네 개의 팔이 움직여 거대한 장궁, 인간들 기준으론 발리스타에 맞먹는 활시위를 쭈욱 잡아당겼다.
파아앗!
그리고 몬스터의 뼈로 만든 화살에는 놀랍게도 붉은 ‘오러’가 맺히고 있었다.
투화학!
화살을 발사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커다란 소리와 함께, 붉은 광선이 날아가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뻗어나갔다.
콰아앙!
“샤아아!”
나가족들이 함성을 질렀다.
대족장의 화살은 여태까지 노렸던 사냥감을 놓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크네샤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팔이 다시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샤아!”
꽝!
그가 발사한 두 번째 화살이 하늘 위의 검은 그림자와 나가족 진영 가운데쯤의 허공에서 폭발했다.
“환영 인사가 거칠군.”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와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검은 갑주의 기사 둘.
그중 한 기사의 손에는 라크네샤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활이 들려 있었다.
* * *
‘쳇. 역시 이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지.’
라울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전날 만났던 나가족 대족장의 경지는 최소 마스터 이상.
그리고 그가 대동했던 전사장들이나 족장들도 인간으로 치면 엑스퍼트 상급에서 최상급의 실력자들.
그럼에도 본격적으로 참전하지 않았던 것은 결계에 있는 로렌스 형과 대원들 때문일 것이다.
‘괜히 나섰다가 그들 대신 제국 초인들의 타깃이 되긴 싫었단 얘기겠지.’
겉보기엔 천생 전사였지만, 대족장은 확실히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어쨌든 만약 로렌스 형과 대원들이 당했다 해도, 최후의 결계가 쉽게 무너지진 않았을 거란 얘기였다.
대족장을 비롯한 정예들과 수천의 나가족이 결계의 힘을 나눠 받고 지킨다면, 겨우 마스터 하나와 7서클 사령술사만으로 공략하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그럼에도 전생의 봉인이 완전히 깨졌다는 건.
‘결국, 나가족을 확실히 무너뜨릴 전력이 제국 측에 추가되었다는 말이지.’
저들의 지원군이 나가족과 먼저 시비가 붙어서 다행이지, 자칫 낭패를 볼 뻔했다.
땡땡땡땡땡.
감시탑에 달려 있던 경계종을 치며 라울이 외쳤다.
“비상! 전원 전투 준비!”
제국 쪽에 추가된 초인들을 상대하려면 몬스터 쪽에 손이 빌 수도 있었다.
하루를 푹 쉰 탐사대원들은 부상도 거의 회복되었고, 체력도 충분히 보충한 상태.
저들 오십 명이면 마스터급을 제외한 적들은 알아서 막아줄 것이다.
‘좀 더 만전의 상태에서 상대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결계 내부에서 버티다가, 상황이 허락한다면!
라울이 반짝이는 눈으로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 * *
“에라이 멍청한 놈들.”
에제키엘이 혀를 찼다.
고작 몬스터 따위의 눈을 피하지 못하다니.
이래서야 증원이 왔다는 걸 사방에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기습은… 어렵겠군.”
맥클라나한도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펑! 퍼벙!
신전 상공을 날아오는 지원군은 본진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나가 대족장과 오러시(오러가 담긴 화살)를 주고받았다.
타닷.
마법사의 비행 마법이 풀리고 세 사람이 바닥에 발을 디뎠다.
“에이씨, 뭐야 이거. 망토에 먼지가 묻었잖아?”
주름이 자글자글한 60대 노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그는 바람마법이 특기인 7서클 마법사 프라이였다.
“선배,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벌써 보름이 넘었는데 결계는커녕 몬스터도 제대로 정리해놓지 않으신 겁니까?”
“닥쳐, X가지 없는 X끼. 너부터 뒈지는 수가 있다.”
에제키엘을 보자마자 썩은 미소를 지으며 쏘아붙이는 기사의 이름은 스탠튼.
에제키엘과 마찬가지로 최상급 마인이자 초급 소드 마스터였고, 같은 교육기관을 이수한 선후배이기도 했다.
“저건 내 거니까 아무도 손대지 마.”
빈 활시위를 퉁퉁 튕기며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검은 갑주의 기사 브라이스.
그 또한 초급 마스터이자 특이하게도 활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궁사이기도 했다.
“자자, 일단 모였으니까 회의부터 하자고.”
맥클라나한이 도착한 이들을 다독이며 임시 막사로 향했다.
그렇게 한자리에 모인 제국의 다섯 초인.
마스터가 셋에 7서클 마법사가 둘.
비록 초인들 가운데는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이라 해도 초인은 초인.
머릿수만 따지면 왕국 하나가 보유한 초인 전력에 비견될 만한 화려한 구성이었다.
이 정도 전력이 본대가 아닌 별동대에 파견된 것만 봐도 제국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라울과 특별 탐사대를 위협할 만한 적이 마침내 등장하고야 말았다.
* * *
결계에 설치된 간이 요새는 3면에서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크기였기에 무슨 의미가 있냐 싶지만, 완전히 포위된 것과 한쪽이 비어 있는 것은 느낌이 다른 법.
‘나가족의 진형 배치가 도움이 되는군.’
한쪽 출입구를 차지한 나가족 덕분에 지켜야 할 범위가 줄어들었다.
게다가.
쉬우웅~ 펑! 콰광!
나가족 대족장과 제국의 보우 마스터가 원거리 저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붉은 광선과 검은 화살이 연이어 맞부딪치며 전장을 뒤흔들었다.
대충 보아하니 뭔가 자존심 대결로 넘어간 듯했다.
둘 다 다른 데 신경쓰지 않고 서로에게만 화살을 날려대는 걸 보면 말이다.
‘고맙군. 덕분에 상대해야 할 초인 하나가 줄었으니.’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큰 도움이 되었다.
여전히 감시탑 위에 서 있는 라울이 고개를 돌려 요새 왼쪽을 바라봤다.
“반쪽짜리 몬스터!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보자!”
“승부? 여태까지 몇 번이고 등을 돌렸던 놈이 뻔뻔하기 그지없구나. 꼭 실력 없는 놈들이 그런말을 내뱉곤 하지.”
“닥쳐! 고작 몬스터의 힘을 빌린 가짜 마스터 따위가!”
콰앙! 챙, 투캉!
에제키엘과 로렌스가 다시 맞붙었다.
이제는 정말 끝을 보겠다는 것인지 에제키엘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지만, 체력을 회복하고 수호자의 심득을 깨달아가는 로렌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한편 요새 오른쪽에선 제국의 새로운 마스터 스탠튼과 케인, 제이크 조합이 격돌했다.
“크크크, 네놈들이구나? 두 놈이서 에제키엘 하나에게 빌빌거렸다는 병신들. 안심해라. 나는 누구와는 다르게 약한 놈들 데리고 노는 취미는 없으니 말이야. 바로 끝내주마!”
“새끼, 말 많네. 닥치고 덤벼! 왜? 쫄리냐?”
“뭐라고? 이 미개한 반쪽짜리가!”
스탠튼이 제이크의 도발을 참지 못하고 두 개의 단창에 오러를 불어넣으며 달려들었다.
피잉! 파바바방!
짧은 두 개의 창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수십 개의 검은 창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쪽에는 케인이 있었다.
녹색의 오러가 맺힌 두 개의 헌팅 나이프가 날렵한 제비처럼 움직이며 검은 창영을 하나하나 쳐내고 있었다.
“하앗!”
그리고 케인을 믿은 제이크가 만들어낸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가 스탠튼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갔다.
텅.
“쳇.”
어느새 붉은 문신이 얼굴에 가득한 스탠튼이 단창의 끄트머리로 아주 가볍게 제이크의 공격을 튕겨낸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던 제이크는 튕겨 나오는 반동을 이용해 다시 대검을 휘둘렀다.
쾅! 콰광!
무기의 사거리는 단창을 들고 있는 스탠튼보다 제이크의 대검 쪽이 더 우위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스탠튼은 제이크를 노리기 쉽지 않았고,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다가선 케인이 위협적으로 단검을 휘두르는 것도 성가셨다.
“이 쥐새끼 같은 것들이 진짜!”
스탠튼이 고함을 쳤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셋의 대결도 만만치 않은 접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흠. 다들 잘하고 있군.’
라울 없이도 제국의 세 마스터는 발목이 묶였다.
그 말인즉.
사령술사와 마법사를 라울이 맡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척척척척.
그리고 요새 전방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적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태까지 결계를 공격해오던 것은 좀비, 스켈레톤 같은 하급 언데드.
하지만 지금 보이는? 것은….
‘구울, 듀라한, 데스나이트. 그리고 저건 설마…?’
고급 언데드들이 즐비한 언데드 군단.
그리고 그 가장 앞에 서서 당당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은 두꺼운 뼈 갑옷에 망토를 두른 해골 기사였다.
그것도 최소 기사단장급 언데드라는 ‘스켈레톤 제너럴’.
그걸 증명하듯 해골 기사의 검에선 검은 오러 블레이드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재밌네.’
라울이 미소를 지으며 감시탑에서 뛰어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