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29
제229화
장벽앞 도시 포르타를 침공했던 마수와 제국군들은 모두 토벌되었다.
성녀와 장벽 소속의 마법사들이 훼손된 고대 봉인의 잔재를 수습했고, 임시로라도 장벽은 제 기능을 되찾았다.
빠르게 도착했던 첫 지원군.
루벤 왕국과 플레이어들을 주축으로 이뤄진 군단은 포르타 수복에 그치지 않고 장벽을 넘었다.
진짜 제국군의 본대가 여전히 전진기지 감마를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간 관리되지 않은 탓인지 감마까지의 길은 언데드와 몬스터들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앞선 전투로 사기가 오른 지원 군단은 플레이어들의 적극적인 공세에 힘입어 손쉽게 관도를 확보하며 전진했다.
마침내 사흘 만에 전진기지 감마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늦지 않았구나.”
감마의 성벽 위에는 여전히 연합군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성벽 곳곳이 무너지고 건물 일부는 화마에 불타고 있었지만, 제국군은 감마의 성벽을 넘지 못했다.
총사령관 줄리어스 공과 부사령관 타비온 공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장벽 연합군은 십만이 넘는 제국군의 공격을 일주일 넘게 막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제국군이 진심으로 공격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본대가 이쪽이라지만, 주공은 장벽 도시 포르타였다.
포르타가 함락되면 독 안에든 쥐나 다름없는 연합군을 굳이 피해를 감수하며 몰아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승리한 건 틀림없다.’
라울은 피와 그을음이 가득한 갑옷을 입고 성벽 위에서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병사들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찌 보면 저들의 희생과 분투로 커다란 전쟁의 시작을 막아낸 것일지도 몰랐으니.
문제의 제국군 본대는 장벽 측의 지원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질서 정연하게 진영을 정리하고는 물러났다.
마치 덤비려면 덤비라는 듯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침착한 군대 운용이었다.
공적치에 눈이 먼 일반 플레이어들조차도 감히 덤벼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니까.
어쨌든 제국군의 퇴각으로 장벽 침공은 진짜 마무리되었다.
전투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다.
침공의 상처는 너무도 컸다.
장벽 최전선에서 근무하던 병사와 기사 1/3가량이 전사했다.
그간 개척해 두었던 임시 기지 수십 곳과 보급로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특별 탐사대가 목표했던 금역과의 통로 차단은 물거품이 되었다.
제국군은 퇴각하며 확보했던 던전 통로와 지형들을 모조리 뭉개버렸고, 바뀐 지형은 언데드와 몬스터들의 차지가 되었다.
결국, 총사령관 줄리어스 공이 결단을 내렸다.
장벽 연합군은 전진 기지 감마를 포기했다.
그곳을 지킬 병력의 여유도 없을뿐더러 보급선 확보조차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종 방어선을 전진 기지 베타로 물리고 최소한의 정비를 마치는데 보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그사이 어느덧 해가 바뀌어 라울의 나이는 18세가 되었고, 커넥트 정식 서비스가 개시된 지도 1년이 지나갔다.
* * *
“줄리어스 총사령관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장벽 내에 위치한 군 사령부.
그 가운데 가장 커다란 회의실에 수십 명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모인 인원의 면면은 화려했다.
장벽의 주요 인사들인 핸슬리 공과 타비온 공, 알파의 사령관 애드허트를 비롯한 지휘관들이 앞쪽에 자리했다.
그리고 회의실 좌측에는 멜빈 드 애쉬튼 백작, 피델 드 그리어 후작 이하 몇몇 귀족들과 로렌스, 라울, 달튼 등 루벤 왕국 주요 인물들이 참석했다.
우측에는 레슬리 왕국의 지원군으로 참전한 몇몇 마탑주와 귀족들이.
그 옆에는 브레넌 공화국 몇몇 가문의 인사들과 마커스 왕국 용병단장들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중앙 뒤쪽엔 용사 파티원들과 신성제국에서 파견된 성기사단과 주교 일부가 자리 잡았으니.
규모만 작을 뿐, 제국을 제외한 커넥트 대륙 연합 총회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공통점이라 하면 빠르던 늦던 장벽의 구원요청에 응해 병력을 이끌고 온 이들이란 점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도 줄리어스 공이 감사 인사 겸 간단한 회의를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장벽의 위기에 만사를 제쳐두고 구원 요청에 응해주신 여러분들께 장벽 연합군을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바입니다.”
줄리어스 공이 단상 위에서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좌중의 인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사실 원래라면 그가 이렇게 허리까지 숙여가며 예를 표할 일은 아니었다.
장벽이 위기에 처했을 때 지원군을 파병하는 건 왕국들의 의무였으니까.
‘문제는 이번에 파견된 지원군이 왕국군 소속이 아니라는 것이지.’
조용히 앉아서 좌중을 둘러본 라울이 살짝 혀를 찼다.
설마 설마 했는데, 이 자리에 왕국 중앙군 소속의 장군이나 기사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커스 왕국이야 장벽과는 대륙 반대쪽에 떨어져 있기에 실질적으로 병력을 파병할 수 없으니 논외.
하지만 루벤, 레슬리, 브레넌 공화국은 장벽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심지어 장벽 근처에는 수가 적긴 해도 중앙군 직할의 국경 수비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이 출병했다면 적어도 이번 지원군보다 하루는 빠르게 장벽에 도착했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지.’
즉, 이번 지원군은 전적으로 귀족가, 가문, 마탑 등의 사병으로 구성되었다는 뜻이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왕국 내부가 혼란스런 상황이라 해도, 장벽은 대륙 전체를 지키는 관문이나 다름없습니다. 각 왕국의 왕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장벽 지휘관들의 성토로 시작된 회의는 대륙의 현황 파악과 이후 상황에 대한 예측 및 장벽 방어를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비록 이번 위기는 어떻게 잘 넘겼지만, 이대로라면 다음 침공에 위험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줄리어스 공과 장벽 수뇌부는 각 왕실에 이번 사태에 대해 항의하고 추후 지원에 대한 새로운 협의를 마련하기로 결론지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건 그 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대안이 달리 없었다.
왕실이 홀대한다 해서 장벽을 비우거나 적에게 내어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래도 참석자들이 자발적으로 장벽을 위한 지원책을 제시하고 왕실과의 교섭에서 힘을 써줄 것을 약속했기에 아주 성과가 없는 회의는 아니었다.
자리가 파하고, 라울은 아버지, 둘째 형 로렌스와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혼란이 찾아올 겁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라울의 말에 로렌스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모두들 장벽이 침공 당했다는 사실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지만, 실은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국군이 장벽을 넘을 뻔했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네. 이미 시작되었고요.”
라울의 말에 로렌스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아버지 멜빈 백작은 라울의 말을 신뢰하고 있었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그래야 대비할 것이 아니겠느냐.”
촤락.
라울이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제2의 게이트 사태가 펼쳐지고, 본격적인 초인의 시대가 시작될 겁니다.”
라울이 펼쳐놓은 그것은 바로 커넥트 시스템의 전체 공지를 일부 옮겨 적은 것이었다.
[공지 사항]차원 게이트를 억제하던 3단계 고대 봉인이 한곳을 제외하고 모두 풀렸습니다. 3단계 봉인이 해제됨에 따라 게이트 침식이 더욱 빨라집니다.
-지금부터 최고 A등급까지의 게이트가 랜덤하게 등장합니다.
-게이트를 통해 잊혀졌던 고대 종족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커넥트 세상의 마나 농도가 더욱 짙어집니다. 이제 주민들의 좀 더 쉽게 마나를 깨우치게 됩니다. 벽에 막혀 있던 일부 주민들이 한계를 뛰어넘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집니다.
-식물과 동물의 생장이 더더욱 촉진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종이 더욱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커넥트 대륙에 유의미한 수준의 마기가 유입되었습니다. 이제 어둠의 존재들이 게이트를 벗어나 대륙을 활보할 시기가 멀지 않았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인류의 성장이 빨라진 만큼, 더 강하고 무서운 적들이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3단계 봉인이 풀림에 따라 새로운 시나리오가 등장합니다.
제국과의 전투는 메인이 아니었다.
실제론 제국이 장벽 근처에 숨겨져 있던 고대 봉인을 해제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비록 라울이 금역에 있던 고대 봉인 최후의 봉인석 하나는 지켜냈지만, 그것만으로 대세를 거스르기엔 어려웠던 모양이다.
‘장벽은 지켜냈지만, 제국도 나름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는 뜻이지.’
제국군 본대가 무리하지 않고 병력을 물린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봉인이 풀린 이상 왕국의 힘이 약해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으니.
“이, 이게 사실이야?”
문서를 확인한 둘째형 로렌스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로렌스도 이미 퍼스트 길드에 가입하여 준플레이어 자격을 취득했다.
금역 내에서 만났을 당시 라울이 반강제적으로 형을 가입시켰고, 덕분에 수호자라는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전히 커넥트 시스템을 신의 권능으로 알고 있긴 했지만, 라울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하고 있었다.
“제국만 해도 문제인데 게이트에 마족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멜빈 백작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라울은 그것보다 다른 쪽이 더 신경 쓰였다.
“저는 오히려 왕국 쪽이 마음에 걸립니다.”
“무슨 뜻이냐?”
“신탁대로라면, 조만간 경지에 도달하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날 겁니다. 오랜 시간 벽에 묶여 있던 이들이 풀려난다는 얘기죠.”
“……!”
멜빈 백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왜요? 마스터가 늘어나면 잘된 일 아닙니까? 실력자가 늘어나면 게이트나 마족에 대항하기도 한결 수월해질 테고, 제국과도. 음, 제국 쪽 초인도 늘어나려나?”
로렌스는 심각해진 아버지와 라울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로렌스의 말이 맞았다.
인류의 초인이 늘어나면 그만큼 외세의 침략에 대항할 힘이 커지는 거니까.
“…전쟁이 일어나겠구나.”
“네, 십중팔구는 그럴 겁니다.”
“……? 갑자기 전쟁이라니요?”
어리둥절해 하는 로렌스에게 라울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우리 왕국에 마스터가 몇이나 있습니까?”
“알려진 것으론 세 명이지. 검공님, 맥닐 후작, 랜달 백작까지.”
라울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문에 마스터가 둘이나 셋 정도 한꺼번에 탄생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가주 입장에서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습니까?”
“…아마도 왕국에서 가장 강한 가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 가만히 있을까요? 아니면 뭔가 이득을 취하려 할까요?”
“그야 당연히, 엇…!”
“게다가 현재 왕실은 후계자가 내정되지 않은 상태. 게이트는 범람해 자기 보신하기도 급급한 영지도 많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까요?”
로렌스도 이제는 확실히 이해한 모양이었다.
가만히 쥐고 있기엔 너무나 아까운 강력한 힘이 생겨났다.
영주들은 결코 욕심을 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사자가 일반 가문도 아닌 명문가라면 더더욱.
“하지만 꼭 한 가문에만 마스터가 몰아서 탄생한다는 법은 없잖아? 그럼 지금처럼 다시 균형이 맞아지는 것 아닐까?”
로렌스가 묻자 라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맞아요. 다른 가문들에도 마스터가 생겼다는 걸 알면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걸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요? 가주들은 결코 마스터의 탄생을 쉽사리 공표하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 한 사람의 검사로서 마스터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다는 게 얼마나 명예로운 일인데! 숨길 이유가 어딨단 말이냐?”
“만약 지금이 평화로운 시대라면 말이죠.”
“…….”
“당장 우리 가문만 해도 아버지가 마스터에 올랐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잖아요. 그리고 공표해도 문제가 많죠. 만약 저와 형님, 제이크 경, 케인 경까지 경지에 올랐다는 걸 세상에 발표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로렌스는 침묵했다.
아무리 검에 미쳐 지내느라 세상 물정에 어둡다 해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지는 않았다.
분수에 맞지 않는 강함을 과시하면, 주변이 온통 적으로 둘러싸이게 마련이었다.
사람의 시기심과 질투, 그리고 막연한 공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수많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전쟁은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걸 대비해야 하고요.”
확신 가득한 라울의 목소리에 로렌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후우, 정말 어렵구나. 힘을 모아도 모자랄 마당에 인간들끼리 싸움을 벌여야 한다니.”
“저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하아.”
이미 라울은 보고야 말았다.
다음 시나리오의 메인타이틀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