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47
제247화
‘찝찝하군.’
클리포드 드 맥닐 후작이 턱을 괸 채 반대쪽 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탁탁 두드렸다.
덕분에 회의실 안의 분위기가 싸늘했다.
‘뭐가 그리 불만이시지?’
‘완벽한 압승이 아닌가? 4왕자도 죽었고 말이야.’
대승을 거두고 당당하게 되돌아온 지휘관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해했다.
“랜달 백작이 신경 쓰이십니까?”
다섯째 아들 브레이든 자작이었다.
검술 실력은 평범했지만, 그 재치와 머리 쓰는 법이 비상하여 후작이 총애하는 이였다.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앞뒤 자르고 물었지만, 브레이든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사체에 난 자국은 창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리어 후작가가 의심이 되긴 합니다만, 그들이 굳이 랜달 백작을 도울 이유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잠시 뜸을 들인 브레이든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높은 확률로 템플턴 공작가. 혹은 애쉬튼 놈들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하다. 내 생각 또한 너와 다르지 않으니.”
후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장을 정리하고 왕성으로 귀환한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으니.”
“넷, 각하!”
후작의 시선이 템플턴 공작가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전쟁의 결과가 왕국 전역으로 전해졌다.
-커든 평원 전투. 놀랍게도 3왕자 측의 압승으로 마무리.
-루벤 왕국 차기 왕은 3왕자의 몫이 되는 것인가.
-최초로 성사된 마스터 대전. 하지만 기사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랜달 백작을 비롯한 다섯 마스터의 실종.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3왕자 헤르디안. 승리 직후 템플턴 공작가에 사신 파견.
-템플턴 공작가는 6왕자 제라드와 8왕자 아엔바드를 압송하라는 3왕자의 명령을 거절. 또 다른 전쟁의 불씨인가?
3왕자 측의 승리와 더불어 각종 소식들이 신문을 통해 공개되었다.
너무나도 일방적인 승리 탓이었을까?
언론의 논조는 조심스러웠고, 시민들은 전보다 더 언행에 조심했다.
개중에 새롭게 등장한 초인들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도 있었지만, 조용히 파묻혔다.
그 기사가 실린 신문은 전량 회수되었고, 협박 같았던 언론 통제가 실제로 행해지며 몇 개의 신문사가 하룻밤 사이에 문을 닫았다.
마탑과 언론 협회가 항의했지만, 잡혀간 이들을 겨우 빼내는 선에서 그쳤으니.
이제 진짜 3왕자 헤르디안의 세상이 되었다는 전조였다.
전쟁이 끝난 며칠 뒤.
라울은 오랜만에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긴장감을 애써 억누르며 어딘가에 서 있었다.
-할아버님, 아니 공작님께서 한 번 보자고 하셔.
달튼이 이틀 전 찾아와서 건넨 말이었다.
‘역시 그냥 넘어가진 않겠지?’
라울은 예상되는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템플턴 공작가 본가.
왕국 수도 투리엄의 동북 방면에 위치한 작은 요새였다.
일반적으로 공작가의 수도라면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를 상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상은 거주 인구 3만도 되지 않는 자그마한 요새 도시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그 인구 대부분이 기사 지망생과 검술 수련생들로 이뤄졌다는 사실.
어떻겠든 공작가의 눈에 들어 검술 한 초식이라도 전수받거나 기사단에 입단하길 원하는 이들이 모여든 것이다.
기사의 왕국 루벤.
그 수많은 기사 가운데 정점에 선 자가 바로 마르퀴스 드 템플턴 공작이었으니.
검공의 명성과 그에 대한 존경과 선망이 이뤄낸 기사들의 요새, 그것이 바로 공작가의 본가 위버리였다.
“정말 듣던 대론데요? 신기하네.”
제이크가 연신 사방을 훑어보며 말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대부분이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대장간이 자리 잡고 있었고, 각종 검술 아카데미를 홍보하는 간판과 문구들이 요새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단순히 검만 차고 있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기운도 상당합니다. 역시나 ‘마나 귀환 현상’ 때문일까요?”
호위차 함께 하던 조쉬 또한 감탄한 눈빛으로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마나 귀환 현상.
얼마 전 장벽 사건 이후, 대기 중의 마나가 폭증한 것을 두고 학자들이 명명한 것이었다.
고대시절에는 지금보다 마나가 풍부하고 마나 생명체들이 넘쳐났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사라졌던 마나가 돌아오며 그때의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었다.
어쨌든 덕분에 많은 이들이 마나에 민감해지고, 마나를 깨닫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으니.
“뭐, 저들 가운데 미래의 소드 마스터가 있을지도 모르지.”
만약 공작가가 전쟁에 휩싸인다면 저들 대다수가 참전할지도 몰랐다.
‘기사단 열 개는 가뿐히 만들고도 남겠군….’
괜히 공작가를 왕국 최고의 가문이라 부르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걸어 요새 중심부에 도착하자 낮고 긴 담장이 쭉 뻗어 있었다.
“특이하네요. 성벽이 아니라 담벼락이라니.”
조쉬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정문 옆으로 뻗은 담장을 바라봤다.
“하낫, 둘, 하낫, 둘!”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공작가 저택의 담장을 따라 구보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담장 너머 저택 안쪽에서는.
“내려치기 백 회!”
“백 회! 핫!”
여기저기 나뉜 연무장 위에서 공작가의 수련생들이 교관들의 지도하에 수련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일종의 소통인 것 같네요. 기사 지망생들이 저 모습을 보며 꿈을 키워가겠죠.”
케인의 말에 라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리고 공작가의 자부심이기도 하겠지. 성벽이 아닌 담장으로도 스스로를 지키기엔 충분하다는.”
문득 달튼이 했던 얘기들이 떠올랐다.
‘저택 수련은 너무 재미가 없었어. 그래서 가끔 담장을 넘곤 했지.’
이 정도 담장이면 손쉽게 넘어 다닐 만하긴 했다.
끼이익.
대문이 열리고 단정한 양복 차림을 한 이가 나와 일행을 맞이했다.
“템플턴 공작가 저택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공작가 저택엔 따로 사용인이 없고 수련생과 기사들이 잡무를 처리한다더니, 정말인 모양이었다.
‘안내인조차 엑스퍼트라. 재밌네.’
라울이 슬쩍 분석안을 발동하고는 혀를 찼다.
정원 사이로 펼쳐진 열 개가 넘는 수련장을 지나 본관 앞에 도착했다.
“어서와. 가주님이 기다리고 계셔.”
본가로 돌아온 만큼 친구로서 라울을 맞이하는 달튼이 싱글거리며 그를 안내했다.
그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라울에게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로 전했다.
“할배가 바로 검을 날려도 너무 놀라지 말라고. 나름의 인사법이니 말이야. 그리고 나는 별말 안했으니 너무 긴장하지 말구.”
그러면서 눈을 찡긋했는데, 딱히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가 라울을 안내한 곳은 응접실이 아닌 지하의 연무장이었다.
“그럼, 굿 럭!”
엄지를 척 올리고는 달튼이 라울의 수행원들과 함께 문 밖에 남았다.
“후읍.”
라울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10m가 넘는 높은 천장.
지하임에도 수많은 마법등이 달려 있어 대낮같이 환한 실내.
검기는 물론이고 일정 수준의 오러까지 막아낸다는 특별한 방어 마법진이 새겨진 탄탈리움 코팅 벽.
그런 건 솔직히 라울의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구오오오.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연무장 가운데 정좌하고 앉아 있는 백발 노인 하나뿐이었다.
마르퀴스 드 템플턴.
커넥트 세상의 수많은 검사들의 정점에 올라 있는 세계관 최강자.
그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라울에게 말했다.
“솜씨 한번 보자꾸나.”
라울은 반사적으로 인벤토리에서 양손 대검을 꺼내들며 허공에 휘둘렀다.
쩡!
뭔가가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크윽.’
라울은 저릿한 손에 눈살을 찌푸리며 두어 걸음 뒤로 밀려났다.
“호오.”
검공은 여전히 정좌한 자세 그대로 나지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다음순간.
쩡! 쩌정! 쾅!
라울 앞의 허공이 번뜩이며 충돌음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해 두었던 라울은 두 다리로 연무장을 굳건히 밟은 채 차분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덕분에 좀 전처럼 뒤로 밀려나진 않았지만, 라울의 표정은 밝아보이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그의 대검엔 어느샌가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맺혀 있었다.
하지만 검공은 여전히 정좌한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무형의 마나 블레이드.
그것도 검조차 없이 허공에서 만들어내는 플라잉 마나 블레이드는 전조도 없이 그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라울의 염동력과도 비슷한 면이 많았다.
‘직접 상대해보니 까다롭네.’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으니 오로지 기감으로만 파악해야 했다.
게다가 검기 하나하나에 실린 힘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군.’
라울의 공간 감지력은 일반적인 초인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동시에 수천 개의 물체를 움직일 정도로 발달된 그의 감각과 장악력은 검공이 펼치는 무형 검기(마나 블레이드) 네댓 개쯤은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검공의 공격이 돌연 멈췄다.
스륵.
검공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덤벼 보거라.”
검집에서 검조차 뽑지 않은 검공이었지만, 전혀 빈틈이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라울은 전혀 개의치 않고 대검에 마나를 집중했다.
“갑니다.”
파앗.
거대한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연무장을 가득 채우며 검공을 향해 쏟아져 들어갔다.
무작위로 휘둘러지는 것 같았던 오러가 검공의 눈앞에 도착했을 때는 어떤 형상을 갖추고 있었으니.
크와앙.
마치 포효하는 곰이 앞발을 휘두르는 것처럼 손톱모양으로 휘어진 황금빛 궤적이 수십 개로 나뉘어 공간을 휩쓸었다.
애쉬튼 가문의 비전 검술.
베어 크러쉬가 라울의 손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것이다.
“좋구나! 껄껄껄.”
검공은 환하게 이를 드러낸 채 검집째 검을 휘두르며 황금빛 오러의 세례를 막아나갔다.
쾅! 콰과과광!
오러의 파편이 거대한 지하실 전체로 터져 나가며, 사방의 벽에선 반투명한 마법진이 나타나 그걸 막아냈다.
만약 이런 특별한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공작가 저택은 이미 무너져 내렸을지도 몰랐다.
잠시 후.
오러 파편과 충격음이 가라앉고 두 사람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만족스럽다는 듯 웃고 있는 검공과 뭔가 불만스런 라울의 표정.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다 막아내다니….’
아무리 순수하게 검술만을 사용했다지만, 검공과의 사이에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 실감이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생에 내가 느꼈던 것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었구나….’
그때야 근처에 다가가기는커녕 아주 멀리서 어렴풋이 구경했을 뿐이긴 했다.
그래서 그저 다른 마스터보다 약간 강한 마스터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급이 다르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전생의 경지를 뛰어넘은 지금 라울이 느끼는 검공은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어찌 인간의 몸속에 저렇게 거대한 힘을 품을 수 있는 것인지도 놀라웠고, 조금의 힘도 낭비하지 않고 완벽하게 육체를 통제하는 능력도 경악스러웠다.
하지만 놀라기는 검공도 마찬가지였으니….
‘열일곱이라니, 허허. 그 누가 저 나이에 이런 성취를 이룰 수 있단 말인가?’
평소 귀여워하던 손자 놈이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듣도 보도 못한 기사단에 입단하겠다고 했을 때, 검공은 웃으며 허락했다.
고작 엑스퍼트에 오르고는 검술에 흥미가 떨어졌다고 농땡이를 치던 녀석이 뭔가 의욕을 보인다는 게 기꺼웠기 때문이다.
그가 봤을 때는 어차피 고만고만한 기사단들이었으니, 때가 되면 다시 불러들여 제대로 된 가르침을 내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손자 놈의 성취가 심상치 않았다.
불과 반년 만에 두 단계를 건너뛰더니 일 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에는 마스터라는 말도 안 되는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힘을 키운 것은 아닌지.
혹시나 해선 안 될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어리숙한 손자 놈을 속이는 삿된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검공 나름대로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라울과 퍼스트 기사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정말로 신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보일 수 없는 각종 이적과 행보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늘 라울을 불러들인 것은 그 나름대로는 마지막 검증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그리고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혼탁한 기운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그리고 저렇게 순수한 영혼의 빛이라니….’
영력을 갈고닦은 탓이기도 했지만, 검공이 느끼기에 라울의 기운은 순수함 그 자체였다.
‘감히 나를 앞에 두고도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괘씸하긴 하지만….’
그만큼 생각이 깊은 녀석이라는 뜻이기도 했으니.
“시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지. 자, 이제 말해 보거라. 네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템플턴 공작가를 정쟁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 것이냐!?”
살기까지 어린 검공의 호통에 라울이 침을 꿀꺽 집어삼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