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69
제269화
챠라락!
A등급 타운트리를 점거하고 있던 초패왕 길드의 길드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 들었다.
하지만 장동은 차마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저 정도 숫자의 무기를 움직인다고? 설마…?’
게다가 느껴지는 분위기나 기운도 심상치 않았다.
저벅, 저벅.
가면 사내가 다가오며 허공에서 창 한 자루를 손에 꺼내 쥐는 순간, 장동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배, 배, 배도현…?!!”
모를 수가 없었다.
저건 배도현을 위해 만들어진 커스텀 창이었으니까.
이미 여러 퀘스트와 시나리오를 거치며 배도현의 영상은 널리 퍼져 있었다.
그가 주력으로 삼는 것은 NPC 못지않은 창술과 검술.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숫자가 늘어나는 염동력 무기술이었으니까.
그런 전투 스타일과 소속을 보고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이 있었다.
-배도현은 라울 백작의 제자다. 가끔 활동을 멈추는 것은 그의 지도를 받기 위한 것일 것.
그리고 지난 내전에서 초반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루벤 왕국 내전이 끝난 뒤 나타났을 때.
그가 부리는 무기의 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났다는 걸 보면 틀림없었다.
꿀꺽.
장동이 침을 삼키며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등 뒤에 백 명 가까운 길드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 이길 수 있을까? 만약 배도현을 꺾을 수만 있다면….’
엄청난 스타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커넥트 서비스 이후 2년 3개월.
그 긴 시간 동안 배도현은 단 한 번도 랭킹 1위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
그뿐일까.
공식적인 전투에서 그는 단 한 번도 다른 이에게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개인전이든 다수를 상대한 것이든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플레이어들을 상대하지 않았지.’
루벤 왕국 내전이 끝나고 배도현이 재차 활동을 개시한 시기.
이미 플레이어들은 퍼플 협회의 맹신자가 되어 있었다.
반대 세력들은 혹여나 퍼플 협회와 반대 퀘스트를 받지 않도록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전 후반기 배도현의 활약은 온통 NPC 세력을 대상으로 한 것들뿐이었다.
‘그래,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지. 모든 게임의 법칙이 그렇듯 선두권의 격차는 많이 줄어들게 마련이야.’
비록 그가 두 자릿수 랭커는 아니지만(장동의 랭킹은 538위),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최소 만 등 이내의 상위권 플레이어였다.
레벨 차이도 크지 않으니 어쩌면 정말로.
그렇게 머릿속으로 행복회로를 돌려 보았지만, 몸은 정직했다.
배도현이 눈앞까지 다가오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쳐 길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장동이 외친 ‘배도현’의 파급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일부 길드원들은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있었다.
“훗. 싱겁기는.”
지나가며 중얼거리는 배도현의 혼잣말이 장동의 귀를 찔렀지만, 그럼에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홍해가 갈라지듯 길드원들이 비켜선 길을 따라가는 배도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동은 문뜩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길마의 명령!’
-절대로 정체불명의 랭커가 퀘스트를 받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어라.
그걸 완수하지 못하면 주어질 불이익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제길. 어쩔 수 없나?’
여기서 덤볐다 죽더라도 부활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명령을 어기면 현실 세계에서 문제가 생길 터였다.
초패왕 길드의 길드 마스터.
그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빨을 꽉 깨문 장동이 공격 명령을 외치려는 순간.
「배도현이 나타났다고?」
길드 통신창이 활성화되며 길마가 입을 열었다.
장동이 배도현과 대치하는 사이 길드원이 보고한 모양이었다.
「계획 변경이다. 그냥 퀘스트를 받도록 내버려 둬.」
「네? 그냥 놔두란 말입니까?」
「그래.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배도현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놈이라면 혼자서도 A급 퀘스트를 완료할지도 모르잖아? 실패하면 그만이고, 만약 성공한다면…!」
「아, 수호상!」
「그래! 배도현이 찾아온 수호상을 빼앗아 우리가 개척지를 차지한다. 그러니까 당장 하던 일 멈추고 전원 A-07 개척지로 집합해! 놈이 돌아오기 전에 함정을 파고 기다린다.」
「역시 길마님! 우리 초패왕 길드가 동쪽 금역의 패권을 차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군요!」
길드 통신창에서 길마를 칭송하는 목소리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장동 또한 남들에 뒤질세라 ‘하늘이 내려주신 천재적인 전략’이라 칭송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이제 길을 열어줘야… 할 필요는 없겠네.’
명령이 없었음에도 이미 퀘스트 조각상까지의 길은 10차선 고속도로처럼 훤하게 뚫려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배도현은 유유히 초패왕 길드원 사이를 지나 퀘스트를 받고는 타운트리를 떠나갔다.
“흥. 운 좋은 줄 알아라. 길마의 명령이 없었다면, 넌 이 자리에서 죽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배도현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진 후였다.
괜히 한마디 던진 장동은 혹시나 배도현이 되돌아올까 봐 잽싸게 타운트리 안쪽으로 몸을 피했다.
* * *
「흥! 겁쟁이들 같으니.」
라벨이 라울의 어깨 위에서 타운트리 쪽을 바라보며 혀를 내밀었다.
이내 고개를 돌린 그녀가 물었다.
「속셈이 너무 뻔한데, 어쩔 생각이야?」
「글쎄. 놈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얌전히 개척지를 넘겨준다면야 굳이 힘 뺄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라울이 주먹을 움켜쥐고 허공을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퍼버벙!
박쥐처럼 생긴 바람 속성 정령 몬스터가 산산조각 터져나갔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가 무엇인지 알려줘야겠지.」
납작 엎드려 숨어다니는 바퀴벌레까지 찾아가며 잡을 필요는 없겠지만.
‘눈앞에서 깔짝거리면 밟아주는 수밖에.’
그렇게 걸어가는 배도현의 주위에서 끊임없이 뭔가가 터져나갔다.
퍼버버벙! 콰광! 펑!
삼십여 자루의 비수가 정신없이 날아다니며 달려드는 정령형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확실히 귀찮긴 하네.”
동쪽 금역 원소 정글.
그곳의 개척 퀘스트 난이도가 악랄하다고 소문난 이유.
그건 바로 퀘스트를 받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정령형 몬스터들의 습격 때문이었다.
최하급(F)부터 상급(B)까지 뒤섞여 벌어지는 습격은 수호상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그 순간까지 계속된다.
원소 정글 자체의 자연재해에 몬스터 러쉬까지 합해지면,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는 긴장의 연속이니까.
게다가 수호상을 찾는 퀘스트에는 시간제한이 있었다.
퀘스트 등급에 따라 주어지는 시간이 다르긴 하지만, 제한 시간이 넘어가면 퀘스트는 리셋되고 타운트리는 다른 장소로 이동해버린다.
‘그러니 퀘스트만 받아놓고 타운트리를 거점으로 쓰는 건 안 된단 말이지.’
전생의 배도현도 그 때문에 상당히 고생했다.
그때부터 이미 대형 길드와 대립 중이었기에 보급 자체도 어려웠고, 퀘스트 자체 난이도에 길드의 훼방까지 들어왔으니.
하지만 지금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계속되는 정령 몬스터 러쉬에 혼이 빠지겠지만, 배도현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삼십 개의 비수가 알아서 정령형 몬스터들을 썰어버리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떨거지들이 떨어져 나갔다는 점일까?’
일정 범위에서 알짱거리던 감시인들이 몬스터 러쉬 이후엔 거리를 훌쩍 벌렸다.
덕분에 상황에 따라선 마음껏 힘을 드러내도 문제없을 터.
남은 건 수호상을 찾아오는 것뿐.
배도현이 거침없이 원소 정글을 걸어 나갔다.
* * *
“가증스런 인간 놈! 뒈져라!”
슈슈슉! 푸슉!
뾰족한 꼬챙이 같은 레이피어가 배도현의 전신을 노리며 찔러 들어온다.
레이피어의 끝에 묻어 있는 검은 색 기운은 분명 ‘오러’였다.
‘하긴. A급 던전의 가디언이니까.’
플레이어 배도현으로서 맞상대했다면 아무래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고, 거칠 것도 없는 상황.
본래의 힘을 개방한 배도현은 던전 가디언을 압도하고 있었다.
채재재쟁! 콰광!
굳이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오러가 맺힌 무기들이 레이피어를 알아서 막아냈다.
이 상황에서도 정령형 몬스터들은 끊임없이 배도현을 노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보다 더 많은 숫자의 무기가 공간을 장악하고 놈들을 학살했으니.
“감히 이 성스러운 땅에 인간 놈이 발을 들이다니!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저주받을 것이다, 이놈!”
배도현을 향해 연신 저주를 내뱉으며 달려드는 검은 피부의 사내.
그 귀가 인간과 달리 삐죽 튀어나온 것을 보면, 판타지 좀 읽어봤다 하는 이들은 다 눈치챌 것이다.
다크 엘프.
원소 정글 던전의 가디언은 바로 다크 엘프 마스터였던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는 몬스터지.’
말을 내뱉고 외형이 인간과 비슷하다 해서 말이 통하리라 생각하는 건 오산이었다.
놈이 내뱉는 말은 일방통행이었고, 배도현이 뭐라고 말해도 전혀 반응이 없다.
커넥트에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들은 대부분 이랬다.
마기에 감염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주박에 걸려 있는 건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플레이어와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정해진 목표-던전, 게이트의 수호-만을 위해 움직이는 기계나 다름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결계를 지키기 위해 긴 시간을 봉인에 묶여 있던 수호자보다 더 못한 처지.
“무슨 연유로 던전에 묶였는지는 모르지만, 동정은 하지 않겠다.”
배도현은 자신의 주무기인 장검을 꺼내 들었다.
“편안하게 해주마.”
배도현이 검에서 오러를 끌어올렸고, 무기의 군단에 매여 있는 다크 엘프 가디언을 향해 천천히 검날을 움직였다.
샤샤샤샥.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가 날렵하게 공간을 가르며 레이피어를 스치듯 지나 다크 엘프의 본체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대결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전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목이 잘리고도 움직일 수 있는 몬스터는 몇 없고, 다크 엘프는 그에 해당하지 않았으니.
뭐가 그리 분한지, 머리가 잘리고도 눈을 부릅뜨고 있는 다크 엘프의 눈꺼풀을 염동력으로 닫아준 배도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살짝 무릎을 굽힌 그의 눈앞에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묘목 하나가 애처로이 서 있었다.
‘세계수의 가지. 원소 정글의 수호상은 이거였지.’
조각이라고 하기엔 이상했지만, 어쨌든 퀘스트는 이 묘목을 대상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뿌리내릴 곳으로 데려다줄게.”
배도현이 조심스레 흙을 걷어내 묘목을 품속에 챙겨 넣었다.
* * *
“오, 옵니다!”
“다들 위치로!”
A-07 개척지 내부가 어수선해졌다.
무려 100m 높이의 나무가 서 있는 만큼 공간은 굉장히 넓었다.
초패왕 길드 마스터 리우밍하오는 거대한 언월도를 들고 길드원들을 배치했다.
그사이 소집된 길드원 숫자만 해도 500명.
산하 길드, 동맹 길드까지 총동원한 결과, 이곳에는 2천 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실제로 더 동원하려면 만 단위도 가능했지만, 어차피 일정 수준 이하의 플레이어는 짐이 될 뿐이었다.
적어도 지금 모인 2천 명은 2차 전직(50LV)을 마친 이들.
검사라면 마나 블레이드를, 마법사라면 최소 4서클 이상 마법을, 초능력자라면 중급 이상의 초능력을 쓸 수 있는 정예들이었다.
게다가 길마인 리우밍하오는 그 자신이 82위의 랭커였고, 2천의 플레이어 가운데 1천 등 안에 드는 랭커의 수가 50명 가까웠다.
“순순히 넘겨주겠습니까?”
“그럴 리가. 1위씩이나 되는 녀석이 그리 쉽게 포기하겠어? 섣불리 덤벼들지야 못하겠지만, 뭔가 협상을 할 생각이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 남의 길드가 점거하고 있는 퀘스트를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을 터였다.
배도현도 아마 자신들이 쉽게 이곳을 넘겨줄 거라고 생각하진 않을 터.
분명 뭔가 조건을 걸고 협상을 하려 할 것이다.
“그럼 어쩌실 생각입니까? 놈의 제안을 받아들이실 겁니까?”
“글쎄. 놈 하는 것 봐서 정하면 되겠지.”
수용 가능한 제안을 해온다면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별 피해 없이 A등급 개척지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만약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건다면.
‘빼앗으면 그만이고.’
이정도 인원과 랭커들이 모여 있었다.
아무리 랭킹 1위가 강하다고 해도, 승패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1 대 100도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1 대 2천은 솔직히 말도 안 되고. 욕심도 적당히 부리는 게 좋을 거다, 배도현.’
리우밍하오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애병을 쓰다듬었다.
수호상을 빼앗지 못한다고 해도 큰 손해는 아니었다.
그럴 경우 그냥 지금까지처럼 외곽의 개척 퀘스트를 리셋하며 천천히 거점을 장악해 나가면 그만이었으니.
그 와중에 배도현을 처리할 수 있다면 길드의 명성도 올릴 수 있으니 전혀 나쁠 게 없었다.
‘자, 어서 오거라. 크크크.’
원소 정글의 패자가 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리우밍하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건드리려는 게 어떤 괴물인지도 모른 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