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76
제276화
콰직.
커다란 배틀액스가 제국 병사의 몸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이, 이런 괴물!”
“기사님들은 어디에?”
“다가가지 말고 포위해!”
허술해 보이는 뼈 성벽과 대조적으로, 내부에는 상당한 규모의 요새가 축조되어 있었다.
병사들의 막사가 줄지어 설치되어 있었고, 중심부에는 견고해 보이는 석조 건물도 여러 채 눈에 들어왔다.
라울의 난입은 대번에 발각되었다.
성벽 위의 병사들을 쓸어버리긴 했지만, 애초에 지금은 한낮.
병사들이 요새 내부에서 활동 중인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라울의 목표는 사로잡힌 오크들을 조용히 탈출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콰과광! 쿠광!
“마, 막아!”
“저걸 어떻게 막으라고?”
사람 몸통만 한 마나 블레이드가 솟구친 두 개의 배틀액스가 사방으로 날아가며 걸리는 모든 것을 부수고 베어버렸다.
나무로 뼈대를 만든 막사는 종잇장처럼 무너졌고.
돌벽은 배틀액스와 충돌하는 순간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박살 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흩날렸다.
그리고 늑대 질풍의 등에 올라 있는 라울은 허리를 당당하게 펴고 천천히 요새의 중심부로 전진했다.
“우와아아!”
“쏴라!”
긴 창을 든 병사들이 달려들고, 궁수들이 화살을 날려봤지만.
써컹, 꽈직.
창은 라울의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잘려 나갔다.
그리고 궁수들의 화살은 짜기라도 한 것처럼 모조리 라울의 몸을 스치듯 비껴갔으니.
애초에 라울의 공격 범위는 3m 길이의 창보다 더 길고 넓었다.
왜냐하면 라울은 배틀액스의 자루를 잡고 휘두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루 끝에 달린 고리에는 질긴 몬스터 가죽끈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건 라울의 브레이슬릿과 이어져 있었다.
즉, 라울은 몬스터 가죽끈을 잡고 배틀액스를 사방으로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의 병기 활용이 가능한 것은 라울의 염동력 덕분이었으니.
그걸 모르는 이들이 봤을 때는 거의 신기에 가까운 도끼술일 것이다.
어쨌든 일반 병사들은 물론이고 하급 지휘관들조차 라울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라울은 배틀액스의 마나 블레이드가 닿는 반경 10m 이내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며 요새 중심부에 도달했다.
“이놈! 하찮은 몬스터 따위가 여기가 어디라고!”
그때 5층 높이의 석조 건물 옥상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치며 뛰어내렸다.
‘흠.’
라울은 두 개의 배틀액스를 회수하며 떨어져 내리는 이가 휘두르는 검을 맞받아쳤다.
쐐애애액, 콰광!
충돌로 인해 발생한 강렬한 마나의 파동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뛰어내린 검은 갑옷의 기사는 충돌의 반탄력을 이용해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건물 3층 난간에 내려섰다.
멋들어진 동작이었지만, 결과는 명백했다.
검은 기사가 힘에서 밀려 뒤로 튕겨 나갔다는 것.
그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흥! 제법 힘이 쓸 만하구나. 아주 좋은 실험체가 되겠어. 모두 쳐라!”
고작 오크 따위와 길게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었던 것인지, 그가 바로 명령을 내렸다.
“죽어라, 이 괴물!”
“오크 따위가 건방지다!”
그러자 어느새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제국의 기사들이 각자 마나 블레이드를 끌어 올리며 라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라울의 표정에는 전혀 긴장감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쩝, 아쉽네. 초인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요새의 책임자로 보이는 제국 기사의 경지는 대략 엑스퍼트 상급에서 최상급.
그리고 달려드는 삼십여 명의 기사들도 대략 중급 수준.
저들이 황제의 각인과 파워아머까지 발동한다면, 느껴지는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긴 하겠지만….
라울에게 위협이 되기엔 너무나도 부족했다.
초인이 초인이라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푸화핫!
라울의 배틀액스에서 찬란한 오러 블레이드가 터져 나왔다.
“자, 잠깐! 어떻게 오크가…!”
“대전사급이라고…?”
제국 기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미 검을 회수하기에는 늦었으니.
콰과광!
* * *
타다다다닥.
누군가가 황급히 복도를 내달려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큰일 났습니다! 베르티앙 요새가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창백한 안색의 전령이 소리치자, 회의실 안에 있던 제국 장교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무슨 소리야? 요새가 함락되다니?”
“오크 놈들이 기습이라도 했다는 건가? 하지만 주변에 요새를 넘을 만한 부족은 없는 걸로 아는데.”
“농담도 아니고. 병사가 2천에 기사도 오십이나 파견된 전진 요새가 함락될 일이 뭐가 있다고?”
장교들은 하나같이 전령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병사는 2천밖에 없지만, 몬스터로 만든 마병들도 상당히 많았다.
연구소가 있었던 만큼 마법 전력도 어느 정도는 갖춰져 있었으니.
요새를 함락하려면 적어도 3만 이상의 오크 군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려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정도 오크 군단의 움직임을 놓칠 만큼 제국의 첩보망이 허술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 다른 건 둘째 치고. 주변에 다른 전진 요새들도 있잖아? 구원 요청도 없었단 말인가?”
장교의 물음에 전령이 땀을 찔찔 흘리며 보고서를 읽었다.
“…차마 지원 요청을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요새를 잃었다고….”
쾅.
“그러니까! 도대체 요새 사령관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 사령관 케드마인 경은 지금 어딨나? 뭐라고 변명하는지 얘기라도 들어보고 싶군.”
전령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대답했다.
“저, 사령관님은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
일순 회의실이 침묵에 휩싸였다.
너무 황당한 소식에 다들 두서없이 말을 내뱉었지만, 설마 사령관까지 전사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케드마인 경이 당했다고…?’
최상급 엑스퍼트의 기사였고, 황제 폐하의 가호를 활성화한다면 초인의 힘도 넘볼 수 있는 강자였다.
그런 이가 전사하고 요새가 순식간에 함락되었다는 건,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란 뜻이었다.
“전령. 떨지 말고 처음부터 하나씩 차분하게 보고해봐. 도대체 베르티앙 요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회의실 최상석.
침묵으로 일관하던 붉은 머리칼의 기사가 물었다.
그의 정체는 바로 시디우스트 푸스카로.
제국 최강이라는 마장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리고 현재 금역 몬스터 숲의 정벌을 책임진 원정군 총사령관이기도 했고.
전령이 침을 꼴깍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생존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놈이 나타난 것은….”
전령의 자세한 보고가 이어졌고, 제국 장교들의 표정엔 놀라움이 피어올랐다.
“한 놈? 고작 한 놈에게 요새가 털렸다고?”
“오크족에 ‘대전사’라는 존재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렇게 바로 치고 들어올 줄은 생각지 못했군. 오크들이 호전적이라더니, 전해지던 얘기보다 더하구나.”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확실한 건 오크 대전사의 실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
마스터 이상의 실력자라는 건 당연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단신으로 요새 하나를 박살 낼 줄이야.
‘흠.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
자리에 참석하고 있던 몇몇 제국 마스터들이 머리를 굴려보다 혀를 찼다.
실력은 둘째 치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단신으로 적 요새에 뛰어드는 건, 어지간한 담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대전사씩이나 되는 놈이 날뛴 거지? 그곳에 뭐가 있었나?”
총사령관 시디우스트가 묻자 부관이 황급히 대답했다.
“오크들을 마병으로 개조하는 실험장이 있던 곳입니다. 아마도 놈의 지인이 잡혀 온 것이 아닐까 합니다.”
“쯧. 재수가 없었군.”
하지만 그런 것 치고 총사령관의 표정엔 별다른 감정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요새 하나가 초토화된 건 의외긴 했지만, 어차피 그런 소규모 전진 요새가 열 개가 넘었다.
그리고 진짜 주력들은 제2선.
지금 그가 자리 잡은 성처럼 고대 성을 복원한 대형 요새나 성에 대기 중이었으니까.
‘아직은 병력을 움직일 때가 아니지.’
고작 작은 요새 하나 잃었다고 욱해서 병력을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첩보에 의하면 오크들의 규모가 상당했고, 무엇보다.
‘남쪽에 왕국의 머저리들이 들어와 있단 말이지.’
그러니 지금은 기다릴 때였다.
어차피 머리가 빈 왕국 놈들의 움직임이야 뻔했다.
기름진 땅이 있고,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게 고작 오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욕심 많은 돼지 새끼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 왕국 놈들과 오크들의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놈들이 서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을 때.
서로의 전력을 갉아먹고 지쳐 있을 바로 그때.
단번에 놈들을 쓸어버리고 왕국까지의 길을 트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디우스트 총사령관의 생각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바로 다음에 뛰어들어 온 전령에 의해서.
“그, 급보입니다! 레즈나이 요새가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회의실에 있던 제국 장교들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시디우스트 사령관이 앉아 있던 의자 팔걸이가 가루가 되어 바닥에 흘러내렸다.
* * *
“…오늘은 이쯤 할까?”
휘이잉.
라울이 배틀액스를 휘둘러 묻어 있던 핏물을 털어냈다.
허물어진 사령부 건물의 잔해 위.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사체들이 겹겹이 쌓인 그 위에 질풍과 라울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폐허나 다름없이 변해버린 요새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을 차지하고 있던 제국 병사들은 도주했거나 차디찬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을 뿐이었으니.
“우오오오!”
허물어진 요새 성벽 너머로 일단의 오크들이 함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라울이 직접 구해준 오크들이었다.
감히 전투에 끼어들지는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던 이들이, 존경과 감탄의 함성을 내지른 것이다.
‘…이걸로 세 개. 마음 같아선 하나 정도 더 인사를 보내고 싶지만….’
해가 저물고 있었고, 지금쯤이면 소식이 전해졌을 테니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 남았으니까.
‘하나라면 모를까. 요새가 세 개나 털렸는데,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을 수는 없을 테지.’
굳이 제국군이 탈출하는 걸 막지 않은 건 이유가 있었다.
그래야 겁을 집어먹은 병사들이 소문을 빠르게 퍼트릴 테니.
그리고 그건 병사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고작 몬스터라 생각했던 오크에게 요새 세 개가 단번에 함락되었으니까.
그것도 고작 한 명에 의해서.
그러니 제국 측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지휘부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병사들에게 인식시켜야 할 테니까. 대규모 병력을 움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본보기 삼아 오크 부족 하나 정도는 처리하려 들겠지.’
병사들이면 몰라도, 지휘부가 라울을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제국에 있는 초인이 몇이며, 어쩌면 마장까지 파견되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고작 오크 대전사 하나가 겁나서 몸을 사릴 이유는 없단 얘기였다.
‘자, 어떻게 할 거냐? 그냥 넘기기엔 자존심 상할 텐데, 어서 움직이는 게 어때?’
라울은 환호하는 오크들에 둘러싸인 채 제국의 본진이 있을 어딘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 * *
“대족장, 취익. 블러디 팽 부족에서 대족장 회의를 제안해 왔소, 취익.”
블랙스톤 부족의 성 칼라그의 회의실.
대족장인 마우하그르와 휘하 부족의 족장들, 대전사들까지 수십에 달하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가, 취익. 안 그래도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군, 취익.”
전령이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블랙스톤 부족 연합도 자체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북쪽 숲의 인간들.
‘크라넨 제국’이라는 곳 때문이었다.
결계가 열린 지 한 달.
가급적 숲에는 신경을 쓰지 않길 바랐건만,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숲의 경계를 넘어온 제국군이 북쪽에 자리 잡은 소규모 부족 하나를 학살한 것이 시작이었다.
북쪽 소부족들이 뭉쳐서 제국의 인간들과 전투를 시작했고, 점차 전투의 규모가 커져 갔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여러 곳의 전장에서 오크들은 대부분 패배의 고배를 마셨으니….
‘데켄드 부족’을 중심으로 뭉친 소규모 연합을 제외한 북부의 대부분 연합이 터전을 잃고 밀려났다.
이대로 패배가 이어진다면.
그래서 만약 저 제국의 인간 놈들이 평원에 거점을 마련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지.’
아무리 소규모 부족들의 일이라지만, 이대로 보고만 둘 수는 없게 된 것이다.
블랙스톤 부족이 아무리 온건파에 속한다지만, 침략을 당하면서까지 전투를 피할 이들은 아니었다.
“대족장 회의에 참석하겠다, 취익. 병사들을 준비시켜라, 취익.”
그리고 다섯 개의 대부족을 대표하는 대족장 회의는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렸다.
저 북쪽의 인간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부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몬스터 평원에 울려 퍼지며 대규모의 오크 군단이 북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