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75
제275화
콰지지직.
“쿠, 쿨럭.”
오크 전사 하나가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팔을 내려다보며 녹색 피를 토했다.
“이놈들, 취익! 우리 동족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취익!”
뒤로 물러나는 오크 전사 무리들이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인간들을 향해 소리쳤다.
오크 전사의 가슴을 팔로 꿰뚫은 것은 바로 오크.
하지만 그 오크의 전신에는 검은 문신이 가득했고,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또한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근육이 부풀어 올라 상체가 터질 것 같아 보였으니.
오크 마병.
제국이 포획한 오크와 오크 전사를 실험하여 만들어낸 생체 병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더러운 인간 놈들, 취익! 용서하지 않겠다, 취익.”
진형을 정비한 오크 전사들이 오크 마병과 제국인들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콰과과광!
그리고 오크 전사 무리는 절반 이상의 동족을 잃은 채 뿔뿔이 흩어져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마병이 폭발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근접전을 펼친 대가였다.
“최대한 생포하도록! 실험체가 아직 많이 모자라니까.”
“네, 대장님.”
“아, 그리고 숲의 경계는 넘지 말고. 아직까지 오크 놈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야.”
그렇게 북쪽 숲의 경계에선 오크 정찰대와 제국군의 국지적인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제국 쪽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적을 포획해 자신들의 병사로 부리는 제국의 수법은 오크들에게 굉장히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부족 단위 생활을 주로 하는 오크들은 정보를 공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으니.
제국은 숲의 경계를 중심으로 오크들을 포획하며 몸집 부풀리기에 한창이었다.
* * *
“저, 전사들이 돌아온다, 취익!”
목책 위에서 망을 보던 파수병이 외치자, 마을 전체가 술렁였다.
라울(나카두)이 머물게 된 데켄드 마을은 북쪽에 위치한 마을 가운데 상당히 큰 규모였다.
인구가 3천 가까이 되었고, 오크 전사의 숫자가 300이 넘었다.
일반적인 오크 부락의 규모가 300명 이하로 이뤄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숲을 정찰하고 오는 길인가?’
부산스런 움직임에 오두막을 나선 라울.
그도 다른 오크들을 따라 마을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 마을에 당분간 머물 생각이었으니, 족장과 안면을 터야 하지 않겠는가.
겸사겸사 북쪽 숲의 제국군 동태를 파악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고.
하지만 입구 쪽으로 다가갈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치료사, 취익! 치료사는 어딨는가, 취익.”
“맙소사, 취익. 돌아온 전사들이 반도 안 돼, 취익!”
위풍당당하게 출전했던 오크 전사들은 완전히 패잔병의 몰골로 복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취익, 그게 정말인가? 족장이 붙잡혔다고, 취익!”
장로 부루바가 절망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면목이 없다, 취익. 내가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 취익.”
라울이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다른 오크들보다 훨씬 큰 체구를 보유한 전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마도 장로가 말했던 마을의 전사장이 분명해 보였다.
‘치온고라고 했던가?’
그는 온몸에 상처를 입어 녹색 피를 흘리고 있었고, 동반자나 다름없는 자이언트 울프도 피 칠갑을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얼핏 들어보니 당해도 지독하게 당한 모양이었다.
그때 치온고와 라울의 눈이 마주쳤다.
치온고의 눈동자가 커지더니 이내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다, 당신은 누군가, 취익? 어째서 대전사가 이런 변두리 마을에 찾아온 것이지, 취익.”
전사장이라더니 라울의 강함을 단번에 눈치챈 모양이었다.
“내 이름은 나카두, 취익. 바람을 따르는 전사다, 취익. 북쪽 부족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취익. 지나가는 길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취익.”
바람을 따르는 전사라는 말을 들은 치온고의 표정에서 경계심이 사라져 버렸다.
오크들 사이에서 바람전사(준말)는 굉장히 명예로운 전사들이었다.
바람전사를 칭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 했다.
그리고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마을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를 단련하며 일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수행하는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루바 장로를 통해 트윈헤드 오우거에게서 마을을 구했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치온고는 위대한 전사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정말 감사하다, 취익. 마을의 전사들을 대표해서,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 취익. 상황이 좋았다면, 술과 무기를 나누며 우애를 다지고 싶다만, 취익. 아쉽구나, 취익.”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치온고와 장로를 비롯한 마을의 중요 인사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라울이 그 자리에 참석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북쪽 숲의 적들이 마을을 공격하지는 않겠는가, 취익.”
“적들의 규모는 어떻게 되는가, 취익.”
“부족 연합에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떤가, 취익.”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고, 치온고와 전사들이 자신들이 획득한 정보를 공개했다.
하지만 지켜보는 라울의 입장에선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으니.
‘피해에 비해 얻어낸 정보는 거의 없군.’
제국군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의 대장은 누군지, 위치와 병력 구성 등등.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그저 마병으로 변한 동족들과 검은 망토의 인간들, 그리고 폭발 정도가 다였으니까.
‘어차피 크게 기대한 건 아니긴 했지만, 아쉽네.’
나름 규모가 큰 마을에 찾아왔음에도 이 정도라면, 다른 곳의 상황은 보지 않아도 훤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인간 세상도 그렇지만, 오크 부족 또한 약육강식의 법칙은 다를 바가 없었다.
강하고 세가 큰 부족일수록 기름지고 사냥감이 많은 몬스터 평원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강한 부족들 순으로 자리를 잡다 보니, 약한 부족들은 이런 숲 경계까지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 덕분에 큰 문제 없이 부족에 섞여들기도 했고, 앞으로 활동하기도 편하니까.’
어차피 전투가 벌어진다면, 이들은 있으나 없으나 그만이었다.
라울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소식을 퍼트릴 수 있는 목격자와 간단한 조력자였으니.
어쨌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회의긴 했지만, 흥미롭긴 했다.
“사로잡힌 동족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 취익.”
“이번엔 다섯 부족밖에 모이지 않아서 진 것이다, 취익. 부족 열 곳에서 전사를 모으는 것은 어떻겠는가, 취익.”
“이상한 자폭 공격만 주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취익. 지금 당장 출진하자, 취익!”
좀 전에 전투에서 대판 깨지고 왔음에도 전투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야 겨우 치료를 마친 전사들조차도 싸우러 가겠다고 아우성이었으니.
‘과연 전투 종족이라 불릴 만하구나.’
하지만 확실히 전략적인 면에서 사고력은 떨어져 보이긴 했다.
라울은 딱히 입을 열지 않고 회의를 지켜보기만 했고, 이런저런 호통 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마침내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일단 족장 대리는 부루바 장로가 맡기로 했다.
부족에서 가장 강한 오크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연륜이 있고 용감했기 때문이다.
만약 족장이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면, 보름 뒤 새로운 족장을 선출하기로 했고, 아마도 차기 족장은 마을 전사장인 치온고의 몫으로 보였다.
그리고 북쪽 숲의 인간들에 대항하기 위해 더 많은 부족들과 연계를 맺기로 했다.
그와 함께 병력을 모집하여 사로잡힌 동족들을 구하기로 결의했는데….
‘너무 오래 걸려.’
이들은 마법이 아닌 인편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다.
원거리 통신 수단을 가진 건 일정 규모 이상의 부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회의안대로 진행된다면, 최소 열흘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럴 수는 없지.’
그렇게 느긋하게 상황이 흘러가는 걸 지켜보려고 굳이 오크의 모습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라울이 마침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잠시 할 말이 있다, 취익.”
회의가 끝나고 흩어지려던 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무슨 일인가, 대전사 나카두여, 취익.”
전사장을 통해 라울의 실력이 대전사급임을 확인한 부루바 장로였기에, 호칭부터 달라졌다.
“형제들의 의견은 잘 들었다, 취익. 하지만 그래서는 사로잡힌 동족들을 구하기에 너무 늦다, 취익. 그러니 내가 직접 가서 그들을 구해오겠다, 취익.”
“오오, 정말인가, 취익.”
“그렇다면, 나도 데려가 다오, 취익.”
“나도 가겠다, 취익!”
놀랍게도 라울의 말에 의구심을 가진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서로 자기를 데려가라며 소리를 치는 통에 회의장이 시끌벅적했으니, 대전사의 존재감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모두를 끌고 갈 수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라울에게는 그들이 잡혀간 대략적인 위치와, 포로를 구출했을 때 그들을 데려올 길잡이만 있으면 충분했다.
“치온고, 같이 가겠는가? 취익.”
“영광이다, 대전사 나카두여. 취익.”
부루바 장로는 마을에 남아 다른 부족과 연합을 구성하고 전사들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단출하게 두 명의 울프 라이더만이 북쪽 숲으로 향하게 되었다.
* * *
타다닥, 타닥.
확실히 늑대 등에 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는 등에서 버티려면, 엄청난 균형 감각과 허벅지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승차감은 엉망이었지만, 속도감만큼은 그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을에서 벗어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숲의 경계에 도착한 라울과 치온고.
“이쪽이다, 취익. 여기부터는 놈들의 정찰병들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취익.”
이제는 늑대 등에서 내린 치온고가 직접 앞장서며 길을 열었다.
그렇게 조심스레 숲을 헤쳐나가는 2인 2수.
그런데 한참을 걸어도 적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치온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취익. 분명히 놈들의 아지트가 이쪽인데, 취익. 왜 아무도 보이질 않는 것이지? 취익.”
“적을 만나지 않고 목적지에 갈 수 있다면, 다행 아닌가, 취익.”
라울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치온고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길 안내를 계속했다.
물론 실상은 치온고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지만.
그들이 걸어가는 방향 한참 앞쪽.
피슝, 퍼벅!
서컹!
“괴, 괴물이다!”
“어, 어떻게 무기가 저절로… 끄르륵.”
수십 자루의 비도가 순식간에 십여 명의 제국 정찰병을 도륙 내버렸다.
기사도 하나 포함되어 있었지만, 오러가 깃든 비도는 기사의 마나 블레이드를 피해 그의 목줄을 꿰뚫었다.
쓰러진 사체는 비도 서넛이 꿰어서 수풀 아래로 옮겨버리니.
웬만큼 피 냄새에 민감하거나 관찰력이 좋은 이가 아니라면, 이렇게 무성한 숲에서 저들을 쉽게 찾아내지는 못할 터였다.
그렇게 라울이 조종하는 무기들이 숲 곳곳에 포진한 정찰대를 처리하고 있었으니, 그들과 마주칠 일이 없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잠시 후.
라울과 치온고가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까지 도착했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라, 취익. 적들을 처리하고 나면, 이 녀석을 보내겠다, 취익.”
치온고는 자신도 함께 가고 싶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라울에게는 짐 덩어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치온고를 떼어버린 라울은 한동안 숲을 걸어가다가 허공을 박차고 나무 꼭대기로 솟구쳐 올랐다.
“흠. 대충 저곳인가?”
공중 정찰 사진이 있긴 했지만, 무성한 수림에서 목적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무 위에 올라 바라보니 지침으로 설정한 큰 나무와 언덕, 벼랑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 살짝 인사를 해 줘야겠지?”
라울이 매서운 눈빛을 발하며 나무 사이를 뛰어넘어 어딘가로 향했다.
* * *
“천인장님도 참 걱정이 많으시군. 고작 오크 따위가 뭐라고, 이렇게 경계를 세운단 말인가?”
“좀 조용히 말해, 병사들이 듣겠다. 그리고 상부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은 것 몰라? 장벽 작전이 실패해서 폐하의 심기가 불편하시다잖아. 이럴 때일수록 매사 조심해야지.”
“그거야 높은 분들 사정이고. 괜히 우리 같은 말단 장교까지 피곤해졌으니, 짜증 나서 그러지.”
뼈로 기둥을 세우고 흙을 채워서 세운 조잡한 성벽.
그 위에서 제국 군복을 입은 두 장교가 피곤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며칠 전 오크와의 전투가 벌어진 이후부터 경계가 삼엄해지면서, 근무 시간이 늘어났다.
그 때문인지 불만이 많은 것은 장교나 병사나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오크가 좀 세봤자, 결국 몬스터 아닌가? 머릿수가 좀 많다고 해도, 어차피 상대도 안 될 텐데.”
“너무 방심하지 말라고. 개중에 기사급 개체들도 상당수 있었으니까. 뭐, 그래 봤자 몬스터라는 말은 동감이지만.”
전투는 끝났고, 결국 오크 놈들은 붙잡혀 와서 실험 대상이 되었다.
평원에 자리 잡은 놈들이 많기는 해도 결국 실험체에 불과했으니.
겁낼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때 요새 앞 벌판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어? 저게 뭐지?”
“뭐긴. 울프 라이던지 뭔지, 크헉.”
그리고 두 장교의 이마에 비수가 박혀 들며 대화가 끊어졌다.
그건 보초를 서고 있던 수십 명의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시작해볼까?”
라울을 태운 검은 늑대 질풍이 단번에 성벽을 뛰어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