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77
제277화
“이제 떠나는 건가, 취익.”
“그간 신세 졌다, 취익. 형제들의 건승을 기원하지, 취익.”
조잡하긴 하지만 모래와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성벽 앞.
데켄드 부족의 새로운 족장 치온고와 장로 부루바가 누군가를 배웅하고 있었다.
다른 늑대보다 체고가 1.5배는 높은 검은 늑대 질풍.
그리고 그 위에 앉아서 인사를 나누는 이는 바로 오크 대전사 나카두였다.
나카두, 아니 라울이 그들과 함께한 지 어느덧 한 달.
부족의 규모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제국과의 전쟁이 시작되며 소규모 부족들이 뭉치기 시작했고, 그 중심은 당연히 라울이 활약하고 있는 데켄드 부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국과의 전투에서 유일하게 연승을 이어가고 있는 게 데켄드 부족이었다.
박살 난 부족의 유민이 합류하기도 했고, 생존에 위협을 느낀 부족이 통째로 투신해 오기도 했으니.
3천의 부족원 수가 만을 넘기고, 3만에 도달했으며, 지금에 와선 10만을 채웠다.
이제 나름 중견 부족이라 할 만한 규모였고, 북부 오크 부족들의 중심을 칭할 만했다.
그리고 한 달간 제국과의 전투에서 막대한 경험을 쌓은 부족장 치온고는 놀랍게도 대전사의 경지(마스터)에 올라섰다.
라울이 손수 지도하고 케어한 덕이기도 했지만, 원래 재능이 뛰어나기도 했다.
‘아직 부족한 면이 많긴 하지만, 부족을 이끌기엔 충분하겠지.’
부족이 명성을 떨치다 보니 라울 이외에 ‘바람을 따르는 전사’들이 상당수 합류했고, 다른 부족의 전사장 이상 인재들도 모여들었다.
덕분에 웬만한 제국 전력으로는 이제 데켄드 부족을 위협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 오크의 대족장 회의에서 제국에 대한 전쟁 선언이 이뤄졌고, 그 선봉이 며칠 후면 북부에 도착한다.
그러니 오크 나카두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형제여, 어디로 향할 생각인가, 취익.”
얼굴 가득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치온고가 물었다.
마지막까지 라울이 머물러 주기를 바랐던 그의 목소리는 어울리지 않게 촉촉함이 느껴졌다.
“어려운 시기에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 취익. 하지만 나는 꼭 가봐야 하는 곳이 있다, 취익.”
“그게 어디인가, 취익. 형제를 도울 이들을 붙여주겠다, 취익.”
하지만 라울은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고맙다만, 거절하겠다, 취익. 나는 더 북쪽으로 간다, 취익. 인간들이 말하는 ‘제국’이 뭔지, 우리 동족에게 어떤 위협이 될 것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 취익. 그러니 우리의 연은 여기까지다, 취익.”
라울의 말을 들은 치온고와 부루바 장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강대한 인간의 제국을 홀로 정찰하겠다는 건, 목숨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하지만 그들은 나카두를 막을 수 없었다.
바람을 따르는 전사들은 바로 그런 일에 목숨을 거는 ‘진짜’ 전사였기 때문이다.
“형제여, 부디 그대의 앞길을 조상신이 지켜주길 바란다, 취익. 그리고 그대가 베풀어 준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다, 취익.”
“그대의 명예로움이 잊혀지지 않도록, 부족원들에게 대대로 전하겠다, 취익.”
눈물까지 흘리며 바라보는 두 오크를 보며 라울이 찡해졌다.
‘한 달이나 같이 있어서 그런가, 그새 정들었나 보네.’
겉모습은 흉악하고 거칠었지만, 한편으론 순수하고 올곧은 종족이었다.
비록 조만간 적이 될지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라울은 마음속으로 그들이 무사하기를 기원했다.
‘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나면, 다시 볼 수 있기를….’
어차피 오크족과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천만이 넘는 그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는 일.
결국 어느 선에서는 싸움을 멈추고 공존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만 가겠다, 취익.”
그렇게 데켄드 마을의 전설로 기록될 나카두가 마을을 떠나갔다.
부우우우.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오크들의 뿔피리 소리가 한동안 평원에 이어졌다.
* * *
“오셨습니까, 마스터.”
헤어짐이 있으면 재회도 있는 법.
갈 때와는 달리 마법진으로 순식간에 복귀한 라울을 부하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차피 오크 행세를 하는 동안에도 길드 통신을 통해 지시를 내려왔기에 어색함은 없었다.
“현재 상황은?”
바로 상황실로 향하며 라울이 묻자 케인이 즉시 보고를 시작했다.
“남동부 숲 경계 지역에 대한 방어선은 확실하게 구축된 상태입니다. 다행히 플레이어들이 협조해 준 덕에 아직 평원은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몬스터 숲에서 퍼스트 길드와 퍼플 협회의 영향력은 확실히 절대적이었다.
몬스터의 수준이 보통이 아닌 금역 내부.
그 가운데 핵심적인 거점들을 공고하게 확보한 퍼스트 길드를 무시할 이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더 내부로 들어가지 않아도, 확보한 영역 내부에는 수많은 던전과 게이트 및 사냥터가 존재하고 있었다.
유력 협력 길드들도 이미 확보한 개척지의 개발이 한창인데 새로운 개척지를 욕심낼 필요도 없었고.
덕분에 방어선 형성은 순조롭게 이뤄졌고,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루벤 왕국의 병사 및 귀족가 사병들도 투입될 수 있었다.
“그리고 말씀하신 ‘해일’ 작전도 순조롭게 밑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퍼플 협회를 통해 개척 포인트에 대한 확인을 마쳤고, 애쉬튼 후작가 측의 병력들도 전선에 투입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후작가에서는 로렌스 님이 참전하실 모양입니다.”
“그래? 로렌스 형님이라면 믿을 만하지. 자세한 얘기는 안에서 하자고.”
어느새 회의실 앞에 도착한 일행.
회의실 내부에는 이미 많은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자, 그럼 작전명 ‘해일’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 보자고.”
서쪽 금역, 몬스터 숲과 평원의 패권을 좌우할 거대한 작전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 * *
한편, 다른 금역들의 상황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먼저 남쪽 악마의 해역은 해로를 완전히 상실했다.
세이렌의 ‘매혹의 노래’에 홀려 목숨을 잃는 이들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단순히 저주나 마법 공격이 아닌 특수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정신 공격이었기에, 막아내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다 사나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그 자리를 여성 플레이어들에게 넘겼지만, 또 다른 난관이 그들을 기다렸으니.
꽈드득, 콰직!
“안 돼!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란 말이야!”
“마법사들 뭐 해? 계속 선체 강화마법을 퍼부으라고! 구멍 뚫리면 다 죽는다는 거 몰라?”
세이렌의 공격을 버텨낸 이들을 맞이한 것은 ‘머맨’과 ‘머메이드’.
즉 인어들이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종족인 만큼, 배 밑에서 이어지는 공격을 막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호기롭게 수중전을 노려본 이들도 있었지만, 물속에서 그들을 상대하는 게 만만할 리가 없었다.
개개의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은 종족이었지만, 바다라는 환경 자체가 함정과 다르지 않았으니.
하이랭커들이 작정하고 배를 지키지 않으면, 배를 운항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인어 종족들 가운데에도 강자들이 있었으니, 머맨 대전사라도 나타나는 날엔 랭커들도 쓸려 나가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초반에 확보한 소규모 개척지(섬)는 고립되어 자급자족해야 했고, 포털 마법진이 설치된 곳 정도만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물론 그곳들도 섬 내부에 고립되어 있으니 사냥터도 부족하고, 수익이 날 수가 없어 포기하는 길드들이 많았다.
북쪽 얼음 산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음 산맥의 개척지는 외부가 아닌 지하에 있었다.
동굴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고대의 지하도시.
그것이 바로 얼음 산맥의 개척지였다.
라울이 첫 개척지를 확보한 이후 플레이어들은 환호했다.
“맙소사! 동굴 벽이 온통 광석이야!”
“곡괭이를 들자! 돈도 벌고 공적치도 쌓을 수 있다니 완전 개꿀임!”
금역 내의 고렙 몬스터와 싸우지 않아도, 채광만으로 레벨도 올리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애매한 레벨대의 플레이어들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길드들은 너도나도 지하 광산 도시 개척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개척지를 확보하고 채광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수수료만 받아먹어도 남는 장사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
“제, 제길! 도대체 어디서 기어들어 온 거야? 분명 성벽은 충분히 보강했건만!”
콰과광!
내부에 침입한 골렘들이 닥치는 대로 건물과 성벽을 부쉈고.
“드, 드워프들이다! 방패 들어!”
휘리릭, 퍼벅!
파앙!
드워프들이 투척하는 토마호크와 연신 쏘아대는 마력총, 포는 플레이어들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했다.
“크워어!”
그리고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땅에서 솟아나는 골렘들 때문에 진형을 갖추는 것도 쉽지 않았으니.
“안 돼! 여기에 얼마나 많이 투자했는데!”
길드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드워프 공병대에 개척지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동부 원소 정글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크, 큰일입니다. 우회했던 병력들이 기습 공격으로…!”
“개척 퀘스트를 받지 않았는데도 정령형 몬스터 러시가 발생했다고?”
“엘프 부대와 싸우기도 전에 원소 트랩이 발동하여 병력 절반이 소멸했습니다!”
원소 정글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초입 부분은 애교였다는 듯, 정령형 몬스터들은 끊임없이 리젠되며 진입하는 플레이어들을 갉아먹었다.
정찰 계열 랭커도 숲에서 엘프보다 뛰어날 순 없었다.
나무와 동화된 것처럼 모든 기척을 지우고 다니는 엘프 척후병들은 언제나 플레이어보다 한발 빨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파멸적이었으니.
활과 정령술이 장기인 엘프족의 전투술은 기습과 원거리 공격에 특화되어 있었다.
엘프들을 토벌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병력을 밀어 넣은 각국 길드 연합은 제대로 전투를 치르지도 못한 채 패퇴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엘프들이 굉장히 공격적이었다는 것.
2차 결계에서 후퇴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모, 목책이 저절로 움직인다!”
“타운 트리의 마법진이 멈췄어!”
기껏 확보한 개척지는 플레이어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마치 옛 주인을 기억한다는 듯, 목책은 사이가 벌어지며 길을 열었고, 그 사이로 정령형 몬스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수백 미터 밖에서 연달아 날아드는 화살 저격은 플레이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엘프 전사와 정령사들은 플레이어들을 ‘학살’했다.
인원수는 많지 않았지만, 한 명 한 명이 랭커 이상의 무위를 자랑했고.
선두에서 그들을 이끄는 하이엘프들은 모두가 마스터급 이상의 초인이었다.
아무리 머릿수가 많고 평균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 길드라 하더라도 엘프 초인들을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과는 끔찍했다.
생존자 제로.
개척지를 지키려던 길드원들은 그 누구도 살아서 탈출하지 못했다.
숲속에서 엘프 레인저들의 추격을 떨쳐낼 능력도 되지 않았고, 하이 엘프 마법사들은 결계를 펼쳐 순간이동조차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한 달.
애써 확보했던 개척지 대부분을 엘프들에게 빼앗기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대형 길드 연합은 개척지에 투자했던 모든 것을 날리고, 본인들의 목숨마저 여러 번 잃으며 사실상 금역의 모든 기반을 상실하고 말았다.
물론 원소 정글의 모든 개척지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방패 간격을 벌리지 마! 기사들은 화살을 요격해!”
“마법사들은 마법진을 수시로 확인하고, 엘프들이 결계를 형성할 수 없도록 견제한다!”
“아머 기사단 출진 준비! 지금이다, 돌격!”
라울이 안배해둔 금역 초입의 개척지들.
그곳만큼은 엘프들의 공격에 쉽사리 함락되지 않았다.
이미 엘프들의 공격 패턴을 알고 있는 라울이 심혈을 기울여 보강한 요새.
마커스 왕국의 하마르트 후작가가 동원한 정규 기사단과 마탑의 정예 마법사들.
그리고 퍼스트 길드와 퍼플 길드의 지원 병력까지.
철저하게 방어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엘프들은 성벽을 넘기는커녕, 오히려 기사단의 돌격에 상당한 피해를 입고 패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성과는 딱 거기까지.
원소 정글은 더 이상 인간들의 땅이 아니었다.
엘프들은 정글 자체와 교감하며 정령형 몬스터들을 부렸고, 원소 트랩을 인위적으로 발동시켰다.
그런 엘프들이 매복해 있는 정글 내부로 다시 진입해 개척지를 탈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플레이어들의 활동은 결국 금역 초입, 퍼스트 길드와 협력 길드가 확보한 개척지 부근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엘프 유격대가 개척지를 노려왔으니….
“이, 이렇게 모든 걸 잃고 포기할 순 없어! 방법을 찾아내란 말이다!”
“이대로는 끝장이야! 뭔가 돌파구는 없는 것인가?”
초입의 개척지까지 밀려난 대형 길드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엘프들의 공세가 그치고 금역에서 엘프들의 모습이 뜸해졌다.
“뭐, 뭐지? 또 다른 함정인가?”
“정찰대를 파견해보자. 어차피 방법이 없어!”
그리고 마침내 소식이 전해졌다.
크라넨 제국과 엘프 간의 전쟁 발발!
다시 한번 대형 길드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