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315
제315화
콰당탕!
“무, 물러서라!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커헉!”
쾅!
회의장의 거대한 문이 통째로 박살 나버렸다.
척척척척.
그리고 문을 통해 들어서는 새하얀 갑옷의 기사들.
등 뒤로 흩날리는 푸른 망토에는 황금빛 매가 수놓아져 있었다.
“퍼스트 기사단이 여길 왜?”
회의장 안으로 진입한 50여 명의 기사들이 일정 간격으로 도열해 회의장을 장악했다.
내부에 모여 있던 파이오니어 연합의 수뇌부 이백여 명은 그들의 살벌한 기세에 굳어버렸다.
“이, 이게 무슨 횡포인가? 당신들은 지금 파이오니어 연합의 수도에 무단 침입한 것이다! 책임자가 누군가?”
연합의 대표 진 라이언이 단상에서 외쳤다.
분명 회의장 밖에는 수백 명의 중앙군이 경비 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도 전체를 보면 수만 명의 병사들이 정부 청사가 위치한 타운트리 주변을 경호하고 있었을 터.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수도 주변에 포털이 열렸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 불과 몇 분 전이었다.
수도 경계에서 중심부까지 거리를 생각한다면, 저들은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고 이곳까지 돌파했다는 뜻이었으니.
착착.
그때 누군가가 입구를 통해 걸어 들어왔다.
퍼스트 기사단원들이 오른손 주먹을 가슴에 대며 예를 표했다.
‘…라울 백작!’
진 라이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예전 커넥트 납치 사태의 배후로 지목되었을 당시, 마법 수정구를 통해 잠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라울이 필립과 케인을 대동하고 회의장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위풍당당한 그 모습은 마치 이곳이 퍼스트 백작령이란 착각마저 들게 했다.
‘큿!’
라이언은 이를 꽉 깨물었다.
기세에서 밀리긴 했지만, 어쨌든 이곳은 파이오니어 연합의 수도.
시간이 지나면 이변을 눈치챈 이들이 이곳을 지키러 달려올 터였다.
“라울 백작님.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일로 이곳을 방문하신 것인지? 그것도 이렇게 기사들을 줄줄이 대동하고 말입니다.”
진 라이언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당황하긴 했지만 자존심까지 버릴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울은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주변을 한번 쭉 둘러봤다.
“어째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이는군. 분명 추방했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라울의 눈길이 향한 곳에는 납치 사태의 주범인 대성기업의 한상용 회장 일가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의 청화그룹, 미국의 UD소프트 등 당시 사건 관련자들이 모두 모여 있었으니.
라울의 눈길을 받은 그들이 슬쩍 고개를 돌려 눈을 피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라이언 대표. 분명 약속했을 텐데요?”
당시 제국과 내통한 혐의로 공적이 되다시피 한 파이오니어 연합이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라울의 중재 때문이었다.
금역 땅을 확보할 기회라 생각했던 왕국들의 탐욕을 라울이 막아줬던 것이다.
그리고 분명, 관련자들을 추방하고 처벌하기로 약속했건만.
하지만 라이언 대표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미 지나간 일을 굳이 지금 따지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그리고 고향을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난민을 받아준 것까지 문제 삼는 건 조금 지나친 처사 아닙니까?”
‘웃기고 자빠졌군.’
물론 단순히 연합의 땅에 숨어 살고 있다면 그의 말도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히 의사 결정 기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건,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라울은 할 말이 많았지만 굳이 더 따지지 않았다.
그가 이곳을 찾은 것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나 라울이 입을 다물자 제 말이 먹혔다고 생각한 라이언 대표가 소리쳤다.
“그리고 정당한 이유도 없이 무력을 앞세워 타국의 수도를 침탈하다니! 강도도 아니고 이런 폭거를 다른 왕국이나 커넥트의 주민들이 용납할 것 같소! 당장 사과하고 물러나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뻔뻔하기 그지없는 그의 말에 라울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되물었다.
차르륵.
그리고 퍼스트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검 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살기에 가까운 위압감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그때 라이언의 머릿속으로 길드 통신이 흘러들어 왔다.
「대표님, 큰일입니다. 지금 회의실 상황이 플레이어들에게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라울 백작 측의 누군가가 영상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잘된 건가?’
하지만 라이언은 오히려 이게 기회라고 생각했다.
플레이어를 무력으로 위협하는 NPC 영주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린다면!
5억이 넘는 플레이어의 머릿수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
“우리가 지구에서 온 이주민이라 괄시하는 거라면 후회할 겁니다! 지금 당장은 당신들의 힘이 강할지 몰라도, 언젠가 우리 지구인들이 적응을 마친다면 결코 주민들 못지않을 거요!”
마치 자신이 지구인을 대표하는 열사라도 된 양 격렬하게 소리치는 라이언.
라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맞장구쳐줬다.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굳이 지구 출신과 기존 주민들을 나눠서 생각하는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군. 어차피 이제 같은 땅에서 살아가게 될 똑같은 인간인데 말이지. 그리고.”
라울이 손짓을 하자 출입구에서 기사들이 어떤 이들을 끌고 들어왔다.
“내가 직접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알려주지.”
끈에 속박되어 무릎 꿇려진 이들의 얼굴을 확인한 연합의 수뇌부들이 동요했다.
그들은 바로 얼마 전 제국 측에 파견한 특사였기 때문이다.
“그 표정들을 보니 내가 굳이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던 모양이군.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 라이언 대표?”
창백해진 그를 보며 라울이 묻자, 이내 태연함을 가장하며 그가 말했다.
“도,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어째서 죄 없는 우리 국민을 핍박하는 겁니까? 이건 정말 횡포요!”
“죄 없는 이들이라. 그래도 자국민임은 인정하는군.”
팟.
회의장 한가운데 마법 스크린이 펼쳐졌고, 그곳에 어떤 서류가 투사되자 사방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이건 모함이야! 저건 다 조작된 거라고!”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다지만, 이렇게 문서까지 조작하는 건 너무하지 않소!”
“속지 마! 가짜다! 저건 가짜야!”
서류에 적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연합의 수뇌부와 그 가족들에게 적절한 대우와 보상을 약속한다면, 제국에 영토를 넘겨주겠다는 제안서.
심지어 원한다면 제국의 첩자 역할까지 해주겠다는 조항도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서류 아래쪽을 가득 채운 것은 연합 수뇌부의 자필 서명과 대표의 인장이었으니.
그건 일종의 연판장이었다.
조작이라기엔 너무나도 정교한 서류.
게다가 붙잡힌 이들이 연합 수뇌 중 하나와 랭커 플레이어들이라는 사실은 이게 진실이라는 걸 충분히 짐작케 했다.
“지금 이 시간 부로 파이오니어 연합이 인류에 대한 배신자임을 선언하고, 그 신병을 모두 구속하겠다. 아울러 파이오니어 연합의 모든 영토는 임시로 퍼스트 길드가 통치할 것이며, 각 왕국의 연합군이 그 국경을 책임질 것이다!”
촤라랑.
퍼스트 기사단이 검을 뽑아 들었고, 그들의 검에서 눈부신 오러 블레이드가 치솟았다.
“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런 결정을 내리는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음모야!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이건 모두 우리 연합의 영토를 탐낸 라울 백작의 계략이다!”
라이언 대표가 발악하듯 외쳤지만, 이미 상황은 뒤집을 수 없었다.
「십만이 넘는 왕국 연합군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강력한 결계가 타운트리를 감싸고 있어서 도저히 내부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병사들이 지휘관들을 믿지 못하겠다며 탈영을….」
「수도에서 대규모 시위대가…! 연합 수뇌부를 성토하는 이들이 타운트리 주변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속속들이 전해지는 암울한 소식에 라이언 대표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통신 자체가 먹통이 되어버렸다.
중계되던 화면도 멈춰버렸으니.
돌처럼 굳어 있는 라이언 대표의 근처에 다가선 라울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기회를 줬으면 감사한 줄 알고 약속을 지켰어야지. 죄 없는 이주민들을 생각해 참아왔다만, 이번에는 선을 넘었다. 네놈들의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감히 제국과 손을 잡아? 햇빛 한 점 볼 수 없는 컴컴한 감옥 안에서 말라 죽을 때까지 너희의 멍청한 결정을 후회해라!”
“이익! 네놈이 뭔데!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악이 받친 목소리로 라이언이 소리쳤지만 라울은 콧방귀를 꼈다.
“글쎄. 그 이유를 정말 모른다면, 더 이상 해줄 말도 없군. 끌고 가라!”
기사들이 라이언을 붙들자 돌연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자, 잘못했습니다! 뭐든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가 숨겨둔 재산까지 모두 드릴 테니, 목숨만은…! 야, 이 개XX야!”
질질 끌려가는 그 뒷모습은 초라하고 비참해 보였다.
그리고 회의실에 앉아 있던 이들도 하나둘 기사들에 포박되어 끌려 나갔다.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억울해요!”
“후회할 거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별별 소리를 내뱉으며 끌려가는 이들을 하나하나 지켜보는 라울의 표정엔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내심 미뤄둔 숙제 하나를 마친 기분이었다.
아마도 저들 가운데 누군가가 전생의 배도현의 죽음과 깊게 연관되어 있으리라.
‘지구에선 기업을 뺏는 정도로 끝났지만, 이번엔 다를 거다.’
커넥트에 넘어온 이상 이미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라울은 결코 놈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으니.
그저 그 순간이 오늘이 되었을 뿐.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구나.’
혹시라도 기업가들이 모인 파이오니어 연합의 수뇌부가 대오각성하여 진심으로 지구인들을 위해 움직였더라면.
라울도 그들을 징치하는 데 조금은 더 고민했을지도 몰랐다.
‘고맙군. 예상했던 대로 움직여줘서 말이지.’
다만 그 시기가 최후의 시나리오와 겹쳤다는 것이 번거로울 뿐이었다.
* * *
생각보다 뒤처리는 어렵지 않았다.
제 이득만을 좇아 제국과 교섭하려던 수뇌부의 행태가 밝혀지자 연합 소속 플레이어들이 오히려 더 분개했다.
“설마 이계까지 넘어와서 이런 꼴을 보게 될 줄이야!”
“우리보곤 목숨 걸고 국경을 지키게 해놓고, 뒤로는 수작질을 부려? 이 X새끼들!”
게다가 새로운 구심점이라 할 만한 이가 없었기에 퍼스트 길드의 통제에 별 저항 없이 따라주었다.
게다가 왕국 연합군이 제국 국경에 자리 잡게 되어 오히려 안전해졌음에 안심하는 이들이 늘어났을 정도였다.
그렇게 뒷수습이 되는 와중에 라울은 마신전 공략을 마무리했다.
백 명 가까운 초인 플레이어를 집어삼킨 곳이었지만, 라울과 퍼스트 기사단의 상대는 아니었다.
결국, 이번 일을 통해 한 번 더 증명된 것이 있었으니.
-초인이라고 다 같은 초인이 아니다.
공략 실패로 많은 랭커들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파이오니어 연합에는 상당한 초인 플레이어가 남아 있었다.
그런 초인 플레이어들과 수만이 넘는 병력을 고작 50명으로 손쉽게 뚫어버린 퍼스트 기사단의 강력함.
그리고 불과 5명으로 마신전을 쓸어버리는 라울과 기사들의 압도적인 힘이 지구 출신 플레이어들에게 강렬하게 인식되었다.
시스템이 표시해주는 레벨과 경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마스터, 지구 연합 정부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마신전 공략에 힘을 보태 달라고 합니다.”
지구 연합 정부도 현실을 받아들였다.
자존심 챙기려다 국가가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생히 지켜본 결과였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마침내 대륙 곳곳에 등장했던 15곳의 마신전은 모두 공략되었다.
붉은 빛줄기가 모두 사라진 커넥트의 하늘에는 검은 빛의 기둥만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라울과 몇몇 인형이 마계의 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