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32
제32화
“뭐라고!? 이 건방진 새끼가!”
데이브가 발악하듯 고함치며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이미 그의 동작과 검의 경로를 완벽하게 파악한 라울은 검을 마주 휘둘러 대검을 쳐냈다.
쩌정!
정면으로 부딪친 라울의 검은 깨져버렸지만, 덕분에 검을 쥔 데이브의 양팔도 살짝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라울은 그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쉐에액~퍼벅!
물찬 제비처럼 데이브의 품으로 파고든 라울이 움켜쥔 주먹으로 데이브의 턱주가리를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끄헉!”
라울은 골이 흔들려 비틀거리는 데이브를 따라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푹 쉬어두라고!”
주먹에 마나를 실어 관자놀이를 퍽하고 후려치자 정신을 잃은 데이브의 몸이 쿠당탕탕 소리를 내며 홀의 벽까지 굴러가 퍼져버렸다.
“심판, 결과는?”
라울이 주먹을 털며 묻자 하파엘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외쳤다.
“라울 승. 이번 결투는 라울 측의 승리로 돌아갔음을 선언합니다.”
“…….”
환호성도, 탄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다들 멍하니 있는 가운데 라울만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부서진 검을 들고 단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깝군. 나름 아끼는 검이었는데….”
“수고하셨습니다.”
필립이 고개를 숙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수고랄 것까지야. 참, 필립. 상황이 끝나면 마지막에 상대한 녀석은 따로 확보해 놓도록. 제국의 낙인을 몸에 새긴 녀석 같아.”
라울의 말에 필립이 살짝 흠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경지에 맞지 않게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어스가 건네준 새 검을 받아든 라울이 몸을 돌려 혈족들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자, 이제 어떻게 되려나.”
* * *
젠더 남작은 눈앞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자랑스런 첫째아들은 소드 엑스퍼트였다.
비록 약간의 편법을 썼고 경지에 오른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엑스퍼트였다.
그런데 어째서 15살짜리 꼬마는 멀쩡하게 서 있고, 자신의 아들이 바닥을 구르고 있단 말인가!?
“이, 이건 말도 안 돼. 저놈이 무슨 사기를 친 게 분명해! 무효다, 이건 무효라고!”
잠깐 정신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쳐봤지만, 아무도 반응하는 이들이 없었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남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안 돼. 이대로 상황이 끝나면 나는 파멸이야!’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은 없었다. 어떻게든 서류에 직인을 찍어야만 했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그깟 서류가 뭐라고 이런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모험을 하냐고.
하지만 어떤 서류는 누군가에겐 그 액면가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물건이 되게 마련이었다.
‘서류! 서류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해. 그래야 제이든 자작이나 랜달 백작가에 기댈 수 있어!’
힘 있는 자의 손에 들어가면 아무리 엉터리 서류라도 효력을 발휘하는 법.
서류를 쥐고 있어야 본가에서도 그에게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할 것이다.
그걸 되새긴 젠더 남작이 외쳤다.
“지금 당장 애송이에게서 직인을 빼앗아! 뭐 하고 있어? 모두 공격해!!”
잠시 머뭇거리던 젠더 남작의 동료 혈족들도 결국 외쳤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쳐라!”
마침내 수십명의 호위기사들과 병사들이 무기를 겨누고는 라울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라울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역시나 이렇게 되는군.’
라울은 길드 통신을 통해 모종의 지시를 내리고는 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럼 잠깐 어울려 볼까나?”
“그 말만 기다렸습죠!”
라울의 말에 제이크가 신이 난 듯 검을 들고 적들을 향해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움직인 이들이 있었다.
우르르.
채쟁!
“아무도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
“공자님은 우리가 지킨다!!”
이십여 명의 인원이 단상 앞을 가로막고는 적들에게 검을 겨눴다.
‘이건 참 의외로군.’
라울은 갑작스런 이들의 등장에 난감했는지 뺨을 긁적였다.
그들은 바로 조금 전까지 차와 식기를 나르던 하인들이었던 것이다!
* * *
챙! 챙!!
“밀리지 마! 절대 길을 열어줘선 안 된다!!”
“이 더러운 놈들! 공자님께는 손끝 하나 댈 수 없을 것이다!”
놀랍게도 하인들은 기사들과 병사들의 공격에 밀려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쪽수에서 밀리지 않았다면 승기를 잡는 건 이쪽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들은 대부분 십대 아니면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비록 엑스퍼트 급의 기사들이 아직 참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분석안으로 그들의 정보를 살펴본 라울이 뭔가를 눈치챈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랬군. 이거 뜻하지 않게 보물을 발견한 기분인데?’
바로 그때.
젠더 남작이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소리쳤다.
“이 천한 것들이!! 갈 곳 없는 놈들을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이딴 식으로 뒷통수를 쳐!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것들!!”
그러자 하인들 중 한 명이 목청을 높여 대꾸했다.
“하! 은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원래 우리에게 돌아올 후원금을 가로챈 게 누군데, 이 날강도야!”
“그래, 그것도 모르고 백작가를 원망했으니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공자님이 아니었으면 이 말도 안 되는 종살이를 계속할 뻔했어!”
하인들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남작을 규탄했다.
이들의 진짜 정체는 바로 애쉬튼 백작가가 추천서를 써준 ‘왕국 아카데미 생도들’이었다.
성인식 토너먼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들은 기본적인 훈련을 거친 후, 왕국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백작가에서는 추천서와 함께 아카데미 학비를 지원해 주는데, 문제는 방학 기간이었다.
수도와 애쉬튼 백작가의 영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후원 생도가 아카데미에 남고자 하지만, 방학기간에는 기숙사를 운영하지 않았다.
그런 이들을 위해 수도 저택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훈련비까지 후원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남작은 그 후원금을 모두 꿀꺽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숙식비를 핑계로 그들을 하인으로 부려먹으며 실제 하인 고용비까지 떼어먹었으니….
“어떤 면에선 정말 대단하군요. 있는 거 없는 거 다 긁어서 뒷주머니를 차다니. 능력 면에선 진짜 총관을 맡길만 했겠습니다.”
제이크가 혀를 내두르며 말하자 라울도 인정했다.
“그래, 처음 총관을 맡았을 때는 저렇지 않았겠지. 결론적으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되어버렸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어쩔까요? 놈들이 본격적으로 나서면 애들이 많이 다칠 거 같은데?”
“걱정하지 마. 이제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으니까.”
“네? 뭐가요?”
라울의 말에 제이크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라울은 그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젠더 남작이 비밀병기를 동원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그때, 드디어 라울의 안배가 빛을 발했다.
콰아앙!!
끄아악!!
“비켜라! 감히 누구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냐!!”
쿠당탕탕!
저택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일부 병사들이 사색이 되어 남작을 비롯한 혈족들에게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크, 큰일 났습니다! 바, 밖에!”
“제대로 말해라! 밖에 우리 병력이 수백이나 있는데,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했단 말이냐?”
“보, 본가에서!”
“뭐!?”
쾅!!
홀의 문짝이 터져나가며 병사들 몇을 깔아뭉갰다.
“누구냐? 누가 감히 애쉬튼 백작가의 저택에서 무기를 휘두른단 말이냐!!”
2m가 넘는 거구의 사내가 피에 물든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는 호통을 쳤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홀 전체가 흔들거렸고, 일부 병사들은 귀를 막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를 확인한 장내의 인물들이 사색으로 변해 버렸다.
“저, 저 인간 같지 않은 체구는?”
“팔뚝이 남자 허리 만하다는 그 소문의!”
“디, 딜런 공자!”
“백작가의 후계자가 어째서 이곳에!?”
문을 박차고 들어선 것은 바로 딜런 드 애쉬튼. 라울의 큰 형이었던 것이다!
딜런은 거칠 것이 없다는 듯 홀을 가로지르며 걸음을 옮겼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길을 비켜주었다.
그리고 찬란한 황금빛의 갑주를 차려입은 기사 스무 명이 그의 뒤를 따랐다.
골든베어 기사단이었다.
하지만 반응이 늦은 이도 있기 마련.
멍하니 서 있던 누군가의 호위기사가 바로 앞에 다가온 딜런에게 위협을 느꼈는지 자신도 모르게 검을 겨누었다.
“…….”
걸음을 멈춰선 딜런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향했고,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쾅!!
쿠궁!
가볍게 휘두른 것 같은 딜런의 손등이 기사의 검을 박살냄과 동시에 그의 몸을 말 그대로 날려 버렸다.
기사는 5m 넘게 떨어져 있던 홀의 벽을 부수고는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맙소사.’
‘왕국 최고의 피지컬 괴물이라더니!’
‘저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야?’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반걸음씩 더 뒤로 물러났다.
딜런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다시 걸음을 옮겨 단상으로 향했고, 마침내 라울과 눈을 마주쳤다.
“막내야~~~!”
좀 전까지의 박력은 어디로 갔는지 대검마저 놔버린 딜런이 양팔을 번쩍 벌리고 라울에게 달려들어 그를 격하게 껴안았다.
“이 녀석아! 다친 데는 없지? 누가 괴롭히지는 않았고?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녔냐?”
라울을 허공에 번쩍 들어 올린 딜런이 그를 이리저리 휙휙 돌려보며 혹시나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라울은 인형처럼 허공에서 대롱대롱 흔들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형의 손등을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형님~ 어지러워요. 이것 좀 놓고 말합시다!”
“응?”
그제야 약간 창백해진 라울의 얼굴을 확인한 딜런이 부랴부랴 그를 내려놓고는 겸연쩍게 웃었다.
“하하. 그래, 두 달 지났다고 좀 크긴 했구나. 하지만 몸이 그게 뭐냐. 자고로 남자라면 이 형님처럼 멋진 근육을 가꿔야 하지 않겠느냐?”
딜런이 팔에 힘을 주자, 이두박근이 바람이라도 불어넣은 것처럼 후욱 부풀어 올랐다.
그 두께가 진짜 라울의 허리둘레 정도는 되어 보였다.
‘아버지도 괴물이지만, 육체만 따지면 형님은 이미 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것 같아. 문제는….’
“저, 형님. 설마 집에서부터 그러고 오신 건 아니죠?”
이제와서 말하지만, 딜런은 웃통을 까고 망토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이게 사람의 육체인지 맹수의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울룩불룩하게 각이 잡힌 근육들이 모두의 눈앞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같은 남자라는 동물로서 위협감과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기적인 육체였다.
“음? 불편하게 뭐 하러 옷을 걸쳐? 그리고 기왕 수도에 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완벽한 육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지 않겠냐, 동생아?”
‘맙소사.’
백작가의 후계자가 웃통을 까고 수도를 활보했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라울이었다.
쓱쓱.
골치 아프단 표정을 짓고 있는 라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딜런이 말했다.
“남자는 당당해야 하는 법이지. 만약 라울 네가 이 형처럼 원더풀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면….”
몸을 돌린 딜런이 그의 시선을 피하는 혈족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저 썩을 잡것들이 감히 무기를 꺼내들 수 있었겠느냐?”
좀 이상한 논리이긴 했지만, 라울은 형의 말이 꼭 틀린 건 아니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