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33
제33화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딜런의 말처럼 라울에겐 이리떼처럼 달려들던 이들이 순한 양이라도 된 것처럼 감히 무기를 휘두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형도 형이었지만 골든베어 기사단의 기세를 받아넘길 이들이 거의 없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기사단 중에서도 부단장 포함 상위 랭커 기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최소 소드 엑스퍼트 중급 이상의 기사가 스물다섯이라….’
웬만한 남작령 하나는 순식간에 박살 내버릴 전력이었다.
일의 주동자였던 젠더 남작은 어떻게든 반전을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랜달 백작가의 4공자라는 하파엘은 딜런을 본 순간 똥씹은 표정으로 홀의 구석으로 몸을 피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가 비밀 무기라고 생각했던 브레넌 공화국의 기사들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인 양 남작의 눈을 피했다.
굳이 이제와서 판에 끼어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딜런은 홀이 조용해지자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씨익 웃음을 지으며 소리쳤다.
“아니, 이게 누구야! 랜달이 아닌가!! 아니 형이 왔으면 얼른 와서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자 구석에 피해있던 하파엘이 마지못해 나서며 기어들어 가듯 말했다.
“아, 안녕하셨습니까. 딜런 형님.”
딜런이 성큼성큼 걸어가 반갑다는 듯 어깨를 퍽퍽 두드리며 물었다.
“오냐. 몇 년 만에 봤는데 하나도 안 변했구나. 근데 네가 몇 호기였냐?”
순간 하파엘이 입술을 꾹 깨물고 날카롭게 딜런을 올려봤지만,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네, 넷쨉니다.”
“아하! 4호기였구나. 그래, 요즘도 3호기 6호기랑 몰려다니면서 애들 괴롭히고 그러냐?”
“아닙니다. 그게 언제적 얘긴데…!”
“응? 너 지금 짜증내는 거냐?”
“다, 당연히 아니죠.”
딜런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하파엘의 옷깃을 탁탁 털어주며 말했다.
“우리 랜달 4호기, 보아하니 오늘은 얌전히 있었던 모양이구나. 앞으로도 그렇게 착하게 지내면 형이랑 다시 면담하는 일은 없을 거야. 지금부터는 가족 문제니까 외부인은 빠져줬으면 하는데, 어떻게? 좀 기다렸다 몸이라도 풀고 갈래?”
하파엘이 저려오는 어깨죽지를 바르르 떨며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 보십시오!”
“그래. 얼른 가봐라. 아, 그리고 한 보름 정도 머물 거 같으니, 오랜만에 한판 붙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랜달 1호기에게 전해주고.”
딜런이 마지막으로 어깨를 팡팡 두드리고 놓아주자, 안색이 창백해진 하파엘이 피멍 든 어깨를 감싸 쥐고 도망치듯 홀을 빠져나갔다.
“이제부터는 집안 문제니까 구경꾼들은 퇴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무기 꺼내든 잡놈들은 퇴장할 수 없으니 조금 있다가 나랑 따로 면담 좀 하자고.”
딜런의 말에 브레넌 공화국의 기사들, 제국 스파이를 비롯한 각 세력의 첩자들과 구경 왔던 이들이 조용히 홀을 빠져나갔다.
자리가 정리되자 딜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어르신들. 직인을 찍어야 한다는 서류가 어딨습니까?”
젠더 남작을 비롯한 혈족들이 창백한 안색으로 다리를 후들거리고 있었다.
* * *
그날 저녁.
라울은 본관 집무실에서 큰형 딜런과 마주하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니, 형님. 형수님이랑 리비는 어쩌고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저 많은 기사분들은 또 뭐구요? 부단장님에 수석 기사들까지…. 무슨 전쟁이라도 났습니까?”
“욘석아! 네가 지원요청 해놓고는 뭔 소리야?”
“아니, 아무리 그렇다지만 좀 과하지 않나 싶어서….”
게다가 라울이 연락을 취한 건 어젯밤 늦은 시각.
인원을 뽑고 장비를 챙겨서 수도까지 도착하기엔 너무 빠듯한 시간이었다.
딜런은 물끄러미 라울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다 알고 있으면서 괜한 소리 하기는. 아무렴 아버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너한테 떡하니 감투를 씌우고 직인까지 내줬을까? 그리고 나 정도는 나서야 수습이 편하지 않겠냐?”
딜런의 말처럼 후계자인 그가 직접 오지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쉽게 풀리진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저 인원이 다 포탈(순간이동 마법진)을 탔으면 도대체 얼마를 쓴 거야?’
거리와 20명 넘는 인원을 생각하면 거의 3천 골드는 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커넥트의 일반 시민 연봉이 20골드 정도였으니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어차피 내 돈 든 건 아니니까.’
괜한 돈 걱정은 던져버린 라울이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거의 30명 가까이 되는데….”
“당연히 죗값을 치러야지!”
형의 표정을 보니 사람 몇 죽어나가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았다.
“아니, 그래도 아버지 형제분들이신데.”
“그래서 여태껏 눈감아준 거잖아! 그 노친네들 때문에 재정이 얼마나 빡빡하게 돌아가는지…. 어쨌든 이번엔 아버지도 묵인하셨으니까 확 정리해버려야지.”
느낌상 아무래도 이번 작품은 아버지가 아니라 형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 같았다.
‘애쉬튼 백작가의 숨은 여우라더니.’
연결고리 카페에서 찾은 스토리라인의 인물 정보를 보면, 분명 애쉬튼 백작가의 장남 딜런은 정치감각과 계산에 밝은 ‘여우’같은 인물이라고 나와 있었다.
둘째인 로렌스에 비해 검술 실력은 떨어지지만, 특유의 포용력과 리더십으로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되었다고.
‘그런데 저 괴물같은 피지컬을 가지고 지력캐라니? 완전 사기 아니야?’
누가 봐도 큰형은 육체파였다.
저 우람한 근육을 보고 누가 그를 머리 쓰는 사람이라 생각하겠는가?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딜런이 뭘 착각했는지 손을 뻗어 라울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말거라. 딱히 피를 볼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늙은이들 돈줄을 말려버리는 정도로 끝낼 거야. 그리고 오늘은 정말 수고 많았다. 형으로서 참 자랑스럽구나!”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그냥 맘에 안 들어서 들이받은 것뿐인데요, 뭘.”
“장부까지 털어서 감사 보고서를 만들고 혈족의 증명으로 노친네들 멘탈까지 탈탈 털었으면서 한 게 없기는. 이 귀여운 자식아!”
형이 뽀뽀라도 할 것처럼 얼굴을 들이밀자 라울이 기겁해서 뒤로 목을 빼버렸다.
하지만 아버지보다 강력한 형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강제로 뺨에 부비부비를 당해버린 라울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런 건 이제 리비한테나 하라구요. 저도 성인입니다!”
그러자 딜런이 충격받은 듯 굳어진 채로 침울하게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네 형수가 자꾸 리비한테 손도 못 대게 하는구나. 내가 아빤데? 왜? 뭐 때문에!”
라울은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형의 손을 내려다보며 형수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솥뚜껑도 반쪽으로 접어버릴 것 같은 그 우악스런 손으론, 아무래도 당분간 조카를 만지긴 힘들 것 같습니다, 형님.’
라울은 속으로 애도를 표하고는 품속에서 문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근데 형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그건 바로 라울과 젠더 남작 간에 벌어진 혈족의 증명을 기록해 놓은 공증서였다.
내용에 따르면 라울에게 강제로 직인을 요구했던 27명의 저택이 모두 라울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딜런은 문서를 잠깐 확인하고는 물었다.
“네 건데 네가 알아서 처리하면 되잖아? 형이 뭐 도와줄 거라도 있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되묻자 라울이 오히려 살짝 당황했다.
‘아니, 합치면 못해도 십만 골드는 나올 텐데 그게 다 내 거라고?’
가문의 일에 엮여 있으니 당연히 본가에서 처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딜런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라울의 심정을 파악한 딜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동생아. 그건 네가 저들과 정정당당하게 시합해서 얻은 보상 아니냐? 당연히 네 것인데 뭘 그렇게 눈치를 보고 그래. 형이 항상 얘기했지? 남자는 당당해야 한다고! 특히 네가 애쉬튼 백작가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 남들보다 더 당당해야 하고 충분히 그래도 된다.”
그리고는 문서를 곱게 접어 라울의 품속에 다시 넣어주었다.
라울은 살짝 뭉클해진 가슴을 어루만지고는 형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좀 더 당당한 남자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부탁?”
다시 문서를 꺼낸 라울이 천연덕스럽게 그걸 형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저 대신 이것 좀 처리해 주시면 안 돼요? 아, 젠더 남작 저택은 제가 썼으면 하니까 남겨주시구요.”
문서는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지금의 라울에게 저 문서는 계륵이나 다름없었다.
저걸 현금화하려면 저기 살고 있는 혈족들을 내보내고 저택을 팔아야 하는데, 그가 하기에는 걸리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오냐. 너 손해 보지 않게끔 잘 정리해서 넘겨줄게. 그리고 상으로 이 형님이 좋은 것을 알려줄 테니까 내일 아침에 연무장에서 보자.”
“네, 상이요?”
“그래. 형처럼 원더풀하고 퍼펙트한 근육을 가꿀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주마!”
그러면서 딜런이 포즈를 잡으며 상체에 힘을 빡 주었다.
그러자 찌지직 소리가 나며 그가 입고 있던 셔츠가 찢어지면서 단추가 터져 나갔고, 단추쪼가리 일부가 라울의 찻잔에 퐁당 빠져버렸다.
힐끔 찻잔을 내려다보는 라울을 앞에 두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면서 딜런이 말했다.
“어때? 배우고 싶지?? 막 당장이라도 연무장으로 달려가고 싶지 않아?? 그렇지?”
눈을 반짝이며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물어보는 형에게 차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던 라울이 마지못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그럴 거야. 사실 아버지도 로렌스도 굉장히 탐내는 거 같았거든. 하지만, 특별히 우리 막내에게만 전수해주마. 하하하.”
굉장히 좋아하는 큰형을 보며 라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근력을 키우고 싶긴 하지만, 인간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배워야겠군. 근데 진짜 무슨 비법이 있긴 한 건가? 좀 궁금하긴 하네.’
이후 보름간.
라울은 인세의 지옥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었고, 다시는 딜런과 함께 훈련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카데미 입학 날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다녀오십시오, 공자님. 입학시험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임시로 저택 집사 역을 맡은 버나드가 마차 앞에서 라울에게 고개를 숙였다.
“뭐, 적당히 하고 올 거야. 애들 시험인데 굳이 기 뺄 필요 없겠지. 다녀올게.”
라울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고 마차에 오르자, 미리 마차에 올라있던 큰형 딜런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정말 적당히 하려고?”
“네, 뭐. 굳이 열심히 할 필요 있을까요?”
“그래? 형은 입학식 끝나면 돌아갈 거니까 형 눈치 보지 말고 알아서 해.”
그러고는 입을 닫아버렸다.
‘뭐지? 근성을 보여! 백작가의 당당함을 보여줘라! 이럴 줄 알았는데?’
어쨌든 형이 뭐라 하든 라울은 적당히 시험 보고 적당히 아카데미를 다니다가 적당히 졸업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아카데미는 고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핑계였을 뿐, 그의 진짜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들하고 부대끼는 것도 피곤할 텐데 적당히 하다 나오자. 적당히.’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적당히를 외치는 라울을 싣고 마차는 대로를 지나 아카데미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