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34
제34화
사람들이 넘쳐나는 광장을 지나 입학식이 진행될 대강당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라울은 넘쳐나는 인파에 혀를 내둘렀다.
“굉장히 번잡하네요? 아무리 입학식이라지만 이 정도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입학하는 학생 수는 700여 명.
하지만 입학식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정식 남작가 이상 귀족 자제들뿐이었다.
그래서 예상하기를 100명 미만이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리 봐도 200명은 되는 것 같았다.
“올해는 좀 특별한 경우지. 입학을 미루고 있던 녀석들까지 몰려들었거든.”
“……???”
딜런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아꼈다.
‘무슨 일이지?’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아카데미에 대한 정보는 이미 확인해 두었다.
매년 들어오는 학생들의 수준이나 입학시험, 아카데미 커리큘럼 등은 굳이 연결고리 카페를 참고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귀족가에선 널리 알려진 정보였다.
올해 입학이 예상되는 귀족가문 자제들 명단까지 어렵사리 구해놓았는데, 아무래도 변수가 생긴 모양이었다.
‘어차피 별 상관없지만.’
아카데미 생활 자체에 큰 비중을 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라울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결심은 강당 안에 들어서는 순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 제라드 드 루벤 왕자님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템플턴가의 자랑! 달튼 소공자님의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 케일럽 드 랜달 공자의 입학을…
– 제임슨 님의 입학을…
– 라울 드 애쉬튼 공자님의 입학을…
‘맙소사! 이게 다 뭐야!!’
강당 벽을 가득 메운 것은 각 귀족가문 자제들을 위한 플래카드들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 명단 안에 왕자는 물론 5대 명문 무가 후손들의 이름이 잔뜩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필립 경! 이번에 5대 무가의 직계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
“분명 미라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그런 소식은 없었습니다만….”
보기 드물게 라울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고, 필립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감한 표정이었다.
오직 딜런만이 재밌다는 듯 그런 라울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형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형님은 알고 계신 거죠?”
저택 사건 이후 보름 동안 라울은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벌여놓은 일을 수습해야 하기도 했고 형인 딜런에게 지옥훈련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보 수집을 담당했던 버나드마저 저택에 꽁꽁 묶여 있었으니 바깥소식에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곧 알게 될 거다, 동생아. 시험 ‘적당히’ 잘 치고 와라. 입학 축하한다~”
딜런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따로 마련된 귀빈석으로 떠나갔다.
라울은 혼란스런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시를 내렸다.
“제이크 경과 피어스 경은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좀 구해와 주겠어? 시험장 쪽 분위기도 좀 살펴보고.”
“알겠습니다, 공자님!”
둘이 자리를 떠나고 필립만 남아 라울의 뒤를 지켰다.
‘아무래도 골치아픈 일이 생길 것 같은데….’
원래라면 올해 아카데미는 쭉정이들만 입학할 예정이었다.
명문 무가 자제들은커녕 유력 귀족가 출신도 별로 없어야 했는데….
대충만 봐도 5대 무가뿐만 아니라 이름 좀 있는 귀족가의 자제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이 나이 먹고 애들이랑 투닥거리고 싶진 않은데….”
“네…?”
“아, 아냐. 혼잣말이었어.”
라울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수습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후우. 신경 쓰지 말자. 처음 계획처럼 적당히 묻어가면 그만이야.’
하지만 뇌리 한구석에 드는 불안감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어 보였다.
* * *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여느 입학식과 다를 바 없는 식순이 진행되었고, 교직원을 소개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교직원 정보야 미리 구해두었기에 관심을 끊고 딴생각을 하던 라울.
하지만 갑작스레 입학식장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강단 위를 바라본 라울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아니, 저 양반은…?’
“…해서 어렵사리 모셔온 분입니다. 올해부터 아카데미 부총장이자 마법학부와 행정학부 장을 맡아주실 알프레도 그레이 님이십니다!!”
우와아!!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노신사가 강단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습니다. 임시로 부총장 직을 맡게 된 그레이라고 합니다. 명망있고 유서깊은 루벤 왕국 아카데미에….”
연설이 이어졌지만, 라울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난 사실에 머리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알프레도 그레이는 대륙 3현자로 유명한 ‘8서클 대마법사’였던 것이다!
특히 환상, 환영 마법에선 따를 자가 없다는 평이었고, 연금마법의 대가이기도 했다.
‘아니, 저 양반이 뭐가 아쉬워서 이곳에??’
그레이는 한 곳에 잘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길 좋아해서 ‘방랑 현자’라는 아명까지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가 세운 ‘그레이 마탑’에선 종종 그레이가 어딨는지 정보길드에 의뢰까지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 인물이 기사 왕국이라는 루벤에 와서 아카데미 부학장을 맡는다니?
이건 라울의 환생 전과는 완전히 다른 전개였다.
원래라면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고 몇 년이 지난 뒤, 연합군이 결성된 후에야 모습을 드러내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해서 이번에 새로 개발된 훈련용 환상 마법진을 아카데미 교육 과정에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치러질 배치고사에서 선보일 예정이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라울이 정신없이 그레이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사이, 그의 인사말이 끝났다.
그리고 총장인 스펜스 드 템플턴이 등장했다.
“그레이 부총장님의 말씀처럼 올해부터는 교육과정에 변화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에 따라 배치고사의 내용도 변경되었으니 학생 여러분들은 배포된 자료를 참고하여 시험에 임해 주길 당부 드립니다.”
시험 내용이 변경되었다는 말에도 라울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적당히 볼 생각이기도 했고, 기사 학부의 시험이 바뀌어봤자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하지만 이어진 학장의 말에 라울은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는 배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보상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학생 여러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특별한 보상이라고?’
아카데미 배치고사 때 어떤 보상이 주어진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
애초에 클래스를 나누기 위한 시험에 불과했으니.
그때 라울의 눈앞에 퀘스트 창이 등장했다.
등급 : ???
목표 : 배치고사에서 S클래스 편입
추가 목표 : 배치고사 수석
페널티 : S클래스 편입 실패 시, 재학 중 스킬 숙련도 보정 –5%
설명 : 아카데미에 왕국의 유망주들이 대거 입학했습니다. 경쟁 가문의 유망주들과 경쟁하여 가문의 이름을 드높일 기회입니다.
보상 : 경험치, 코인, 성적에 따른 추가 보상
내용을 살펴본 라울이 담담하게 창을 닫아버렸다.
‘딱히 어려울 건 없네.’
아카데미 검술학부에는 5개의 클래스가 있었다.
S, A, B, C, D.
검술학부 신입생 600명 중 60등 안에만 들면 S클래스에 편입되었다.
애초에 적당히 시험을 보겠다고 했지만, S클래스는 무조건 들어갈 생각이었으니 문제될 건 없었다.
‘중요한 건 적당히 S클래스에 만족하느냐, 아니면 실력발휘를 좀 하느냔데….’
보상이 뭔지 모르는데 굳이 수석을 노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때 제이크가 배포된 자료를 가져왔다.
“특별한 보상이라더니 딱히 특별해 보이진 않는데요?”
-수석 입학생 특전-
1. 아카데미 도서관 전 층 개방
2. 훈련용 환상 마법진이 설치된 개인 수련장 제공
3. 아카데미 공방에서 전용 장비 제작
하지만 제이크의 생각과 달리 라울은 보상 내용을 보자마자 결정했다.
‘못 먹어도 고! 이번 배치고사 수석은 내꺼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라울에겐 꼭 필요한 보상이 걸려 있었다.
‘도서관과 수련장! 하나도 아니고 둘 다 준다니 이건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
커넥트의 주민들에겐 우상인 아카데미지만 라울에겐 계륵같은 존재였다.
아카데미 수업과 훈련은 스킬 숙련도는 좀 올려줄지 몰라도 경험치나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수업을 들을 시간에 몬스터를 잡고 던전을 도는 편이 플레이어인 라울 입장에선 훨씬 이득이었다.
그럼에도 라울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이유는 영지에 얽매이지 않기 위한 핑계이기도 했고, 왕국의 중요 인물들을 만날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환상 마법진이 설치된 훈련장이 있다면 얘기가 달랐다.
훈련용 환상 마법진은 추후에 등장할 플레이어 협회의 전투 시뮬레이터보다 상위 호환 장치였다.
환상으로 만들어진 적과 전투를 벌임에도 불구하고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사기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법진을 유지하는데 소모되는 마나석의 양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
‘그걸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니, 이게 웬 떡이야!’
게다가 도서관은 히든 피스들의 집합소!
정보만 있으면 숨겨진 퀘스트를 얻을 수도 있고 스킬북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다.
원래 아카데미 도서관은 학년별로 사용 층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층에 출입할 수 있다니!
‘아카데미를 3년은 다녀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더 줄일 수도 있겠어.’
물론 이 모든 것은 배치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한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라울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배치고사 1등이 뭐가 어렵겠냐는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라울은 자신만만한 걸음걸이로 시험이 펼쳐질 광장으로 향하려 했다.
“어이! 네가 그 애쉬튼가의 꼬맹이냐?”
하지만 어느새 다가왔는지 화려한 복장의 청년 하나가 라울에게 말을 걸어왔다.
슬쩍 돌아보니 호위도 열 명 가까이 되었고, 그 가운데 낯익은 자도 있었다.
‘또 다른 랜달가 녀석이군.’
라울은 천천히 상대방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누구지? 내가 보기엔 그쪽이 더 꼬맹이 같아 보이는데? 안 그래??”
어느새 180을 넘긴 라울에 비해 상대방 청년은 잘해봐야 170도 안 될 거 같아 보였다.
그도 그걸 느꼈는지 굉장히 불쾌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듣던 대로 건방진 녀석이구나. 이래서 애쉬튼가 놈들은 상대하기가 싫다니까. 촌놈들이라 그런지 예의도 없고 말귀도 어둡거든. 하여튼 이런 놈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딱히 용무가 없으면 이만.”
라울은 혼자서 열을 내며 떠드는 녀석을 쿨하게 씹고는 몸을 돌려 강당 밖으로 향했다.
“야! 너 거기 안 서? 이 건방진 새끼가!”
황급히 라울의 어깨를 잡아채려는 청년의 앞을 필립이 잽싸게 가로막았다.
“거기까지. 어느 가문 공자님인진 모르겠지만, 그쯤 해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건 또 뭐야? 안 비켜?”
필립은 말없이 서서 청년의 호위에게 주변을 둘러보라는 듯 눈짓했다.
어느새 주변에는 다른 신입생들과 호위들이 몰려 있었다. 개중에는 청년 못지않게 화려한 복장을 갖춘 이들도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호위가 귓속말로 속삭이자 청년은 마지못해 자리를 비켜섰다.
“하여튼 애쉬튼 놈들이랑 엮여서 좋을 일이 없다니까. 건방진 새끼, 주제 파악을 하게 해주마!”
청년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라울의 뒷모습을 쫓았지만, 이미 그의 모습은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 뒤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