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70
제70화
몇만 명은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콜로세움.
그 경기장에 설치된 10개의 연무장은 텅 비어 있었고, 모든 마법 스크린은 단 하나의 연무장만을 비추고 있었다.
“후우.”
라울은 입장에 앞서서 장비를 점검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약간 긴장된 얼굴로 라울에게 말을 건네는 이는 바로 기사 협회의 사무관이었다.
나름대로 높은 직위의 인물이었는지, 복장 자체가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괜찮습니다. 심사는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단원들도 정정당당하게 심사를 받았는데, 저만 특혜를 받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라울의 담담한 대답에 협회 사무관이 식은땀을 흘렸다.
“협회장님께서 이번 심사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은 결코 그분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정한 심사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셨으니, 딱히 특혜라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사무관님.”
“네.”
라울이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저는 이번 심사 과정에 있어서 어떤 불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명예롭고 공정한 기사 협회의 심사를 어떻게 의심한단 말입니까? 협회장님께도 전해 주십시오. 퍼스트 기사단과 애쉬튼 백작가는 기사 협회와 협회장님을 신뢰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무관은 라울의 올곧은 눈빛과 당당한 태도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하아, 소문이 무색하구나. 이게 정말 15살 소년이 내보일 수 있는 기세란 말인가?’
사무관은 라울의 눈을 당당하게 마주 볼 수 없는 현실에 탄식했다.
“후우, 라울 공자님께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협회장님께는 제가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라도 찾아 주십시오. 미약한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협회의 일원으로서 미안함과 부끄러운 마음을 담아 라울에게 말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심사를 준비해야 해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 라울을 보며 사무관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괜찮을까? 담당 심사관이 하필이면 그자인데…. 부디 무사히 심사를 마치시기를.’
사무관의 걱정과는 달리, 라울은 오히려 속 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딱히 문제는 없는 모양이네. 계획대로 잘 흘러가고 있구나.’
솔직히 서임식을 준비할 때부터 공정한 심사 따윈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리 명예와 중립을 표방한 기사 협회라고 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을 리 없었다.
당장 협회장부터 반쯤은 허수아비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전대 왕실 근위 기사단장이라지만, 마스터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마스터가 존재하는 명문 무가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여러 가문들의 중재역을 맡은 협회장의 영향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협회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상황이니 라울도 순진하게 협회만 믿고 서임식에 참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애쉬튼 백작가와 퍼스트 기사단의 이름으로 콜로세움 외곽에 지원 캠프를 차린 일.
제이크와 피어스를 비롯해 퍼스트 기사단원들이 심사받는 순서를 원하는 대로 배정받은 일.
그리고 라울이 단독으로 제일 마지막 심사를 받게 된 것.
이 모든 것은 라울의 의도대로 세팅된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 애쉬튼 백작가의 영향력은 물론 인맥을 동원하고 만만찮은 비용까지 소모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명문가들의 참가자가 적었던 것도 다행이고. 그나저나 랜달가도 참 순진하군.’
겨우 가문과 관련된 심사관들을 동원하는 정도에 그치다니.
만약 그가 랜달 가문 입장이었으면 중립 심사관도 모두 매수하고 참가 순서도 모두 꼬아 버렸을 것이다.
‘참가자들의 갑옷과 장비도 모두 지급품으로 통일해 버리고, 심사 기준도 바꿔서… 아차.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어쨌든 라울이었다면 철저하게 경쟁 가문을 서임식에서 지워 버렸을 것이다.
물론 랜달가의 견제가 생각보다 약했던 것은 그만큼 라울과 퍼스트 기사단을 얕보고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어설픈 시도 덕분에 예상보다 그림이 잘 나오게 되었다.
사무관과 협회장에게 빚을 지운 것도 나름의 성과였고.
‘이제 내가 마무리만 잘하면 되겠군.’
대련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심사관은 랜달 가문의 사주를 받은 자였다.
딱히 랜달가와 혈연관계가 있는 자는 아니었지만, 매년 서임식에서 뒷돈을 받고 심사 결과를 조작하는 부패한 놈이었다.
이미 랜달가와 접촉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고 그럼에도 라울이 모른 척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저놈이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손을 써도 되겠어.’
라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 * *
우와아아!!!
어마어마한 함성이 콜로세움을 가득 메웠다.
단순히 라울이 모습을 드러냈을 뿐인데도 콜로세움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굉장한 반응이었다.
“어, 엄청나군.”
“이 정도였단 말인가??”
참관인들은 이제야 라울의 인기가 실감되었는지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개중에 일부는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쯧쯧, 우매한 놈들 같으니라고. 고작 15살짜리의 수작에 놀아나다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지요. 어차피 대중의 관심이란 건 한낱 변덕에 불과합니다. 놈이 망신당하는 꼴을 보면 금방 식어 버릴 테니까요.”
한편 현자 그레이는 귀빈석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심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허허허. 라울 이 영악한 녀석 같으니라고.’
보아하니 협회의 서임식을 아주 제 기사단의 홍보 자리로 활용하고 있었다.
욕을 하든 응원을 하든 결국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건 퍼스트 기사단이었으니.
게다가 서임식이 진행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귀족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다.
마치 오늘 콜로세움을 방문한 모든 이들이 라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가 지켜보고 있는 다른 인재들과는 달리 주도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 기꺼웠다.
‘대부분 내 조언을 따르게 마련인데, 저 녀석은 확실히 다르단 말이지.’
그의 조언을 참고하되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관철하는 과감함이 있다 보니, 그레이조차도 라울의 행보를 예측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서임식이 끝나면 당황할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작은 조약돌이 실제론 거대한 댐이 되어 물줄기를 비틀어 버릴 테니까.
‘그리고 그게 내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지. 어디 마음껏 달려가 보거라. 뒤는 내가 받쳐 주마.’
그레이는 흐뭇한 표정으로 커다란 스크린을 독차지한 라울을 바라봤다.
저 조각같이 빛나는 외모 뒤로 또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 내심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2차 심사 마지막 지도 대련이 시작되었다.
* * *
“크윽!”
심사관 랭글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분명 검의 속도도 힘도 그가 더 강할진대, 어째서 자신이 밀린단 말인가?
텅! 꽈앙!!
방패로 투핸드 소드를 막아 냈지만, 팔목과 손아귀가 찌릿했다.
‘아니, 힘은 저쪽이 더 강할지도….’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엑스퍼트 상급을 노리고 있는 자신이 겨우 15살짜리 애송이보다 못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놈!!”
이를 악다문 랭글이 롱소드로 라울의 가슴을 찔러 갔다.
챙!
그의 검은 허무하게 튕겨 나갔지만, 그건 페이크였다. 랭글은 즉시 왼쪽의 방패를 앞세워 실드 차지를 펼쳤다.
타다닷! 퍽!!
‘크윽.’
하지만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사이드 스텝을 밟아 돌진을 피한 라울이 검으로 그의 옆구리를 치고 지나갔다.
중갑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큰 충격은 없었지만, 공격을 허용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지도 대련이 절반 정도 지난 지금, 대결은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커다란 투핸드 소드를 든 라울과 롱소드에 버클러(작은 방패)를 든 랭글의 대결.
상대적으로 가벼운 롱소드와 방패를 든 랭글이 간격을 파고들어 공세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랭글은 전혀 라울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투핸드 소드에 실린 힘도 힘이었지만, 라울의 검이 너무나도 매섭게 그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마치 그의 움직임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검을 뻗는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거리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라울은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고, 랭글은 거기서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양손검이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변칙적인 검식의 연계가 이어졌던 것이다.
방패와 롱소드로 대응해 보았지만, 서너 번에 한 번은 공격을 허용할 정도로 라울의 검은 변화무쌍했다.
결론적으로 검술 실력에선 라울이 랭글을 압도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어찌 30년이나 검을 수련한 나보다!’
랭글은 비참함과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가 받은 의뢰에까지 생각이 미친 랭글의 눈에 살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 * *
‘음…?’
심사관의 기세가 일변했다. 어째 오래 참는다 했더니 이제 본색을 드러낼 모양이었다.
라울은 투핸드 소드의 그립을 살짝 고쳐 잡았다.
저쪽이 기어를 올린다면 이쪽도 맞춰 가면 될 일. 이미 예상했던 만큼 딱히 긴장되진 않았다.
‘하긴 굳이 신경 쓸 만한 상대도 아니지.’
이미 좀 전의 대결로 확신할 수 있었다. 라울 자신은 이미 검사로서도 상당한 경지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여태껏 적을 상대할 때는 항상 최선을 다해 왔다.
단순히 검술뿐만 아니라 염동력과 파워아머, 기타 스킬까지 활용하며 변수를 차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로지 검술 하나만으로 대련에 임했다.
결과는 보다시피 압도적이었다. 물론 마나 블레이드를 사용하지 않은 대련이었다 하지만, 사용했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심사관이나 라울이나 모두 엑스퍼트 중급의 경지. 라울이 밀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전생에 쌓아온 15년간의 실전 경험과 애쉬튼 백작가의 훌륭한 검술, 거기에 개발자의 분석안이라는 사기적인 특성까지 더한 라울은 어느새 무시 못 할 검사가 되어 있었다.
오늘의 자리는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곳.
라울은 투핸드 소드를 몸 뒤쪽으로 빼고는 자세를 낮췄다.
‘와라!’
다음 일격으로 끝을 내려는 듯 라울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갔다.
* * *
대련 도중 갑자기 거리를 벌려 자세를 잡는 두 사람을 보고 보조 심사관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손은 어느새 검자루를 쥐고 있었다.
‘설마 이번에도 사고를 치는 건 아니겠지.’
랭글 심사관은 안 그래도 말이 많이 나오는 이였다. 그가 심사를 맡은 이들은 유난히 부상자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다들 쉬쉬하지만, 그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처벌은커녕 계속해서 심사관을 맡는 것은 증거가 없기도 하거니와 그의 뒷배가 보통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자였다. 명문 애쉬튼 백작가의 직계이기도 했지만, 지금 투리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저놈도 그 정도는 알겠지.’
하지만 이상한 불안감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만약의 경우 경기를 멈춰야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랭글 심사관의 검에 옅은 빛이 어리자 그의 긴장감은 더해졌다.
아무리 검술에서 밀린다지만, 심사관이 먼저 마나 소드를 꺼내 들다니.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시말서감이군. 하긴 저놈은 그런 거 생각하는 놈이 아니었지.’
만약 마나 블레이드(유형화된 검기)를 발동했다면 당장 중단시켰겠지만, 아직은 괜찮은 상황이었다.
반대쪽의 라울 공자의 검에도 노란빛이 살짝 어렸다. 아무래도 정면 승부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정말 대단하다.’
나이를 떠나서 검술에 대한 숙련도와 전투에 대한 센스가 보통이 아니었다.
만약 나이가 더 들어 엑스퍼트에 도달한다면 동년배 중 그의 검을 받아 낼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보조 심사관은 이미 라울이 엑스퍼트 중급에 올랐을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랭글 심사관이 방패로 롱소드의 움직임을 감추며 달려들었고, 라울 역시나 마주 달려가며 뒤로 뻗은 투핸드 소드를 힘차게 움켜쥐었다.
슈우웅.
‘이런 미친놈이!’
충돌 직전 랭글 심사관의 롱소드에서 검붉은 마나 블레이드가 삐쭉 솟아나오는 걸 확인한 보조 심사관은 욕설을 내뱉으며 경기장으로 뛰어들었다.
콰광! 퍽!!
하나의 인형이 핏줄기를 흩날리며 연무장 바닥을 쿠당탕탕 굴렀다.
사색이 된 보조 심사관이 소리쳤다.
“치료사! 빨리 치료사를 불러!!”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