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9
제9화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
허리를 90도로 숙인 지점장의 배웅을 받으며 라울이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것으로 미라 내부에 있는 모든 직업 협회들을 방문했다.
라울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하려는 데 뒤쪽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크흠, 라울 공자님. 도대체 이런 잡서들이 왜 필요합니까??”
대여섯 권의 책을 옆구리에 낀 제이크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부하들도 궁금하다는 듯 라울을 바라봤다. 그들의 품에도 책이 몇 권씩 안겨 있었다.
“잡서라…. 뭐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잡서가 경의 실력을 한 단계 올려줄 거야.”
“아니 그게 무슨…. 뭐 나름대로 자세히 설명된 기술서긴 하지만 책으로 검술 실력을 늘리는 건 진짜 초짜 때나 가능한 거 아닙니까? 우리가 골방에서 책이나 끄적대는 마법사도 아니고….”
제이크가 황당하다는 듯 말하자 다른 이들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필립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살짝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님. 저도 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솔직히 오늘 책 사는 데 들어간 돈이면 제대로 된 파워아머를 사고도 남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다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라울의 자신만만한 말에 모두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라울이 돈 낭비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라울의 황당한 쇼핑에 대한 수군거림은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 * *
방에 돌아온 라울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방 가운데에는 스킬북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걸 바라보니 약간 머쓱해진 라울이 볼을 긁적거렸다.
‘좀 많은가?’
오늘 라울이 스킬북을 사느라 지출한 금액은 무려 20만 골드. 미라에 투자한 금액에 버금가는 거금이었다.
부하들뿐만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가 보더라도 쓸데없는 돈 지랄이라고 할 만했다.
애초에 커넥트의 플레이어들은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의 개수가 제한되어 있었다.
마의 벽이라는 100LV 기준으로 평균 10개 전후. 저랩 단계에선 5개도 사용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울의 표정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오히려 더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걸 아쉬워할 정도였다.
바로 퀘스트 때문이었다.
등급 : ???
목표 : 최소 10종류의 스킬북을 모아 스킬도감에 기록하시오. 스킬북의 종류에 따라 추가 보상이 지급됨.
보상 : [스킬도감] 활성화
추가 보상 : 특성 [???]개방, 스킬 [???]획득.
라울이 퀘스트 창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인벤토리를 열었다.
‘드디어…!’
그동안 색을 잃고 만질 수조차 없었던 물건.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두꺼운 양장본 하나가 도도하게 빛나고 있었다.
라울이 커넥트에 환생하면서 새로 얻은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세 개의 EX등급 특성과 인벤토리에 들어 있던 두 가지의 물건이었다.
그중 하나의 물건이 마침내 라울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시작해볼까?”
묵직한 스킬도감을 왼손에 받쳐 든 라울이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스킬북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스킬북을 스킬도감 근처에 가져다 대자 새파란 빛이 터져 나오며 스킬북을 집어삼켰다.
툭.
그리고 다시 스킬도감이 책을 뱉어냈다.
살펴보니 책에 적힌 내용은 변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책에서 느껴지던 마나의 기운은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스킬북이 아닌 그냥 종이책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식인가?’
같은 식으로 몇 번 더 스킬북을 먹인 라울이 잠시 멈칫거렸다. 이대로 가다간 밤을 새워도 모자라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라울은 스킬도감을 책더미 위에 턱 하니 올려놓고 말했다.
“이거 한 번에 집어삼킬 수 있어?”
“…….”
혹시나 해서 말해봤던 라울이 민망한 표정으로 다시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런데 스킬도감이 살짝 허공에 떠오르며 양쪽으로 쫙 펴지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고는 순식간에 몇 배는 커진 스킬도감이 책 더미를 꿀꺽 집어삼켜 버렸다.
“…헐.”
라울이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는 사이 잠시 소화를 시키는 듯 허공에서 꿈틀거리던 도감.
후두두둑.
두서없이 쏟아져 내린 잡서들 위로 다시 얌전해진 도감이 살포시 떨어져 내렸다.
‘진짜로 내 말을 알아들은 건가?’
하지만 궁금증을 해결할 틈은 없었다.
갑자기 시스템 창이 번뜩이며 퀘스트 완료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퀘스트 [스킬 수집가]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을 확인하세요.
-보상으로 [스킬도감(레어)]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특성 [스킬 수집가(EX)]가 개방되었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카피캣(S)]을 획득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라울의 표정이 환하게 빛났다.
‘그렇지! 투자한 스킬북이 몇 권인데!!’
10권 이상 모으라는 퀘스트에 무려 500권이 넘는 스킬북을 쏟아부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라울은 일단 개방된 특성부터 확인했다.
[스킬 수집가]등급 : EX
효과 : 권능 [스킬도감] 활성화. 스킬 [카피캣] 부여. 스킬북의 습득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스킬을 열심히 모으라는 뜻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울은 다음 보상을 확인했다.
[카피캣]등급 : S랭크
숙련도 : 초급 3LV
효과 : 관찰한 상대방의 스킬을 훔쳐 올 수 있다. 관찰을 마친 스킬은 도감에 기록된다. 숙련도가 상승하면 훔칠 수 있는 스킬의 등급이 상승하고 위력과 효율이 증가한다. (현재 카피 가능한 최대 등급 : B등급)
‘……!?’
과연 S랭크 스킬이라 할 만했다.
아니 솔직히 이런 스킬이 있어도 되나 싶었다. 관찰하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스킬을 훔치다니!
‘분명 여러 가지 조건이나 제약이 붙겠지만… 그래도 완전 사기잖아!!’
전생에 S랭크 스킬들을 여럿 봐왔지만 이 정도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킬은 처음이었다.
만약 숙련도를 마스터한다면? 라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흥분된 심장을 가라앉힌 라울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스킬도감으로 눈을 돌렸다.
레어 등급 아이템이었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정보창을 확인한 라울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뭐야!!”
[스킬도감]등급 : 레어
상태 : 성장가능, 귀속됨.
설명 : 고대의 스킬들이 기록되어 있던 신화급 양장본 [스킬도감]의 복제판. 시공간을 넘으며 모든 기록이 초기화되었다.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면 봉인된 본래의 기능을 되찾을 수 있다.
현재 기록된 총 스킬 수 : 526개
기능 및 효과 상세보기 => 클릭!
스킬도감은 바로 라울이 환생하기 전 손에 넣었던 세 가지의 신화급 아이템 중 하나의 레플리카였던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
라울은 새빨간 토끼눈을 하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밤새 스킬도감의 기능과 효과를 살피느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오셨습니까?”
훈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붉은 머리를 올빽으로 넘긴 단정한 정장 차림의 청년이 그를 맞이했다.
“그래, 설명은 잘 해줬나?”
“지시하신 대로 모두에게 전달했습니다.”
그가 무표정한 얼굴에 기계처럼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마치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보이는 이 청년의 이름은 바로 버나드.
라울이 자신의 비서 겸 하인으로 데려온 인물이었다.
버나드는 집사 이반의 양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백작가에서 일했고 이반에게 직접 교육받은 집사 후계자 중 한 명이었다. 게다가 기억력도 뛰어나고 일 처리가 깔끔하기로 소문난 인재였다.
하지만 라울이 그를 선택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스킬북은? 사용해봤어?”
라울의 물음에 버나드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바닥을 펴 아래로 뻗었다.
그러자 버나드의 손바닥 아래로 조그만 소용돌이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쉬이이잉.
모래와 나뭇잎들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빙글빙글 허공을 맴도는 게 눈에 확 들어왔다.
“훌륭해. 역시 버나드야!”
라울이 한쪽 어깨를 두드려 주며 그의 얼굴을 차분히 바라봤다.
*이름 : 버나드 (27세)
*레벨 : 21
*직업 : 집사 후보생, 초급 바람술사
*소속 : 애쉬튼 백작가, [퍼스트] 길드.
*재능 : 행정, 관리, 초능력
*스탯 : 잠재능력(A등급)
[근력 17] [민첩 18] [체력 24] [지력 53] [정신력 46] [영력 23] [감각 41]*고유 특성 : 칼같은 관리자(A-), 냉철한 이성(B), 바람처럼(B-)
아직 스탯상으론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관리자로, 초능력자로 대성할 수 있는 자질은 충분해 보였다.
뿌듯한 마음도 잠시.
눈을 돌려 훈련장을 바라보자, 그곳은 혼란에 빠진 이들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이게 뭐야?? 눈에 막 이상한 게 보여!!”
“귀, 귀신이 씐 게 분명해! 신관을 찾아야….”
“이 책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도대체??”
“이 길드 채팅이란 건 뭐야??”
버나드가 분명히 설명해 줬음에도 제대로 이해한 이가 별로 없어 보였다.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은 라울이 외쳤다.
“모두 동작 그만!!!”
부하들에게 길드, 퀘스트, 스킬북 등 게임 시스템을 설명하는 데는 반나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 * *
“인간, 죽어라! 취익!!”
커다란 도끼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떨어져 내린다.
도끼 뒤로 보이는 것은 벌렁 뒤집어진 코에 뾰족한 송곳니가 돌출된 몬스터 오크.
얼마나 인상을 쓰고 있는지 얼굴 전체에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혈관이 불룩거리고 있었다.
‘못생겼군.’
퍼억!!
도끼를 슬쩍 흘려내고 내지른 라울의 주먹질 한 번에 머리 반쪽이 터져 나가 버렸다.
“취익! 한꺼번에, 공격하자!! 취익!”
“돌격!! 취익!!”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십여 마리의 오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손도끼가 날아들고 기다란 글레이브(반월도가 달린 창의 일종)가 머리를 베어온다.
얼굴보다 커다란 전투도끼도 사방에서 흉험한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리자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마치 유령처럼 쏟아지는 무기들 사이를 비켜 지나간 라울.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먹을 한 번 내지를 때마다 오크들의 머리가 퍽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이, 인간 강하다, 취익!”
배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린 오크가 마지막 말을 내뱉고는 쓰러졌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주변에 서 있던 모든 오크들이 몰살당한 것이다.
“역시 라울 님! 오크 병사도 고블린 사냥꾼과 별반 다를 게 없군요. 레벨이란 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새 나타난 제이크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진짜 놀라울 뿐입니다. 3주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군요!”
필립조차도 감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라울을 칭찬했다.
“별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이 정도는 기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빨리 정리하고 따라와!”
라울은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필립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기사라 할지라도 무장한 오크들 사이에서 맨주먹으로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도 공격을 모조리 피해내면서.
‘그리고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