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0
제10화
라울이 몸을 돌리고 손짓하자 주변 오크들의 사체에서 녹색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휘리링~!
한 덩이의 구체가 되어 공중에 뭉친 핏물은 이내 라울이 들고 있던 가죽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염동력이라….’
지난 삼 주 동안 수도 없이 봐서 이젠 익숙해졌지만 처음에 봤을 땐 기겁을 했다.
마법에 익숙한 커넥트의 주민들에게도 초능력이란 이능은 놀라움 그 자체였으니까.
주머니를 챙긴 라울이 나무 사이로 모습을 감추자 제이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이구, 우리 공자님은 한순간도 쉬질 않으시는구나. 내가 이러려고 미라에 온 게 아닌데!”
“그렇게 노력하시니 그 짧은 시간에 이만큼 강해진 것이겠지. 너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조만간 공자님께 따라잡힐 거다.”
필립의 쓴소리에 제이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주둥이를 내밀었다.
“아아, 몰라요. 이건 호위도 아니고 훈련도 아니고…. 대체 왜 제가 몬스터 사체 처리나 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이크는 어느새 꺼내든 목검으로 오크의 뼈마디를 분지르며 가죽을 벗겨냈다.
‘실없는 놈.’
피식 웃음 지은 필립도 품속에서 작은 나무 단검을 꺼내 오크의 몸통을 향해 휘둘렀다.
쩌어억.
허공을 격하고 날아간 반달 모양의 기운이 오크의 가죽을 반듯하게 갈라버렸다.
‘반월참이라. 쓸만하군.’
라울 공자가 시키는 대로 목검으로 연습하니 금방 몸에 익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숙련도를 중급으로 올려야 다음 스킬북을 배울 수 있다고 했던가? 다른 스킬은 어떤 느낌일까?’
필립의 단검이 좀 더 빠르게 움직였다.
라울에게 선물받은 스킬북 네 권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고 있었다.
* * *
“후아. 이걸로 이번 퀘스트는 끝인가? 갑갑해 죽는 줄 알았네.”
스킬도감과 관련된 퀘스트 때문에 오로지 주먹으로만 몬스터를 잡아야 했다.
덕분에 사냥 시간도 길어지고 피로감도 상당했다.
‘그래도 확실히 강해졌어.’
스킬도감에는 사기성 짙은 패시브가 붙어 있었다.
기록된 스킬 수에 비례하여 전체 스킬이 강화되는 어마어마한 효과!
레플리카라지만 신화급 아이템의 위용이었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근접 스킬 강화효과만 해도 총 15%.
봉인을 풀고 스킬북을 더 모은다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후드득.
주먹에 묻은 핏물을 털어버리며 라울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다른 오크보다 머리 하나는 커다란 오크 전사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어디 보자, 뭐가 나왔나?? 오호, 이건 C랭크 [워 크라이] 스킬북!! 레어 등급 오크전사 건틀렛도 나왔구나!”
필드 보스 몬스터인 만큼 일반 오크들보다 보상이 풍족했다.
하루에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매번 D, C랭크의 스킬북을 제공해주는 아주 착한 녀석이었다.
지난 삼 주 동안 라울은 미친 듯이 필드 몬스터를 사냥하고 다녔다.
처음에 상대한 것은 20~30레벨 몬스터 [붉은 갈기 늑대]였다.
한 놈 한 놈은 그다지 강하지 않아도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30레벨을 찍고 나선 고블린 사냥꾼을 잡았다.
혼자 다니는 놈이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피리를 불어 동료를 불러들였다.
보통 피리를 불기 전에 재빨리 잡는 게 요령인데, 라울은 일부러 동료를 부르게 한 뒤 한꺼번에 처리해 버렸다.
그리고 40레벨이 된 이후에 사냥한 것이 바로 오크 병사.
마나를 쓰지 못함에도 소드 유저 수준의 전투력을 갖춘 몬스터였다.
지능도 상당해 무리를 지으면 군대가 나서서 싸워야 할 정도로 까다로운 상대였다.
하지만 역시나 강해진 라울의 상대는 아니었다.
‘46레벨이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그래도 떠나기 전에 50렙을 찍을 순 있겠는걸.’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일정을 떠올리며 퀘스트 창을 확인하려던 때였다.
「라울 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길드 통신으로 버나드의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데? 퀘스트라도 엎어졌어?」
딱히 미라에서 문제 생길 일이 떠오르지 않았던 라울이 태연하게 물어봤다.
「길드원분들이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듯합니다.」
「뭐? 어디야?? 자세히 말해봐!!」
라울이 오크 전사의 시체를 버려두고 도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3광장 후미진 곳에서 랜달 백작가 일행이 길드원분들을 구타하고 있습니다. 랜달 백작가의 세 공자와 호위 15명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합니다.」
라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매섭게 일그러졌다.
‘이런 미친놈들이!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기어이 사고를 치는구나!!’
「모든 단원은 지금 즉시 제3광장 앞으로 집결!!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손대지 말고 대기해!!」
라울의 성난 음성이 길드 통신 내부에 울려 퍼졌다.
* * *
랜달 백작가. 애쉬튼 백작가와 마찬가지로 루벤 왕국 5대 무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개국 초기부터 명문 검가로 인정받은 애쉬튼 백작가와 달리 랜달 백작가가 5대 무가에 편입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현 가주인 허드슨 드 랜달 백작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서 왕국의 4대 무가가 5대 무가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역사가 짧은 신흥 무가가 확실하게 명문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시간을 들여 훌륭한 기사들을 꾸준히 배출하는 것,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한 전공을 세우는 것, 혹은 경쟁자를 짓밟는 것 등.
랜달 백작가는 그 답을 애쉬튼 백작가에서 찾았다.
명문가이지만 근래에 소드 마스터가 배출되지 않아 세가 기울기 시작한 가문.
그리고 5대 무가 중에서 가장 정치색이 옅어 만만한 가문.
그게 그들이 바라보는 애쉬튼 백작가였으니까.
덕분에 왕국 곳곳에서 두 가문의 충돌이 벌어졌다. 물론 거의 대부분 랜달 백작가의 시비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아직은 큰 문제 없이 무난하게 수습되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승자가 랜달 백작가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소드 마스터가 있고 없고는 그만큼 큰 차이였으니….
미라에 머물고 있던 세 명의 청년 귀족. 랜달 백작가의 방계 혈족에 해당하는 이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 중 가장 형에 해당하는 라몬이 입을 열었다.
“진작에 몇 놈 조져버릴 걸 그랬어. 그냥 놔두니까 겉멋만 든 애쉬튼 놈들이 설치고 다니잖아.”
푸슛.
“크악!!”
심장에 검을 찔린 어린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라몬이 얼굴에 튀어오른 피를 혀로 핥으며 찔러 넣었던 검을 뽑았다.
“그러니까 제 말을 들었어야지요, 형님. 그럼 이 재밌는 놀이를 좀 더 오래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옆에 서 있던 사촌동생 제리가 또한 다른 병사의 미간에 검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그래도 큰 할아버님께서 자중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애초에 여기에 처박히게 된 것도 사고를 쳐서잖아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막내 케일이었지만 그가 들고 있는 모닝스타에는 이미 누군가의 뇌수와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게다가 입꼬리가 올라가 파들거리는 게 전혀 반성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때 피범벅이 된 바닥에 쓰러져 있던 기사 수련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크헉!”
케일이 들고 있던 모닝스타로 기사 수련생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그러고는 쪼그려 앉아 박살 난 머리 조각에 대고 말했다.
“그냥 니들은 존재 자체가 민폐야. 왜 재수 없게 여기로 기어들어 와서 설치고 다녀? 엉?”
그때 심장이 꿰뚫렸던 어린 병사가 다시 숨을 내쉬며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 후회할 거야! 우리 공자님이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그르르.”
어린 병사의 목젖을 검으로 베어버린 라몬이 비웃음을 흘렸다.
“크하하. 제발 빨리 오라고 그래라. 어차피 우리도 그 애송이 3공자에게 볼일이 있으니. 그나저나 신기하군. 진짜 계속 죽여도 되살아나잖아?”
“제가 그렇다고 했잖습니까? 그러니까 라울이란 꼬맹이도 죽여 버립시다! 어차피 진짜로 죽지도 않을 텐데.”
피를 보고 흥분한 제리가 소리치자 케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유 도시 안에서 무가끼리 서로에게 검을 겨누지 않기로 협정했다고 들었는데요…. 괜히 직계까지 손댔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어쩌죠?”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면 지들이 어쩔 건데? 아니지, 생각해보면 잘 된 거 아냐? 이참에 껍데기만 남은 애쉬튼가를 밟아버리면 되잖아? 오히려 큰할아버지에게 칭찬받을지도 몰라!”
라몬의 말에 두 동생도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시비가 붙으면 한 걸음 물러서는 애쉬튼가의 처신 때문에 확실히 밟아줄 기회가 없었으니까.
잘하면 근신이 풀려 영지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까지 생겼다.
애초에 이들이 일을 벌인 이유는 단순한 시기심 때문이었다.
라울보다 먼저 미라에 도착했던 이들 일행은 관사가 아닌 여관에 머물고 있었다.
이제 20대에 불과했고 작위도 없는 백작가의 방계 귀족들이었다. 시장이 굳이 관사를 내줄 이유가 없는 건 당연했다.
시장과 만난 것도 처음 도시에 도착했을 때 잠시 인사를 나눈 게 끝이었다.
그런데 라울은?
도착하자마자 가장 좋은 관사에 머물렀을 뿐만 아니라 거의 매일 시장과 함께 식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들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부하 놈들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미라 시민들의 의뢰를 수행한다며 설치고 돌아다녔다.
덕분에 놈의 평판은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었다. 매일 노름과 술로 하루를 보내며 시민들을 괴롭히고 다니는 자신들과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놈들의 쪽수가 많아서 참았지만….’
부하들의 보고를 들어보니 새카맣게 어린놈들이 태반이었고 도시 내에선 무기도 놓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사단원만 15명을 대동한 자신들이 불리할 이유가 없단 얘기였다.
‘당분간 경비병도 오지 않을 테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라울이란 놈도 한 삼십 번 정도 죽여볼까? 랜달이란 성만 들어도 벌벌 떨도록 말이지. 흐흐.’
이미 경비병까지 매수해 놓았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라몬은 라울을 괴롭힐 생각에 시시덕거리며 다시 한번 병사에게 무기를 내리치려고 했다.
바로 그때!!
뻑 소리가 나며 라몬의 머리통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
후두두둑. 털썩.
뇌수가 사방으로 튀며 라몬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일순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버나드. 이들을 신전으로 데려가. 그리고 시장에게 가서 지금 이 시각 이후로 아무도 이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전해. 가라!”
어느새 구해낸 것이었을까. 라울은 축 늘어져 있는 세 부하를 버나드에게 넘겨주고 돌아섰다.
그리고 삭풍이 일 것 같은 차가운 눈으로 랜달 백작가의 쓰레기들을 노려보았다.
“필립. 지금부터 아무도 이 장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분부하신 대로!”
필립이 라울의 지시에 고개를 숙여 대답하고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대원들이 애쉬튼 백작가의 망토를 휘날리며 일사불란하게 주변을 포위했다.
“발검!”
필립이 외침에 대원들이 일제히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대검을 꺼내 적들에게 겨누었다.
사아아.
형언할 수 없는 살벌한 기운이 랜달 백작가의 기사들을 압박했다.
‘무기 없이 돌아다닌다며? 저 검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이, 이게 정말 기사가 아닌 이들이 낼 수 있는 기세란 말인가??’
그들의 머릿속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어디 가나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감히 랜달 백작가의 혈족에게 손을 대?”
제리가 라울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애쉬튼 백작가에선 주먹질부터 하라고 가르치나 보지? 하긴 약한 놈들이 하는 짓이야 뻔하지. 비겁한 새끼!”
거기에 더해 케일마저 적반하장 큰소리를 냈다.
누가 같은 핏줄 아니랄까 봐 둘 다 상황 파악도 못하고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라울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인벤토리에서 바스타드 소드 한 자루를 꺼내 이리저리 휘둘러 볼 뿐.
이내 대검을 앞으로 겨눈 라울이 말했다.
“여긴 나 혼자 정리한다. 아무도 끼어들지 마!”
“괜찮으시겠습니까?”
필립이 담담하게 물었다. 그러자 라울이 당연하다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쓰레기 치우는 데 굳이 여러 사람 손 더럽힐 필요 없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