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8
제8화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님.”
뚜벅뚜벅 걸음을 옮긴 라울이 레이날도와 악수를 나눴다.
‘허우대는 멀쩡하게 생겼는데?’
라울의 외모는 레이날도가 예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작은 키에 비쩍 마른 팔다리, 창백한 얼굴을 기대했던 그로서는 정말 의외였다.
키는 그와 비슷할 정도로 컸고 팔다리에는 적당히 근육이 붙어 날렵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이 굉장히 잘생겼다.
하마터면 넋 놓고 얼굴만 쳐다볼 뻔한 레이날도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는 말을 꺼냈다.
“그래, 라울 공자. 본 도시에는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
“이곳이 수련하기 좋은 곳이라는 얘길 들었습니다.”
라울의 대답을 들은 레이날도는 역시나 하는 생각에 맥이 빠졌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멘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이지. 수련할 곳을 원한다면 정말 잘 찾아왔다네. 이곳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가이드도 아닌데 매번 이런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게 자존심 상했지만 돈이 있어야 체면도 차릴 수 있는 법이었다.
‘어차피 다른 녀석들처럼 적당히 수련하는 척하면서 시간이나 때우다 돌아가겠지.’
귀족가 자제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둘 중 하나였다.
영지에서 사고를 치거나 말썽을 피워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보낸다거나 수련하기 좋다는 소문이 진짜인지 궁금해서 방문하거나.
미라가 수련하기 좋은 곳이란 건 거짓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 누구도 서로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는 신의 축복이 내린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신분은 상관없었다. 누구든 체류 허가를 받는다면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다.
다치면 상처가 회복되고 죽으면 목숨이 되살아났다. 말 그대로 신의 가호였다.
그래서 도시 내부의 훈련장을 사용하면 목숨을 잃을 위험이 없이 진검으로 대련을 할 수 있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귀족가 자제들에게 얼마나 훌륭한 수련 장소인가!
그런데도 귀족가의 애송이들이 수련을 기피하는 이유는 ‘고통’ 때문이었다.
목숨을 지켜주긴 하지만 고통마저 없애주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곱게 자란 이들이 그런 힘든 수련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레이날도는 라울 또한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문에 따르면 나약하기 그지없는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라울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레이날도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주받은 숲의 출입을 허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
레이날도는 살짝 굳어진 표정으로 라울을 바라봤다.
‘이 녀석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저런 얘길 꺼낸 것일까?’
하지만 라울의 표정에선 무엇도 알아낼 수 없었다.
잠깐의 적막을 깨고 레이날도가 입을 열었다.
“그곳은 개방할 수 없는 곳이네. 너무 위험해. 들어가봤자 아무 의미도 없고.”
저주받은 숲이라 함은 미라의 영역 중 몬스터들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문제는 몬스터는 되살아나지만 사람은 되살아나지 못한다는 것.
사냥해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몬스터를 잡기 위해 목숨 걸고 들어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과거에도 호기심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시장이 된 이후론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저주받은 숲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련을 위해서 꼭 들어가 보고 싶네요. 만약 출입을 허가해 주신다면 이 도시에 자금을 투자할 생각도 있습니다만.”
레이날도는 순간 솔깃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돈이 궁하단 소릴 어디서 들은 모양이군. 하지만 푼돈 때문에 젊은 목숨을 위험에 내몰 순 없지. 괜히 잘못되기라도 하면 백작가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게다가 투자라고 했지만 백작가의 막내 공자가 돈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아무리 부잣집 아들이라도 많아 봐야 5,000골드를 넘기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 정도 금액이라도 지금 그의 입장에선 감지덕지하지만 저주받은 숲을 개방하는 위험을 감수할 정도까진 아니었다.
레이날도는 정중하게 거절하기로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투자하겠다는 말은 고맙지만 저주받은 숲을 열어줄 순….”
“오십만 골드!!”
“…있지! 당연히 열어주려고 했다네!! 언제부터 들어갈 생각인가?? 당장이라도 상관없어.”
레이날도는 벌떡 일어나 라울의 양손을 붙잡고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금화 자루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협상은 순조롭게 이뤄질 것 같았다.
* * *
라울 일행은 시장이 내준 관사에 머물게 되었다.
50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두 머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3층짜리 건물이었고 후원에는 넓은 훈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지하에는 개인 수련장, 수영장, 목욕탕까지 갖춰져 있었으니 시장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라울은 가장 화려하게 치장된 객실 테라스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시장도 고생이 많군. 그저 근엄하고 무뚝뚝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생에선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때의 미라는 굉장히 번화하고 부유하며 역동적인 곳이었다.
당연히 시장의 힘과 권한은 주변 영지를 압도할 정도로 높았고 한 달 전에 약속을 잡지 않으면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권력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미라는 그저 개발되지 않은 불균형한 도시에 불과했다.
방문객보다 너무나도 많은 숙박시설.
문을 연 곳이 몇 군데 없는 거대한 상점가.
주민의 수에 비해 과도한 편의 시설과 각종 길드.
애초에 플레이어들이 머물 것을 계산하고 도시가 설계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도시를 운영하면서 여태 파산하지 않은 하트 가문의 시장들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덕분에 라울은 원하던 바를 모두 이루었다.
저주받은 숲의 출입 허가는 그저 곁가지일 뿐 진짜로 노린 것은 개발되지 않은 미라의 부동산이었다.
라울은 레이날도 시장과의 협상을 통해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금싸라기 땅들을 구매했고 외성의 목 좋은 상점도 다수 인수하기로 했다.
그리고 구매한 땅 위에는 귀족들이 머물 고급 주택, 플레이어 길드가 머물 길드 하우스, 일반 플레이어들을 위한 공동 주택 외에도 10층짜리 최고급 호텔까지 건축할 예정이었다.
지금은 헐값에 불과한 이 땅이 수백 배는 비싼 금싸라기로 바뀌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이 유입되고 대륙에 전쟁이 터지게 되면, 신의 축복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는 이곳은 돈 주고도 못 살 최고의 피난처가 될 테니까.
‘실제로 전생에선 아무에게도 땅을 팔지 않았지. 그저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돈을 벌 수 있었으니. 미안하지만 이번엔 내가 좀 나눠 가져야겠어.’
다행히 예산은 넉넉했다.
토너먼트 도박에 베팅해 벌어들인 450만 골드와 백작에게 빌린 50만 골드를 합해 총 500만 골드. 백작령 전체 1년 예산의 절반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1골드가 대략 10만 원에 거래되었으니, 지구 돈으로 따져도 5,0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애초에 판돈 자체가 달랐다.
백작령에 소속된 종속가문 수십 곳에 주변 영지들을 포함하면 인구만 해도 수백만이 넘었다.
주민들 이외에도 씀씀이가 큰 귀족들과 기사들, 거기에 전문 도박꾼들까지 들러붙었으니….
‘전생에도 랭커가 되면서 돈을 좀 만져봤다고 생각했는데. 노는 물이 다르니 오가는 액수도 차원이 다르구나. 하지만….’
다가올 전쟁과 그가 마주할 잠재적인 적들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돈으론 한참 부족했다. 무슨 수를 쓰든 일이 터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돈과 자금줄을 만들어야 했다.
자유 도시 미라는 시작에 불과했다.
라울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도착하기 전 최대한 많은 자유 도시에 알박기를 해놓을 예정이다.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플레이어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생각이고.
전생에는 거대 길드들의 자금력에 밀려 주저앉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어차피 놈들은 돈지랄을 하겠지? 하지만 전처럼 쉽진 않을 거다. 네놈들의 잘난 그 돈! 내가 거머리처럼 쪽쪽 빨아먹어 주마.’
라울은 주머니 속의 금화 뭉치를 손으로 움켜쥐며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 * *
다음 날.
라울은 아침 일찍 관청에 들러 길드를 등록했다.
시스템에 길드 기능이 생긴 이상 뒤로 미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길드명은 .
최초의 길드이자 가장 앞서나가는 길드가 되겠다는 뜻에서 결정한 이름이었다.
당연히 길드 마스터는 라울이었고 길드원들은….
“그러니까 여기에 서명하면 된다는 겁니까?”
제이크가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다른 이들은 이미 다 서명했어. 대체 언제까지 시간을 끌 셈이야!?”
라울이 살짝 언성을 높이자 제이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마지못해 펜을 굴렸다.
“어머니가 아무 데나 서명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분명히 어젯밤에 다 설명해 줬건만. 이 능글맞은 녀석!’
라울이 제이크를 한 번 째려보고는 마지막으로 그의 서명이 담긴 용지를 챙겼다.
이로써 그와 함께 온 50명의 부하는 모두 그의 길드에 가입하게 되었다.
등록이 완료되는 내일쯤이면 그들은 아마도 신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커넥트에선 주민들도 플레이어 길드에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길드에 가입하는 순간 그들도 준 플레이어로서 시스템의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몇 가지 기능에 제약을 받지만 그들도 플레이어처럼 사냥을 통해 빠르게 레벨업 할 수 있단 얘기였다.
하지만 실제로 주민이 플레이어 길드에서 활동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플레이어 입장에선 제한된 길드 인원을 주민으로 채울 이유가 없었으니까. 필요하면 용병으로 고용해도 충분했다.
‘게다가 주민은 한 번 죽으면 끝이야. 굳이 투자까지 해가며 길드원으로 받을 필요가 없지. 하지만 내 입장은 달라.’
믿기 어려운 플레이어들보다 부하들을 길드원으로 받는 게 당연했다. 그들은 라울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고 영지를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적이 있으니까.
라울은 서명받은 서류를 관청에 접수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길드 신청을 마쳤으니 이제 남은 것은 성장을 위한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는 것이었다.
[전사 협회 미라 지부]간판을 한번 슬쩍 올려다본 라울이 부하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많은 손님에 깜짝 놀란 여직원이 살짝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스킬북을 보러 왔어. 여기는 몇 랭크 스킬까지 판매하지?”
“아, 스킬북을 구매하시려고요? 저희 지부에서는 최고 C랭크 스킬까지 판매하고 있습니다.”
“호오, C랭크까지?”
기껏해야 D랭크 스킬북까지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라울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직원이 바로 말을 덧붙였다.
“저, 일반 손님들께는 D랭크까지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C랭크 스킬북은 VIP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
라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VIP의 자격요건은?”
“VIP가 되려면 우리 협회 퀘스트를 통해 기여도를 높이셔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구매 실적이 필요한데, 액수가 조금 큽니다. 그러니 일단 기여도를 높이면서….”
“됐고. 얼마가 필요한데??”
여직원은 말하기 민망했는지 살짝 눈치를 보며 작게 얘기했다.
“마, 만 골드요. 좀 과하죠?”
라울이 피식 웃었다.
“얼마 안 되네. 그럼 일단 D랭크까지 사도록 할게.”
“어느 계열 스킬북을 보여드릴까요? 검, 창, 도끼, 둔기, 방패. 말만 하세요!”
“전부 다 줘.”
“네??”
“F랭크부터 D랭크까지 종류별로 싹 다 사겠다고.”
손가락으로 왼쪽부터 오른쪽 끝까지 선반을 쭉 가리키는 라울의 모습에 여직원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