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여느 때처럼 평온한 날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휘몰아칠 폭풍전야임을 대통령도 천명국도 알고 있었다. 최준호가 등장한 이후, 일상에서 느끼는 평온함은 더 이상 평온함이 아니었다.
곧 닥쳐올 폭풍 이전 아주 약간의 휴식일 뿐. 주기가 불규칙하고 휘몰아칠 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몰아붙이기에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그가 국회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을 예상한 사람도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히 그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최준호가 국회에 나타났다고?”
보고를 받은 대통령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옆에 있던 천명국 또한 가슴이 철렁한 기색이었다.
지금 청문회가 열리는 걸 보면 최준호와 궁합이 최악이라는 걸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누굴 죽이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청문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서 나타난 거라고 합니다.”
“…일단 죽은 사람이 없으니 다행이군.”
대통령의 안도에 천명국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지금은 죽지 않았어도 곧이어 죽어 나갈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실현이 가능한 현실이었다.
“장난질을 하려고 하더니 임자를 만났군.”
“그보다 시급한 건 국회 상황입니다.”
“심각하지. 그런데.”
대통령은 다급한 천명국과 달리 느긋했다.
“이거 재밌게 돌아가지 않나?”
특검에서 여당 의원들과 재계가 보인 저항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그들에게 있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최준호의 실종 사건은 자신들이 연루된 일을 묻어버릴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장소에 최준호가 나타난 것이다.
천명국은 남 일 얘기하듯 태연한 대통령의 모습에 속이 터졌다.
“그렇게 보실 때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아니라면…….”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그 장소부터 뒤집었겠지. 최준호도 더 이상 예전처럼 막무가내가 아니야. 예측 불가능해졌을 뿐이지.”
그게 더 심한 거 아니냐고 천명국이 중얼거렸지만 대통령은 듣는 척도 안 했다.
“그럼 국회 TV나 볼까? 내가 살다 처음으로 청문회를 시청하게 되는군.”
“…….”
싱글벙글 웃는 대통령과 달리 천명국의 안색은 흙빛이 되어 있었다.
*
* *
청문회라는 거, TV로 보다가 현장에 참석한 건 처음이었다.
매번 TV를 볼 때마다 국회의원이 호통 치던데 어떨지 궁금했다.
이번 청문회는 동화 육성 체계에 관련된 정치인과 기업인, 각성자를 조사하는 자리다. 그런데 신기한 건 연루되어 있다고 알려진 정치인들이 위원석에 앉아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자기 혐의에 대해 자기가 질문하게 됐나? 셀프 면죄부를 발급하기라도 하는 건지 세상 참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 동화 육성 체계는 피난 온 중국 고위 간부에게서 우연히 입수한 것으로…….”
처음에는 얼어붙어 있었지만, 곧 본격적인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거랑 많이 다른데?
언제부터 동화 육성 체계가 우연히 입수된 것이고, 사이비 종교 단체의 일탈로 진행된 게 된 거지?
가만 두고 보려고 했던 마음이 30분도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잠깐만요.”
손을 들고 개입하니 주변에서 시선이 쏟아졌다. 난 초청받지 않았지만 국가 소속 초인이니 몇 마디 해도 상관없겠지.
“동화 육성 체계는 그걸 원한 정치인들과 각성자들이 있었고, 기업인들의 후원이 이루어지면서 진행된 걸로 아는데 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겁니까? 증인 분.”
“예, 예!”
“왜 제가 아는 거랑 다른 얘기하는 겁니까?”
“어, 그게 그러니까…….”
나와 시선이 마주친 증인이 버벅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안 하는 거 같은데.
“위증하면 죽일 겁니다.”
“힉! 마, 말하겠습니다!”
기겁한 증인은 동화 육성 체계를 원한 이름을 술술 불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현재 자리하고 있는 정치인도 있고, 유력 각성자도 있고, 상당한 규모의 기업인도 있었다.
이름이 하나씩 거론될 때마다 장내 분위기가 들썩였다.
이제야 제대로 좀 진행되는군.
여유롭던 정치인들의 얼굴이 조금씩 흙빛으로 물드는 모습도 재미가 있었다. 이 맛에 청문회를 보는 건가 싶었다.
근데 내가 생각한 것만큼 얘기가 나오지는 않는데.
생각보다 지지부진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1부가 끝났다.
난 증인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증인은 빌런입니까?”
“저, 저는 증인입니다.”
빌런이로군. 내가 지그시 쳐다보자 녀석이 자신은 지존 소속 직원이었다고 밝혔다.
“빌런이 위증한 거네?”
“힉! 사, 살려…….”
난 개의치 않고 손을 뻗었다. 포스 탄환은 그대로 쏘아져 빌런의 머리에 퍽! 하는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꺄아아악!
비명 소리를 시작으로 장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국회 TV가 방영 중인데 이거 시청 연령을 19세로 올려야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증언이 오락가락하니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거지.”
마침 1부가 종료되었다. 사색이 된 사람들이 죽은 빌런의 시체를 치우기 시작했고, 웅성거림이 번져가는 청문회장에서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천명국이었다.
“초인님.”
“실장님이 여긴 어떤 일로?”
“초인님과 관련된 일이니 왔습니다. 잠깐 자리를 옮기시죠.”
그리 말한 천명국은 날 데리고 이동했다. 비어있는 방으로 들어오니 망연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대체 여기에는 무슨 일로…….”
“제가 조사한 일을 대충 처리하려 한다는 말이 들려서 왔습니다. 근데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국회 TV에 나오는데 당연히 알 수밖에요. 안 그래도 지금 국회 TV 시청률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청와대에서 국회 TV를 볼 줄 몰랐다.
그걸 굳이 찾아보는 사람이 있었나? 하긴, 보는 사람이 있으니 소식이 퍼지는 거겠지.
“다시 화제가 되니 대충 넘기지는 못하겠네요.”
“대충 넘기면 전부 죽이실 겁니까.”
“그럴 리가요.”
“그러고도 남으실 거라 더 걱정이 됩니다.”
“진짜 아닙니다.”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손을 썼겠지. 그냥 지켜보려는 거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도 뭉개려고 들지. 만약 뭉개려고 하면 내 방식대로 처리하면 되는 거고.
증인을 처리한 건 빌런 녀석이 거짓말까지 해서 그렇고.
“이게 제대로 처리되어야 천 실장님 대권가도에 도움이 되잖아요.”
“…꼭 그런 걸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전 실장님을 위해 참고 있는 건데요.”
“그건 감사합니다. 초인님의 마음에 들도록 처리하겠습니다.”
“예.”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겠습니다.”
나라고 뭐 죽이는 게 좋은 줄 아나.
더이상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 손을 쓰는 거지.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손을 쓰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
* *
점심시간이 끝나고 재개된 2부에서 증인의 출석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내가 볼 땐 맹탕이었다. 분명 더 강력한 혐의들이 즐비한데 약한 것들만 꺼내는 느낌? 이것만 듣고 있다 보면 별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처벌도 약하겠지.
증인들은 사색이 된 채 내 눈치를 보면서 증언을 이어나갔다.
마음에 안 드는데.
가만히 듣고 있다가 손을 들었다.
“증인은 빌런입니까?”
“아, 아닙니다. 저는 위증하지 않았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빌런이 아니면 안 죽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손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살려줬다고 감사하기는.
아무튼 증인이 나와서 더 떠드는 건 의미가 없는 듯했다.
“제가 증언을 해도 됩니까?”
위원장에게 묻자, 그는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최준호 초인은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므로 증언석에 앉을 수 없습니다.”
“꼭 초대받은 사람만 앉을 수 있는 겁니까?”
“그건 관례적인 부분으로…….”
“그러니까 되는지 안 되는지만 말해주시죠.”
뭔 권위를 이렇게 내세우려고 하는 건지.
나와 시선이 마주친 위원장은 침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안 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럼 제가 말 좀 보태도록 하죠. 괜찮습니까?”
“…그러십시오.”
위원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증언석에 앉았다. 그리고는 동화 육성 체계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을 세뇌하여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중국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여당 정치인들의 필요에 의해 한국에 들여왔으며, 자신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길드 측 각성자들과 유력 기업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세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사이비 종교를 동원했고, 종교 교리를 동원하여 끌어들이거나 사채업자를 동원해서 빚을 지게 만든 뒤 인적 자원을 확보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동화 육성 프로젝트에 의해 세뇌되었다.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게 거기 있는 강우태 의원과 고영배 의원, 이우식 의원인데 요즘은 범인이 범죄 현장에 수사권한을 부여받는 겁니까?”
“그 이전에 우리는 국민에게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원 신분이 범죄자 신분보다 앞선다는 거로군요.”
“…….”
나와 시선이 마주친 강우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범죄를 저질러놓고 뭐가 억울하다고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잘 모르겠다.
강우태가 발끈해서 일어났다.
“최준호 초인! 우리는 어디까지나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담대한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각성자를 세뇌하려고 했다? 이거 더 나갔으면 나도 세뇌하려 했겠네요.”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만만한 각성자만 세뇌하려고 했다는 거?”
“그…….”
강우태는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말장난에 불과했다.
딱 봐도 잔머리 굴려서 지금 상황을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 눈에 보였다.
굳이 들어줄 생각도 없다.
그래도 내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걸 느끼는 게 바로 손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데, 굳이 참을 필요가 있을까?
이성과 본능의 아슬아슬한 사이에서 간신히 이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도.
“말다툼은 내 취향이 아닌데.”
저런 녀석은 머리부터 날려버리면 깔끔하게 처리되는데.
자꾸 충동에 휩싸여 손이 움찔거렸다.
“…….”
그런데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장내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사사건건 변명하던 강우태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엄청 갈군 것처럼 보이겠군.
“증인, 과격한 발언은 삼가길 바랍니다.”
정작 그 말을 하는 위원장의 얼굴도 핼쑥했다.
“손도 안 썼는데 뭐가 과격하단 겁니까?”
“…위협이 될 말을 줄여달라는 이야기입니다.”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근데 제가 개소리를 들으면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지병이 있어서. 이거 불치병이더군요.”
혐의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는데 혓바닥 놀리는 걸로 빠져나가려고 하면 안 되지.
천명국을 위해 특검에 맡겨두려고 했지만 이게 맞는 건가 회의감이 들었다.
그냥 다 죽여버리고 ‘얘 나쁜 놈이에요.’ 이럴 걸 그랬나.
난 강우태를 보고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강우태 의원님. 그래서 지금 제가 말한 것 중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건, 인정하긴 인정하는데 최준호 초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나쁜 의도로 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라를 위해서 소수가 희생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입니다. 잘못된 게 있다면 잘못을 인정하지만 이렇게 큰일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판단은 판사가 할 것이다?”
“…….”
강우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래, 재판으로 가면 어떻게든 결과가 나오겠지.
그 과정까지 참 지난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시 국가 시스템은 나랑 맞지 않는다.
난 위원장을 보고 물었다.
“혐의 다 인정했는데 안 잡아갑니까?”
“…청문회가 끝나고 표결에 부칠 겁니다.”
“반대가 많으면 안 잡아간다는 뜻? 표결도 지켜봐야겠네요.”
누가 반대하는 건지 알아야 나중에 처리하기 편할 테니.
한통속이면 다 그놈이 그놈 아닌가. 내가 실종되었다고 할 때 떠든 녀석들 이름은 다 기록해뒀으니 걸릴 때마다 처리하면 된다.
“표결을 진행하겠습니다.”
“위, 위원장님!”
강우태의 얼굴은 아예 흙빛이 되어 있었다. 죽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런 표정인지 모르겠다. 내 방식대로 했으면 이미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이루어진 표결에서 만장일치가 나와 강우태와 고영배가 구속되었다.
이 쉬운 걸 빙빙 돌아가려 했다니.
일단 재판 결과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손을 쓰면 된다.
“증인은 마지막 말을 남겨주길 바랍니다.”
짧은 시간 동안 굉장히 지친 얼굴이 된 위원장이 내게 말했다.
“예.”
난 국회 TV 카메라로 추정되는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을 남겼다.
“전국의 수많은 빌런 여러분, 아직 체포되지 않았다고 안심하지 말고 잔머리 굴려서 면죄부를 받았다고 안심하지 말길 바랍니다.”
모름지기 빌런이라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서 덜덜 떨며 쪽잠을 자야지.
나도 혈종일 때 숙면을 해본 게 손에 꼽을 정도인데 어딜 감히.
“처벌이 미약하면 제 방식대로 행동에 들어가면 됩니다. 빌런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 처리하겠습니다. 각성자 세뇌 사태 또한 관심을 갖고 끝까지 지켜보면서 확실하게 마무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일에 연루된 누구든.”
난 진세정에게 배운, 사람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걸리면 확실하게 보내겠습니다.”
아쉽지만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