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87)
“제가 데미안, 그리고 드모어 인베스트먼트 쪽으로 열어 준 기회를 돈으로 환산하면 과연 얼마가 될까요?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쁘띠 기뿔리 정도 규모의 기업 두세 개 정도는 통째 매입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
“저는 지금 쁘띠 기뿔리라는 브랜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이번 부경호텔 경영권 확보전에 데미안과 드모어 인베스트먼트를 우리 재경 그룹이 지지해야 하는 명분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브랜드 로열티 5퍼센트니, 10퍼센트니… 그런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죠, 지금 드모어 인베스트먼트 입장에선.”
“네, 제가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난 전혀 그럴 필요 없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가로저은 후 마몬에게 말했다.
“아뇨, 마몬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해당 내용은 조금 이따가, 약속된 미팅 자리에서 사장님, 전무님 모시고 공식적으로 나눌 내용인 거 같고, 지금은 제가 마몬한테 개인적인 질문을 몇 개 해 보고 싶은데, 그렇게 해도 될까요?”
“개인적인 질문이라면, 당연히 데미안에 관한 질문이 되는 거겠죠?”
“그렇죠.”
“제가 대답을 해 드릴 수 있는 범위 안에선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데미안이 직접 관여를 하고 있는 회사가 드모어 인베스트먼트 말고 또 뭐가 있습니까?”
“저희 쁘띠 기뿔리, 그리고….”
“아뇨, 쁘띠 기뿔리나 코 앤 씨도 결국은 드모어 인베스트먼트가 하는 사업의 다른 이름일 뿐 아닙니까. 드모어 말고 다른 회사를 말하는 겁니다.”
반드시 더 있다.
무조건.
마몬의 표정 변화에 주목하며, 느긋하게 기다려 줬다.
하지만 나온 마몬의 대답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라는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몬 앞으로 2년 전, 남 사장과 함께 떠났던 파리 출장길에 정엽이를 처음 만나 받았던 녀석의 가짜 명함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2년 전에 파리에서 만났죠. 그때 저한테 이 명함을 주더군요. 작은 회사이지만 만족하면서 지낸다는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하면서. 구스다운 이불을 수출하는 회사더군요. 페이퍼 컴퍼니가 아니라 실제 존재를 하는 회사였어요. 그것도 규모는 작지만, 수출액이 꽤 크게 잡히는 회사. 실제 존재하는 회사를 그것도 그 회사에 다니지도 않는 사람이,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 명함을 파서 뿌리고 다닐 수 있을까요?”
“…….”
“이 회사도 데미안이 드모어 인베스트먼트처럼 다른 사람을 사장 자리에 앉혀 놓고 운영하고 있는 회사일 거라고 저는 보고 있는 중인데, 마몬 생각은 어때요?”
“미스터 손과 결혼 약속을 한 상대가 미래금융의 후계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피하고 숨는 게 아니라 방향을 바꾼다?
재밌는 친구네.
“그런데요?”
“드모어 인베스트먼트의 구조뿐 아니라 데미안에 관해선 저보다 미래금융이 훨씬 더 자세하게 알고 있을 거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미스터 손이 현재 하고 계신 의심에 대한 확신은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 시키는 사람들 관리까지 잘하고 있네.
순발력이 있어.
강단도 있어 보이고.
“저는 데미안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큰 범위 안에서는 드모어 인베스트먼트의 직원일 뿐입니다. 데미안은 제 보스이고요. 드모어 인베스트먼트에 관한 내용이라면 모를까, 다른 부분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 정엽아.
아직은 네가 품고 있는 야망과 계획을 세상에 드러낼 때가 아니다.
잘하고 있다.
“다행입니다. 데미안 옆에 마몬처럼 이렇게 노련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이 있다는 게.”
“…….”
“잡혀 있는 회의실이 윗층이에요. 지금쯤 사장님, 전무님도 회의실로 이동 중이실 거 같은데, 우리도 천천히 올라가 볼까요?”
* * *
거짓말 같은 계약이 성사되어 버렸다.
그것도 단 한 번의 미팅으로.
재경식품의 전무 모범태는 쁘띠 기뿔리 측과의 계약 조율 미팅 자리에서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입을 열 기회가 없었다.
상대방이 들고 온 계약 조건 자체가 이미 재경식품에서 기대하고 있던 계약 조건들에 비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걸 과연 그저 단순하게 좋았다라고만 생각을 해도 되는 것일까?
브랜드 로열티를 5퍼센트에 맞춰서 왔다.
당연히 이번 미팅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쁘띠 기뿔리에 관한 조사는 모두 끝이 나 있었던 상태.
이미 프랑스 안에서는 높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며, 검증이 끝난 브랜드임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쪽에서 브랜드 로열티를 일반적 비율로 13퍼센트까지 부르게 된다면 마땅히 그쪽 입장에 브레이크를 걸 준비까지 다 해 놓고 있었다.
다 준비를 해 놓고도, 준비한 그것들을 꺼내 볼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모범태 전무였다.
브랜드 로열티 5퍼센트.
라이선스 범위는 아시아권 전역.
거기에 아시아권 전역 QA(Quality Assurance―외식 사업에서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경우 본사에서 레시피 스탠다드, 서비스 스탠다드를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을 하러 다니는 일종의 검열)의 권한까지도 재경식품 쪽으로 일임하겠다는 조건.
쁘띠 기뿔리의 기본 메뉴에 대한 엄격함은 지켜 주길 당부하면서도 메뉴 현지화에 대한 부분은 자율에 맡겨 달란 손정훈 본부장의 뜻을 단번에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쁘띠 기뿔리의 브랜드 파워, 운영 시스템, 메뉴 레시피, 매장 콘셉트까지….
그 모든 걸 브랜드 로열티 5퍼센트로 계약을 맺게 만든 손정훈 본부장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일까?
최소한 이 정도 사이즈가 나오는 계약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서로의 입장과 조건을 치열하게 조율해 가며 성사시키는 게 기본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단 한 번, 그것도 고작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만에 재경식품 쪽으로 일방적, 유리하게 계약을 끝낼 수 있는 거지?
멀리 파리에서 이번 미팅을 위해 한국까지 와 준 사업 파트너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편 사장과 조 전무가 직접 그들을 호텔로 안내해 점심 식사를 대접했다.
그러는 동안 모 전무는 손정훈 본부장과 함께 식사를 하며 특별 지시를 받게 됐다.
“…….”
쁘띠 기뿔리 측과의 미팅부터 시작해, 조금 전 함께 식사를 하며 손정훈 본부장으로부터 받은 지시까지.
모든 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납득이 안 되고 있는 모 전무였다.
“왜 이런 기회를… 나한테 주는 거지?”
손 상무와 식사를 끝내고 복귀한 회사에서, 모 전무는 30분 넘게 자신의 책상 앞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골똘히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결국은 손정훈이라는 인물에 대해 재경식품 안에선 조동희 전무님 다음으로 잘 알고 있을 고성표 지원본부장을 찾아가 보기로 마음 먹었다.
똑. 똑.
두 번의 노크 끝에 안에서 고성표 본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들어오세요.”
모 전무는 자신의 방문이 무척 의외라는 표정으로 보고 있던 서류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난 고 본부장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모 전무는 고성표 본부장과 따로 친분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 사무실을 들어와 본 것도 이번이 처음.
“전무님이 여긴 어쩐 일로….”
“잠시 들어가도 되겠어요?”
“그럼요, 당연하죠. 들어오세요, 전무님.”
“아이고, 깔끔도 하시다. 파리가 앉았다가 이게 뭔가 하고 미끄러지겠네.”
모 전무가 던진 농담에 괜히 쑥스러워진 고성표 본부장이었다.
회사로부터 처음 받아 본 개인 사무실.
내 집 마련에 성공했던 그 기분과도 견줄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을 고성표 본부장에게 선물해 준 공간이었다.
그리고 모범태 전무 역시 자신도 그러했듯 고성표 본부장이 이 공간에 자부심을 느끼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던졌던 농담이었다.
“어때요? 식품 생활 할 만해요? 모직 때랑은 많이 다르죠?”
“분야가 달라서 그런 건지, 아님 앉은 자리의 무게가 달라서 그런 건지 모든 게 조심스럽긴 합니다.”
“그렇겠네. 나는 아예 식품 원 맨이어서 그런 걸 잘 몰라요.”
“그러시겠죠.”
“아마 본부장님이 현재 조심스러운 건 분야가 달라서 그런 걸 거예요. 나는 임원 승진하고 하루 이틀 만에 바로 내가 지금 임원 승진을 한 게 맞나? 하고 헷갈리더라니까? 출근해서 하는 일, 출근해서 보는 사람, 받는 스트레스… 사실 임원 승진을 해 보기 전까지는 우리 같은 직장인들에게 이사 승진은 로망이고 환상 같은 거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막상 부장 때랑 비교해서 드라마틱하게 삶이 달라지진 않더라고. 아무리 임원 혜택이 많으면 뭐해요? 그걸 챙겨 먹을 시간이 없는데. 하하하.”
“공감합니다. 저도 얼마 안 됐지만, 회사 차량 받은 거, 개인 사무실이 생긴 것 외엔 딱히 부장 때랑 비교해서 달라진 점을 못 찾겠네요. 저는 제가 주재원 생활을 2년 정도 하다가 와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전무님 말씀 듣고 보니까 다들 저처럼 그런 느낌으로 임원 생활을 시작하시는 거 같네요.”
“맞아요. 별거 없어. 오히려 더 파리 목숨이 되는 거고. 그나저나 본부장님.”
“네.”
“내가 뭐 하나만 좀 물어봅시다.”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결국 재킷 앞 단추를 풀어 편하게 앉으며 모 전무가 물었다.
“손정훈 본부장님.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그게 무슨….”
“사람 맞아요?”
* * *
이유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아니면, 귀신이라도 될까 봐요? 하하하….”
“차라리 그쪽이라고 하는 게 이해는 더 빠르겠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고성표 본부장에게 모범태 전무가 말했다.
“실력이 귀신같잖아요. 쁘띠 기뿔리 측과 계약했어요.”
한순간 표정이 싹 바뀐 고 본부장.
그의 턱이 아래로 크게 떨어졌다.
“계, 계약을 했다는 게 정확하게 어떤 계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쁘띠 기뿔리 상대로 준비하고 있던 게 라이선스 계약밖에 더 있었어요?”
“아뇨, 그러니까요. 그걸 우리가 지금 계약을 따냈다고요?”
고개를 끄덕이는 모 전무의 모습이 고 본부장으로 하여금 인지 부조화를 일으켜 내고 있었다.
“어떻…게요? 아니… 손 상무님이 직접 진행을 하고 계신 건이라 계약이 될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래도 계약이라는 게 과정도 필요하고 그 과정 속에서 잡는 서로 간의 디테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거 아닙니까?”
“그 정도인 거예요?”
“어떤 게요?”
“손 본부장님이 직접 진행을 하고 있는 건이기 때문에 고 본부장 입장에선 계약이 될 거라는 거 정도는 전혀 의심을 할 여지가 없었던 거냐고요.”
그 질문에 나온 대답이 모범태 전무를 더 힘 빠지게 만들었다.
“그렇죠.”
“그렇죠? 허, 하하… 참, 당연하다 이거네.”
“네, 지금의 저한테는 당연한 겁니다.”
“이걸 내가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원… 아니, 본부장님. 본부장님이 손 본부장님 사람인 건 알겠어. 그걸 모르는 사람이 현재 우리 식품에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끼리니까 톡 까놓고 이야기를 해 보자고요. 이제 서른이에요.”
“…….”
“이제 고작 서른이라고. 당연히 우리보다 회장님 직계로 받을 수 있는 정보나, 인맥 같은 게 풍부하다는 건 인정. 그런 부분을 배제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작 나이 서른에, 재경 실무에 있어선 모직 인사부에서 2년이 전부인 사람이 이런 큰 계약을 이렇게 집 앞 편의점에서 자기 입맛대로 4캔에 만 원짜리 수입 맥주 골라 오듯 할 수 있는 거예요?”
그 표정, 그리고 지금 어떠한 그로기 상태에 빠져 있을지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성표 본부장이 말했다.
“당장은 혼란스러우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전무님께서 느끼고 계신 감정이 정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뭐가요?”
“제가 그랬거든요. 모직에 있었을 때요.”
“……?”
“채용 방식을 바꾸는 거. 당연히 전무님도 잘 아시겠지만, 그거 절대 쉬운 거 아닙니다. 작은 중소기업이라면 모르겠지만, 재경모직처럼 서류 전형부터 시작해 채용 후 신입 사원 연수까지, 채용 예산만 2억에서 2억 5천 정도를 따로 잡아야 하는 경우엔 조심해야 할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여기보단 낫네. 여긴 연구원들 채용이 메인이라 최소 3억에서 4억까지 잡아요.”
“네, 저도 확인을 하고 확실히 모직에 비해, 인적 자원비에 측정되는 예산이 이 정도로 높게 잡히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게 왜요?”
“그걸 공개 채용 한 달도 안 남겨 놓은 상태에서 채용 방식을 바꿔 보자고 제안을 하고, 직접 바꿔 냈습니다. 기존 채용 때와 비교해서 실수는 훨씬 적었고, 효과는 훨씬 높았죠.”
“그야… 음… 그거랑 이건 다르죠.”
“전무님이 보시기엔 달라 보이실지 몰라도, 당시 인사부를 맡아 나가고 있었던 제 입장에선 지금 전무님께서 느끼고 계신 감정처럼 크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그동안 제가 인사부에서 20년 넘게 해 왔던 경험과 노하우라는 게 있는데, 그것들이 한순간 부정을 당하는 느낌이었으니까요.”
모 전무 입장에서도 고 본부장이 자신의 인사 쪽 경력까지 들먹이고 있으니 존중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본부장님한테 묻는 거 아니에요. 손정훈 본부장, 사람 맞냐고.”
“…….”
“두 시간도 안 걸렸어요. 아니지, 두 시간이 뭐야? 미팅 자체가 두 시간이 걸렸던 거고, 실제 계약 이야기가 오고 가고 쁘띠 기뿔리 측에서 우리 쪽 조건에 콜을 부른 건 30분도 안 걸렸어요. 나머지 시간은 그냥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디테일 맞추기요?”
“아니, 이미 디테일은 그쪽에서 다 맞춰서 왔다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빨리 계약이 성사된 거지. 우리가 갑이었어요. 말이 안 되는 거지.”
“그게 무슨….”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고 본부장이 얼굴에 싱긋이 미소를 만들어 띄웠다.
“허, 허허… 네, 대충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미팅 전에 손 본부장님이랑 따로 이야기 나눈 거 있었어요?”
“아뇨, 쁘띠 기뿔리 건에 관해서 저는 현재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것도 같다는 소릴 해요?”
“그게 손정훈 상무, 본부장님 스타일이니까요.”
손정훈 본부장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보고자 찾은 고성표 본부장의 사무실에서, 그가 보여 주고 있는 반응들 때문에 해소는커녕 오히려 앞길이 더 막막해지기만 하는 모범태 전무였다.
“처음엔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뭔가를 결정할 때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 고 본부장이 말한 내용으로 인해, 모 전무는 고 본부장으로 하여금 동지애를 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