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24)
“65 대 35. 우리 재경과 미래금융이 부경통신 58퍼센트 지분을 그 비율대로 나눠 가진다?”
“네.”
“어째서?”
“어째서라니요?”
“어째서 그걸 미래금융과 나눠 가지겠다는 거냐고. 만약 정말로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나눌 게 아니라 다 가져와야지. 왜? 어차피 네 처가가 될 거니 결국은 네 몫으로 돌아올 거다, 이 생각이냐?”
진심은 그게 아니었지만, 어느새 그룹 안에서 그 존재감이 지나치게 커져 버린 정훈이를 어느 정도는 눌러 줄 필요성이 있었다.
장남, 정태에 대한 무거운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식품에서 태영마트를 중간에 끼워 악착같이 부경마트를 물어뜯는가 싶었더니, 소리 없이 부경통신을 무너뜨릴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자신을 설득하러 찾아온 둘째.
지금껏 보여 준 결과물이 있었기에 보여 주고 있는 자신감까지 짓누를 수는 없었지만, 형제간에 하고 있는 경쟁에 있어서 만큼은 도리와 선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싶었다.
하지만 정훈이는 손 회장이 하고 있는 그런 걱정, 염려까지도 부끄럽게 만들어 버렸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회장님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으신가 보네요.”
“…뭐?”
“그 큰 덩어리를 미래금융과 안 나누면 누구하고 나눌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왜 나누냐고.”
“돈이 없잖아요.”
“생각하는 거 하고는. 나누겠다고 하는 이유가 고작 돈 때문이야?”
“고작? 고작? 허, 허허… 금방 ‘고작 돈’이라고 하신 거예요?”
“이놈이….”
그 순간 손 회장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아들을 상대로 주눅이 들어 봤다.
엉겁결에 나온 사소한 말실수.
그 말실수를 재빠르게 지적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정훈이의 눈빛에서 아주 오래전 그 존재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진짜 통신을 업어 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분 매입에 필요한 자금은 내가 만들어 보마.”
“아니지요. 그런 기회를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 지금부터는 무조건 그 이상의 자금을 확보해 놓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무조건?”
“무조건이죠. 비슷한 시기, 어쩌면 더 빠를 수도 있겠네요. 장선열 회장의 부경마트도 조만간 부도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마트부터 안전하게 우리 재경 속으로 담아 낸 다음, 부경유통을 반으로 쪼개기 위해 포기했던 화재 지분 12퍼센트를 장선동 회장에게 내놓으라고 하셔야죠.”
상상을 초월하는 계산법을 가지고 있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인 계산법.
아버지, 손중길 회장님의 계산 스타일이기도 해서 더 놀랐던 손홍준 회장이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장선동 회장에게 화학에서도 지분 12퍼센트 정도는 우리가 보험 삼아 확보를 하고 있어야겠다고 말을 해 보세요.”
“화학 지분?”
“네.”
“그걸 그 양반이 내놓을 거 같으냐?”
“안 내놓고 배길 거 같습니까? 유통이 다 막혀 있는데, 소송 관련해서 우리가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끌고 갈수록 부경이라는 이미지 자체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떨어질 거고, 지하로 꼬라박히는 게 어디 부경의 이미지뿐이겠냐고요. 부경화학의 주가 반토막. 시간문젭니다. 부도 이야기까지 나올 수도 있어요, 통신 상대로 계획하고 있는 것처럼 작정하고 그쪽으로 흐르는 돈줄까지 막아 버리면.”
“…….”
“1조짜리 공동 소송. 통신뿐 아니라, 화학, 마트까지 부경의 모든 숨통을 우리 재경이 휘어잡게 되는 겁니다.”
“화학도 가져오자는 말이야.”
“굴뚝 장사는 이미 오래전에 끝난 거 아닙니까. 화학. 덩치에 비해 딱히 먹을 게 없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화학 지분도 확보를 해야 한다는 거야?”
“말씀드렸잖아요. 보험 삼아. 장선동 회장 정도는 그래도 살려 놔야 되지 않겠습니까?”
“살려 놔?”
“딱 25년 됐네요. 부경 쪽으로 우리 재경의 피 같은 계열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넘어갔던 게. 그쪽에서도 우리 재경의 기본 사업 세 개는 남겨 주고 가져갔잖아요. 화학, 물산, 화재. 알아서 잘 한번 지켜 보라고 해 보죠. 그리고 똑같이 대우해 주세요. 지난 25년 세월 동안 부경에서 우리 재경을 대우한 그대로. 옆에 딱 붙여 놓고 더 크지도 못하고, 우리 재경의 그늘을 벗어나지도 못하게끔.”
“…….”
“다른 기업들을 상대로는 우리 재경의 사업을 건드리면 어떻게 된다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장선길 회장은 끝났어요. 건설부터 부도 신청 들어갈 겁니다. 옆에 같이 서 줄 만한 금융권도 지금은 워낙 상황이 안 좋으니까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텐데, 1조 소송 붙는 순간 멀어지는 거죠. 장선열 회장의 부경마트 역시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매각이 가능하겠습니까? 명분이 있는 우리 재경 말고는 아무리 헐값에 나와도 접근하는 쪽이 없을 겁니다. 결국은 부도 처리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봐야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냐, 아님 처음부터 여기까지 올 생각으로 부경마트 쪽으로 계속 공격을 퍼부었던 거냐.”
“왜 이 정도가 끝일 거라고 생각하세요? 시작이에요. 장선길, 장선열 회장은 운이 좋은 거예요. 그 집안 장남이 아니기 때문에 편하게 끝을 내 주는 거잖아요. 하지만 장선동 회장은 다르죠. 지난 세월 동안 우리 재경이 받은 수모, 똑같이 그만큼의 시간만큼 옆에 잡아 놓고 되돌려 줘야죠.”
“설마 소송에 관한 모든 권한을 너한테 달라고 한 게, 말이 소송이지 결국은 복수에 대한 권한을 달라는 말인 거냐?”
“복수, 복수… 흠… 그냥, 그렇게 부정적인 표현 말고, 우리 재경이 원래의 자리로 다시 올라설 수 있도록 제가 지금 최선을 다해 보고 싶어 한다 정도로만 이해해 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 재경.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회장님.”
“…….”
“부경은 어떻게든 제대로 털고 가야 하는 상대이기 때문에 꼼꼼하게 정리를 하고 있는 거지, 그 정리 끝내 놓고 더 높게 뛰어올라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름답지도 않은 복수가 우리의 최종 목적이어선 안 되는 거잖아요. 그 상대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도 아니고. 안 그렇습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데, 어떻게 한번 해 보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있으랴.
이미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준비해 온 내용이며, 그간 정훈이가 식품으로 넘어가 만들어 보여 준 결과물들만 봐도 지금의 손 회장은 정훈이를 믿고 맡길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손 회장의 다이어리엔 다른 낙서들이 더 늘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끄적여 놓은 낙서에 손 회장은 숨이 턱! 하고 막힐 정도로 크게 놀랐다.
자신이 직접 끄적인 낙서의 내용.
부경마트를 업어 유통의 스너프에 붙인다.
그렇게 끄적여진 낙서 옆으로 아들 정태의 이름이 함께 쓰여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엔 항공과 식품, 모직의 재경 그룹에 부경통신이 더해진 낙서가 끄적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둘째 정훈이의 이름이 휘갈겨져 있었다.
자신이 그려 본 재경의 미래.
자신의 무의식중 재경 미래 중심에 어느새 정태보다는 정훈이가 한 발짝 더 다가가 있다는 걸 손 회장은 자신의 필체로 확인을 해 버린 것이다.
* * *
그러고 나서 죽어
“정재현 씨?”
한산한 카페 안이었다.
통화로만 인사를 나눴던 정재현이라는 친구가 무척 평온한 눈길로 창밖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정훈 상무님이세요?”
“네.”
그렇다 할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은 채, 우린 서로를 쳐다보며 마주 보고 앉았다.
언제부터 와 있었던 것일까.
그가 마시고 있던 음료 잔은 이미 절반 이상이나 줄어 있었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고 있었다.
가능한 한 커피를 하루 한 잔 이상 안 마시겠다고 최대한 줄이고 있는 중이었기에, 작은 오렌지 주스 한 통을 계산해와서 다시 자리에 앉았고, 그렇게 우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합의를 하실 줄 알았는데, 그냥 법적 처벌을 원하는 쪽으로 가시더군요.”
정재현.
장선길이의 전 운전기사.
“저도 소송을 진행하면서 알았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원했던 건 돈이 아니라 그 인간이 비록 저처럼 보잘것없는 존재일지라도 저로 인해 최소한의 처벌이라도 처벌다운 처벌을 받게 만드는 것이었다는 걸요.”
“그래도 사안이 컸던 만큼, 합의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꽤 큰돈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번 일을 통해서 많은 걸 깨달았어요. 특히나 잘산다는 말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당연히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만, 돈이 많다는 건 부자라는 말이지, 그 부자가 꼭 잘산다는 말은 아닌 거 같더라고요.”
그렇게 말해 놓고 싱긋이 웃던데, 그 웃음에서 지금 이 친구가 이번 일을 통해 아주 큰 뭔가를 얻어 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는 잘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부자가 된다는 것과 잘산다는 게 같은 의미였다고 착각을 해 왔던 거 같아요.”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얼굴이 좋아 보여서 마음이 놓이네요.”
“한 번쯤 이렇게 쉬어 갈 수 있는 시간이 제게도 꼭 필요했던 거 같아요. 돈만 벌어다 주는 것이 가장의 모든 역할이 아닐 텐데, 회사 일을 핑계로 육아나 다른 집안일에 너무 소홀했더라고요. 잠시 쉬면서 저 스스로도 돌아보고, 그동안 같이 못 놀아 줬던 딸이랑도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니까, 그간 놓치고 지나갔던 제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네요. 아주 좋습니다, 요즘.”
“다행이네요.”
“그런데 저는 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진작에 시간을 내려고 했는데, 핑계 같겠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테이블 위로 얇은 서류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재경식품 입사 서류 전형이에요.”
정재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사부 사람을 시켜서 만나 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정재현 씨가 거절을 하게 되면 제가 정재현 씨를 직접 만나 볼 일은 영영 없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나온 거예요.”
“저한테 이런 걸 왜 주시는 겁니까?”
“말했잖아요. 원래라면 제가 직접 나오는 게 아니라 인사부 사람을 시켜서 만나 보게끔 했을 거라고. 인사부에서 외부인을 회사 밖에서 만나 이런 입사 서류 전형을 전달하는 게 무슨 의미겠어요?”
“…….”
“상식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현재 정재현 씨가 받을 수 있는 최고 대우 조건을 붙여 놨어요. 부경통신에서 하셨던 일과 크게 다른 내용의 업무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업무의 범위는 정재현 씨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길 바란다는 점 미리 말씀드리고, 음… 실은 제가 상당히 고리타분한 사람이에요.”
숨을 참으며 내가 꺼내 놓은 서류 봉투와 날 번갈아 쳐다보는 정재현이었다.
“내 말이 무조건 다 맞는다는 건 아니니까, 그냥 적당히 알아서 걸러 들으세요. 정재현 씨 말처럼 돈 많은 부자가 꼭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 건 아닐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죠. 특히나 혼자 살고 있는 게 아닌 아이까지 잘 키워 내야 할 책임이 있는 가장이라면 더욱더 그렇지 않겠습니까?”
“…….”
“그동안 놓치고 지나갔던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챙겨 보면서 귀한 시간을 잘 보내고 계시는 모습, 아주 보기가 좋습니다. 기한은 없습니다. 현재 보내고 있는 좋은 시간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면, 한 집안의 가장 정재현이 아닌 사회적 성취에 뜻이 있었던 정재현이 다시금 욕심이 나면, 그 성취를 혹시라도 우리 재경식품에서 새롭게 도전해 이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 좋으니까 이 입사 서류 공란을 채워서 절 찾아오세요.”
“저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전 이미 제가 가지고 있었던 장선길 회장의 모든 치부를 다 검찰 쪽으로 전달을 한 상태인데요?”
“마음이 쓰여서요. 걱정도 됐고.”
미간을 찡그리며, 다른 속내가 있지는 않을까 의심 어린 눈초리로 날 쳐다보는 정재현이었다.
“분명 사회적 성공에 뜻과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을 합니다. 그 뜻과 욕심은 결국 정재현 씨의 가족들을 위한 뜻이었을 것이고 욕심이었을 테죠. 또 그에 맞는 노력도 많이 하셨을 거고.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수로 부경통신의 전략기획팀에 입사를 해 한 기업의 오너 차량 핸들을 몇 년씩이나 잡을 수 있었겠어요?”
“…….”
“그런 정재현 씨의 목표와 노력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 버린 부분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큰 용기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 용기에는 부경통신 쪽에서 정재현 씨와 정재현 씨 가족에 대한 물리적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거운 숨을 깊게 들이마신 정재현은 천천히 그 숨을 내쉬며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는 그 상대가 누구라도 우리 재경을 위협하는 존재는 절대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제게 재경은 우리 재경의 직원들입니다. 급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천천히 생각을 해 보시고 결정하시면 됩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 * *
장선길이가 송치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차 안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강인성 차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아 보이던가요?”
“보이는 게 중요하겠습니까? 그 속이 중요한 거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빨리 나오시는 거 같던데….”
“많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시간을 주는 게 더 중요할 거 같았어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백미러로 나의 표정을 살핀 후 강 차장이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제 생각을 좀 말씀드려도 될까요?”
강 차장이 묻지도 않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고 한다?
아주 특별한 경우다.
“네.”
“솔직히 저는 살짝 걱정이 됩니다, 상무님.”
“걱정이요? 무슨 걱정?”
“사정은 딱하지만, 어쨌거나 한 기업의 총수 차량을 운전했던 사람이, 그 차량 안에서 오고 갔던 대화 내용, 통화 내용을 녹음했습니다. 또 그걸 검찰에 전달하면서 공개를 했고요.”
내가 그렇다 할 반응을 안 해 주자, 다시 한번 백미러로 나의 기분을 살피는 강 차장이었다.
“해선 안 될 일을 한 겁니다.”
“…그렇죠.”
“저 역시 마음이 안 좋지만… 그리고 결국은 상무님께서 결정을 하실 일이지만, 과연 재경식품의 다른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 것이며, 적응은 잘할 수 있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조금… 찝찝합니다.”
“어떤 부분이 찝찝하단 말이에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하잖아요. 한 번 그랬던 사람은, 언제든 또 그럴 수 있는 겁니다.”
“고쳐 쓰는 게 아니다… 강 차장.”
“네, 상무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루 중 나랑 가장 많은 시간,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강 차장이 그런 말을 하면 나 놀라요.”
“…네?”
“고쳐 쓰긴 뭘 고쳐 써요? 사람이 기계예요?”
“아니, 제 말은….”
“우리가 뭐라고 귀한 사람을 고치고 자시고를 할 수 있겠냐고. 그리고 고치긴 뭘 고쳐요? 고장이 난 곳이 애초에 없는데.”
“…….”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치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정말 단 한 번이라도 변화시켜 보려고 노력이라는 걸 해 본 사람을 내가 본 역사가 없어요.”
“…….”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으면서 그냥 말이 그럴듯하니까, 꽤 쿨해 보이고, 시원시원해 보이니까.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그 표현 별로 안 좋아해요. 앞으로 내 앞에선 그런 표현 가급적 삼가하세요.”
“…네, 죄송합니다.”
“오죽했음 그랬을까.”
난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혼잣말을 하듯 낮게 중얼거렸다.
“오죽했으면.”
여전히 차창 밖 세상을 쳐다보며, 강 차장에게 말했다.
“사람이 상했잖아요. 못된 사람한테 당해서 뼛속까지. 그런 사람을 어떻게 고쳐요? 고칠 수만 있음 고쳐 주고 싶네. 왜 그런 걱정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우리 너무 그렇게 팍팍하게 살지 맙시다. 그렇게 팍팍해지겠다고 열심히 살고 있는 거 아니잖아요.”
“…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쯤에서 대화를 끝내긴 했지만, 입맛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조건 차갑고 냉정한 것이 현명하고 이성적이라고 믿는 세대.
손해를 직접 본 것도 아닌데, 손해를 볼 것도 아닌데 그저 손해라는 뉘앙스, 그렇게 될 수 있는 분위기 자체에 격렬한 두드러기 반응을 드러내는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