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6)
“아파트요?”
“네. 일반적으로.”
“강남 이쪽으로는 20억 밑으로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거고….”
“어, 얼마요?! 20억이요?”
“네.”
“몇 평짜리?”
“뭐… 일반적인 걸 물으셔서 대답을 드린 거니까, 30평 중반 정도를 예로 든 겁니다.”
뭐야? 이 친구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떻게 30평 중반대 아파트가 20억이나 할 수가 있어?
말 같은 소릴 해야지.
30년 동안 오른 대리 연봉은 두 배가 안 되는데, 집값만 열 배, 열다섯 배 이상 올랐다는 게 말이 되나….
“아니, 지금 정 대리 연봉이 5천이 조금 안 된다면서요?”
“네.”
“근데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어떻게 20억을 해요?”
“그건 강남이니까 그런 거고요, 다른 데는 그나마 좀 저렴하죠.”
“저렴해서 얼만데요?”
“뭐… 그래도 여기 이쪽은 10억 초중반대 정도면 신축은 힘들어도 어지간한 건 가능할 겁니다.”
이 친구가 지금 날 상대로 장난을 하는 건 아닐 거 아니냐.
“아니, 이 동네 집값도 10억 초중반씩이나 하면 그럼, 사람들이 집을 어떻게 삽니까?”
“어떻게 사긴 뭘 어떻게 삽니까. 못 사는 거죠.”
대기업 인사부 대리라는 사람이 집을 못 산다는 말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해 버리니까,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아니면 진짜 막 여기저기 있는 대로 영끌을 해서 도박하듯 사거나.”
“영끌?”
“영혼까지 끌어다가 대출을 내는 거죠. 그렇게 사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봐야죠.”
집 하나 사는데 영혼을 끌어다 산다고?
“이거 진짜 실례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럼 정 대리는 집이 있습니까?”
“저요? 제가 집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없죠. 월세 살고 있습니다.”
“정 대리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서른셋입니다.”
상당히 젊어 보인다 싶었는데, 의외로 나이가 많네.
“정 대리는 입사를 남들보다 좀 늦게 한 편인가 봅니다?”
“저요? 아닌데요? 저는 제 대학 동기들에 비해서 빨리한 편입니다.”
“서른셋이라면서요?”
“네.”
“그런데 대리 2년 차고.”
“네.”
서른셋이면 과장을 달아야 정상 아닌가?
“몇 살에 입사를 했는데요?”
“저 스물아홉에 입사했습니다.”
“그게 빠른 거예요?”
“에이, 저를 과장님이랑 비교하시면 안 되죠.”
“아뇨, 아뇨. 일반적으로 스물아홉에 입사를 한 게 빠른 거냐고 묻는 겁니다.”
일반적인 계산으로 스물에 대학에 들어가면 남자의 경우 군대 3년 빼고 스물여섯, 일곱에는 취업을 해야 평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스물여덟, 아홉이면 늦은 거고.
그게 정상이지.
“잘 보세요, 과장님.”
“네.”
“스물에 대학에 들어가요. 근데 남자들의 경우 군대를 가야 합니다, 한국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건 또 어떻게 기억을 하시네요. 암튼, 저 때는 20개월이었거든요.”
“군대가요?”
“네.”
군대가 20개월이라고?
“근데 입대 앞뒤로 휴학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하면 벌써 스물넷입니다. 중간에 어학연수는 기본으로 한 번씩은 다녀와야죠.”
“…….”
“그거 1년 빼면 스물다섯부터 2학년이에요. 집안 형편이 좀 괜찮으면 모르겠지만, 아닌 경우는 학비 만들겠다고 휴학을 다시 또 해야죠. 인턴은 또 어떻고요? 요즘은 대기업을 노리는 경우 인턴만 두 번, 세 번씩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남자들의 경우는 빠르면 스물일곱, 평균적으로 스물여덟, 아홉에 졸업을 합니다.”
“근데 아까 정 대리는 스물아홉에 입사를 했는데, 그게 대학 동기들에 비해서는 빨리한 편이라면서요?”
“에이, 진짜 걱정되네.”
“뭐가요?”
“인사부 과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니까 제가 참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1318세대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1318세대요?”
“대학 졸업 후 취준생 기간만 13개월, 그렇게 힘들게 입사를 한 첫 직장에서 평균 근속 기간은 18개월밖에 안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그런 1318세대를 살고 있는 게 현재 이 나라 취준생들의 평균적인 모습입니다.”
“그 취준생이라는 건 뭡니까?”
“취업 준비생이요.”
아니, 대학 졸업생이 취업 준비를 왜 하지?
대졸이면 기업에서 서로 모셔 가야 정상이잖아.
“현재 대한민국 평균입니다, 평균.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 참고만 하세요, 과장님. 업계에 따라, 분야, 기업 크기에 따라 다 다른 거니까. 대한민국 평균, 남자의 경우 취업에 성공하는 나이가 31.3세입니다. 여자의 경우 29.8세입니다.”
“…….”
“그러니 저 정도면 빠른 편이죠.”
이 말을 진짜 믿어도 되는 걸까?
난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럼 정 대리.”
“네.”
“정 대리 말대로 첫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이 18개월밖에 안 되면… 도대체 회사의 평균적인 정년은 몇 살까지입니까?”
“일단 63세로 정해져 있긴 한데, 이런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정년까지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10퍼센트 정도가 된다고는 하던데, 그것도 업종에 따라 다른 거고, 현재 우리 재경모직 같은 경우도 대부분의 부장님들이 50 전후로 희망퇴직을 하십니다.”
“…….”
“푸흡….”
“왜요? 전혀 웃긴 내용은 아닌 거 같은데?”
“아뇨, 내용이 웃긴 게 아니라 상황이 좀… 재밌네요.”
“상황이요?”
“제가 과장님하고 6개월 조금 안 되게 같이 일을 했는데, 그 6개월 동안 과장님이랑 했던 인사 업무 관련 대화 내용보다, 이 몇 분 사이에 차 안에서 나눈 인사 내용이 훨씬 더 많은 거 같아서요.”
할 말이 없다.
조금 전 한국은 심심할 틈이 없는 세상, 너무 살기 좋은 세상, 너무 편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는 그 말은 취소다.
그런 말을 정 대리 앞에서 생각 없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게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 * *
비정규직을 왜 이렇게 많이 쓰는 겁니까?
정훈이 놈이 혼자 살고 있다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였다.
마을이라는 표현이 맞는 거 같다.
무척 이국적이고, 내게는 너무 낯선 형태의 주거촌이었다.
우선 그 주거촌 입구에 경비 초소처럼 보이는, 마치 고속도로 톨게이트 정산소 같은 개념의 공간이 있었다.
그 앞으로 정 대리가 차를 바짝 붙였는데, 삐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톨게이트 출입 차단기가 올라가며 입장을 허가했다.
“방금 그건 뭡니까?”
“뭐 말씀이십니까?”
“삐삑 하는 소리가 들렸잖아요. 그런 소리가 난 후에 저 차단기가 올라간 거 아니에요?”
“아, 그거요. 이겁니다, 이거.”
정 대리는 차 앞 유리에 붙어 있는 작은 스티커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일종의 열쇠 같은 겁니다. 아까 그 차단기가 이 스티커로 과장님 차가 이곳 타운 하우스 입주자라는 걸 증명한 거죠.”
“타운 하우스. 여기를 타운 하우스라고 부릅니까?”
“네, 아파트하고 개념이 조금 다르죠. 다들 개인 단독 주택처럼 되어 있는 곳이니까요.”
여긴 30년 전에 종강양행이 있던 자리다.
이 비싼 땅에 이런 주거촌이 들어설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차마 정 대리에게 이런 집은 얼마나 하는지 아느냐고 물어볼 엄두가 안 났다.
더 이상의 박탈감을 줄 순 없는 노릇이니까.
하나같이 모두가 똑같이 생긴 3층짜리 주택들이 길게 펼쳐지고 있었다.
각 주택은 차고로 보이는 철문이 1층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느 한 집 앞으로 정 대리가 차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차 운전석 차양 막에서 차 키와 비슷한 형태의 작은 기계를 찾아 꺼냈다.
그리고 그걸 텔레비전 리모컨처럼 차고 철문을 향해 단추를 눌렀는데, 차고 철문이 앞으로 눕듯 들어 올려지며 열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열린 차고는 꽤 공간이 넓었는데, 그 안엔 호텔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길에서 볼 수 있었던 차들과는 확연히 다른, 그냥 딱 봐도 값비싸 보이는 차가 세 대나 더 들어가 있었다.
“이 건물은… 한집인 거죠.”
“네, 한 가구죠.”
“그럼 이제 이 차들이 다… 내 차라는 거고.”
“네.”
“그리고 난 이런 차들을 한 번씩 바꿔 타며 회사에 출근한 거네요?”
“…네.”
이쯤 되니까 이젠 정훈이 놈이나, 이놈의 애비 홍준이 놈에 대한 괘씸함, 노여움 같은 게 더는 생겨나지도 않았다.
만약 내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내가 여전히 홍준이 놈의 애비인 상태에서 이런 충격을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홍준이 놈을 내쳤을 거다.
이건 내가 아무리 이 세상을 모르고,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를 못 하는 입장이라도 자식 놈을 이런 식으로 키우는 게 잘못인 건 분명하다.
“비밀번호를… 기억 안 나시죠?”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정 대리가 내게 물었다.
“비밀번호요? 무슨 비밀번호.”
“잠시만요. 아! 다행이네. 지문 인식도 되네요.”
지문 인식?
“과장님, 여기. 이쪽으로 엄지 좀 갖다 대 보세요.”
현관 문고리 앞에 꼭 무선 전화기처럼 숫자가 올라오는 기계가 붙어 있었는데, 그 밑 작은 홈으로 손가락을 대어 보라고 정 대리가 말했다.
시키는 대로 거기에 엄지를 갖다 대었더니 이번엔 띠리릭! 하는 소리가 나오면서 쇠가 부드럽게 긁히는 소리가 문고리 쪽에서 흘러나왔다.
“문은 이렇게 여시면 됩니다.”
“아… 이번엔 내 손가락이 열쇠군요.”
나 손중길이가 고작 이딴 신문물 앞에서 이렇게까지 버벅거린다는 게 은근히 자존심이 상할 지경.
“혹시 모르니까 제가 이거 비밀번호도 지금 변경을 해 드릴까요?”
“비밀번호 변경이요?”
“네. 안에서는 변경이 가능하거든요.”
순간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놔두세요.”
언제 이 몸을 떠날지도 모르는데, 내가 이 몸을 떠난 뒤 정훈이 놈이 혼란을 겪게 만들 순 없다.
아까처럼 엄지로도 얼마든지 이 문을 열 수 있다고 하는데 굳이 뭘 바꿀 이유가 있을까.
집은 겉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정 대리 앞에서 민망함을 감추기 힘들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집만 크고 겉만 그럴싸하면 뭐할까.
이렇게 내부가 개판 오 분 전인데….
“하….”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식탁 위에 지갑이 놓여 있었다.
“……?”
지폐 모양도 다르네.
이건 뭐 장난감 돈이야,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