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악신 (4)
―너는 미지를 두려워하지.
핏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어느 악마가 지껄인 말이 있었다.
악마술에 관심을 기울인 어느 마법사의 손안에서 창조된 거울의 악마.
거울에 비친 내면을 빚어내는 놈.
―너보다 강한 존재들이 있다는 걸 알아.
카를은 놈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이 강림하리란 사실도, 그것들이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 증거로, 자신이 두려워한 신의 힘을 빌린 카를은 상식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마법을 시전하는 데 성공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온 세상이 마왕이라 부르는 어느 승천자가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법을 학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기로서 다루는 마법사.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 명의 군주.
백이 넘는 인원의 대규모 전이는 그녀에게 절실히 필요한 마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루지 못하는 마법.
“까마귀, 그대, 대체 어떻게…?”
필요로 하지만 승천자조차 다루지 못하는 마법. 아마도 오직 신의 경지에 이르러서야만 다룰 수 있을 마법.
‘하긴, 당연한 건가.’
거대한 제국을 배경으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기동이나 수송에 관한 요소는 불편할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 주제에 한 번에 수백에 달하는 물량을 데리고 강림하는 신들이 있었다.
순간 이동이나 대량 수송 같은 기술은 말 그대로 신(神)급 스킬인 것이다.
“설명은 나중에.”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단순히 “알시아의 신격을 공유하는 중이다.”라고 설명하기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많았다.
한시가 바쁜 지금 그녀가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하는 짓은 시간 낭비였다.
그리고 마왕은 그 점을 모를 사람이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허리춤에 끼고 있었던 투구를 쓰고 창을 고쳐 쥐었다.
“그대가 준 기회, 그대가 벌어 준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
붉은 망토를 두른 친위대원들이 팔을 가슴 앞으로 가져오며 고개를 숙였다.
연합의 마족들에게는 사용이 금지된,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는 인사였다.
“오늘! 우리는 오만해진 저들의 콧대를 꺾을 것이다!”
이시엘은 도시의 중앙을 향해 창을 겨누었다.
“진군!”
두 음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대지를 울렸다.
시나리오에서 그녀는 마왕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패전을 거듭했다.
전투의 연이은 패배는 결국 전쟁의 패배까지 불러왔다. 그렇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시나리오의 흐름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카를은 시나리오의 흐름을 완전히 거스르고 있었다. 같은 물살을 탄 이시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쟁은 결국 나를 덮쳤다.
카를은 그렇게 생각했다.
제국과 마족의 전쟁은 아니었으나, 결국 자신은 전쟁 한복판에 있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라면 내가 먼저 다가가리라.
이시엘 레아 스프링윈드.
우리가 거둘 승리의 여부는 네게 달려 있다.
* * *
승리를 위한 승리.
카를로스 크로우는 말했다. 단 한 번의 승리로 너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노라고.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그녀는 묻지 않았다. 이유가 궁금하긴 했지만, 이유를 듣지 않아도 그녀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
이시엘은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던 전이. 자신의 위치는 정확히 알려 주지도 않았음에도 마법은 발동하였고, 성공했다.
밤을 낮으로 바꾸던 마법사는 대규모 전이까지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던 신격 탓에, 이시엘은 잠시나마 그를 또 다른 신의 강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당연히 그럴 리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이 있었다.
“사슬을 끊은 것인가….”
그는 가장 깊은 꿈속의 어딘가와 이어져 있었다. 이시엘이 꿈을 꾸어도 닿지 않을 만큼 깊은 곳.
그곳에 존재하는 정체 모를 신일까, 아니면 그곳을 유영하는 한 마리의 용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었으나 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늘의 향기….”
언젠가 자신에게 힘을 내려 주었던 흑색용. 이시엘이 다시금 그 용을 마주쳤을 때, 용은 비늘의 향기가 나는 인간에 대해 말하였다.
비늘의 향기. 용의 축복을 받아 승천에 이른 인간을 그리 표현하진 않으니, 용의 총애를 받는 인간이라 여기는 것이 옳으리라.
“…분명히 그럴 터인데.”
그는 자신과 같은, 사도를 사냥하는 자였다. 가장 깊은 꿈속의 신들을 대놓고 적대하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한낱 인간이 사도들을 죽이고 이제는 다른 신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신이라는 것들은 저들끼리 전쟁을 벌이고 서로를 살육하여도 인간 따위에게 사냥당하는 것까지를 즐기진 않을 터였다.
“여차하면….”
카를로스 크로우가 지금까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아마 그의 뒤를 봐주었을 용 덕분이리라.
가장 깊은 꿈속의, 가장 거대한 신들도 용의 비호를 받는 인간을 죽이려 드는 건 망설일 수밖에 없다. 잘못하면 홀로 수십의 용들과 전쟁을 벌여야 할 터이니.
하지만 지금 그에게서는 신격이 느껴졌다. 강력하다 할 순 없지만, 미약하지도 않았다.
그 정도의 신격을 가지게 되었음은 곧 용에게서 받는 비호를 포기하였다는 뜻이었다.
“……내가 그를 보호해야 할 수도 있나.”
용의 비호가 사라지면 그를 노릴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 신격을 내려 준 신이 천년만년이고 계속해서 신격을 내려 주지도 않을 터이니.
오늘이 지나면 그는 용에게도, 신에게도 비호받지 못할 것이다.
……나쁘지 않다. 그래. 그는, 오랜만에 진정으로 믿을 수 있게 된 자이니. 설득하여 이쪽으로 들인다면 뛰어난 마법사를 손에 넣는 것과도 같고.
그리고.
그리고….
“아아!”
상념에 잠겨 있었던 이시엘의 귀에 상기된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살짝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린 이시엘은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아! 마왕 전하…! 드디어 오셨군요.”
황홀감에 젖은 목소리. 약간의 색욕까지 느껴지는 음성으로 두 뿔을 머리에 단 소녀가 말하였다.
드라일의 혈육. 이름은 세리아라 하였던가. 잠시 그녀와 눈을 맞추어 자신이 걸어 둔 매료가 여전히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한 이시엘이 입을 열었다.
“세리아, 이들은 어찌 알고 데리고 왔는가.”
소녀의 뒤로 나가들과 그들을 이끄는 레샬리에가 도열해 있었다.
패잔병으로 포로로 잡혀 있었던 그들에게 본래의 무기와 갑옷은 없었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난리통이 된 사이에 무기고라도 약탈했을까, 그들은 기병들이 주로 드는 창을 들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들이 세리아의 손에서 풀려난 지 꽤 되었다는 뜻.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은 세리아가 어떻게 그들을 끌고 왔는지 이시엘은 의문스러울 따름이었다.
“마왕 전하의 신하…? 아니면 친우…? 이신 안타레스 님께서 제게 부탁하셨어요!”
“안타레스… 아, 그래. 까마귀가?”
“네!”
세리아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이시엘은 그녀를 향해 팔을 뻗어 뿔과 뿔 사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세리아는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작게 콧노래를 흘렸다. 제대로 먹힌 매료는 한 사람을 완전히 제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이었다.
“…까마귀가 나가들을 풀라고 하였다, 라.”
일단은 연합의 간부를 연기하고 있었기에 그가 나가들을 풀어 줄 순 없었다.
그래서 이시엘은 자신이 친위대와 함께 도시 내부로 돌입하면 그대 나가들을 해방시킬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매료에 걸린 세리아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군. 그녀를 단순히 드라일을 끌어들일 미끼만으로 생각하던 이시엘은 자신의 미숙함을 잠시 자책했다.
“잘하였다. 세리아.”
“헤헤….”
“레샬리에.”
“예, 군주님.”
“나는 드라일을 노리겠다. 너는 도시의 입구들을 봉쇄해 놈의 군사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라.”
“예, 군주님. 그다음은… 그자가 말한 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드라일을 살려 보내 주어야 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녀의 친위대원들도 우려 섞인 눈빛으로 이시엘을 바라보았다.
적기(適期).
지금이야 말로 드라일을 죽이기에 가장 완벽한 때가 아닌가.
“…….”
“군주님?”
“그리하라.”
이시엘이 말했다.
“그자의 말대로 드라일이 죽는 것으론 이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놈의 연합을 무너뜨리는 것이 중요하다.”
카를로스 크로우는, 그 남자는 용에게서 받는 비호를 버렸다. 목숨을 걸 각오로 임하고 있었다.
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데 지금 당장 드라일을 죽여선 안 된다 주장한 것이었다.
만약 그가 죽음에 쫓겨 두려움에 먹힌 채였다면 내릴 수 없는 판단이었다.
지극히 이성적으로 내린 판단. 그 판단을 이시엘은 믿어 보자고 마음을 굳혔다.
“드라일을 죽여선 안 된다. 허나 그것이 우리의 패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함은…? 어떤 것인지요?”
“패퇴.”
이시엘이 단언했다.
“놈이 패퇴하게 만들어라. 우리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 놈의 패배를 초라하게 만들 것이다.”
승리를 위한 승리.
전쟁을 위한 전투.
“짓밟아 버려라.”
“물에 사는 저희에게 짓밟히면 굴욕은 배가 될 테지요. 예, 군주님. 저희가 저들을 짓밟아 버리겠나이다!”
투둑, 툭.
레샬리에가 목소리를 높여 외친 순간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먹구름 사이에서 벼락과 함께 강림한 신의 탓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웠고, 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하….”
흠뻑 젖어 무거운 구름에서 내리는 빗방울은 굵었다. 뺨과 손등에 닿는 그 빗방울에 심상치 않은 마력이 섞여 있음을 이시엘은 깨달았다.
하늘을 올려다본 그녀의 눈에 어렴풋이, 레카샤를 뒤덮은 거대한 결계가 보였다.
물에 젖은 나가들의 몸집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하늘도 우리의 승리를 바란다! 레이 궁정에 영광을! 군주님께 승리를!”
영광을, 그리고 승리를.
레샬리에의 함성에 병사들은 합창으로 화답했다. 피 냄새를 맡은 피라냐 떼처럼 나가들이 도시에 풀려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시엘이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단 한 번의 승리. 질 수 없는 전장. 이러한 환경은 오롯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점을 찍는 것은 결국 그녀의 역할이었다.
이시엘은 창을 쥐고 앞으로 돌진했다. 그녀의 친위대들도 그녀를 따라 돌격했다.
“끄억…!”
연합의 갑옷을 입은 병사. 전장에서 이탈하기라도 한 것인지 혼자 동떨어져 있었던 그 병사는 가슴팍을 창에 꿰뚫렸다.
창을 뽑아낸 이시엘은 다음 목표를 찾았다. 벼락으로 불타는 시가지의 한복판.
함성 소리와 비명 소리가 겹쳐지고 있는 그곳에, 강림한 신에 맞서고 있는 드라일이 있었다.
쏴아아아아….
갈수록 장대비가 심해졌다.
찰박. 땅바닥에 고인 물웅덩이를 밟고 앞으로 나아간 이시엘은 유달리 덩치가 큰 한 미노타우로스를 발견했다.
“흡…?!”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측면을 꿰뚫고 돌격해 온 이시엘을, 드라일은 한 박자 뒤늦게 눈치챘다.
미노타우로스의 압도적인 신체 능력으로 드라일은 겨우 자신을 향해 휘둘러진 창을 피해 냈다.
이시엘은 바닥을 한 바퀴 굴러 진흙투성이가 된 드라일에게 말했다.
“오랜만이군. 총독.”
“마왕…!”
“이리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군.”
“…빌어 처먹을, 대체 어떻게!”
“네놈을 반역 혐의로 이레시아의 총독에서 해임한다.”
친위대원들이 흩어졌다. 흩어져서, 드라일의 주위에 있었던 병사들을 차례로 쓰러트려 갔다.
세 명의 마녀가 저항하였으나 기세는 이미 기울어진 뒤였다.
자신이 완전히 포위되었음을 깨달은 드라일은 어금니를 까득 깨물고 외쳤다.
“불복하겠다! 결투로 응해라!”
“…결투라.”
마족들은 오직 힘을 숭앙했다.
상급자의 명령이 떨어지더라도, 하급자는 결투를 신청하여 승리를 거둔다면 거부할 수 있었다.
다른 이의 개입이 없는 오로지 그들만의 싸움.
순식간에 포위당한 드라일이 던질 수 있는 최후의 수였다.
“받아들이마.”
그 최후의 수마저 짓밟고 승리하는 것.
이시엘에겐 그것이 자신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 카를로스 크로우에게 돌려줄 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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