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회귀의 끝 (5)
“아…! 이래서!”
염동 마법을 쓰라고 한 거구나!
그녀의 손바닥이 서로 맞부딪치며 짝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보던 플레어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방패를 아예 처음 보는 눈치다. 그러면 진짜로 그녀의 말대로 허락을 받았다는 뜻인데….
“아, 모르겠다.”
머리만 복잡해졌다. 카리아가 이상하게 행동했던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 이것도 그 일환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 생각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날카롭게 울리는 종소리. 곧 아카데미 전체에 경보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
“경보…! 아, 플레어. 나 좀 도와줘! 총장님이 별관에 계시는데….”
“카리아.”
“…응?”
“너, 혹시 미래에서 왔어?”
뜨끔한 카리아는 저도 모르게 헛숨을 삼켰다. 플레어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냥 물어보는 거야. 카리아 네가 말한 대로 됐고… 또, 총장님 위치까지 알고 있으니까. 예지몽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왔다고 해도 될 정도라서.”
“…꾸, 꿈 맞아.”
거짓말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필연 티가 나기 마련이다. 지금의 카리아가 딱 그랬다.
상인 집안에서 나고 자라며 거짓말에 나름대로 익숙했던 플레어는 단박에 눈치챘다.
“그, 왜… 남부 마탑의 탑주님은 예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주무실 때 예지를 자주 하신다잖아. 나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
“그래? 그러면 됐어.”
남부 마탑주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능력이다. 하지만 카리아와 1년 동안 붙어 지낸 플레어는 카리아가 예지를 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조금 의심이 가지만… 그렇다고 추궁할 생각은 없다. 정확히는 시간이 없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총장님은 별관에 계신다고 했지? 총장님은 왜?”
“총장님만 막을 수 있어… 아, 아니면 거미 교수님. 아, 아무튼 총장님을 본관으로 데리고 와야 해. 마족들이 본관으로 들이닥칠 거야…!”
“그러면 너는? 설마….”
“내가 본관을 막을 거야. 이, 이번엔 이것도 있으니까 괜찮아! 할 수 있어!”
“이번…? 아니, 아냐. 그래.”
방패 파편들이 섬뜩한 칼날을 품은 채 허공을 떠다녔다.
무질서하게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질서를 지니고 있다. 카리아의 염동 마법이 가지는 패턴. 플레어는 그걸 읽어 내곤 조금 놀랐다.
패턴을 지닐 정도면 숙련도가 꽤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배웠다. 즉, 카리아는 염동 마법을 어느 정도 다룰 줄 안다.
“…버텨 줘.”
츠즈즛.
플레어의 손안에서 황금빛 마력이 빛을 내면서 모여들었다.
마력은 곧 기사 검의 형태가 되었다. 그것을 쥔 플레어가 말했다.
“총장님, 꼭 모시고 올게.”
“응.”
“그때까지 꼭 버텨. 다치기만 해 봐.”
그렇게 쏘아붙인 플레어는 이사장실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안으로 더 들어갔다.
정문으로 걸어 나가는 것보다 창문을 깨고 바로 나가는 게 더 빠르다.
그 판단과 동시에 플레어는 창문을 깨뜨리고 3층 높이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렸다.
황금의 검사, 플레어였다.
“후….”
깨진 창문에서 고개를 돌린 카리아 또한 방패를 다시 원래대로 합치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본관 1층 현관에선 이미 수백의 마족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할 수 있다. 카리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본관에서 별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하지만 플레어가 작정하고 뛰면, 2분이면 된다.
이제 2분만 버티면 된다. 이 방패도 있으니까…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카리아는 다시 본관의 정문 앞에 섰다.
“후으….”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무섭다. 벌써 몇십 번이나 이곳에서 죽었다.
지금도 어깨부터 시작해 무릎까지, 그야말로 온몸이 덜덜 떨린다. 무섭다. 무서워 죽겠다. 그런데, 내가 해야 한다.
“할 수 있어….”
플레어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데는 실패했다.
학생들은 경보가 울리고, 마족들이 쳐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렸다.
당장 본관 2층엔 수십, 아니 백 명 넘는 학생들이 있다.
수십 번의 반복. 그중 몇 번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번번이 실패했다.
“할 수 있어….”
탑의 마법사들,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는 마법사들, 그러니까 조교수들은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겁에 질린 상황이다.
도움을 기대해 볼 만한 교수들… 마법사들은 결계를 유지하고 학생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플레어 뿐이다. 이게, 자신의 운명이다.
원망스럽기 짝이 없는 운명이다. 바로 이전까지는 다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지금도 아주 조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도망치면….”
남는 건 뭐가 있을까. 아직 10초가량의 여유가 있어 생각해 본다.
도망치면,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이 전부 죽는다. 결계가 깨지고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마족들은 총장님이 도착하기도 전에 카리아를 죽이고 본관의 계단을 올랐다.
그 이후는… 모른다. 살아남아 본 적이 없어서. 어쩌면 총장님이 마족들을 싹 다 쓸어버려서 별관과 기숙사의 학생들은 살아남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색 고블린과 그를 따르는 마족들은 살육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다.
본관의 학생들도 자신과 같은 꼴을 당할 것이다.
“여기서 버티면….”
아무도 죽지 않는다.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다름 아닌 그 이사장님한테.
“재앙의 원인….”
가문의 문장으로 쓰인다는 아티팩트도 쓰게 해 주셨다. 그런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아직도 여전하다. 인정, 받고 싶다.
도망치면 살 수도 있지만… 도망치지 않으면 그보다 훨씬 많은 걸 얻는다.
“그래.”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로 결정했다.
나는 영웅이 아니야. 버틴다면 돌아올 게 훨씬 많으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자기 최면을 걸어 부담을 지운다. 그리고.
―카앙!
결계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 회색 고블린을 선두로 수백의 마족들이 쇄도한다.
카리아는 완벽히 맞물려 있는 방패를 서로 떨어뜨려 놓았다. 칼날을 품은 채 주위를 떠다니는 방패 조각들을 쏘아 냈다.
“……!”
수십 번 반복하는 동안, 본관의 문을 부순 건 언제나 마족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카리아였다. 방패 조각들이 문을 부수고 날아가 마족들을 베어 냈다.
뜻을 알 수 없는 외침. 마족어일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들이 비명을 질렀다는 것이지.
“윽?!”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는 건 불가능했다. 시야에 들어온 작은 점. 그 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손도끼. 날아온다. 머리를 향해.
사고는 정돈되진 못했지만 판단은 빨랐다. 카리아는 재빨리 염동 마법을 재구축해 방패 조각들을 회수했다.
다른 마법사들이 보았다면 입을 다물지 못했을 재능이었다.
―투웅!
반사적으로 뻗은 손 앞에 맞물린 방패가 있었다. 순간 겁먹어서 질끈 감은 눈을 다시 뜨자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지는 도끼가 보였다.
“…막았다.”
방패는 망가지기는커녕 작은 흠집도 없었다. 진짜 아티팩트구나, 그렇게 감탄을 삼키며 카리아는 다시 방패를 분리해 날렸다.
총 17조각으로 나뉜 방패들이 서슬 퍼런 칼날을 마족들에게 들이대며 날아들었다.
두 개는 막혔지만, 나머지는 전부 유효타. 다시금 마족어로 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읏?!”
하지만 마족들도 바보는 아니다. 당연히 대응한다. 이전에는 손도끼였지만, 이번에는 손도끼 수준이 아니었다.
회색 피부의 고블린. 그가 땅을 박차고 단숨에 달려든 것이다.
“이건….”
못 막아.
방패가 회수되는 속도보다 고블린이 더 빠르다. 카리아는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카리아를 향해 휘둘러진 고블린의 검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하아, 흐아아….”
자칫했으면 ‘반복’했을 뻔했다. 다시금 느껴지는 죽음의 공포에 카리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카리아를 보며 고블린, 실라스는 미간을 찡그렸다.
“애새끼가….”
완전히 자라지도 않은 어린 인간이 벌인 짓이란 말인가. 웃기는 소리. 실라스는 죽어 나간 부하들을 떠올리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목을 노린 그 검은 목을 베지 못하고 막혀 버렸다.
“…무슨.”
쏘아 보냈던 방패 조각이 돌아왔다. 비록 전체가 아니라 한 조각이었지만, 분노에 차서 급하게 휘두른 검을 막아 내는 데는 충분했다.
이윽고 다른 방패 조각들이 돌아왔다. 염동 마법을 다시 조작해 조각을 짜 맞춘 카리아는 방패를 이용해 통째로 실라스를 밀어 버렸다.
“어…?”
힘에서 밀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밀리는 건 카리아의 마법이었다.
서서히 밀리는 힘 싸움도 지속할 순 없었다. 아직도 정문을 향해 수많은 마족이 달려오고 있었다.
결국 카리아는 방패를 이용해 밀어내는 것을 포기했다.
방패가 다시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다. 실라스는 단숨에 땅을 박차 카리아를 향해 검을 휘둘렀으나.
“됐다…!”
길고 날카로운 방패 조각 둘이 차례로 지나가면서 실라스의 양팔이 잘려 나갔다.
당연하게도 검은 끝까지 휘둘러지지 못했다. 잘려 나간 팔과 함께 허공을 몇 바퀴 돌다가 바닥에 힘없이 떨어질 뿐.
이겼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양팔의 절단면에서 새로운 팔이 솟아났다.
“어…?”
“재미있군.”
피부는 회색이 아니었다. 거무튀튀한 색. 하지만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근육이 늘고 짧은 가시도 돋아났다.
땅에 떨어진 검을 주운 실라스가 다시 카리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읏…!”
방패를 다시 불러들여 막지만, 마음이 급했던 탓에 제어가 완벽하지 못했다.
조각들이 맞물리지 못하고 어설프게 합쳐졌다. 꽈아악! 귀에 들릴 정도로 고블린의 손아귀 힘이 강해지자, 방패 조각들이 버티지 못하고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좋은 재주를 가지고 있군.”
“……으.”
“마족으로 태어나지 그랬나. 그랬으면….”
뭐라고 말하려고 한 걸까.
카리아는 알 수 없었다. 방패 조각이 마지막 하나만 남았을 때, 실라스의 검이 통째로 소실된 까닭에 실라스가 놀라 입을 다문 것이다.
“그랬으면, 뭐?”
“……하.”
“그랬으면 뭐. 어쩌려고 그랬는데?”
분노로 이글거리는 목소리가 흘렀다.
마탑의 탑주이자 아카데미의 총장, 시아나.
그녀가 실라스를 향해 집요하게 물었다.
“어쩌려고 했는데? 왜 말을 못 하니?”
“…….”
“말을 안 하는구나. 괜찮아. 말해 줘도, 난 너희를 용서할 생각이 없거든.”
“…크람파티아!”
실라스의 입에서 마족어가 튀어나왔다.
의미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언가에 대고 명령을 내린 것은 확실했다.
본관 바깥의 마족들이 일제히 영창을 시작한 것이다.
“아, 마법사 저주구나? 들어 봤어.”
“…….”
마법사 저주. 마족들이 인간 마법사를 상대할 때 사용하는, 주술과 마법을 섞은 저주.
주술에 걸리면 육체 내부의 마력 회로가 서로 엉켜 망가진다. 빠르게 해주하면 문제는 없지만, 인간 주술사는 얼마 없고 전투에선 그 ‘빠른’ 해주도 엄청난 빈틈을 낳는다.
“내 손짓 한 번에 천하가 뒤집히니.”
수백 명의 마족이 시아나 단 한 명을 노리고 사용한 저주는, 채 완성되지도 못했다.
팔을 옆으로 뻗으면서 중얼거린 한마디 영창. 그와 동시에 저주를 외우던 마족들의 몸이 일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윽고, 시아나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내렸다.
―끄아아아악!
공중으로 떠올랐던 마족들이 땅에 그대로 처박혔다. 섬뜩한 비명 소리와 뼈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실라스를 돌아본 시아나가 싱긋 미소 지었다.
“영창을 하면 빈틈이 생기잖니. 내가 그 빈틈을 놓칠 사람도 아니고, 상대를 잘 봐 가면서 해야지.”
“…….”
“안 그래?”
대답은, 않는다. 실라스는 미간을 팍 일그러뜨리더니 무기 없이 맨손으로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흉악한 크기의 주먹이 시아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시아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무어라 읊조릴 뿐.
―빡!
뼈를 때리는 타격음. 맞은 사람은 시아나가 아니었다. 그녀가 열어 낸 공간의 틈, 그 안을 뚫고 들어간 주먹이 실라스 본인의 머리를 가격한 것이다.
자기 주먹에 자기 뒤통수를 맞은 실라스는 얼굴을 구기며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똑같은 결과가, 다른 부위에서 작용할 뿐.
지지 않겠다는 듯 실라스는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럴 때마다 얻어맞는 것은 실라스 본인이었다.
“들어 봤어. 상처를 회복하면서… 진화하는 고블린이 있다고.”
“……!”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실라스를 농락하던 시아나가 그를 향해 말했다. 입은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은 그렇지 않다. 그녀의 미소는 절망을 안겨 주기 위한 미소였다.
“그 고블린이 제국어를 이해한다는 것도… 애매하게 상처 입히면 더 강해진다는 것도, 그리고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도….”
“…….”
“회복 마법이라고 하던데, 맞아?”
“이, 년이….”
“맞나 보네. 내 기특한 후배가 말해 준 거라서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아, 내 후배 이름 너도 알고 있을걸?”
막대한 마력이 시아나에게로 모여들었다. 만약 회복 마법으로 사용한다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실라스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간 시아나가 말했다.
“카를로스 크로우. 엘프식 이름은… 안타레스.”
실라스의 눈이 부릅떠진 순간, 회복 마법의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