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기회 (4)
인간의 삶은 미약하여라.
그러면서도 모두가 신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으니 그 미약한 삶에도 한 줌 의미가 있다.
선택하여라.
결국엔 지워져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만인이 우러러보며 추종하는 영원불멸한 신이 될 것인지.
너는 신이 되기에 충분하다.
* * *
“까마귀 공작.”
카를은 자신에게 내려졌다는 이명을 한 번 입에 담아보았다. 이시엘이 자신을 칭할 때 공작 까마귀라 하였던 것이 떠올랐다.
까마귀는 크로우 가문의 문장기로 쓰이는 새였다. 오랫동안 이어진 분쟁과 충돌.
거기서 발생한 수많은 죽음들을 쪼아먹으며 까마귀는 크로우 가문의 상징이 되었다.
그것이 벌써 몇 백년 전의 일이었고, 이제는 예전처럼 분쟁이 잦지 않음에도 이미 크로우 가문의 당주들은 까마귀 공작이라 불리었다.
언어가 다른 마족들은, 그것을 공작 까마귀라 불렀고.
“까마귀 공작 그 자체를 이명으로…”
“그만큼 당신의 공이 크다는 거겠죠. 게다가 당신이 작위를 비앙카에게 넘긴 걸 굉장히 아쉬워하시는 눈치였어요.”
“내가 세상 사람들한테 공작이라고 불리는 건…유리아한테 미안한데.”
탁, 탁. 얼음 정령들이 여기저기를 오가며 책들을 뒤졌다. 그 자그마하고 가벼운 움직임이 수십 수백 번 반복되자 꽤 시끄러웠다.
방해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오직 그녀 자신에게만 집중하라는 듯 카를의 양뺨을 붙잡고 시선을 맞추었다.
“비앙카는 신경 안쓸 거에요. 그런 허울 뿐인 일에 연연하는 아이는 아니니까요.”
대신, 하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당신이 저희 오라버니가 했던 것처럼 귀족들의 중심에 설 거에요. 사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요.”
“정치 싸움이 싫어서 작위도 내려놨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어요. 저희 같은 대가문 출신 자식들에겐…일종의 숙명 같은 거니까요.”
-상징은 사념을 모은다.
“읏.”
“응? 왜 그래요? 카를?”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서고를 짚으며 버텨서는 카를. 아나스타시아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념은 신을 만든다.
“하아…”
-너는 신이 되기에 충분하다.
“카를? 안색이 안좋아요. 이, 일단 앉아요. 억지로 서 있지 말고…아!”
-너는 이미 자격을 갖추었다.
까드드득. 휘청거리던 카를은 이를 빠득 갈며 억지로 버텨섰다.
-신이 되어라.
속삭임이 이어지고 두개골이 깨질듯한 고통 역시 이어졌다.
요동치는 막대한 양의 마력. 마법사가 아닌 아나스타시아도 느낄 정도였으니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녀는 일단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아나스타시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카를을 보고는 그의 손에 자신의 수정꽃 머리핀을 쥐어주었다.
“윽?”
가위에 눌렸다가 누군가 건드려 해방된 것처럼 의식이 되돌아온 카를은 순간 자신의 마력을 방출했다.
강렬한 마력의 격류. 그러는 와중에도 사중술사의 기량은 주위의 정령들을 모아 아나스타시아의 몸을 보호하는데 성공했다.
서고들이 우르르 넘어지고 사방이 크게 흔들렸다. 카를은 한 차례 깊게 숨을 내쉬고는 동그래진 눈으로 물었다.
“…괜찮아?”
“아, 네. 덕분…에요.”
“미안해.”
“아니에요. 아파보이는 얼굴이었는데…괜찮아요?”
“괜, 찮아 진 것 같아. 그런데 어떻게…?”
카를은 자신의 손 안에서 바스러진 수정꽃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력 폭주 증상이었잖아요. 그럴 때는 안정된 마력을 접촉하라고 들었거든요.”
“근데 이건…”
“당신이 당신을 구한 거에요.”
수정꽃에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아나스타시아에게 혹시 무언가 일이 생기거든 발생하게끔 만든 장치. 그 마법을 구성하는 마력 덕분에 폭주에서 벗어난 것이다.
“친절한 사람.”
서고가 난장판이 되면서 발생한 먼지가 카를의 어깨에 내려 앉았다. 그녀는 보랏빛 눈을 빛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나스타시아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일단…밖에 나가봐야될 것 같아요.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양의 마력이었는데.”
“누가보면 테러라고 착각하지 않을까.”
“그 정도였죠.”
장난스럽게 웃은 아나스타시아는 몸을 털고 지하 서고에서 바깥으로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서고 자체가 파손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지가 망가지지도 않았다.
대신.
“…와.”
제도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새하얗고, 결정의 구조가 보일 정도로 큼직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이게 웬 일이래…”
한여름의 제도는 갑작스럽게 겨울을 맞이했다.
* * *
“생각보다 금방 그쳐서 다행이에요. 폐하께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고민했는데…”
눈은 한 시간쯤 쏟아지다가 그쳤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눈인 까닭에 녹으면서도 물을 남기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겨울이 된 제도는 다시금 제 모습을 되찾았다.
펠하임 가문의 저택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가 지금은 다시 진정한 상태였다.
다만 마력의 격류로 난장판이 된 서고에 더 있을 수는 없었기에 카를은 정령들에게 정리를 맡기고 올라와 아나스타시아의 방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렇게 된 거에요? 그때 카를 뭔가 굉장히…”
“굉장히?”
“아파보였어요.”
고통엔 나름 익숙하다 생각했다. 그런데도 버티지 못할 만큼 강렬한 격통이었다.
아파보였다는 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카를은 그때를 떠올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가.”
“네.”
“내 머릿속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어.”
“말을요?”
“응.”
기억을 떠올린 카를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왔다.
“잠깐, 카를.”
“아?”
“됐다.”
아나스타시아의 부름에 고개를 들자 입안으로 쑥 밀고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달콤한 맛이 혀를 타고 퍼졌다. 짓궂은 미소를 지은 그녀가 말했다.
“먹으면서 생각해요. 천천히. 시간은 많으니까.”
“응…..그러니까 그 목소리는, 내가, 나한테 자격이 있다고 했어.”
“자격…이라면 카를이 아까 말했던 건가요? 열쇠를 찾는데 필요하다는?”
“아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신이 될 수 있는 자격.”
“…엥?”
“이상하게 들리는 건 알아. 그런데 확실히 그렇게 말했어. 내가 찾고 있는 자격은 절대 아니야.”
“그러면 누가 카를 당신을 농락하고 있는 거네요.”
“아냐. 농락이 아니야. 나는 이미 사도니까. 신이 될 자격은 차고도 넘치지. 이건 용이 바라는 자격이 아니야.”
“그러면 용이 바라는 자격은 뭘까요?”
모르고 있었다.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목소리를 속삭인 누군가 덕분에 이제는 알았다.
그 반대.
신이었으나 인간이 된 존재.
아스텔과 같은 존재.
“아마도…신이 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존재.”
“카를 당신이 신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 거라면, 아직 신이 되진 않은 거잖아요. 지금이라도 포기하면 되지 않나요?”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카를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신은 이미 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신을 사도로 만든 신이 그리 말하였고…
이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질 것이다.
이미 온 세상이 카를로스 크로우라는 자신의 이름을 안다. 까마귀 공작이라는 이명이 알려지면 그것이 상징이 되어 더더욱 빨라지리라.
“…대체, 어떻게 해야.”
저도 모르게 의식의 ‘몰입’이 이루어진다. 저도 모르게 방법을 찾는다. 그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또, 자신은, 그리고.
“카를, 그거 알아요?”
그때 아나스타시아의 손이 카를의 뺨에 닿았다. 온기가 감도는 손 덕분에 몰입이 살짝 끊기고 의식이 돌아왔다. 연보라빛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본다.
“당신은 늘 답을 알고 있어요.”
“내가.”
“네. 늦게 깨닫냐 빨리 깨닫냐의 차이일뿐. 당신은 답을 알고 있어요. 언제나.”
“내가, 그랬다고.”
“네 저랑 이야기 하다가 카를 혼자서 깨닫고…그런 일이 벌써 몇 번이나 있었는 걸요. 아마 이번에도 그럴 거에요. 그러니까 천천히.”
그녀의 손이 뺨에서 목을 타고 팔을 통해 내려왔다. 그녀는 카를의 손 위에 손을 겹쳤다.
“천천히 생각해요. 차나 마시면서. 차 마실 새도 없이 당신이 신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아나스타시아의 권유에 따라 카를은 꽃향기가 나는 차를 한 모금 삼켰다. 그는 천천히 생각했다. 눈을 감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러다가 다시금 몰입이 발생했고…
“카를.”
“…아?”
“제가 옆에 있어요. 저번처럼 이상한 상태에 빠질 일은 없어요. 천천히 생각해요.”
“…알았어.”
몰입의 발생은 이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카를은 아예 찻잔을 바라보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찻잔 안에 자신의 검은 눈동자가,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지 궁금해하는 아나스타시아의 눈이 들어왔다.
나의 눈동자를.
당신의 눈동자를.
그렇게 번갈아가면서 바라보다가, 그리고.
그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말했다.
카를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알, 것 같아. 안나.”
“잘 됐네요. 어떤 건데요?”
“무서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의외의 말에 아나스타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를은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움직임이 놀람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스스로가 소름돋았다.
“내가.”
“네에.”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
“네.”
“그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얻은 힘이 있어.”
“네에.”
“아무리 복잡한 계산도 쉽게 하고,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게 뭔지 알아내는…그런 거야.”
“신기한 힘이네요.”
그렇게 맞장구를 치면서 아나스타시아는 카를의 입 안에 과자를 넣어주었다.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카를은 생각했다.
아니. 아니야. 자신의 생각인지, 다른 무언가의 생각인지 모를, 그런 생각이었다.
“빌어, 처먹을.”
“어머.”
욕을 씹어 뱉자 아나스타시아는 그렇게 말했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아나스타시아는 그 생각을 벗어나는 행동을 보였다.
손을 뻗어, 카를의 입가를 손가락으로 훔친 것이다.
“과자 가루가 묻었네요.”
“…..”
“아, 미안해요. 말을 끊어서. 계속 말해줄래요?”
이젠 모르겠다고, 무언가가 생각했다.
“그 힘은 권능이야.”
“용들한테 공간의 제약이 없는 건 공간의 권능 덕분이죠? 그런 건가요?”
“맞아…”
카를은 맥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나스타시아는 그가 다음 말을 꺼내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아마도 그 권능 덕분에.”
“네.”
“나는 신이 되어가고 있는 거야.”
“그러면 그 권능을 포기해야겠네요. 아,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죠. 그럼…”
“권능을 포기하는 건 쉬워. 그런데…”
카를은.
오랜만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시야로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너무 익숙해져서, 무서워.”
“…아하.”
“내, 시작이나 다름없으니까.”
삶이 다시 시작되고.
어느 신이 보낸 메시지가 자신에게 닿았을 때, 카를은 제대로 시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마음 편하게 먹어요. 괜찮아요.”
“그런데…”
“그 마음 알아요. 저도 그랬던 적이 있으니까요.”
아나스타시아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그녀가 가볍게 속삭였다.
그러면서도 카를의 손을 잡은 손가락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럴 때, 제가 어떻게 이겨냈는지 알아요?”
“…모르겠어.”
“당신이 곁에 있어줬잖아요. 그 거울, 말이에요.”
“…아.”
“그때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제가 계속 곁에 있을테니까요. 그럼…조금 덜 무섭지 않을까요?”
하아.
하아아.
숨을 몰아서 내쉬던 카를은, 곧 자신의 권능을 스스로 꺼뜨렸다.
눈앞에는 여전히, 아나스타시아의 연보라빛 눈동자가 있었다.
오랜만에 아무런 글자도, 머릿속에서 억지로 펼쳐지는 것들도 없이 마주보는 맑은 시야.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눈.
카를은 그 눈으로 오랫동안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은망울 같은 그 보랏빛 눈이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