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역병 (1)
[신규 퀘스트가 발급되었습니다!] [최우선 목표 : 전염병 치료제 개발!] [보상 : 특성 포인트 +25] [세 가지의 추가 목표가 추가되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그런가.”
아틸렌의 목소리는 다급했으나, 카를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반응했다.
동서남북 네 개의 공작령 중 한 곳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이벤트다.
확률은 4분의 1. 높은 확률은 아니지만, 낮은 확률도 아니다.
카를은 이미 자신의 영지에서 전염병이 돌 수도 있다고 예상해 둔 상태였다.
그는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창에서 시선을 돌린 뒤, 아틸렌을 향해 물었다.
“최초 보고는 언제였나.”
“아카데미 학생을 소집하기 위해 영지 외곽의 서북부 지역으로 간 집행관이 최초로 발견했습니다. 그 보고서가 어제 아침 11시경에 도착했습니다.”
아틸렌은 막힘없이 설명하며 휘갈겨 쓴 글씨로 가득 찬 보고서를 카를에게 내밀었다.
6일 전에 작성된 보고서. 아틸렌은 어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전염병이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급할 것 없다.’
3분 안에 대처하면 ‘빠르게’ 대처한 것이 되어 이후에 반란이 일어나거나 하는 일은 없다.
게임에서의 1분은 현실에서 한 달이었으므로, 세 달 안에 대처하면 된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서북부의 산간 마을에서 최초로 발병했습니다. 그 산간 마을의 사냥꾼이 사냥감을 팔러 나갔다가 전염된 마을이 세 곳이 있고, 그 마을 세 곳에서 또 다른 마을들로 퍼져서…… 총 14개 마을에서 20여 명 이상의 환자를 발견했습니다.”
“초동 대처는?”
“현장에 있었던 집행관이 각하의 대리인 자격으로 위병들을 움직여 환자를 격리하고 마을 간에 이동을 통제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좋다. 잘 대처했군.”
하지만 고작 환자를 격리하고 마을 간의 교류를 막는 것으로는 이 전염병을 막을 수 없다.
시나리오에서 ‘이벤트’란 곧 플레이어의 게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소였으니까.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는 일이 아니다.
“병이 창궐한 마을 근처에 도시가 있나?”
“리안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캐모마일 자작이 다스리고, 인구는 천 명 정도입니다. 다행인 점은 아직 그 도시에서는 환자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천 명.”
최소한 그 도시까지는 전염병에 삼켜질 것이다.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사람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에도 사람을 잘 통제하지 못했는데, 중세가 배경인 이 세계는 오죽할까.
마을만 14개. 1일 차에 20명 이상. 거기에 천 명이 넘게 사는 도시까지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급하게 생각할 것 없다.’
카를은 스스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지금 여기서 허둥대다가 잘못 대처하면 상황의 악화만 불러올 뿐이다.
자신에겐 공략의 기억이 있다. 끝까지 클리어하진 못했지만, 극초반부의 돌발 이벤트에 불과한 전염병은 몇 번이고 완벽하게 대처했다.
한 번은 사상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게 한 적도 있었다.
‘전파력만 높지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다.’
에라 오브 엠파이어는 RTS 게임이지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게임이 아니다.
이 전염병 이벤트는 병 그 자체가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문제 되는 일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반란이다.
시나리오 설정상 작년 가을에 시작된 밀 농사가 올해 초, 폭설로 냉해를 입어서 흉년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 전염병이 돌아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의 분노는 어디로 향하겠는가.
처음엔 하늘로 향했다가, 그다음엔 배불리 먹고 병에도 걸리지 않는 귀족을 향하게 된다.
그들의 분노를 잠재우는 방법은 간단했다.
‘치료제만 있으면 된다.’
“일단 아틸렌 그대는 의사와 약사, 그리고 치유 마법을 다룰 줄 아는 마법사들을….”
거기까지 말할 카를은 갑자기 든 위화감에 입을 다물었다.
……약의 제조법.
약의 상세한 제조법까지는 카를도 알지 못했다.
게임 속에서 전염병이 퍼질 때, 그는 명령을 내리는 플레이어였으니까.
‘분명히… 황궁의 의사들을 보내서 병을 조사하게 한 뒤에….’
카를은 그가 플레이어였을 때 어떻게 전염병을 대처했는지 다시 한번 떠올렸다.
황궁의 의사는 곧 제국 최고의 의사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병을 치료할 마땅한 치료제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래서 황제는 의사를 대신해 그다음에는 치유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들을 보내 조사하게 했고.
마법사들은 마력석을 가공해 치료제를 만들어 낸다.
카를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문제는 이것이다.
그 치료제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게임에서 자신이 한 일이라곤 의사와 치유 마법사들을 파견하고, 치료제 생산에 자원을 투자한 것이 전부다.
애석하게도 약의 자세한 제조법 따위는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해와 분석 그리고 사고.
세 가지 특성이 작용하면서 카를은 당황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마력석을 가공해 치료제의 제조법을 설계해야 한다. 의사도 약사도 아닌 마법사가 필요하다.
치유 마법은 사람의 몸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기에 범용 마법 중에서 가장 난도가 높은 마법이다.
용병 마법사나 어중간하게 마탑에서 2~3년 수련한 마법사는 감히 사용할 엄두도 못 낸다.
게다가 단순히 치유 마법을 쓰는 게 전부가 아니라, 마력석을 이용해 치료제의 설계를 해야 한다.
그게 가능한 마법사가….
“카를? 심각한 일이야?”
…있었다.
생각에 깊이 잠겨 있어서 당연한 것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눈을 번쩍 뜬 카를이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응?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뇨. 저한테는 됐습니다.”
숙련된 치유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치료제를 직접 설계한 경험도 있는 마법사….
그 마법사는 바로 카를로스 크로우, 자기 자신이었다.
“지시 사항을 정정하겠다. 내가 직접 가마.”
“…병이 창궐한 지역으로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틸렌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면서 침묵했다.
자신의 주군이 정체불명의 돌림병이 퍼진 곳으로 가겠다고 하는데, 신하 된 입장으로서 말려야 하는가 아니면 잠자코 따라야 하는가.
만약에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 후는 어떻게 되는가.
잘 생각해야 했다.
서류에 서명만 하면 되는 것도 차일피일 미룬 아덴 크로우와는 다르다.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했고, 결단력까지 갖추고 있다.
게다가, 이 사태를 예측한 느낌도 든다.
돌림병의 증상을 정확히 맞추었고, 당황하는 기색도 없었으니.
그렇다면 자신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틸렌은 자신의 주군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고맙군. 수석 행정관.”
그때, 시아나가 카를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를 방금 그 전염병이라는 거… 심각한 거니?”
“그리 심각하진 않을 겁니다.”
“그리 심각하진 않다는 건 어느 정도는 심각하다는 뜻 아니니?”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시아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뿐만 아니라, 카를과 몇 년 동안 오랫동안 알고 지낸 마법사들의 표정 또한 좋지 않았다.
“…거기에 굳이 가야겠니?”
마탑에서 오래 지낸 실력 있는 마법사는 곧 치유 마법을 잘 다루는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염병은 흉년처럼 몇 년에 한 번은 꼭 찾아왔다.
“마탑을 옮겨야 하잖아. 그걸 제안한 사람이 훌쩍 떠나 버리면… 일이 제대로 풀리겠니?”
의사만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전염병이 널리 퍼지면, 마법사들이 파견된다.
전염병이라는 말에 표정이 안 좋아진 마법사들은 모두 그런 현장에 반강제적으로 나간 적 있는 이들이었다.
절대로 좋은 경험은 아니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다른 이유까지 들며 만류하는 것이겠지만.
“거의 1년을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치유 마법에 전념했습니다. 치유 마법에 한정한다면 감히, 선배님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 저 말고는 할 사람이 없습니다.”
“응?”
“선배님의 눈에 저는 영원히 어딘가 부족한 후배일 테지만 그들의 눈에 영주인 저는 유일한 희망일 테니까요.”
아.
탄식인지 감탄인지 모를 목소리가 시아나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저한테 계획이 있습니다.”
“뭐니, 그게?”
“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깁니다. 선배님, 후배 중에서 딱 한 명만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누굴 데려갈 생각인데?”
“사라.”
움찔.
이름을 불린 당사자가 어깨를 들썩였다.
“나?! 왜, 왜 나야? 나 선배한테 뭐 잘못한 거 있나…? 없잖아. 그, 근데 왜 나야?”
“매개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아아… 나밖에 없구나.”
언령 마법이 주가 되는 북부 마탑에서 사실상 매개 마법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사라뿐이었다.
푸. 크게 숨을 내뱉은 그녀는 체념했다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칼리.”
“읏. 나?”
“그대가 쓰는 혈마법이 필요할 거다.”
“…알았어.”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긴 했다.
어쩌다 하루를, 마탑의 마법사들과 어울리게 되었지만 원래 자신은 이방인이니 이곳에 계속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칼리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인 뒤, 말없이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마탑의 이전과 관련된 일은 제가 따로 사람을 보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응. 알겠어. 내가 가 본 장소면 바로 보내 주는 것도 가능한데… 그건 힘들 것 같네. 따로 필요한 건 없니?”
“제 연구실에 있는 자료. 선배님한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걸 확인하러 온 것인데 상황이 급변했다. 아쉽지만 다음에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 내가 따로 챙겨 둘게.”
“감사합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예전에 다른 마탑으로 가는 건데….”
투덜대는 사라와 카를의 모습을 번갈아 가면서 살피던 시아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미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뜻이 확고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자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면 굳이 나서지 않았던 사람이 맞나 싶다.
“카를, 사라.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꼭 지켜 줘.”
시아나가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아프지 마. 알겠지?”
* * *
[추가 목표 1 : 전염병의 유행을 제압. 특성 포인트 +15] [추가 목표 2 : 치료제를 한 달 내에 개발. 특성 포인트 +25] [추가 목표 3 : 병으로 인한 사망자 10명 이하. +보조 특성 선택권]서북부 지역에 위치한 도시, 리안으로 향하는 마차 안.
미뤄 두었던 추가 목표를 확인한 카를은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추가 목표가 셋….’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가끔씩 추가 목표가 딸린 퀘스트가 나온다.
추가라는 단어 때문에 얼핏 봤을 때는 달성하면 좋고, 실패하면 그만인 것처럼 보이지만, 퀘스트와 추가 목표는 한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추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퀘스트 자체를 완수하지 못하는 구조인 것이다.
‘…기한이 한 달밖에 안 되는 건가.’
그런 퀘스트의 구조를 알고 있었던 카를의 눈에 두 번째 추가 목표는 곧 시간제한이었다.
이 몸뚱이에 빙의하기 전, 카를로스는 저주에 걸려 쇠약해지던 아버지를 치료하고자 직접 치료제를 만들고 치유 마법을 썼다.
병이 아니라 저주였기에 실패하긴 했지만, 치료제를 직접 만들었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정체 모를 전염병의 치료제를 설계하고 실제로 만들어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후….”
답답한 마음에 카를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 소리를 들은 사라가 카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차가 계속 흔들리는 바람에 계속 멀미를 한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선배. 나, 우윽.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얼마든지.”
“…이거 좀 위험한 것 같은, 윽. 데.”
사라는 손에 들고 있었던 종이를 모아 카를을 향해 내밀었다.
리안에 파견된 집행관들이 작성한 보고서였다.
이미 몇 번이나 읽고 검토한 문서다.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은 카를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녀는 구태여 그것을 한 번 더 말했다.
“병의 전파가 우리 생각보다 더 빠른 것 같아. 전파가 빠른 돌림병은 보통 변이도 빨라서 치료제 만들기도 어려운데… 일단 가서 확인은 해 봐야겠, 윽. 겠지만, 이거, 좀 많이 위험한데 나, 나 그냥 돌아가면 안 돼?”
“네 말대로 그렇게 전파가 빠른 병이면 영지 전체로 퍼지는 건 순식간이야.”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내가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어. 미안하다.”
“으… 알았어. 그냥 해 본 말이야. 어차피 거의 다 오기도 했고….”
체념했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쉰 그녀는 마차에 등을 기댔다.
스륵. 마차의 벽면에 설치된 창문을 연 그녀는 그곳에 머리를 들이밀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창문 너머로 목적지, 소도시 리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를 지키는 위병들의 표정이 퍽 어두웠다.
그들은 카를이 탄 마차에 크로우 가문의 까마귀 문양 깃발이 달린 것을 보고, 마차를 세우지도 않고 그대로 들여보내 주었다.
마차가 덜컹거리며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활기를 띠어야 할 도시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
시나리오의 실패를 유발하는 이벤트.
앞으로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데 있어 수많은 시련을 가져올 이벤트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최악의 상황에 놓인 첫 번째 이벤트를 어떻게 넘기느냐.
그것이 앞으로의 분기점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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