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7
7화 클레멘트 대학 (2)
본가에서 파견되는 수행원은 학장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문의 문장을 달았다는 것부터 이미 공작의 대리인이라는 뜻이었으니까.
공작 본인이 영지 전체를 둘러볼 수 없기에 수행원들의 지위를 높여 일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클레멘트 대학의 학장이라도, 일단 크로우가의 문장을 달고 온 사람에게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수, 수행원분이십니까? 어쩐 일이신지요? 약속은 다음 주 화요일이 아니었습니까?”
카를은 학장의 말을 무시하고 천천히 학장실 내부를 살폈다.
눈에 띄는 사치품들이 많았다. 바닥에는 백호의 가죽이 깔려 있었고, 학장실의 명패는 다이아몬드였다.
학장의 봉급이 적은 건 아니지만 저런 값비싼 물건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변방의 남작가 출신이군.’
그는 카를로스의 기억 속에서 학장의 성씨를 보고 가문을 떠올려 냈다.
원래 이 대학의 교수였다가 학장직을 맡게 되면서 공작가의 가신이 되었다. 남작가라도 부유한 가문은 있지만, 학장의 가문은 아니었다.
“학장.”
“예?”
“근 2년 동안의 회계 장부를 전부 가져오도록.”
학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얼굴이었다.
그가 우물쭈물거리는 사이 방을 한 번 쭉 둘러본 카를이 엄포를 놓았다.
“내가 직접 움직여서 찾기 전에 그대 손으로 가져와라.”
“자, 장부는 어쩐 일로…. 아, 일단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약속하지 않은 날에 온 것도 모자라 갑자기 장부를 내놓으라니?
장부 내용을 검토하는 척 하면서 자신을 겁박할 작정임이 분명했다.
학장은 차가운 분위기를 띤 남자의 얼굴을 잠시 살피다가 자신의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이 정도면 되겠지.’
그는 책상 세 번째 서랍에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한 손으로 들기 벅찰 정도로 묵직했다.
분위기는 차가워 보여도 돈을 한 움큼 쥐여 주면 풀어져서는 금방 돌아갈 것이다.
‘쯧.’
학장은 손으로 혀를 차면서 조심스럽게 다가가 카를의 손 위에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그것을 받은 카를의 표정은 굳어지다 못해, 거의 썩어 들어갔다.
“이게 무엇인가?”
“예? 하하, 다름이 아니라… 제 작은 성의입니다.”
“학장.”
카를은 주머니를 풀어 내용물을 바닥에 쏟아 버렸다.
금화가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며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탐욕에 젖은 학장의 눈에는 제 피와 살이 흐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장난하지 말고 장부나 가져오도록.”
이번에는 차갑다 못해 살기가 서린 목소리였다. 학장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들 걸렸구만.’
그러게 장난질은 적당히 치라고 몇 번이나 말해 뒀거늘.
아무리 아덴 크로우가 정신 못 차리는 망나니 놈이어도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인데.
‘미리 만들어 두기를 잘했군.’
학장은 멋쩍게 웃으며 자신의 테이블로 돌아갔다. 금화 주머니를 꺼낸 세 번째 서랍장. 그곳에 가짜로 만들어 둔 장부가 있었다.
본가에 올라간 장부와 맞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가신들의 문제지 자기도 속아 넘어갔다고 하면 될 것이다.
“일단 이게 올해의 회계 장부입니다. 작년 장부는 자료실에 가야 해서… 허락하신다면 지금 당장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가져오게.”
그 말을 들은 학장은 몸을 틀어 학장실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그대가 아니라, 그대의 비서에게 한 말이다.”
이어진 말을 듣고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학장과 카를의 눈치를 살피던 비서는 카를이 재촉하자 알겠다면서 조심스럽게 학장실을 나섰다.
“학장.”
“예, 예.”
“올해 장부 내역이 내가 갖고 있는 서류와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군.”
불과 몇십 분 전에 집무실에서 본 서류에 적힌 예산의 반 토막 난 장부가 눈앞에 있었다.
카를로서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본인이 직접 왔는데도 비밀 장부를 내놓다니.
‘아니지….’
학장은 카를을 수행원이라고 불렀다. 즉,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카를로스의 기억에도 이 학장의 얼굴은 없었다. 서로가 초면이었으니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이것 말고 제대로 된 회계 장부를 가져오게.”
수행원인 척하고 학장의 말을 잘만 유도하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엮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이, 이게 제대로 된 장부입니다.”
“이것이?”
“예, 예. 수행원님께서 어떤 회계 장부를 보고 오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가진 장부는 이게 답니다.”
‘발뺌을 하겠다는 건가.’
“이상하군. 내가 보고받은 장부는 이것과 내용이 달랐는데.”
“아, 아마 중간에 바뀐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가신분께서 보낸 사람을 통해 이것과 똑같은 내용의 장부를 보냈을 뿐인지라….”
“그런가? 장부를 배달한 사람은 누구이고, 또 누구에게 보냈는가?”
“알리테르 남작이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남작에게 가지 않았을까 싶사온데….”
알리테르 남작.
카를은 그 이름을 일단 외워 두었다.
“그렇게 된 것인가. 의심해서 미안하군. 공작 각하께서 내게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라고 해서 말이네. 회계 장부는 학장 그대가 아니라 다른 가신들의 짓이었군.”
“예, 예! 그, 그렇지요! 예!”
“그러면 말인데 학장, 알리테르 남작 말고 다른 가신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는가?”
“예…?”
“설마 애송이 남작 하나가 이런 일을 꾸몄을 리는 없잖은가.”
카를은 자신의 목소리를 조금 부드럽게 낮추었다. 그리고는 학장실의 소파에 앉아서는 미소 비슷한 것을 지어 보려 애썼다.
학장의 입이 꿈틀거렸다. 그의 말이 먹힌 것이었다.
“제가 알기로는….”
곧 그의 입에서 귀족들의 이름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다 합쳐서 여덟 명. 그 이름을 전부 다 외운 카를은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된 건가…?’
학장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카를이 입을 열었다.
“학장.”
“예. 무슨 일이신지요?”
“그 이름 중에서 자네의 것은 없어 보이는군.”
카를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명패를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이 저절로 미끄러질 정도로 표면이 매끄러웠다.
마력으로 가공된 물건. 재료가 다이아몬드인 것도 모자라 마법사의 힘으로 가공되었다. 아마 카를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값을 지닌 물건이리라.
“정말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고 생각하나?”
“……예?”
학장은 등줄기를 내달리는 소름에 몸서리치며 카를을 올려다보았다.
날카로운 인상에 미려한 외모. 검은 머리카락에, 새파란 눈동자.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수행원 따위가 아니었다.
―둘째 공자님의 눈동자 색이 첫째 공자님과 다르더군.
―아, 자네도 보았나? 크로우의 핏줄은 회색 눈을 타고 나는데 둘째 공자님은 푸른색이네. 색이 영롱해서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지.
언젠가 공작가의 행사에 학장이 초대되었을 때, 지나가면서 들은 말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남자는 크로우 가문의 문장을 건, 푸른 눈의 남자였다.
“카, 카를로스 크로우…? 아, 아니, 크로우 공자님…? 분명히 전장에 나갔던 게….”
“얼마 전에 돌아왔네. 학장. 이런 거짓으로 꾸며진 장부 말고 진짜 장부는 어디 있지?”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 것치고는 관련된 이들의 이름을 너무 잘 알더군.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가 알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어.”
“그건 억지입니다…!”
“이 다이아몬드 명패도, 북방에선 잡히지 않는 백호 가죽, 그리고 아까 내밀었던 돈주머니도 모두 학장 그대의 봉급으로 마련하긴 어려운 것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카를은 학장의 책상을 뒤졌다. 결국 명패도 호랑이 가죽도 모두 심증에 불과했다.
다른 경위로 돈이 들어와서 마련했다고 하면 그만이니, 직접적인 증거인 비밀 장부가 필요했다.
돈주머니가 나온 서랍부터 자물쇠가 걸린 작은 금고까지 모두 열었으나, 장부와 비슷한 물건은 없었다.
‘다른 곳에 숨겨 둔… 아.’
그때, 카를의 눈에 학장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책이 들어왔다. 검은 가죽으로 제본된 제목 없는 책.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무언가 강렬한 직감을 느낀 카를은 그 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거였군.”
특성으로 얻은 분석 능력 덕분일까, 저택에서 보았던 서류와 내용물이 똑같다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필기체 또한 학장의 것이었다.
카를은 제 목소리를 학장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바꾸고 책상 구석에 놓인 통신용 마도구를 꾹 눌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학장님?
“급한 일이 있으니 지금 당장 학장실로 와 주게.”
―예! 알겠습니다!
통신용 마도구에서 손을 뗀 카를은 학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얼굴이 새파래진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학장.”
“…….”
“마법사를 속이려 들어선 안 되지.”
그대는 홀린 듯 잠들 것이다.
나직한 목소리로 마법을 사용해 학장을 재운 카를은 경비병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 * *
클레멘트 대학의 학장은 그대로 포박당해 죄인의 신분으로 본가로 압송되었다.
마차로 3일이 걸리는 거리. 학장이 잡혀 왔을 때는 이미 그의 입에서 나온 가신들이 모조리 붙잡힌 상태였다.
죄목은 회계 조작과 뇌물.
은근슬쩍 죄를 뭉개 버리고 넘어가려면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었으나, 카를로스 크로우가 직접 명령을 내려 관련된 이들을 모조리 감옥에 처넣었다.
―둘째 공자가 피의 숙청을 벌이기 시작했군.
그 과정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 가신들이 모여 그렇게 떠들었다.
클레멘트 대학의 회계 비리에 엮인 가신들은 아덴 크로우 휘하의 파벌이었다.
선대 공작이 사망하고 아덴 크로우가 가주의 자리에 오르며 커진 세력.
카를로스 크로우에게 있어선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이들.
카를의 반란이 성공했을 때 이미 그들의 운명은 반쯤 결정지어진 것이었으나.
―이렇게 빨리 말인가?
시기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직접 증거를 확보하고 학장을 잡아들인 것은 반란이 있었던 그 날 바로 이루어졌다.
학장은 카를로스 크로우의 반란이 성공했다는 소식은커녕 그가 전장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겠지.
일단 건수가 잡히면 감옥에 처박힐 것이다. 공작가의 감옥은 그리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다.
감옥의 인원이 다 차면 목이 날아가는 이가 나올 것이다.
―둘째 공자가 원래도 이리 화끈했나?
―내 기억으로는 아닐세. 오히려 소심한 편이었지. 그래도 그럴 기미는 있어 보이지 않았나? 마탑에 혼자 들어간 것을 보면….
제국을 떠받치는 다섯 개의 기둥 중 하나가 크로우 가문이었다.
대마법사인 마탑주를 직접 고용해 개인 과외를 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카를로스 크로우는 공작가라는 배경을 버리고 입탑(入塔)했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
―뭐가 어찌 됐든 결국은 알아서 숙이라는 뜻이겠지.
대부분의 가신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카를로스 크로우는 제 손에 피를 묻혀가며 가주의 직위를 찬탈했다.
이에 반발하는 이들은 아덴 크로우와 한패로 몰릴 것이 뻔했다.
그 이후의 결과는? 죽음 혹은 옥살이다.
―다들 조심하시게. 솔직히 말해 털어서 안 나올 사람 한 명도 없지 않은가.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가신들은 해산했다.
며칠 만에 그들의 두려움을 한 몸에 산 카를은.
“…이걸 어떻게 한다.”
시종들이 가져온 마법서를 읽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