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ngeon Cleaning Life of a Once Genius Hunter RAW novel - Chapter 90
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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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는 이미 내가 퇴사한다는 소문이 싹 퍼져선 꽤나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미리 알고 있던 김민주나 이아영, 한유빈 등등은 그나마 덜 했지만, 다른 놈들이 꽤나 야단법석이었다.
그 중엔 차석현 길드장과 구상찬 기자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몇 달 같이 일하지도 않은 청소부 출신 한 명 나간다는데 왜들 그리 호들갑인지 잘 이해는 안 갔지만…….
아무튼, 나는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꽤나 바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내 업무는 마무리 지어야 했다.
덕분에 요 며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어쨌든 시간은 착실히 흘렀고, 그렇게 마지막 출근 날이 찾아왔다.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아영 실장과 편 팀장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긴 했지만… 이제야 그만두신다는 게 실감이 나네요.”
“근데 우리 회식은 왜 안 해요? 끝까지 구두쇠야, 아주.”
그들뿐만 아니라 김민주와 한유빈 팀장 또한 내 사무실을 찾았다.
김민주와 편 팀장은 꽃다발을 전해주었고, 한유빈은 액자에 담긴 2달러짜리 지폐를 선물했다.
미국에선 행운의 상징이라나 뭐라나.
그리고 이아영 실장은…… 빈손이었다.
“그쪽은 뭐 없습니까?”
“참 나, 다 큰 어른이 무슨 선물을 강요해요?”
팔짱을 끼며 톡 쏘아붙인다.
끝까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여자다.
“설마 저 나간다고 삐졌습니까?”
“자의식 과잉이시네. 서운할 게 뭐가 있어요. 다 각자 갈 길 가는 거지 뭐.”
뭐가 그리 대수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획 돌린다.
노골적으로 아쉬운 티를 내던 요전과는 완전히 다른 반응이었다.
홍길동도 아니고, 무슨 기분이 이리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건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암만 봐도 제정신은 아니야.’
더 엮이기 전에 나가게 돼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이제 좋은 날도 다 갔습니다. 본부장님 없으면 제대로 굴러가기나 하겠습니까.”
“나갈 마당에 아부하셔도 뭐 없습니다. 저 없을 때도 잘만 하지 않았습니까.”
“서민철 그 새끼 있었을 때요? 설마 그 꼴이 정말 잘 돌아갔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
편 팀장은 곧바로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서민철을 흉내 냈고, 동시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가벼워졌다.
“준비하고 계신다는 게… 청소팀 파견 사업이라고 하셨나요?”
“예. 뭐, 아직 생각만 하고 있고 진행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요.”
“청소팀 분들한테 스카웃 제의라도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것도 뭐 기반이라도 잡혀야 하죠. 맨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누가 어울려주기나 하겠습니까.”
“글쎄요~. 제 생각엔 한 명쯤은 무조건 있을 것 같은데.”
편 팀장의 시선이 이아영을 향했다.
그녀는 뭔가 뜨끔 하는 게 있는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실수하고 눈치 보는 고양이 같은 반응이다.
“그나저나 아이디어 괜찮네요. 미리 알았으면 제가 먼저 했을 텐데.”
“뭣 하면 동업하시겠습니까? 자리 하나 만들어 놓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약속 지키셔야 합니다?”
“농담입니다. 통제팀장씩이나 되는 분을 어떻게 끌어들이겠습니까.”
편 팀장이 노골적으로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사실 국제 협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위장 사업이라는 걸 알았다면 저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지만.
“혹시 뭐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꼭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후로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소소한 담소가 이어졌다.
한 시간 정도가 흐르자 모두가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대충 시간을 때웠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별다른 감상이 들진 않았다.
퇴사라곤 해도 결국 진짜 내 일도 아니었고.
원래로 돌아가기 위해 잠깐 들렀던 것뿐이었으니 딱히 아쉬울 것도 없었다.
여기서 만난 이들도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이들이고, 무엇보다 결국 나가면 다 끝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본부 로비에서 그들을 만나기 전까진.
“수고하셨습니다.”
“나가셔도 건강하시고요.”
“본부장님 덕분에 요 몇 달은 정말 일할 맛 났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한 번씩 얼굴 비춰주시죠. 하하하!”
청소팀을 비롯해 꽤나 많은 팀원이 나를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
그중에 문소연과 한상혁도 보였다.
“……일들은 안 하십니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으면 가서 던전 하나라도 더 작업할 것이지.”
“크하하! 하여간 본부장님 일 중독이라니까!”
“낭만이 없어요, 낭만이!”
진심으로 한 말인데 어째 반응이 심상치 않다.
걱정해줘도 뭐라네.
“……종종 연락해도 되죠?”
“편하신 대로 하십쇼.”
“……히히.”
내가 대답하자 문소연이 환하게 웃는다.
“밖에서 나 모른 척하면 안 된다?”
그녀의 뒤를 이어 이번엔 한상혁이 다가왔다.
“너 하는 거 보고.”
“참 나!”
한상혁이 피식 실소를 뱉었다.
그렇게 나는 남은 이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본부 건물을 걸어 나왔다.
‘뭐, 아주 상관없지는 않았네.’
나는 그것으로 전생에 이어 반평생을 보냈던 협회에서, 전생에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식적인 작별을 고했다.
***
「(1보) 이능차원관리협회, 김준우 작전 본부장 사퇴.」
「본부장 위임 2달 만에 사퇴, ‘대체 왜?’」
「너무 무거운 짐이었나… 김 작전 본부장의 돌연 사퇴에 누리꾼들 ‘충격’」
「박인범 협회장 ‘본인의 결정을 존중한다’, 이사회조차 몰랐던 사퇴」
「아레스 길드, 차석현 대표 ‘당황스러운 결정’, ‘그럼에도 응원한다’ 마음 전해」
「청소팀 막내에서 작전 본부장까지. 김 작전 본부장의 초고속 승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리 길드로 와주세요’ 김 작전 본부장 영입을 위해 전국 각지 길드에서 때아닌 ‘스카웃 전쟁’」
「최연소, 최다 업적, 최단기간. ‘역대급’ 김 前 작전 본부장, 앞으로의 행보는?」
“아쉬우시겠습니다.”
여의도 행정본부, 협회장실.
기사를 확인하던 이두식 이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쉽기는. 나간 사람 신경 쓸 만큼 우리가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축 처진 목소리는 누가 봐도 아쉬워 죽으려는 듯했다.
이두식 이사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럼 일단은 차기 본부장부터 어떻게 해야겠죠. 후임으로 생각해둔 사람은 있습니까?”
“글쎄다. 그게 고민이긴 한데.”
“뭐, 누가 앉든 그놈만큼은 못할 겁니다.”
“그런 건 기대도 안 해.”
협회장이 손을 휘휘 저었다.
이두식 이사는 잠시 턱을 쓰다듬다가 넌지시 물었다.
“김민주 팀장은 어떻습니까?”
“안 물어봤겠냐?”
“거절입니까?”
“단칼에 자르더라. 참 나, 누구랑 똑같아 아주.”
“어쩔 수 없죠. 뭐, 그놈이 해놓은 일을 보고도 뒤를 이을 놈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시벌. 난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니까.”
협회장이 클클 웃었다.
새파랗게 젊은 청소부 막내가 협회 직원들조차 무시하던 그 청소팀의 입지를 미친 듯이 끌어올리질 않나.
협회 실세였던 이수용과 서민철을 날려버리질 않나…….
하나하나 열거하려면 날이 샐 정도였다.
“하아…….”
협회장이 길게 숨을 뱉었다.
“조용해지겠구먼.”
“그러니까 말입니다. 해외 지부 건도 실질적으로 퍼즈가 났으니. 하여간 국제 협회 새끼들…….”
“너무 그러지 마라. 똥은 무서워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거니까.”
물론 피할 생각도 없지만.
협회장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하겠지만, 이두식 이사는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었다.
김준우가 협회를 나간 건 더 이상 본인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혼자 위험을 떠맡기 위해서라는 걸.
보아하니 국제 협회의 타깃이 되고, 주변 사람들마저 위험해진 게 모두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직접 책임을 지려는 거겠지.
냉철하게 봤을 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벌였던 일들은 결국 다 우리를 위해서 한 행동이 아니었던가.
그 책임을 혼자 짊어지려는데, 협회장으로서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잘됐으면 좋겠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목소리가 조금 컸던 모양인지 이두식 이사가 대답했다.
“선물을 보냈으니 괜찮을 겁니다.”
“무슨 선물?”
“비밀입니다.”
“별게 참.”
“협회장님도 저 빼고 둘이서 비밀 얘기 나누시지 않았습니까.”
대답 대신 실소를 뱉었다.
“선물이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이두식 이사가 중얼거렸다.
***
작은 원룸.
낯설기만 했던 공간도 이젠 너무 익숙해졌다.
간만에 갖는 여유로운 시간.
나는 가만히 침대에 누워 앞으로의 일들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중이었다.
띵동―.
그 순간 난데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싶어 나가보니 생각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어, 집에 있었네요?”
“……?”
이아영 실장이었다.
뭐지…?
이 사람이 여긴 왜?
너무 뜬금없는 등장에 잠시 벙쪄 있자니, 이아영 실장이 내 눈앞에다 손바닥을 흔들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내가 뭐 못 올 데라도 왔어요?”
“……뭡니까. 본부에 뭔 일이라도 났습니까?”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잠시 우물쭈물하다 말을 잇는다.
“저 퇴사했어요.”
“……뭐요?”
“아, 엄밀히 따지면 잘린 거긴 한데.”
다짜고짜 충격적인 말을 내뱉는다.
“자, 잘렸다뇨. 누가 당신을 자릅니까?”
“누구겠어요.”
“……설마 이두식 이사님이라고 하려는 건 아니겠죠?”
“아니긴요. 나가고 싶다고 하니까 바로 해고 처리해버리던데요?”
나는 이마를 탁 짚었다.
아무리 본인이 나가고 싶다고 해도, 지원팀 최고 책임자를 그렇게 한 큐에 날려버린다고?
대체 어떻게 되먹은 부녀인가.
아니, 그런 것보다…… 퇴사한 거면 한 거지 여긴 왜 찾아온 건가.
“설마 잘렸으니까 나보고 책임지라는 건…….”
“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자의식 과잉이에요?”
“그럼 우리 집엔 왜 왔습니까.”
내가 묻자 그녀는 큼큼, 헛기침했다.
“그… 사업 준비는 잘돼가요?”
“그럭저럭. 그건 왜요.”
“나도 끼워주면 안 돼요?”
“……?”
뭐라는 거야, 시발.
“저 백수 되면 책임져준다면서요.”
“대체 내가 언제……. 아니 그것보다, 방금은 나보고 책임지라는 거 아니라면서요.”
“…….”
눈을 돌려 시선을 피한다.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됐으니까 돌아가시죠. 크게 도움도 안 될 것 같은…….”
“자, 잠깐만요! 설마 거절하려는 건 아니죠? 나 있는 거랑 없는 거랑 차이 되게 클 텐데?”
“참 나, 별…….”
자의식 과잉은 내가 아니라 그쪽이네.
“아, 맞다! 서, 선물도 가져왔어요!”
“선물…?”
“그때 안 줬다고 삐졌잖아요? 지금이라도 줄 테니까 기분 풀어요.”
가방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넨다.
한눈에 봐도 꽤나 두꺼워 보이는 서류 뭉치였다.
“……이게 뭡니까?”
“국내 지부 청소팀 현황이에요. 팀당 인원이랑 예산, 작업량, 근무 시간 등등. 어때요? 당신 사업에 꼭 필요한 정보 같은데.”
“…….”
잠시 멈칫했지만…… 국내 정보 정도야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청소팀 파견 사업에 올인할 것도 아니고.
뭐, 해외 협회 정보라면 모를까.
“별로 구미가…….”
“그리고 이것도.”
말을 꺼내기 무섭게 그녀가 또 다른 서류를 꺼내 들었다.
“이건 해외 각국 독립협회 정보들. 각 팀별 인원이랑 운영 현황이에요. 이건 어때요?”
“…….”
“후후, 이건 좀 구미가 당기나 보네요.”
“……아니, 그전에 이런 거 막 가져와도 되는 겁니까?”
“당연히 안 되죠.”
말은 안 된다는데 표정은 왜 저리 당당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저 이제 들어가도 돼요?”
이아영 실장이 집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숨 뱉길 한 차례.
나는 결국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