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dest son is eager for soccer RAW novel - Chapter (104)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04화
영국의 초등학교는 3시만 되면 방과 후 활동을 시작한다.
물론, 선택사항이긴 하지만 태양의 동생들은 셋 모두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가을이는 피아노, 여름이는 형을 따라서 축구, 겨울이는 수영을 배우고 있었다.
가을이는 동생들보다 방과 후 활동이 조금 일찍 끝나는 편이었다.
그러면 항상 여름이가 축구하는 걸 지켜보다가 여름이와 함께 겨울이를 데리러 간 다음에 엄마를 기다려 함께 오는 게 일상이었다.
“야, 너네 누나 왔다.”
“응, 알아.”
“알면 가서 아는 척이라도 해, 인마.”
“나, 남자가 무슨 여자한테 가서 인사하고 그러냐!”
“누나잖아?”
“그래도!”
여름이는 가을이가 오는 걸 부끄러워했다.
예전에 엄마처럼 살뜰하게 챙겨주는 가을이를 보고 친구들이 누나가 돌봐줘야 하는 애냐고 놀린 이후 부터였다.
여름이도 어느덧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이런 것에 민감한 나이였다.
여름이는 애써 누나를 외면하고 공을 바라봤다.
형과 똑같이 공격수로 뛰고 있었지만, 여름이가 느끼기에 형만큼 재능이 없는 것 같았다.
형은 어른들이랑 시합을 해도 골을 그렇게 많이 넣는데, 여름이는 그렇지 못했다.
뭐, 진짜 축구 선수가 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형의 동생인데 이것밖에 안 돼?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참고로 주변에서는 아무도 태양과 비교하지 않았다.
여름이는 물론이고 남매들 모두가 형, 오빠가 태양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걸 의심하지 않았다.
뉴캐슬에는 차이나타운이 있었고, 그 탓인지 중국인들이나 아시아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항상 엄마와 경호원이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친구들은 그저 돈도 많은데 희한하게 국립학교를 다니는 아이 정도로 여겼다.
물론, 소수의 친구들은 태양이의 동생이라는 걸 알았지만, 굳이 이야기하고 다니지 않았다.
입이 무겁기보다는 뭐랄까, 친구의 엄청난 비밀을 본인들끼리만 공유한다는 그런 것 때문이랄까?
한참 비밀의 무언가를 좋아할 나이니까.
“야! 패스해! 패스!”
아무튼, 그런 친구들과 비록 형만큼은 못하지만, 축구를 한다는 건 여름이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친구가 보낸 공을 받고 여름이는 골대를 바라보고 슈팅했다.
코치가 가르쳐 준 대로 슈팅했지만, 놀랍게도 여름이는 형과 달리 발이 세모였다.
골대 위를 훌쩍 넘어가는 대형 홈런이었다.
그 공이 가을이에게 향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 누나를 보고 여름이와 친구들이 놀란다.
“어?”
“야, 공 너네 누나한테 간다.”
“누나! 비켜!”
엄마와 연락을 주고받던 가을은 고개를 들었다.
떨어지는 공을 보고 가을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떨어지는 공을 발등으로 받았다.
공이 발등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부드럽게 가을이의 발 앞에 놓여졌다.
아이들의 소란에 시선을 돌렸던 코치도 놀라 멈출 정도의 퍼스트 터치였다.
가을이는 모두가 자신을 보자 발밑에 공을 바라봤다.
“아, 이거 줘야지.”
가을이는 발등으로 공을 띄워 발리로 공을 차 도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아무도 공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가을이를 바라볼 뿐.
“아, 어, 그래. 오늘은 이만할까? 다들 내일 보자, 얘들아.”
뒤늦게 정신 차린 코치는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옷을 챙긴 여름이는 가을이와 겨울이를 데리러 걸어가며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응?”
“아까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응? 뭐?”
“아까 그 공 받고 우리한테 돌려준 거 말이야. 그거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는 거야?”
그 말에 가을이는 무슨 소리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되는데? 혹시 축구 클래스에서 이런 걸 연습시키니?”
그러면 다닐 이유가 없지 않나? 라고 말하는 누나가 왠지 모르게 미워지는 여름이었다.
* * *
내가 FA컵에서 열심히 뛰던 사이 아시안컵이 끝났다.
나를 데려와야 하니 마니 했지만, 결국 축협은 나를 차출하지 않았다.
내 SNS 발언 때문이겠지.
어쨌든 아시안컵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결승까지 순항하다가 이란과 결승에서 2대0으로 아쉽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준우승이면 만족할 성적 아니냐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1960년 이후 단 한 번도 아시안컵에 우승을 못했다.
아시아의 호랑이, 아시아 최강국을 자처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당연히 만족할 리가 없지.
물론, 축구를 좀 아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가 아시아 부동의 1위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가 유난히 중동에 취약한 점, 일본이 나날이 발전해 평균적인 수준은 우리를 넘어섰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국민 여론이 과연 그럴까?
우린 언제나 아시아 1위, 아시아 최강이어야 했다.
차범곤이 있고, 박지송이 있었으며, 손홍민, 이강안, 그 외에 유럽에서 활약한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선수인 박민규가 있지 않은가.
그뿐이야?
요번 아시안컵은 한국에서 열린 만큼 무조건 우승을 해야 한다며 유럽파 선수들을 죄다 불러왔다.
역대급 스쿼드라고 협회와 감독이 자부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란에게 패배했다.
그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결국 1960년 이후 우리는 아직도 우승을 못했다.
가만, 그럼 벌써 우승 못한지 75년이나 된 거야? 와, 진짜 세상에나.
뭐, 내 입장에서는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다.
[대한민국 감독, 최판성 경질.]일단, 국대 감독 깜냥이 아닌 최판성이라는 대표팀 감독이 잘렸다.
[축구협회 대대적인 물갈이, 새로운 시대 찾아온다.]지영수 라인이 모두 쫓겨났다.
프로젝트 라인이 아니다 싶어서 지영수 라인을 데려왔는데, 지영수 라인이 해놓은 게 똥 같고 여론도 안 좋으니 협회장이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감독이 물색되고 있었다.
물망에 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들어본 사람이었다.
뭐지?
이 사람들 연봉 꽤 높을 텐데?
여론이 너무 안 좋으니 이번에 돈 좀 쓸 생각인가?
누가 선임될지 모르겠다만, 물망에 오른 사람 중에 한 명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게다가 협회에서 따로 연락까지 왔다.
-아직 감독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3월에 있을 A매치는 유럽 원정이 될 예정입니다. 대표팀에 합류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내용이었다.
나에게 직접 한 건 아니고, 나의 에이전트인 안나에게 연락이 갔다.
어쨌든 17, 아니, 이제 한 살 더 먹었으니 18살인 나에게 콧대 높은 협회가 직접 연락을 한 거다.
내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여론이 온통 나를 비추고 있는 탓도 있겠지.
나를 대표팀에 올리지 않으면 팬들이 뒤집어엎을 기세였으니까.
나는 긍정적인 답변을 안나를 통해 보냈다.
그사이 우리는 25라운드 경기를 치렀다.
상대는 레스터였고, 나는 한 골을 넣었고, 모처럼 실바가 두 골을 넣으면서 승리했다.
경기가 끝나고 샤워를 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아, 얘네랑 싸우면 집에 버스 타고 가야해서 귀찮다니까.”
실바가 투덜거리며 버스에 앉았다.
킹 파워 스타디움은 비행기를 타기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가까워서 버스나 기차를 탔다.
우리 구단은 안전 문제 때문에 기차보다는 버스를 선호하는 편이다.
버스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고려해 좌석이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 부럽지 않게 설계되어 있었다.
솔직히 불편할 일이 없었다.
저 노인네가 한 자리에 오래 못 있는 양반이어서 저렇다.
여기서 말이라도 걸든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샬렛이든 실바든 누구든 나를 귀찮게 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안대를 끼고 헤드셋을 머리에 썼다.
그리고 이내 강제로 벗겨져야 했다.
“아, 왜!”
짜증스럽게 버럭 소리를 치는데 내 앞에 불쑥 내미는 것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생일 축하한다, 형제.”
실바가 생일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이 내 생일이었다.
지난 삶에서 혼자인 생일이 싫어서 일부러 의식하지 않았는데, 아직도 그 습관이 남아있었다.
매년 까먹네.
그러고 보니 1군에서 맞이하는 첫 생일인가.
“뭐야, 뭔 생각을 그리해?”
“깜빡했다, 이 생각? 그나저나 설마 버스 안에서 그거 내 얼굴에 던지거나 할 생각은 아니지?”
“응? 어떻게 알았음?”
실바가 씨익 웃으며 케익을 내 얼굴에 들이댄다.
잽싸게 실바의 손을 쳐내서 케익을 떠오르게 하고 한 손으로 케익을 잡아 오히려 실바의 얼굴에 뒤집어씌우는 데 성공했다.
“와우.”
“이게 그 동양의 무술인가 뭐시인가 그거냐?”
“아니, 생존본능.”
휴, 하마터면 케이크 뒤집어쓰고 집에 갈 뻔했네.
“아무튼, 다들 고맙네. 이렇게 생일도 챙겨주고.”
“어, 응.”
“혹시나 버스 안에서 샴페인 같은 거 터뜨리는 개념 없는 짓은 하지 말고. 청소 니네가 할 거 아니잖아.”
“응…….”
그 말에 일리뉴가 시무룩하게 뒤에 숨긴 샴페인을 내려놓는다.
“폭죽도 불 낼 일 있어?”
“응…….”
이번에는 린데만이 시무룩하게 폭죽을 내려놨다.
“꼬깔 모자 같은 거 내 머리에 씌우면 당장 벗어서 얼굴에 꼬깔로 찔러 버린다.”
“이 정도는 써줘라. 공식 SNS에 올라갈 건데.”
“들고만 있을게.”
결국 나는 꼬깔 모자를 쓰는 시늉만 하고 얼굴에 케이크를 잔뜩 묻힌 실바와 동료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 * *
@NUFC
[(사진)윤태양과 뉴캐슬 선수단] [우리의 어린 왕자, 우리의 NO.7윤태양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
#@CHOOKTAEYANG #2.18]
-생일 축하해 태양 😀
-태어나 줘서 고마워
-세자 저하 생일 축하해요!
-축태양 축하해
-ㅋㅋㅋ생일은 태양이인데 왜 실바가 케이크 뒤집어썼냐
-태양이한테 장난치려다 되려 당했다가 정설임
-ㅋㅋㅋㄹㅇㅋ 실바가 당한 듯
* * *
그런데 의외의 SNS 계정에서 내 생일을 축하해왔다.
@NO.7_PARK
[대한민국의 미래! 생일 축하한다!#@CHOOKTAEYANG]
넘버 7, 박.
대한민국 국가대표 7번 계보를 잇는 주인공, 박민규였다.
이 사람의 위상은 우리보다 한참 윗세대 선배인 손홍민 선수와 비슷하다.
플레이 스타일은 리베리에 더 근접한데, 그의 개인 커리어를 보면 손홍민 선수와 비슷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승 커리어다.
우승과는 거리가 먼 토트넘의 손홍민 선수와 달리, 박민규, 그의 소속팀은 분데스리가의 공룡, 바이에른 뮌헨이었거든.
마이스터 샬레를 놓치는 것보다 들어 올리는 게 당연한 팀, 챔피언스 리그의 강자로 분류하는 레.파.뮌 중에서 뮌을 담당하고 있는 그곳이었다.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라는 팀을 분데스리가에 입성시키고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한 시즌 전, 후반기 두 경기 동안 해트트릭 한 번과 멀티골을 기록하여 깊은 인상을 심어주며 29/30 시즌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이후 지난 시즌까지 다섯 시즌 동안 꾸준히 10골 이상을 넣어주면서 활약 중이었다.
모든 대한민국 선수들이 동경하고 또는 존경하는 인물.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장.
한국 팬들과 바이에른 팬들이 사랑하는 모범적인 선수.
그런데 좀 뜬금없긴 하다.
나랑은 아무런 접점이 없거든.
그래도 무시하면 온 국민이 뭇매를 때릴 수도 있으니 답해야겠지.
@CHOOKTAEYANG
[(사진) 골 넣고 환호하는 박민규] [감사합니다! 내 우상!#태극전사 #@NO.7_PARK #롤모델 #언젠가_같이]
-선후배 사이에 보기 좋네 ^^
-세자 저하 예의 바른 것 봐 ^^
-역시 태양이도 박민규가 롤모델이구나
-한국 선수라면 그럴 수밖에 ㅎ
이것 봐, 여론이 훈훈하니 좋아지잖아.
그런데 어쩌나.
예전에 내 롤모델은 델로아였고, 지금은 아무도 없다.
박민규는 언젠가 국대에 갔을 때 7번을 뺏어와야 하는 경쟁자일 뿐이거든.
사실, 지난 삶에서 선수로서 나와 접점이 없어야 할 이 사람은 나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아니, 이 사람과 사이가 좋을 사람이 있나?
그러고 보니 다음 경기가 이 사람이 뛰는 바이에른 뮌헨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