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dest son is eager for soccer RAW novel - Chapter (176)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76화
차에서 내려 노래가 들려오는 거리로 걸어간다.
“오, 태양.”
“오랜만이네, 어디 가는 길이야?”
“왕이시여!”
내가 종종 찾는 가게 주인들은 반갑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평소 나를 볼 일이 드문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며 유난하게 반응한다.
이런 반응은 이제 익숙하다.
“백성들이 잘 사나 순찰이라도 나왔나?”
과일가게 아저씨가 웃으며 나에게 묻는다.
“뭐, 왕의 의무죠.”
“하하하. 그렇지. 훌륭한 왕이네.”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에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저…….”
공을 들고 쑥스러운 듯 우물쭈물하는 아이였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싸인 해줄까?”
“네!”
아이가 활짝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쩌면 이 아이가 내 싸인으로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울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이런 팬서비스가 즐거울 정도다.
“저… 우리 아이랑 사진을 찍어주실 수 있나요?”
그때 아이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물론이죠.”
사진도 거절하지 않고 아이와 높이를 맞추고 사진을 찍어준다.
“저도 왕처럼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요!”
“좋네. 툰이야?”
“당연하죠! 태양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될 거예요!”
“이런, 왕은 나만 하고 싶었는데.”
“헤헤.”
“그 꿈 꼭 이뤄졌으면 좋겠네.”
아이에게 그리 말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느새 노래 소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벌써 끝났나?”
아니다.
내 응원가는 아니지만, 그 목소리로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응원가로 사람을 끌어모으고 본격적으로 공연을 하는 건가?
다시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 사이에서 밴드가 눈에 보인다.
남자 셋, 여자 둘로 구성된 밴드였다. 그런데 한쪽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여자가 눈에 익다.
“이블린?”
뉴캐슬 유스에서 뛰고 있는 아이가 저기 왜?
* * *
“이블린, 이번 한 번만 도와주라.”
훈련을 끝내고 집으로 온 이블린은 동생 앞에서도 거침없이 무릎을 꿇는 6살이나 많은 오빠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 말은 전에도, 전전번에도 했어. 한 번이 벌써 몇 번이 되는 거야?”
“베이스 새끼가 심심하면 잠적하는데 어떻게 하냐?”
버럭 소리치는 오빠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짝 소리 나게 때린 이블린이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따져?”
“아, 그러지 말고 도와줘! 멤버들한테도 네가 대신 해준다고 말했단 말이야!”
“니는 왜 항상 니 마음대로냐?”
이 철없는 오빠를 어떻게 할까?
나이만 21살이나 먹고서 하는 짓은 어릴 때랑 다른 게 없었다.
‘그걸 생각하면 태양은 이상한 사람이긴 했어도 어른 같았어.’
고작 두 살 많은 사람이 풍기는 아우라 자체가 달랐다.
저 화상과 비교하면 어른과 유아 정도의 차이랄까?
“아무튼, 싫어.”
“요, 용돈 줄게.”
“…얼마?”
“오, 오십?”
“백 파운드.”
“야, 그 정도 돈은… 육십!”
“구십.”
“파, 팔십… 제발.”
“팔십? 좋아. 딜.”
80파운드면 아주 좋은 거래였다.
그렇게 시티센터 광장에 섰다.
“시작은 뭘로 할까?”
“당연히 태양왕 찬가지.”
그녀의 오빠가 소속된 밴드, 이름도 조악하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툰스 밴드는 태양왕 찬가라는 윤태양을 위한 응원가를 만든 바로 그 밴드였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태양왕 찬가는 그들의 유일무이한 히트곡이었다.
뭐, 그래 봤자 듣는 사람은 없고 경기장에서 부르는 사람만 가득한 노래였지만, 그들은 지역 일간지나 뉴스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공으로 여겼다.
“왜 그게 먼저야? 유일하게 유명한 곡인데 가장 마지막에 부르는 게 낫지 않아?”
이블린의 물음에 오빠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아는 노래가 그거밖에 없어서 그걸로 사람들 모아야 공연이 되거든.”
“슬픈 현실이네.”
이블린이 안타까워하는 사이 기타를 조율하던 툰스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이블린에게 물었다.
“야, 이블린, 넌 왕 본 적 있지?”
“그래, 그러고 보니 뉴캐슬 유스니까 본 적 있겠네?”
“응, 당연히 있지. 축구도 가르쳐 줬는걸?”
이블린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자 그들은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와, 왕한테 축구를 배우다니. 존나 부럽다.”
“잘 가르쳐 주디?”
“아니, 가르쳐 주는 걸 어려워하던데. 이걸 왜 못하냐고 그러더라고.”
“캬, 그렇지. 천재는 범인을 이해할 수 없지.”
“그렇다니까? 이게 패스야 쉽지? 이러는데 사람이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이블린의 말에 밴드 멤버 모두가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사이 공연 준비가 끝났다.
이블린의 오빠는 마이크를 테스트하고 이블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부를래?”
“내가? 싫어.”
“넌 참, 그 실력 가지고 노래를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축구보다 노래를 더 잘하는데 말이야.”
“난 축구가 더 좋아. 세계 최고의 여자 선수가 될 거거든.”
그 말에 오빠는 코웃음 쳤다.
“야, 넌 솔직히 세계 최고 재능은 아냐.”
“그러는 오빠도 보컬은…….”
“알아.”
“근데 왜 해?”
“좋으니까.”
“나도 그래.”
이블린은 그렇게 말하고 베이스를 조율했다.
사실 기타를 치는 것도 노래를 하는 것도 좋아하긴 했다.
그거보다 축구를 더 좋아해서 문제지.
축구를 왜 좋아하게 됐을까?
그건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에도 그녀는 이미 축구를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친구들도 지인들 모두 아마 그럴 거다.
툰은 어쩔 수 없다.
교회보다 경기장을 가는 게 더 익숙한, 그야말로 축구가 종교이자 모태 신앙인 사람들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지금 툰들의 왕을 위한 찬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시티 센터를 거닐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멈춰서서 거짓말처럼 일제히 태양왕 찬가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태양왕, 우리의 태양왕이여!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주소서!
노래가 끝나는 순간, 광장에서 가장 가까운 펍의 야외 테이블에 앉은 사내가 브라운 에일을 번쩍 들며 외쳤다.
“For the King!!!!”
거짓말처럼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즐기던 사람들이 일제히 맥주잔을 들며 그 말을 제창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윤태양이 진짜 뉴캐슬어폰타인의 왕인 것 같다.
아니, 막말로 진짜 뉴캐슬의 왕으로 추대해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을 거다.
그건 툰스 밴드, 이블린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여러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곡은 우리 툰스 밴드의 1집 곡입니다.”
기세를 이어 툰스 밴드는 가장 처음 만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이블린은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흘끔 오빠를 바라봤다.
오빠의 얼굴에 잠시나마 씁쓸함이 스쳐 지나간다.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면 저럴 만하지. 저런데도 음악을 하는 게 그렇게 좋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한쪽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뭐지?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던 툰스 밴들 멤버들의 시선도 그쪽을 향한다.
“아.”
“어……?”
“맙소사……!”
그곳에는 태양이 있었다.
이번 시즌 다시 흑발로 돌아온 탓인지 운동선수답지 않게 유난히 하얀 피부에, 동네 아저씨처럼 헐렁한 반팔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을 하고서 말이다.
태양 정도로 돈을 많이 벌면 입고 있는 옷도 하나같이 명품일 것 같은데, 그는 이블린 남매도 흔히 입을 에이키 반팔과 아디다수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나저나 에이키와 아디다수라니 중도를 표방하는 건가?
윤태양 스폰서가 에이키 아니었나? 저래도 되나?
온갖 생각이 드는 사이, 이블린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오지게 잘생겼네.’
태양이 오로지 ‘태양’만 비추는 것 같았다.
축구 선수가 저렇게 잘생겨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혔다.
“이블린……?”
그가 자신을 불렀다.
오, 기억해 주는 건가?
이블린은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야, 왕이 너 알아보는 거 맞지?”
“응. 그런 것 같네.”
“와…….”
오빠가 부러운 눈으로 이블린을 바라봤다.
“왕이 납셨는데 응원가나 다시 불러봐라!”
그때 야외 테이블에 앉은 한 아저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툰스 밴드는 홀린 듯 태양왕 앞에서 태양왕 찬가를 불렀다.
한 번 더 태양왕 찬가가 끝나고 펍에 앉은 아저씨들이 태양을 향해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Your Majesty!!”
모든 사람들이 제창한다.
놀라운 건 태양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와… 왕도 뻔뻔해야 해먹는구나.’
이블린은 생각했다.
* * *
“뭐 먹고 싶은 거 골라.”
“음식도 돼요?”
“밥 안 먹음?”
“네.”
이블린은 지금 상황이 얼떨떨했다.
어쩌다 카페에 오게 된 거지?
분명 아까까지는 베이스를 치고 있었는데 말이다.
‘야, 이건 기회야. 얼른 따라가.’
‘오라잖아, 가라고 자식아!’
그래, 태양이 오라고 그러고 오빠가 떠밀었구나. 베이스 필요 없으니 꺼지라고.
“저 이거 케이크 먹을래요.”
“그래, 여기요. 시원한 얼음물이랑 에스프레소랑 이거 이 케이크 주세요.”
“알겠습니다, 폐하.”
카페 직원마저도 태양을 폐하라 부른다. 태양은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본인을 왕이라 생각하는 걸까?
“밴드는 어쩌다 하게 된 거야? 죄다 어른들인 거 같던데?”
“보컬이 우리 친오빠예요. 베이스가 잠수타서 대타로 나간 거구요.”
“그거 치고는 잘하는 거 같던데.”
“그래 보여요?”
그 순간 태양은 희한할 정도로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테이블에 가까이 기대며 말했다.
“어, 굉장히. 축구보다 나은 듯?”
그 말에 이블린은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축구에는 재능이 없다 이거야? 아, 그러고 보니 동생들이 이블린 보다 더 잘한다 했지.
“저는 반드시 축구를 할 거예요.”
“음, 아니야. 넌 미래에 가수가 될 거야. 아마 네 오빠가 땜빵으로 널 세웠는데 그게 대박이 나서 본격적으로 밴드를 하게 될 거야. 그리고 세계적인 밴드가 되겠지.”
왕이 아니라…….
“예언가…세요?”
“내가 미래를 좀 봐. 동양의 신비랄까.”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17살 소년인 것 같다.
저런 애도 안 할 것 같은 농담을 하다니.
“제가 툰스 밴드의 보컬? 세계적인 밴드?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요?”
“나 예언가라니까. 믿어봐.”
태양은 재미있다는 듯 이블린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몰라봤다.
사실, 음악을 듣기만 하지 깊이 파고드는 타입은 아니어서 몰라보는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 툰스 밴드가 다 같이 모이고 베이스를 든 그녀를 보자 알아볼 수 있었다.
이건 노래를 아예 안 듣는 사람이 아닌 이상 몰라볼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하는 툰스 밴드, 훗날 타인브릿지는 지난 삶에서 그야말로 세계적인 밴드, 브릿팝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불리던 밴드였으니 말이다.
참 모를 일이다.
축구가 꿈인 아이가 어쩌다 가수가 되고 세계적인 밴드가 된다니.
“아니요, 저는 죽을 때까지 축구를 할 거예요. 제 목표는 여자 발롱도르 수상자거든요. 그리고 태양처럼 세계 최고의 여자 선수가 될 거예요.”
“꼭 축구 선수가 되어야 해?”
“꼭은 아니었는데, 당신이 축구를 하는 걸 보고 꿈이 되었거든요.”
아, 이런.
나 때문에 미래의 가수 하나가 사라지게 되는 건가?
그것도 세계적인 가수가?
태양은 뭔가 긍정적이지 않은 나비효과에 당황했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 태양을 제대로 당황시키려고 마음먹은 듯 태양에게 말했다.
“그때가 되면 당신한테 말할 거예요. 저랑 결혼하자고요. 태양이 우승하던 날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거든요.”
태양은 어느새 세팅된 얼음물에 에스프레소를 섞다가 멈칫했다.
에스프레소가 섞이다 못해 넘쳐흘렀지만, 태양은 그것도 모른 채 당황한 얼굴로 이블린을 바라봤다.
“결혼?”
“네.”
“너 몇 살이야?”
“15살이죠?”
“20년은 더 먹고 와. 너무 어려.”
“두 살 차이밖에 안 나거든요?”
“정신연령은 20년, 아니, 40년은 넘게 차이 날 거야, 아가야.”
“아가 아니거든요!”
버럭 소리치는 이블린을 보고 태양은 혀를 끌끌 찼다.
그래, 저 나이 때는 쉽게 사랑에 빠지고는 하지.
그, 뭐더라 금사빠? 그런 거 있잖아.
그러다 태양은 멈칫했다.
“진지하게 가수를 생각해 본다면 너나 나나 성인이 됐을 때 생각해 볼게.”
태양은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기 때문이다.
“저, 정말이에요?”
이블린의 물음에 태양은 그저 웃었다. 그때쯤 되면 이블린은 진짜 가수가 될 거고 어린 날의 저 발언을 흑역사라 생각하며 이불을 걷어차겠지.
물론, 이미 달라지고 있는 지금 삶의 미래에서 태양의 예상이 적중할지는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