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09)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1009화
제301장 왕자의 결의
은의 피의 삼신좌는 누구보다도 신과 가까이서 소통하는 자들.
에네카, 엘테인, 카르넥 모두 그러했으나 그럼에도 셋 중에서 가장 신과 가까운 것은 에네카였다. 신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꿈과 징조의 신 우룩스몬의 무한한 총애를 받는 자.
“아.”
문득 에네카는 자신이 선 채로 깜빡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꿈을 꾸었다.
“에네카 님…….”
그런 그녀를 카리안이 질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때 조시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은 마계화 던전에 진입하여 마계 대공의 군세와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한창 전투 중에 에네카가 꾸벅꾸벅 졸더니 잠깐 동안 잠들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녀의 권능 지원이 멈춰 버렸고, 갑작스럽게 발생한 공백을 메꾸느라 카리안이 아주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카리안.”
하지만 에네카는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말했다.
“계시를 받았어.”
카리안은 움찔했다.
에네카가 잠든 것이 우룩스몬의 계시 때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전에 갈 필요도 없고, 딱히 어떤 준비를 할 필요도 없다. 언제 어디서든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절대적인 총애를 받는 자, 그것이 바로 에네카였다.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지…….”
최근 들어서 이상 현상의 발생 빈도가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마계화 현상의 발생 빈도는 줄었다. 천둥산맥에서 처리하는 것들을 포함해도 말이다.
이것은 모르드 일행의 공로였다. 그들이 메잔타 대수림과 북방에서 이룬 위업이 서대륙 전체의 마계화 현상의 발생 빈도를 낮추었다.
그런데 은의 피는 더욱 바빠져서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각지에서 던전이 폭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세에 발생하는 던전의 대부분은 마계화 던전이지만, 그 외의 던전도 꾸준히 발생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만 은의 피는 이런 던전들을 딱히 찾아서 공략하지는 않는다.
시일이 지나면 자연소멸하는 던전이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딱히 큰 위협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운 나쁘게 들어가는 사람들만 희생양이 될 뿐.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마계화 던전도 아닌 던전들이 폭주하여 눈에 띌 정도의 규모로 현세를 침식하거나 그 안에서 각종 괴물들이 튀어나와서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신화의 흔적이 남은 것들도 있어서 큰 문제가 되었다.
바다에서 기어 올라온 저주받은 괴물들.
식물은 먹지 않고 인간을 포함한 동물만을 먹는 메뚜기떼를 몰고 다니는 사멸한 신의 혈손들.
무서운 속도로 번식하며 숲을 잡아먹는 거미 괴물들까지…….
삼신좌 엘테인, 그리고 팔성 다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남은 이들은 이 모든 사태를 막아내느라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베르나스 공국에 마왕급 던전이 출현하도록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현시점에서 은의 피 최상층부는 마계화 던전보다는 다른 폭주 던전들을 더 위험시했던 것이다.
에네카가 말했다.
“왜 그분께서 굳이 우리에게 과업을 내려주셨는지.”
그리고 그것은 에네카와 카리안, 르네, 트라쿠스의 힘이 눈에 띄게 강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는 은의 피가 마계화 현상을 어떻게 처리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우룩스몬이, 갑자기 이런 사태들을 처리할 때마다 그것을 일정 시일 내에 처리하라는 과업을 내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리할 때마다 그 포상으로 축복을 내려주었다.
에네카는 이런 우룩스몬의 태도 변화가 의아했다.
물론 우룩스몬이 에네카에게 뭐라도 하나 주고 싶어 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에네카가 꾼 꿈이 흐뭇하다고 축복을 내리는 일도 있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녀가 일상처럼 해온 일에 대해서 과업이라는 핑계를 붙여서 축복하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우룩스몬 님, 갑자기 왜 그러시나요?’
그랬더니 조만간 이유가 분명해지면 설명해 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답을 알게 된 것이다.
“동쪽은 멸망하는 중이래. 우리는 절대 가면 안 된대.”
“예?”
카리안이 눈을 크게 떴다.
에네카가 대답하려는 순간, 섬광이 폭발했다.
던전에 침식되어 불길한 보랏빛으로 변한 호수에서 튀어나온 검고 거대한 촉수마다 기괴한 눈이 달린 이계의 괴물이 쏘아낸 섬광이었다.
콰아아아아아!
그러나 그 섬광은 에네카와 카리안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지점에서 크게 휘어져서 하늘을 꿰뚫는다.
에네카가 한숨을 쉬었다.
“아, 일단 저걸 끝내고 이야기하자. 귀찮네.”
“그러죠.”
카리안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리고 이 싸움에 언제나처럼 무성의하게, 설렁설렁 임하던 에네카가 본격적으로 권능을 행사하자 괴물의 죽음이 급격하게 가속했다.
“신화의 흔적은 아니었군요. 이 정도로 위험도가 높은 던전이면서… 음?”
아쉽다는 듯 혀를 차던 카리안의 표정이 굳었다.
코어를 잃어서 붕괴해야 할 던전이 정지해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단순한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서 정말로 아득한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신을 마주한 것 같군. 설마 이계의 신인가? 만약 그렇다면 웬만한 마왕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존재겠어.’
상대는 세계를 침식하는 던전을 통해서 시선을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인간에게 관찰당하는 개미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네카.]소년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청년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그보다 더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몇 개의 목소리가 겹쳐지고 기괴한 울림이 더해져서 왜곡된 것 같은 느낌이다.
[카리안.]그 목소리는 정확히 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역시 있구나. 하지만 너희들이 아니야……. 너희들은 열쇠가 될 수 없어…….]낙심한 것처럼 중얼거린 목소리가 멀어져 간다.
그 존재감이 사라지고 나자 에네카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뭐지? 저런 건 꿈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
“왜?”
“아뇨.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의미심장하게 들려서 말입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카리안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계의 존재인 것 같은데 이상하군요. 이런 사태를 일으키는 게 가능한가는 둘째 치고, 어떻게 우리를 알고 있는 걸까요?”
카리안은 불길한 예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 * *
모르드 일행은 사흘 동안 용하에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생존자들에게는 재물을 쥐여주고 휴가를 주었다.
수십 년 만에 문명이 살아 있는 땅을 밟았으니, 비록 자신이 살던 지역은 아닐지언정 이곳의 문화를 즐기도록 배려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휴가를 즐기는 동안 모르드 일행은 다들 열심히 일을 했다.
일단 용하의 관아에 통신기를 설치하여 언제든지 자신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생존자들의 섬이나 바다의 백성들과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용하를 시작으로 온누리 내부에서 작동하는 통신망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었다.
지금은 서로 손잡고 싸우라고 해봐야 일이 제대로 굴러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다의 백성들만 해도 그럴진대 머나먼 섬에 있는 생존자들과 연결시키는 것은 정말 무의미한 낭비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용하의 술법사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실시간 통신기라니, 거리에 상관없이 말을 나눌 수 있다니… 이런 걸 신화의 유물도 아니고 지금에 와서 제작할 수 있다고?”
모르드 일행은 용족들을 데리고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가서 그곳에서도 원활하게 통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그러자 용하의 용족들이 모르드 일행에게 매달렸다.
“다섯 개! 아니, 세 개만이라도 좋습니다! 제발 좀 더 내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 통신기가 있다면 단죄자를 정찰하고, 필요할 때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원활해지는 것이다.
모르드 일행은 지금까지 통신기를 꾸준히 제작해서 넉넉한 물량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섯 개를 추가로 주고 통신망에 등록시켰다.
“그런데 만약 이 통신기가 단죄자의 손에 넘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걱정 마십시오. 단죄자의 손에 넘어가면 얼마 안 있어서 파괴되도록 만들어놨으니까요.”
이전에 파르웰은 모든 실시간 통신기를 원격으로 파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르드의 지적에 따라서 보안을 위한 조치를 취해둔 것이다.
하지만 그 조치는 완벽하지 않았다.
만약 단죄자의 손에 넘어갔는데 그 사실을 모른다면?
이 통신기는 소리만을 전할 수 있기에 소유자가 단죄자로 변해버렸거나 혹은 적이 목소리만 흉내 내서 정보 오염을 일으키는 경우에 취약했다.
그래서 아예 단죄자의 손에 넘어갈 경우 기능이 정지하고, 분해하려고 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파괴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 * *
모르드 일행은 한울왕자가 내준 부지에 간소하게나마 투신의 신전을 만들었다. 목재와 석재는 잔뜩 있었고 손재주가 뛰어난 이들이 많았으니 작은 신전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리온이 피로 적셔서 만든 신상을 놓고, 파르웰이 마법으로 필사해 둔 경전을 비치했다.
신관은 없었지만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와서 경전을 보고 교리와 투신의 신화를 알 수 있도록.
[수백 년 동안 아무도 못 해낸 일을 너희들이 해내는구나.]베르나스는 감격을 숨기지 않았다.
리온이 씩 웃었다.
“아직 이 신전에는 신도가 없어서 유감입니다만, 제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난세에 베르나스 신족인 리온이 활약하는 것을 본다면 다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리라.
[기대하마.]모르드는 그동안 구한 영혼을 이 새로운 신전을 통해 올바른 길로 인도했다.
“더 많은 신성무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지역을 감싸는 결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보태주십시오.”
그 포상으로는 신성무구를 추가적으로 제작했다.
그리고 30개의 신성무구를 용하의 각 신전들과 도시 바깥 영역까지 설치해서 거대한 결계를 형성했다.
이 영역은 정말 넓어서 용하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까지도 결계 영역에 들어갈 정도였다.
이런 규모의 결계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많은 신성무구를 투입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죄자를 처단하고 영혼을 구한 대가로 신들이 힘을 보탰기에 가능한 규모였다.
모르드 일행은 자신들이 이루어낸 업적을, 신들이 현세에 개입하여 도움을 주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보상을 그것으로만 소모하지는 않았다.
아직 힘이 부족한 생존자 병력은 축복을 받아 전력을 강화시켰다.
* * *
파르웰은 브레디아스의 신전을 찾아갔다.
온누리 제국은 학문을 중시하는 기풍이 있어서인지 브레디아스는 제법 인기 있는 신이었다. 그래서 용하에도 브레디아스 신전이 있었던 것이다.
[베르나스와 소통하게 되었더군요. 제 배려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신상을 통해 의지를 투영한 브레디아스가 탄식하더니 말했다.
[당신의 안대를, 저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 만들고자 합니다. 괜찮겠습니까?]이것은 파르웰이 이룬 업적에 대한 보상을 명분 삼아 이루어지는 일이다.
신이 인간에게 내릴 보상을 자기가 생각한 대로 써도 되는지 묻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광경이었다. 동대륙에서 모르드 일행의 입지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수준인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입니다. 저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안대를 잠시 신상 앞에 주시겠습니까?]“예.”
파르웰이 안대를 벗어서 신상 앞에 두자 브레디아스의 신상이 눈부신 빛을 발했다.
[당신의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더 많은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이전보다 더 기능이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 이제 언제든 저와 소통할 수 있을 겁니다.]베르나스가 리온에게 준 투신의 장갑과 마찬가지로 신과 성자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눈이… 보이는군요.”
안대를 쓴 파르웰은 놀랐다.
외형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평소처럼 왼쪽 눈에 쓰는 순간 시야가 변했기 때문이다.
원래 파르웰은 신혈을 개방하기 전에는 왼쪽 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안대를 쓰자 평소에는 부재했던 왼쪽 눈의 시야가 채워지고 있었다.
[마음에 듭니까?]“무척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파르웰은 한쪽 눈을 잃은 것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익숙하다는 것이 불편함을 모른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부분을 해결해 주는 브레디아스의 배려가 굉장히 고마웠다.
[세상을 위해 일해주는 당신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그 정도라서 미안합니다. 아, 그리고 지난번에 맡긴 일은 끝났습니다.]“벌써 끝내셨습니까?”
[간만에 흥미로운 연구였습니다.]파르웰은 혀를 내둘렀다.
그 스스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한, 하지만 최대한 빨리 완성하고 싶은 과제를 브레디아스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이토록 빨리 끝내다니… 역시 학문의 신이라 불리는 이는 달랐다.
[신은 상대가 자기를 과대평가하게 만들수록 좋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당신이 저를 보는 시선에는 객관성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그러니까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뛰어난 조수들이 함께하고 있지요.]“아,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 브레디아스 휘하에는 여러 사도도 있고, 과거에 신족이 되어 천상에 오른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학자로서, 마법사로서 뛰어난 자들뿐일 터.
‘천상에 오른 후에도 브레디아스 휘하에서 계속 연구와 공부를 계속했다면… 진짜 대마법사 100명의 집단 연구 같은 게 가능하지 않을까?’
자기 휘하에 그런 연구 인력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
[하는 김에, 당신이 필요로 할 것 같은 연구도 한 가지 진행해 봤습니다.]“예?”
[아직 초기 단계지만 그래도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성과가 나왔으니 공유해드리지요. 당신들이 만들고 있는, 신성무구에 의한 결계의 효과를 증폭하여 구현 범위를 보다 넓게 확장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파르웰은 놀라서 입을 벌리고 말았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학문의 신으로서 체면치레는 하는 거겠지요?]브레디아스는 짓궂게 웃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