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08)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1008화
“…….”
정적이 내려앉았다.
한울왕자는 말문이 막혔다. 그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따라온 온누리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신의 의지가 내려왔다. 투신 베르나스라니, 이제는 잊히다시피 한 그 신의 의지가 이토록 선명하다니…….’
‘분명해. 단죄자의 언데드가 된 영혼을… 단죄자의 저주와 분리해서 자신의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신의 의지를 불러와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한 거야.’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그렇다면 이들이야말로 만인이 간절히 기다려왔던 구원자가 아닌가?’
한울왕자 자신부터가 매우 뛰어난 술법사였고, 이 자리에 같이 참석한 이들도 술법사와 마법사였다. 그러다 보니 지금 눈앞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충격에 빠졌다.
모르드는 잠시 그들이 그 감정에 빠져 있을 시간을 준 다음 말했다.
“지금 보았듯 우리는 단죄자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단죄자가 된 자들도, 그들의 언데드가 된 자들도 말이지. 이 힘으로 당신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는 봉인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
“…무엇을 바라지?”
한울왕자는 필사적으로 평정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물었다.
모르드 일행을 만난 이래로 그들이 보여주는 것 하나하나가 충격적이지만, 지금 본 광경의 충격은 앞선 충격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컸다.
모르드는 고개를 저었다.
“대가는 필요 없다.”
“뭐?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단죄자가 된 이들도, 그들의 언데드가 된 이들도… 모두 그들이 강요한 악몽에 사로잡혀 고통받는 자들이다. 나는 그들 모두를 존엄한 안식으로 인도할 것이다.”
“…당신 같은 영웅이 이 세상에 있을 줄이야. 하늘이 이제라도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준 것에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이제야 보내준 것을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군.”
한울왕자는 탄식하고는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황손으로서 함부로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기에 양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는 온누리식의 정중한 예를 표한다.
“온누리의 황손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온누리 사람으로서 부탁하겠다. 그들에게 안식을 주기를.”
“기꺼이.”
모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용하에서 관리하고 있는, 봉인의 숫자는 70명 정도였다.
얼마 되지 않는 숫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적을 하나하나 포획해서 봉인한 뒤에 특별한 시설을 만들어 관리하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 위험도 크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비용도 높은 것이다.
이 시설만 해도 항상 세 명의 술법사가 붙어 있었다. 교대제로 운영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그 두 배 이상의 술법사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는 뜻이다.
용하가 철저하게 수비에 치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특작부대의 활약으로 이만한 영혼을 봉인해서 관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용하의 술법사들은 그 봉인시설의 관리업무에서 해방되었다.
“정말로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어.”
다들 안도했고, 몇몇 이들은 가련한 영혼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큰 짐을 하나 내려놓은 기분이군.”
그 구원의 과정을 전부 지켜본 한울왕자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모르드가 말했다.
“이것은 마땅히 그들이 누려야 할 존엄을 되찾아주는 과정이며, 또한 저 잔악한 단죄자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타격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단죄자 세력의 힘을 진정으로 약화시키는 것은 오직 그들이 사로잡아 자원으로 삼은 영혼을 빼앗아오는 것뿐.
한울왕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르드 공, 당신뿐이겠군.”
“정확히는 나와 내 동료들이지.”
“그렇군. 지켜본 바로는 영혼을 구원하는 당신의 권능…….”
“영혼 인도자라고 한다.”
“진실로 어울리는 이름이로군. 그 영혼 인도자는 꽤 공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혹시 김 마법사가 관측한…….”
“김 마법사? 아, 말을 잘라서 미안하군.”
모르드가 퍽 해괴하게 들리는 호칭에 고개를 갸웃하자 한울왕자가 말했다.
“음? 여러분과 연락을 취한 이 마법사의 이름은 김 아르센이라고 한다. 원래 이국 사람이었지만 온누리의 백성이 되기를 선택하여 용족이 되었기에 김씨 성을 하사했지.”
“…….”
모르드는 묘한 표정으로 김 아르센을 바라보았다.
‘참 문화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군……. 이걸 다문화 사회라고 해야 하나? 혼란스럽다.’
지방에 따라서 성씨가 앞에 오는 경우도 있고 뒤에 오는 경우도 있고, 온누리의 가장 근본적인 성씨는 여섯 진룡의 이름인데 정작 또 온누리 사람들이 많이 쓰는 성씨는 김씨나 이씨고…….
알면 알수록 한국 전통문화와 외국문화가 정리되지 않고 뒤섞여 있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하긴 온누리 제국의 성립 과정을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한창 신화의 패권 전쟁을 할 때는 세계 전체에 퍼져 있던 용족이, 신화의 종전 협상을 계기로 전부 새벽 반도로 모여 살게 되면서 온누리 제국이 건국되었다.
이런 건국 과정을 생각하면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완성하고, 용족과 인간을 불문하고 새벽 반도의 모든 사람들이 ‘온누리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유가 있다면 차분하게 이 나라의 역사를 공부해서 사회상의 변천사를 알고 싶지만… 음. 이런 이야기는 파르웰에겐 하지 말아야겠군.’
모르드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학문적 흥미를 파르웰 앞에서 드러냈다가는 얼마나 폭주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한울왕자가 모르드에게 물었다.
“그 전투에서 당신들이 쓰러뜨린 단죄자들과 언데드들은, 모두 그 영혼이 구원받은 건가?”
“그 전투에서 구원한 영혼의 숫자는 430명 정도였지.”
그때 김운산이 추측한 게 얼추 들어맞는 숫자였다.
“그리고 가포에서 7천 명 정도를 구원했다.”
“7천 명? 맙소사…….”
한울왕자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벌리고 말았다.
단죄자들과 싸워서 7천 명을 무찔렀다고만 해도 놀라서 펄쩍 뛸 일이다.
하지만 모르드 일행이 해낸 것은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단죄자에게 ‘영구적 손실’을 입힌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그 숫자가 7천 명이나 된다니…….
“…하, 만약 놈들이 일반적인 군대였다면 침공의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질 정도의 피해였겠군.”
한울왕자는 영특한 사람이었기에 그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사자만 7천 명, 그것도 신혈과 용족이 다수 포함된 피해라면 실질적으로는 수만 병력이 고꾸라질 정도의 피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겠지…….”
유감스럽게도 단죄자들에게는 그런 일반적인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대륙을 집어삼킨 그들의 군세는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수치에 도달해 있었다.
정보가 부족해서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한울왕자는 단죄자의 군세는 백만대군이라는 말조차 우스울 정도로 거대하리라 추측했다. 어쩌면 천만대군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더 절망적인 것은 그 중에서 괴물들을 제외한 전원이 마법 사용자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설령 남북으로 분단되기 전, 용황제 오율이 이끄는 최전성기의 온누리 제국이라고 해도 이런 끔찍한 종말의 군세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단죄자 세력을 막아내려면 그들이 지금처럼 대륙을 잡아먹고 거대해지기 전에 끝장을 냈어야 했다.
하지만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누구도 그들을 끝장낼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떻게든 버티고, 버티다가 쓰러져서 그들의 일원이 되었을 뿐.
‘하지만 이들은 저들을 끝장낼 수 있다.’
현 시점에서는 오직 모르드 일행만이 그럴 수 있었다.
‘문제는 이들은… 너무 수가 적다는 것.’
아직 신화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는 이 세상은 강대한 한 명이 천 명을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그런 초인이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육신을 가진 이의 힘은 무한할 수 없었다.
다치고, 지치고, 약해진다.
그것이 생명을 갖고 현세를 살아가는 자가 짊어질 수밖에 없는 섭리다.
‘이들과 함께 싸울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싸울 자리를 고를 수 있는 정보를 확보해 주고, 전투에서 이들의 부담을 최소화해 주고, 이들의 휴식을 확보해 줄 수 있는…….’
강대한 초인이 포함된 군대에서 집단의 역할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완벽한 중앙집권화를 완성했던 온누리 제국은 세상에서 가장 초인들이 포함된 대규모 병력 운용에 능한 국가다.
비록 용황제 오율의 사후 국가가 사분오열되긴 했지만 기나긴 세월 동안 완성된 그 문화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서 계승되고 있었다.
한울왕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협력해 주면 될까?”
보통이라면 조금씩 간을 봐가면서 자신의, 그리고 자신이 거느린 집단의 욕망을 조금이라도 충족시키기 위한 협상을 진행할 것이다.
특히 한울왕자는 황손이라는 명분을 십분 활용하여 백룡군이라는 지방 군벌의 수장으로서 용하를 지배하는 입장이다.
모르드 일행을 이용하여 궁지를 타파하는 한편 권력을 확장하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 그에게 그런 욕망이 없다면 그건 오히려 만인의 위에 서는 지배자가 되기에는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뜻이니까.
그럼에도 그는 그런 욕망을 억누르며 모르드 일행에게 협력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게 정답이다.’
그렇게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르드 일행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시험받고 있다는 것을.
그 시험을 얼마나 잘 치르냐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모르드 일행과 약간의 도움을 주고받은 협력자로 끝날지 아니면 그 이상의 관계가 될 수 있을지.
모르드가 말했다.
“온누리는 외부의 신앙을 막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 도시에 투신의 신전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면 좋겠군.”
온누리는 곳곳에 진룡을 섬기기 위한 진룡사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진룡사원은 신전과는 좀 의미가 다르다. 진룡은 이미 사멸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직 용족의 핏줄로 이어지는 권능만이 그들이 실존함을 증거한다.’
섬기는 존재가 기도에 대답해 주지 않고, 기적을 내려주지도 않는다는 점에서는 지구의 신앙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구와 다르게 용족이 지닌 힘, 그리고 용혼강림이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지만 말이다.
“여러분의 일을 위해서도 필요하겠군. 좋아. 허가하지.”
한울왕자는 흔쾌히 허락했다.
사실 새로운 신전의 설치는 온누리 제국에서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였다.
그러나 모르드는 투신의 후예이며 성자 아닌가?
이런 사람과 전폭적으로 협력하려고 애쓰는 상황에서 투신의 신전을 짓는 것을 거부한다? 실로 어리석은 선택지였다.
모르드가 말했다.
“고맙군. 그리고 이 도시에는 신전이 얼마나 있지?”
“그렇게 많지는 않아. 유명한 몇몇 신전들이 있긴 하지만…….”
피난민들을 꾸준히 받아서 과포화 상태가 된 용하의 현재 인구는 1만을 훌쩍 넘는다.
1만이라고 하면 한 도시의 인구로는 작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에, 산속 호숫가에 위치한 도시에 이만한 인구가 수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그 신전들을 통해서 결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여러분이 방금 전에 본 영혼 인도자의 권능이 적용되는 결계지. 덧붙이자면 기존의 결계에는 영향이 없을 거다.”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미 다른 곳에서 몇 번이나 구축한 결계다. 물론 당신들은 기존의 결계만으로도 여전히 죽음이 존엄한 영역을 구축했지. 하지만 이 결계가 구축되면 앞으로는 단죄자, 그리고 그들의 언데드를 봉인해서 데려오는 것만으로도 그 영혼을 구원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적들에게 이 도시가 공격받는다 하더라도, 이 결계 안에서 죽은 모든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물론 당신들의 영역 안에 신의 힘으로 결계를 구축한다는 게 꺼림칙할 수 있겠지. 그러니 위대한 투신 베르나스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마. 단죄자의 위협이 사라지는 날, 이 결계 또한 쓸모를 다하고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까지 배려해 주면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군.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겠다.”
한울왕자는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모르드의 제안은 군벌의 우두머리이자 온누리의 황손으로서 넙죽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병력 일부를 내주는 것 같은 협력이라면야 문제가 없지만 백성들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들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온누리의 황손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무작정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게 아니라 백성들의 진심 어린 지지를 얻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모르드는 그런 사정을 짐작하고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도 함께 건네주고 있었다.
파르웰이 가포에서 용족 언데드를 봉인해 와서 이들 앞에서 영혼 인도자의 힘을 증명한 것도, 그리고 용하에 부담을 지우고 있던 봉인들을 처리해 준 것도, 단죄자의 위협이 사라진 후에는 결계 또한 쓸모를 다하고 사라질 거라고 맹세해 준 것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목격자가 된 신하들을 통해서 백성들을 설득하는 근거가 될 테니까.
모르드가 말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최신 정보가 반영된 지도와 놈들과 싸우기 위한 정보가 필요하다. 무작정 새벽 반도를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다 때려 부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