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876)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876화
언제 실전을 치러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일행은 가벼운 훈련만 하면서 주변을 탐색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자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생존자 그룹을 찾아낸 것이다.
왕왕!
이것은 라그나스의 공훈이었다.
정령으로도, 마법으로도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는데 라그나스가 부적의 염료 냄새를 포착했으니까.
하지만 그들 역시 경계심이 대단해서 고운 말로는 설득이 되지 않았다.
결국 강제로 끄집어낸 다음 선택의 여지를 없애버린 뒤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고작 일곱 명에 불과한 이 생존자 그룹도 용족과 신혈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리더인 용족 여자는 비교적 젊은 나이 같았지만 그녀 역시 워낙 못 먹고 지내서 피골이 상접할 지경이었는지라 연령대를 알기는 어려웠다.
“위대한 여섯 분께서 보우하신 것 같군요. 사실 우리는 슬슬 한계였습니다.”
그 말에는 조금도 과장이 없었다.
그들 집단은 김운산이 이끌던 그룹보다 한층 더 상태가 심각했다. 그들 중 절반은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으니까.
용족 여자는 지금까지 합류한 생존자 집단의 리더와 달리 전사였다.
예전의 리더였던 용족 술법사는 절망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반년 전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전에 남겨진 자들을 위해 은신 결계를 구축하는 부적을 잔뜩 만들어두었다.
남겨진 자들은 지금까지 그 부적을 소모해가면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술법은 그 구조를 몰라도 부적만 계속 같은 자리에 교체해 줘도 유지되었으니까.
어쨌든 이로써 모르드 일행이 보호하는 생존자는 19명이 되었다.
“여러분께서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알겠습니다.”
모르드 일행이 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운 용족 여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동쪽을 통과하실 생각입니까? 그곳은 도저히 통과할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구출한 사람들은 그걸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더군.”
“통곡의 벽이라… 어울리는군요. 예. 그렇습니다. 걸어 다니는 산 같은 괴물들을 주축으로 하늘까지 전부 틀어막고 있어서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입니다.”
“그 앞까지 가 본 건가?”
“저희 술법사가 환요를 보내서 정찰해 봤었습니다.”
환요(幻妖)란 술법사가 부적으로 소환해 내는 괴물을 말한다.
마법사의 사역마처럼 활용되지만 보다 다채롭고, 활용 폭도 넓었다.
무엇보다 공들여 만들어내는 사역마와 달리 부적으로 소환한 시한부 존재이기에 부담 없이 희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 큰 이점이다.
“틈을 찾아내기 위해서 최대한 자세히 탐지할 수 있는 술법을 개발하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고, 그걸로 10년 동안 수백 가지 시도를 해봤지요. 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용족 술법사는 그 사실에 절망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일대에는 거대한 고래가 이끄는 주시자 무리 둘이 돌아다닙니다. 굉장히 빨리 이동하는 편이라서 하루에 서너 번 정도는 같은 길을 돌지요.”
“같은 길을 돈다고? 혹시 그 길을 알고 있나?”
“예. 그가 남긴 지도가 있습니다.”
용족 여자는 용족 술법사가 남긴 자료를 가져와서 넘겨주었다.
이 일대를 표시한 지도에는 커다란 원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 두 원이 겹치는 지점이 있긴 하지만 서로 다른 구역을 커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게 어느 정도 범위지?”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관측한 게 아니라서 정확하진 않지만, 관측한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지름 100킬로미터 정도일 거라고 추정했습니다.”
“지름 100킬로미터 정도의 원을 그리며 빙빙 돈다…….”
모르드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물었다.
“이 주시자 무리들에 대해서는 파악한 게 있나?”
“굉장히 광범위한 영역을 살핀다는 것과, 주시자들의 둥지 역할을 한다는 건 알아냈습니다.”
“둥지?”
“새도 영원히 날 수 없잖아요? 주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저 고래들은 내려오지 않더군요. 부유능력이라도 있는 건지 계속 날아요.”
“주시자들이 날개를 쉴 때는 그 고래 위에서 쉰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모르드는 혀를 찼다.
‘일종의 항공모함 같은 역할을 하는 건가.’
용족 여자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항상 단죄자들이 위에 타고 있는데… 꽤 강력한 단죄자들로 보였습니다. 굳이 그 위에 단죄자를 태우는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흠…….”
모르드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그럼 그 고래를 먼저 잡아야겠군. 통곡의 벽으로부터 최대한 먼 지점에서.”
“예?”
“그 위에 탄 강력한 단죄자라는 것들도 포함해서. 아무래도 놈들 입장에서는 그 고래를 지켜야 할 이유가 있는 것 같으니까.”
“지킨다… 고요?”
“그렇지 않다면 굳이 단죄자를, 그것도 강력한 놈으로 골라서 태워둘 이유가 없지 않나? 물론 근거가 희박한 가설이지만… 어쨌든 하나쯤은 잡아볼 만하겠지. 그걸 잡아서 놈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것만은 확실하니까.”
“…….”
용족 여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모르드가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을 하려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0년이 넘게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절망해온 그녀 입장에서는 모르드가 저들을 너무 얕보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
동시에 이들의 자신감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쪽 땅에서 끝없는 폭풍을 넘어왔다는 것도 그렇고, 단죄자들을 피해서 19명의 생존자들을 구출하여 보호하는 것만 봐도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일이었으니까.
* * *
무수한 재에 오염된 불길한 하늘 아래, 거대한 그림자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것은 고래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몸길이가 400미터를 훌쩍 넘었으며, 타버리고 흩날리는 재와 같은 빛깔을 띠었다. 또한 눈은 없었고 대신 머리에 피처럼 새빨간 뭔가로 그린 커다란 눈 모양의 문양이 하나만 자리해 있었다.
‘주시자’라 불리는 괴물 새 수백 마리가 그 곁을 무리 지어 따르는 가운데, 이 거대한 고래의 등 위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하필이면 이런 때 주시자 군주의 호위로 배치될 건 뭐야?]투덜거린 것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커다란 물그릇에 실시간으로 투영되는 영상 한가운데를 차지한 중년 여자였다.
“뭐, 신성한 의무니까 어쩔 수 없지 않소. 너무 그러지 마시오, 홍화. 이런 식으로나마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빙긋 웃으며 말한 것은 잘생긴 남자 단죄자였다.
180센티가 넘는 당당한 체격에 완숙함이 넘치는 중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만질 수도 없는데 뭘.]홍화라 불린 중년 여자가 투덜거렸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실시간으로 서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통신기술.
단죄자들은 그런 기술을 쓰고 있었다.
[자기가 없으니까 너무 지루해, 다올론.]“치고받을 사람이 없어서?”
[알면서.]홍화가 코웃음을 쳤다.
다올론이라 불린 단죄자가 피식 웃었다.
“동부 전선으로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 않소? 소원을 이뤘으니까 조금만 인내심을 발휘해 보시오. 이곳처럼 적이라곤 남아 있지도 않은 동네와 달리 좀 손맛이 있는 것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렇겠지.]홍화의 눈빛이 기대감에 물들었다.
“그쪽에는 예전의 당신처럼 무신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놈들도 남아 있다는 것 같더구려.”
[그놈들도 나름 재밌겠지만 개인적으론 최근에 본 놈들한테 흥미가 가는데.]“최근에 본 놈들이라면… 그 죄인 그룹을 데리고 사라진 걸로 보이는 놈들 말이오?”
[응. 아마 동쪽에서 보낸 구출대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중 하나하고 꽤 멋진 인사를 주고받았거든.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홍화는 입술을 매만지며 미소 지었다.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미소였다.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다올론이 말했다.
“나도 열흘 후에는 따라갈 테니 부디 가르침을 주겠느니 뭐니 하면서 애들 들들 볶지 말고 기다리시오.”
[흐응, 글쎄. 자기의 빈자리를 내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는걸?]“당신과 같이 배치된 녀석들이 불쌍하구려.”
[그 빌어먹을 에소우의 권능만 믿고 제 솜씨가 잘난 줄 아는 것들이 너무 많은걸. 조악한 활잡이 주제에 자기가 진짜 궁사인 줄 아는 녀석들을 어떻게 그냥 봐줘?]“네, 네. 어련하시겠소이까.”
다올론은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렇긴 했지.”
다올론도 동의했다.
본래 유라스 왕국이라 불리던 이 땅은 단죄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할 일이 끝나버린 땅이었다.
아직까지도 생존자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그래 봐야 고작 수십 명에 불과한 인원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보이는 족족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남은 일은 언젠가 이 땅을 전부 제압하고 나서 서쪽의, 저 끝없는 폭풍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땅으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작업뿐.
그래서 이 땅에는 단죄자 병력이 얼마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주시자 군주처럼 중요한 전략적 요소가 존재하기에 다올론처럼 몇몇 막강한 병력을 남겨놓은 것뿐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 시간이 멈춰 버린 듯 지루한 땅에 눈여겨볼 만한 세 번의 소동이 있었다.
새 한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신출귀몰한 죄인 전사 하나가 단죄자들을 농락하듯 수십 명을 처리한 뒤 유유히 종적을 감춘 일이 있었다.
이보다 북쪽 해안선을 통해 나타난 수백 명의 집단이 지역 간의 왕래를 차단하는 지역 봉쇄선을 두 번이나 돌파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 또한 상당한 희생을 치렀고, 그렇게 희생된 인원은 고스란히 단죄자의 일부가 되었으나…….
‘왠지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계신단 말이지.’
수확자는 그들에게서 입수한 정보를 알리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그 정보가 후방에 있는 다올론은 알 필요가 없는 정보이거나, 혹은…….
‘너무나 중요한 기밀이거나.’
아무에게나 알릴 수 없는 중요한 정보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올론은 그 정보의 정체가 후자일 것 같다고 느꼈다.
‘홍화를 따라서 전방으로 가게 되면 알게 될지도 모르지.’
지금까지 후방에 있었긴 하지만 다올론은 단죄자 중에서도 중요 전력이 될 만한 실력자였다.
이 지역을 점령하고, 완전히 정화하는 데 있어서 큰 공로를 세웠으니만큼 동부 전선에 투입된다면 상부에서도 그를 중히 쓰리라.
어쨌든 조용했던 대륙 서부를 들쑤신 소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이 지방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찾아낸 쥐새끼들을 처리하려는 순간 정체불명의 적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구출해간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화가 그 범인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만약 누군가 공격해 온다면… 당신과 ‘인사’를 주고받은 놈일 가능성이 크겠지. 아마도 동쪽에서 이곳을 살피기 위해 파견한 특수병력이 아닐까 싶구려. 하지만 놈이 여길 공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하긴 여길 탐색하고 생존자를 구출하는 게 목적이라면 지역 봉쇄선을 돌파할 궁리를 하겠지.]저들 입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뭔지도 모를 주시자 군주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세상일은 원래 예측불허지. 작년부터 일어난 일들은 확실히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으니까 말이오. 놈들이 여길 공격해 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오.”
[조심해.]홍화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물론 다올론, 당신을 믿어. 당신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몇 안 되는 적이었으니까.]그것도 벌써 5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다올론은 과거에 유라스 왕국의 수호자로 불렸던 전사였다.
유라스 왕국이 붕괴하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단죄자를 베어 넘기며 수많은 사람들이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런 다올론의 심장을 꿰뚫은 것은 홍화의 화살이었다.
죽음을 거쳐 단죄자로 다시 태어난 다올론은 홍화에게 다시금 도전했고, 홍화는 그가 언제 도전해 올지를 기다리며 살게 되었다.
두 단죄자는 몇 번이고 실력을 겨루었고…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서로를 사랑하고, 연마하며 단죄자로서 살아왔다.
[그래도 놈은 위험하다고 생각해. 조심해.]“당신이 그렇게 말하다니… 자존심 상하는군. 하지만 기분이 좋아.”
모순된 감정 속에서 다올론은 미소 지었다.
“걱정 마시오. 50년이면 죄인들은 노인이 되어서 죽었을 세월이라오.”
하지만 단죄자는 다르다.
그들에게는 성장이라는 개념은 있어도 노쇠함이라는 개념이 없다.
마치 인간이 바라는 욕망을 성취하면서 버리고 싶어 하는 것은 버린 것 같은, 그 대가로 단죄자의 사명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 존재.
그렇기에 다올론은 신혈로서, 전사로서 완숙함이 절정에 달한 40대의 육신으로 5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다.
죄인이었던 시절에도 왕국의 수호자로 불렸던 몸이다. 그런 그가 단죄자가 된 후로 50년 가까이 실력을 갈고닦았다.
홍화라는, 다올론이 아는 가장 뛰어난 실력자와 부딪쳐가면서.
모든 단죄자가 그렇지는 않다. 모든 인간이 향상심을 불사르며 살지 않듯, 단죄자 또한 그러하니까.
대다수의 단죄자는 향상심도 없이 그저 늙지 않는 삶을 즐겨왔을 뿐이다. 그들 중에는 수십 년 동안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한 자들도 수두룩하리라.
그렇기에 다올론은 분명 특별한 존재였다.
“만약 놈이 살아남은 쥐새끼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시자 군주를 노리기라도 한다면…….”
다올론이 날카롭게 웃었다.
“홍화, 당신의 즐거움을 내가 가로채게 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