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19)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919화
“에리우 님, 말씀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요.”
둘의 대화를 듣기만 하던 서둔이 열심히 틈을 보다가 끼어들었다. 세데아가 있는 지금이 에리우에게 하려고 준비해 둔 말을 할 기회라는 생각에서였다.
에리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한테?”
“네.”
“뭔데?”
“에리우 님은 술법은 안 쓰시죠?”
“응. 쓸 줄 몰라.”
“배워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 말에 에리우의 고개가 조금 전에 갸웃했을 때보다 좀 더 갸우뚱했다. 그러더니 세데아를 보며 물었다.
“나 술법 배울 수 있어?”
“…글쎄요?”
세데아는 눈을 껌뻑였다. 생각해 보지 못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지금의 에리우는 신성 완성자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모르드와 함께 온갖 일들을 겪으면서 용족으로서 완성된 형태의 신성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에리우에게 레퍼런스 주문을 터득하게 하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녀가 용족이었기에 예상된 결과였다.
하지만 술법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에리우는 술법을 터득할 수 있는가?
“예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그러셨어요.”
서둔이 말했다.
“그 신성의 머리를 하늘에 걸쳐두신 분들만이 술법과 무신술을 양립할 수 있다고요.”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신성의 머리를 하늘에 걸쳐두었다라…….”
세데아는 신성 완성자를 의미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되뇌어보았다.
천상에 오른 자들처럼 신성이 완성되었으면서도 현세에 머무는 자들을 정확히 표현하지 않는가?
“서둔 양의 어머님은 뛰어난 술법사셨나 봐요.”
“네.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어요. 원래 미숙했던 아버지를 어머니가 가르쳐서 한 사람 몫을 하는 술법사로 만들어주셨다고요.”
“운산 님의 스승이셨군요.”
세데아는 조금 놀랐다.
처음 만났을 때는 김운산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길이 없었다. 그때의 그는 워낙 쇠약하고, 술법을 발휘하기 위한 물품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동안 새로운 술법사들이 합류하고, 파르웰이 그들에게 술법의 지식을 배우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김운산은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다른 술법사들도 존중할 정도의 실력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재앙이 시작된 땅에서 50년을 넘게 버텨오려면 보통 실력으로는 불가능했을 테니까.
“엄마는 온누리 제국의 1급 술법사셨대요. 황실에서도 탐을 낸 인재였다고 그러셨어요.”
“온누리 제국에는, 황실에서 술법사에게 등급을 매겼나요?”
“네. 정식으로 술과 시험을 봐서 합격한 사람이 아니면 어엿한 술법사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요.”
세데아에게는 굉장히 신기하게 들리는 이야기였다.
물론 현세에서 지낸 시간이 있으니 자신이 나고 자란 시대보다 사회 시스템이 훨씬 크고, 세밀하게 발달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마법사가 그런 사회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지위를 부여받는다는 사실도.
하지만 온누리 제국이 술법사를 대하는 방식은, 그녀가 학습한 서대륙의 국가들이 마법사를 대하는 방식과 비교해도 이질적이었다.
“표준 술법이라면 익히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버지께 준비해 달라고 부탁드려봤어요.”
그렇게 말하는 서둔의 태도는 조심스러웠다. 에리우 입장에서는 아직 뜻을 물어보기도 전에 준비 다 끝내놨다는 말이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에리우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해보고 싶어. 서둔의 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거야?”
“네.”
“그럼 해보기 전에 물어보고 싶어.”
“뭘요?”
“술법은 힘 조절 안 해도 되는지.”
“…….”
* * *
단죄자의 재앙이 시작되었을 때, 김운산은 아직 어리고 미숙한 소년이었다.
물론 용족, 그중에서도 드래코니안의 혈족으로 이루어진 명가의 자손이었으니 잠재력만은 뛰어났다. 하지만 어디 가서 술법사라고 말할 자격은 없는, 학생에 불과했다.
술과 시험을 볼 마음은 있었지만 그것도 10년쯤 더 공부하고 난 뒤에, 5급 술과 시험을 치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아내인 소현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을 정도의 천재였다.
용족 사회에서 스물여섯 살의 여성은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소녀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어린 나이에 이미 1급 술과 시험에 합격하여 황실 술법사가 되라는 제안을 받은 인물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리기에 좀 더 공부한 뒤에 그러하겠노라는 약속을 한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친척을 따라서 온누리 바깥으로 나올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재앙으로 파괴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영영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그녀가 남긴 것은 둘뿐이었다.
목숨을 걸고 지켜낸 딸과 자신의 술법 지식을 모두 계승한 제자이자 남편.
김운산의 술법 지식은 대부분 아내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적인 기억은 흐릿해져 가는데, 그녀에게 배우던 시간만은 지금도 생생했다. 눈을 감으면 자신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던 그녀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당신도 알다시피 무신술과 술법은 양립할 수 없지요. 하지만 신성의 머리를 하늘에 걸치신 존귀한 분들은 그 당연한 이치를 초월하실 수 있어요.’
용족 신성 완성자는 표준 술법을 익힐 수 있었다.
아내에게 배우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배우면서도 큰 의미를 두었던 적은 없었다. 자신이 이 지식을 써먹을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정말로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김운산은 자신의 앞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에리우를 보며 생각했다.
설마 아내에게 그 배운 지식이, 이토록 중대한 의미를 갖는 날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자신이 저 위대한 신화의 존재, 정확히는 신화의 존재로부터 비롯된 다른 누군가를 상대로 그 지식을 증명하게 될 줄이야.
“물론 술법에도 힘 조절은 필요합니다.”
“그런 거야?”
에리우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너무나도 자신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술법사의 경우고, 에리우 님께서는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응?”
“케엘 님이나 달시 님이 마법 쓰시는 거랑 비슷합니다.”
“아.”
“두 분은 위력을 조절하시는 것 같지만… 에리우 님도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몸을 쓰는 일이라면 모를까, 용신통은 위력을 몇 단계 정도로는 조절하실 수 있잖습니까?”
“술법이 용신통이랑 비슷해?”
“위력을 조절하는 감각이 비슷하냐고 하면, 아닙니다. 훨씬 더 복잡하고 섬세하게 조절해야 하죠.”
“…….”
“하지만 에리우 님에게는 비슷할 겁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술법을 쓰시는 게 아니실 테니까요. 일단 하나만 익혀보죠. 간단하고, 잘 맞으실 것 같은 술법으로 준비했습니다.”
예전에 서둔이 앓아누웠던 날, 김운산에게 부탁한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김운산은 그동안 궁리해서 만든 술법서를 펼쳤다. 두루마리에 또박또박한 필체로 쓰인 글자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제가 아는 것이 맞다면, 이 술법서를 읽으시는 것만으로도 술법을 터득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술법서를 받아 든 에리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김운산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못 읽겠어.”
“네?”
“무슨 글자인지 모르겠어.”
“…….”
김운산은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본래 신화의 합의에 따라 세상의 모든 존재는 프린어를 공용어로 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에 언어가 프린어만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른 집단끼리의 소통은 프린어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자신들만의 언어를 가졌던 집단은 많았다.
신화의 패권 전쟁에서 신족이 승리한 후에는 신화의 종전 협상에 따라 세상의 모든 존재가 프린어를 제1언어로 쓰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온누리 제국의 고위층에게 있어서 고대 온누리 어는 당연한 교양이었으며, 술법사들에게는 교양이 아닌 필수였다.
술법은 고대 온누리 문자와 고대 온누리어를 익히지 않고서는 아예 입문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프린어가 공용어가 된 후에 꾸준히 프린어 번역 작업이 이루어져 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술법의 근본적인 부분은 고대 온누리 문자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온누리어를 알아야 했다.
온누리 제국 출신, 그것도 귀족 계급인 드래코니안으로 술법사가 된 김운산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보니 이런 경우를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고대 온누리어를… 모르시는군요.”
“응. 몰라.”
“…….”
“공부해야 해?”
“원래는 그렇습니다만… 음. 죄송합니다만 잠시만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김운산은 술법서를 노려보며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당연히 아실 줄 알았다.’
겉으로 보면 에리우는 드래코니안, 그것도 대단히 강대한 존재로 보이다 보니 그런 착각을 할 만도 했다.
무엇보다 ‘에리우 란팔로제’라면 고대 온누리어와 고대 온누리 문자를 모를 리가 없었고.
‘본인이 말씀하신 대로 정말로… 다른 분이신 거군.’
김운산은 자신이 무의식에는 그녀가 전설 속 ‘에리우 란팔로제’ 본인이리라고, 온누리 제국 수호자로서의 의무를 가진 존재이리라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실에 실망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격 아닌가. 은혜를 갚진 못할지언정 본인이 아니라고 못 박은 일에 대해서 기대하고 실망하다니.’
사실 온누리 제국인이라면 당연히 가질 만한 기대감인지도 모른다.
김운산이 온누리 제국을 떠났을 당시에 어린 소년이라 그렇지, 그보다 나이가 많은 다른 용족들은 에리우를 보며 그녀가 에리우 란팔로제이리라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녀가 이 멸망의 위기에서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음조차 초월하여 다시금 이 땅에 돌아온 것이라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단죄자에 의해 세상이 멸망해가고 있는 상황 자체가 비상식적이고 신화적이기에, 사람들은 그런 희망에라도 매달리고 싶어 했다.
김운산은 그런 기대감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모르드 일행이 보호하는 생존자 용족 중에서는 젊은 편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생존자 중 용족은 열다섯 명인데 그중에서 그보다 나이가 어린 용족이 서둔을 포함해서 세 명밖에 없었다.
단죄자의 재앙이 시작된 지 55년째에 접어들었고, 생존자들이 다들 대륙 서부에서 구출된 이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 중 몇몇이 품은 ‘에리우 란팔로제’에 대한 기대감은, 김운산이 품은 것보다 훨씬 더 컸다.
모두가 아닌 이유는, 모든 용족 생존자가 온누리에서 나고 자라진 않았기 때문이다.
절반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온누리 제국을 떠나서 다른 왕국에 뿌리내린 자들이었고, 이런 이들은 아주 나이 많은 이가 아닌 한 온누리 제국의 문화가 머릿속 깊이 박혀 있진 않았다.
어쨌든 김운산은 그들이 에리우에게 품은 그런 기대감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철저하게 모르드 일행의 호의에 기대어 살아가는 신세였다. 그런데 그들에게 불합리한 기대감을 품고 그것을 표출하여 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김운산은 그들을 붙잡고 에리우에게 절대로 그런 기대감을 이야기하는 일이 없도록 설득했다.
‘그래놓고 나도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단 말인가.’
자신의 됨됨이에 실망감이 들었다.
그는 쓴웃음을 말했다.
“아무래도 저 혼자 능력으로 해결하려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군요. 에리우 님, 제가 청하고서 이런 문제가 생겨서 죄송합니다. 다시 준비할 때까지 한동안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응. 그렇게 해.”
고개를 끄덕이는 에리우의 얼굴에 살짝 실망한 기색이 어려 있다는 사실이 김운산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