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21)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921화
모르드는 감탄했다.
‘신에게 연구 하청을 주겠다니… 상상도 못 했는데. 강해졌구나, 파르웰!’
파르웰에게 마법 연구의 아웃소싱이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모르드조차 상상하지 못한 파격이었다.
보통 저런 일을 맡길 때는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맡기지 윗사람에게 맡길 생각은 못 하는 법.
단순히 신분이 위인 사람도 아니고 신에게 저런 일을 맡길 생각을 하다니?
‘물론 브레디아스가 받아들인다면 최고이긴 하겠지…….’
만신전의 신들 중에 마법의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를 꼽으라고 하면 브레디아스일 것이다.
물론 문서와 기록의 신 페이퍼스, 숲과 지혜의 신 메잔타 등 마법사의 이미지를 가진 신들은 여럿 있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브레디아스 만큼 마법의 진리를 탐구하는 존재로 그려지지 않았다.
[허허…….]브레디아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파르웰은 긴장한 채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아쉬운 처지라 해도 신이 불경하다며 분노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신선하군요.]하지만 브레디아스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감탄이 묻어나고 있었다.
[제게 이런 제안을 한 후손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파르웰.]“영광으로 여겨도 되겠습니까?”
[예. 무릇 학자는 지식을 나누고 상대에게 배우길 주저하지 않아야 하는 법. 하지만 권위는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을 그러지 못하게 만드는 벽이 되지요.]브레디아스는 명백히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살짝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이제까지 누군가가 바치는 지식을 받고,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하는 일을 계속해왔습니다. 훌륭한 학자들이 저와 토론을 통해 답을 찾고자 한 적도 있었지요. 하지만 제게 과제를 주고 연구를 맡기고 싶다니, 맙소사, 이런 재미있는 제안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브레디아스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는 후손의 당돌함과 파격성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하물며 이 시대 최연소 대마법사라면 분명 제가 재미있어할 만한 과제를 맡겨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그야 물론입니다. 위대한 학문의 신께 별것 아닌 과제를 맡긴다니, 그런 불경을 저지를 수는 없지요.”
경고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파르웰은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그때였다.
[흠흠.]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 소리가 난 신상으로 향했다.
[미안하군. 기다리기가 좀 힘들어서 말일세.]문서와 기록의 신 페이퍼스가 겸연쩍은 듯 말하고 있었다.
[아, 페이퍼스,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이들을 독차지했군요.]브레디아스가 사과했다. 두 신의 사이는 꽤 좋은 편이었다. 학문의 신과 문서와 기록의 신의 사이가 나쁘면 그게 더 이상하긴 할 것이다.
[아닐세. 이런 세상에서 그토록 장한 후손이 찾아왔는데 그 기쁨이 오죽 컸겠나?]“괜찮으시다면 저는 브레디아스 님과 둘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파르웰이 재빨리 말했다.
이제부터 브레디아스와 길게 나눠야 할 이야기는 매우 학문적이고 마법적이며 전문적인… 그러니까 다른 일행들은 듣다가 졸거나 딴짓하기 딱 좋은 그런 이야기였다. 그러니 아예 둘만 격리되어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 신들과 볼일을 보게 하는 게 좋았다.
[그러도록 하지요.]브레디아스는 흔쾌히 파르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여전히 파르웰은 그 자리에 있으되 그와 브레디아스가 나누는 이야기는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되었다.
[종언의 신명을 추구하는 자, 모르드여.]페이퍼스의 목소리는 점잖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먼저 나의 후손을 구해준 것에 감사하네.]오늘 이 자리에는 페이퍼스의 신혈인 여자가 따라와 있었다. 생존자 마법사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는 아니지만, 가엾은 이들의 영혼을 구원해 준 것도 감사를 표하는 바일세.]모르드가 구원한 영혼 중에서는 페이퍼스의 신혈이 있었다.
[나의 종들의 영혼 또한 그대에게 구원받았네.]“그랬습니까?”
[놈들을 위해 열매 맺는 나무가 되어 있었지.]“아…….”
싸워서 쓰러뜨린 단죄자 중에서는 페이퍼스의 신혈은 있어도 신관은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과수원에서 정화의 열매를 맺는 나무 중에서 있었던 모양이다.
[영혼이 쥐어짜 내지는 고통이 끝없이 이어졌다고 하더군.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할 수 있겠지.]“…….”
모르드는 이를 악물었다. 단죄자들의 인류를 향한 끝없는 악의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런 편입니다. 물론 축복도 환영합니다.”
[허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정말 궁금하구먼. 자네의 존재 자체가 놀랍지만, 자네에게서는 정말로 여러 신들의 흔적이 느껴져. 신화에도 그만큼 많은 신의 흔적을 새긴 존재는 찾기 힘들었지.]지금까지 모르드가 받은 축복이 한둘이 아니었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잊힌 신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신들의 축복까지 더해졌으니까.
[아마도 책으로 써내면 몇 권은 거뜬히 넘어갈 일들을 겪어왔겠지. 이런 시대가 아니었다면 자네를 앉혀놓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책으로 써낼지 고민했을 것이야.]“그렇잖아도 제 동료인 파르웰이 지금까지의 일들을 책으로 집필하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보실 수 있겠지요.”
[호오, 그런가?]일순 페이퍼스의 눈이 빛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혹시 집필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가? 보여줄 정도로는 진행된 건가?]“…….”
[기록 방식은 어땠나? 종이는 질이 좋은 것을 썼겠지? 제책은 어떤 방식으로? 아, 서쪽의 필기용 염료는 어떤가? 여전히 예전의 잉크를 쓰고 있나? 온누리의 먹도 훌륭하니 장벽이 사라지면 서쪽 땅에도 전파하고 싶은데…….]모르드는 떠올렸다.
‘문구 좋아해서 해외까지 다니면서 문구점을 찾아다니던… 그런 사람들의 향취가 나는데.’
생각해 보면 이 신전에는 모셔지지 않았지만 문서와 기록의 신인 페이퍼스의 휘하에는 필기구의 신도 있고, 종이의 신도 있고, 도서관의 신도 있으니 그 분야에 광적인 애호가 기질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긴 했다.
‘하긴 신들이 다들 자기 분야에 대해서는 그런 구석이 있긴 하지. 그게 당연하기도 하고.’
자신이 관장하는 영역에 광적이지 않다면 신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1권은 집필이 끝난 상황입니다. 나중에 사본을 제작해서 공물로 바치도록 하죠.”
[오! 정말인가? 기대되는군! 내 절대 섭섭하지 않게 포상하겠네!]신이 난 페이퍼스의 반응에 모르드는 흘끔 파르웰을 바라보았다.
때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때로는 눈을 빛내며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마 파르웰과 브레디아스 둘 모두에게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리라.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기로 해서 다행이군.’
그리고 아마 그걸 듣고 있어야 했으면 엄청난 곤욕이었을 것이다.
모르드가 원하는 정보를 알려준 뒤, 페이퍼스는 신혈을 불러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한 가지 과업을 내려주었다.
[이 재앙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도록 해라.]“최대한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기록하겠습니다.”
[그 의지가 후세에 큰 의미로 전해질 것이라 믿겠다.]페이퍼스는 다른 신들이 그랬듯이 모르드 일행에게 단죄자들을 처치하고 영혼을 구원하라는 과업을 내려주었다.
[나의 혈손을 구해줘서 고맙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음울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복수와 용서의 두 얼굴을 가진 신 아틴다였다.
모르드 일행이 데려온 생존자 중에 아틴다의 신혈도 있었던 것이다.
아틴다는 모르드가 요구하는 정보를 주었고, 페이퍼스와 같은 과업을 내려주었다. 다만 세부 내용은 좀 달랐다.
[단죄자를 처치하는 것은, 이 땅의 인류의 원한을 해소하는 복수다. 이 일에 대해서 나는 너희들에게 좀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군. 무기에 놈들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축복을 내려주겠다.]모르드와 케엘, 달시, 라그나스까지 무기에 축복을 받았다.
[이 무기는 이미 투신의 축복을 받은 적이 있군.]용족인 에리우는 신들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무기인 별방망이는 그렇지 않았다.
별방망이는 신족과 거인 사이에서 태어나 거인족 멸망의 마수가 된 로데시아의 뿔과 피, 뼛조각을 넣어 제작함으로써 신성을 품게 된 무기.
케엘의 신검이 그러하듯 신의 축복을 받아들여 더욱 강화될 수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에리우가 별방망이의 성능에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기에, 굳이 별방망이를 축복으로 강화하기보다는 다른 보상을 받는 쪽을 택했을 뿐이다.
단순한 강화 효과가 아니라 단죄자를 상대할 때 더 큰 위력이 발휘되는 아틴다의 축복 ‘인류의 복수’는 받을 가치가 있었다.
[오늘을 위해 갈고닦은 이 축복을 너희들에게 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이는구나.]‘인류의 복수’는 아틴다가 이 자리에서 즉석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모르드 일행처럼 단죄자와 맞서 상황을 뒤집을 희망의 빛이 나타날 때가 오리라 믿고 수십 년 동안 연마해온 축복이었다.
[부디 놈들에게 농락당한 인류의 복수를 부탁하마.]복수와 용서의 신은, 복수를 종용할 뿐 용서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의 혈손이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나…….]그때 또 다른 신상이 희미한 빛을 발했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어야 할, 오랫동안 고통받은 나의 혈손에게 존엄한 최후를 되찾아준 것에 감사하마.]언어의 신 하이록스였다.
이 자리에 하이록스의 신혈은 없었다.
그러나 옛 유라스 왕국령에서 다올론의 영혼을 구원했던 일, 그리고 그 후로 구한 영혼 중에 하이록스의 신관들이 있었던 것이 하이록스로 하여금 목소리를 전할 수 있도록 해준 것 같았다.
하이록스는 일행에게 감사를 표하고, 과업을 내려주었다.
‘에세르타는… 목소리를 낼 수는 없는 모양이군.’
이 신전에는 루니아와 달에 가장 가까운 다섯 별이라 불리는 다섯 신이 모셔져 있었다.
그중 하나인 예술의 신 에세르타는 끝까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른 신들과 함께 이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건 느껴졌지만 목소리를 내거나 과업을 내릴 만한 명분은 확보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언제고 기회가 있겠지.’
모르드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동대륙에서의 싸움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단죄자들이 55년 동안 만든 악몽 같은 세상을 뒤집어엎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었다.
‘다음에는 예술품 같은 게 보이면 좀 챙겨두거나 해볼까? 이런 세상에서 예술품을 보존해서 후세에 전해준다는 게 명분이 되어줄 수도 있으니…….’
어쨌든 이것으로 이 신전에 온 목적은 다 이뤘다.
‘오늘은 여기서 하루 보내야겠군.’
하지만 떠나려면 한참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파르웰과 브레디아스의 대화가 언제 끝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달시가 흠칫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달시?”
모르드가 물었지만 달시는 한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신전에서 가장 큰 신상, 달의 여신 루니아의 신상을.
“혹시 아무도 안 들려?”
그녀가 물었다.
모르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달시는 루니아의 신상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프…… 이여…….]아주 멀리서, 격렬한 파도 소리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진짜인지 아니면 착각이 불러일으킨 환청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모호한 소리.
하지만 눈을 감고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자 점점 그 소리가 가까워지고, 또렷해진다.
[라이……프의…… 신이여…….]왠지 나른한 느낌이 드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한없는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깊숙이, 좀 더 깊숙이.
한낮의 태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리하여 라이칸스로프에게 내려진 저주에 가까워질수록 목소리가 또렷해진다.
[라이칸스로프의 신이여…….]그리고 마침내 그 목소리가 또렷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