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76)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976화
제293장 리케인
한순간 의식을 잃었다.
잠에서 덜 깬 것처럼 몽롱한 의식 속에서 파도 소리가 가까워지는 착각이 든다. 아마도 의식이 빠르게 회복되어 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의 틈새로 밀려오는 기억이 있었다.
리케인은 오랜 세월 동안 항해자이자 모험가로 살아왔다. 육지에 발 디디고 지낸 시간보다 바다에서 살아간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오랫동안 바다에 나와 있는 뱃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땅이 그립다고. 땅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이 시대에 먼 바다로 나가는 이들은 희소했다.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은 대부분 미지를 향해 모험하는 리케인의 선원들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늘 생각했다.
‘육지는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아니야.’
리케인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고 들었다.
그는 세레스의 신혈인 어머니의 손에 자랐다.
그녀는 유능한 뱃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리케인을 키우기 위해 어부로 살았고, 리케인이 좀 자란 후부터는 화물선을 탔다.
세레스의 신혈은 어느 배에서도 환영받는 존재였다. 리케인은 그렇게 환영받는 어머니와 함께 뱃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성장 과정이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바다에 떠서 흔들거리는 배 위에 있을 때야말로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배는 그의 요람이었고, 고향이었으며, 집이었다.
그런 배가 침몰할 때의 기분은, 끔찍했다.
그가 세레스의 자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뱃사람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이고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죽음의 위협을 느낄 때보다도 더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을 겪고도 다시 배를 탈 수 있었던 이유는…….
‘괜찮아?’
그렇게 물어봐 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누군가는 인간일 때도 있었고, 지금껏 본 적 없는 바다의 백성일 때도 있었다.
적어도 배가 침몰했을 때만큼은,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사지가 멀쩡한 채로 누군가에게 구출되어 눈을 뜰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를 구해준 은인들은, 모두 그의 친구가 되었다.
그런 친구가 늘어나면서, 그의 삶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오직 미지를 향한 모험만으로 가득 차 있던 삶에, 친구들의 존재가 녹아든 것이다. 그는 항해를 끝날 때마다 한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을 찾아가 안부를 나누었고, 그들에게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면 세상 어디서든 달려갔다.
온 바다에서 사랑받는 모험가 리케인의 전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그가 단죄자가 되었을 때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잘못되었어. 모두가 잘못되었어…….’
그가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들은, 잘못되었다.
‘모두 사라져 버릴 거야.’
그가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채 잘못된 모습으로 남은 자들은 다시 태어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무너지는 세계의 잔해에 파묻혀 무가치하게 사라지고 말겠지. 쓰레기처럼.
‘그들을 구해야 해.’
친구들을 구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사라지게 둘 수는 없다.
‘내가…….’
남에게 맡길 수 없는 일이었다. 리케인은 자신 말고 다른 이들에게 그럴 의지가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없었다.
‘모두를 구하겠어.’
그들이 침몰한 배에서 바다에 떨어진 자신을 구해줬듯이, 자신이 이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그들의 영혼이 무가치하게 사라지지 않도록 구원할 것이다.
백경의 조타실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모두들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가서 여기저기 부딪혔다. 언데드임에도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 이들도 상당수였다.
“크, 윽…….”
어쩔 수 없었다. 리케인조차도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서 벽에 충돌했을 정도의 충격이었으니까.
‘직격당하지 않은 게 행운인가.’
조타실이 직격당했다면 끝장이었다. 아무리 리케인이라도 일격에 사망했을 것이다.
해신의 진노는 백경의 머리 부분을 절반쯤 날려 버렸고, 그 반동으로 아래로 기울어진 백경의 아래쪽을 비스듬히 관통하며 지나갔다.
‘제4형태… 아니, 제6형태는 되어야 운용 가능하겠군, 제길.’
백경은 다음 형태로 이행할 때마다 작아지며 파손된 부분을 운용 에너지로 수습한다. 리케인이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하반신의 뼈가 박살 나버린 골파가 기어오며 말했다.
[적들이… 선내로 침입해 왔습니다.]“안다.”
놀랍게도 적들은 공격이 명중한 직후에 뛰어 들어왔다.
외부에서 공세를 퍼부어 끝장을 내는 대신 돌격해서 안쪽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다. 백경이 멀쩡할 때였다면 코웃음을 치며 튕겨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안쪽 깊숙한 곳까지 그 돌진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적들은 백병전으로 끝을 낼 생각이었다.
‘백경의 복원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이런 결단을 내리다니…….’
그 통찰력과 결단력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만약 파손된 백경을 완전히 격침시킬 생각으로 전투를 계속했다면, 백경은 회복해서 달아날 수 있었을 테니까!
계속 다음 형태로 이행하면서 덩치를 줄이는 동시에 파손을 복원하고, 거기에 언데드 병력을 불러들여 축복로에 처넣는 것으로 출력을 회복한다는 방법이 있었다.
적은 마치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백병전을 걸어온 것이다.
“…정말로 오랜만이군.”
리케인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 속에서 웃었다.
“그래. 백경을 탄 후로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지. 피가 끓는구나.”
그는 해상전도, 해저전도 수도 없이 경험했으며 당연히 백병전 경험도 풍부했다. 배와 싸울 때도, 혹은 괴물과 싸울 때도 반드시 백병전으로 끝을 내야 하는 국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쪽에서 끝장을 내기 위해 백병전을 걸었던 경험만 있는 건 아니었다.
벼랑 끝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세를 점하고 백병전을 걸어온 적들과 싸워야 할 때도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전원 전투준비!”
따라서 그는 백병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겪었음에도 살아서 여기 서 있는 것은, 그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었으니까.
리케인은 검을 뽑아 들었다.
“내 배에 침입해서 나를 상대한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게 해주마.”
그는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슥 닦아내며 미소 지었다.
콰과광… 콰아아아앙!
그때 백경이 또 한 번 크게 흔들렸다.
돌격해서 백경의 선내로 고개를 들이민 로텐다르가, 그대로 선내에 화력은 쏟아부은 것이다.
선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가운데, 리케인만이 굳건히 버티고 서서 정신을 집중했다.
우우우웅…….
그의 품에서 진은으로 조각한 배 모형이 달린 펜던트가 빛을 발했다. 그를 총애한 세레스가 내린 성물이 공명하고 있었다.
리케인이 그것을 움켜쥐자 그 안에 잠재된 권능이 눈을 떴다.
그것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인식이었다.
먼바다를 항해하는 뱃사람들에게 있어서 배는 그들이 발 디디고 살아가는 세계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세레스 신족은 그 인식을 현실로 만들 권능을 가졌다.
[따라서 세계의 왕으로서 명하노라! 세계여! 침입자를 벌하리라!]얼굴 반쪽이 부서져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백경의 눈이 흉흉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빛이 그 거대한 내부를 뒤덮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일그러뜨렸다.
-선장의 세계!
로텐다르를 돌진시켜 백경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든 모르드는, 추가적으로 공격을 날렸다. 뿔에서 뻗어 나간 섬광과 입에서 발생한 물방울 포탄이 백경의 선내를 파괴했다.
콰광… 콰과과과광……!
그때였다.
-선장의 세계!
강대한 권능의 기척이 느껴졌다.
“대응이 빠르군. 역시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야.”
모르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주변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다. 로텐다르가 늪에 빠진 것처럼 균형을 잃으며 가라앉기 시작한다.
로텐다르는 백경의 외피를 뚫고 안까지 도달한 상태였는데 그렇게 가라앉는 감각에 사로잡히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일종의 봉인 권능인 것 같은데.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 적을 진흙 놀이를 하듯이 감싸서 봉인해 버리는 거군. 지금은 파손된 부위를 아주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고.’
칠감이 이 현상의 정체를 속삭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떠오르는 정보가 너무 구체적이다. 내가 세레스의 성자이기 때문인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세레스의 성자가 된 모르드는 그 변화를 아주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성물의 힘, 그리고… 백경의 힘.”
“성물?”
“리케인은 세레스 신족이면서 세레스의 성자이기도 했지. 그래서 대규모 이적을 일으킬 수 있는 성물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왕창 퍼주실 정도로 총애하는 사람이었나 보네. 그리고 홀라당 빼앗겨 버린 건가.”
달시가 혀를 찼다.
전쟁신 휘하의 신들이 한탄한 일도 있어서, 이것이 세레스에게 얼마나 크나큰 상처가 되었을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성물을 매개로 더욱 강력하게 행사되는 권능의 결과는, 밑바탕이 되는 배가 얼마나 크고 강대한가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군.”
객관적으로 볼 때, 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대한 배 중에 하나였다. 같은 대군주가 아니고서는 감히 비교할 대상이 없으리라.
크기만 봐도 그런데 이 배는 실로 거대한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배가 아닌가? 그 모든 것이 권능을 구현하는 연료가 되었다면, 이런 비정상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었다.
모르드는 몸을 일으켰다.
“파르웰, 로텐다르를 맡긴다. 이대로 이탈해서…….”
“싫습니다.”
“음?”
“이번에는 다른 사람 시키세요. 저 백경의 선장이라는 작자한테 제대로 한 방 먹여주지 않으면 울화통이 터져서 죽을 것 같으니까.”
“…….”
고집스러운 파르웰의 말에 모르드는 퍽 난감한 기분을 느꼈다.
평소에는 설령 감정적으로 싫더라도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지를 받아들이는 파르웰이었다. 그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나오다니, 어지간히 울분이 쌓인 모양이었다.
그것을 본 케엘이 한숨을 푹 쉬었다.
“…에휴, 내가 남을게. 세데아도 있으니까.”
그 역시 남고 싶지 않은 기분은 마찬가지였지만, 여기 있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자신이 그나마 최선의 선택지로 보였다.
[저도 돕겠습니다.]페세이타의 대신관장 와르더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라그나스, 너도 남아서 도와줘라.”
왕? 끄응…….
라그나스가 불만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모르드는 그런 라그나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마법사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 세데아도 없고, 파르웰도 나가니 믿을 게 너밖에 없구나.”
“어이, 나도 일단은 대마법사라고?”
케엘이 장난스레 말하자 리온이 눈을 부라렸다.
“양심은 어디다 버리고 왔냐?”
왕!
라그나스가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드문 모습이라 케엘은 머쓱해하며 입을 다물었다.
잠시 케엘을 째려보던 라그나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모르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왕!
“고맙다.”
대충 맡겨두라는 기색이었기에 모르드는 미소 지으며 라그나스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 그렇지.”
리온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이거 받아가. 어차피 저 안이야 모르드의 권능 범위 안이라 필요 없을 테니까.”
리온은 자신이 가진, 영혼 구하기의 권능을 위해 변질된 세계 파편들을 케엘에게 넘겨주었다.
“로텐다르의 신성로로 증폭되면 3개만으로도 쓸 만하겠지.”
“그러게. 로텐다르한테도 필요하겠어.”
달시도 자신의 것을 넘겨주었다.
그렇게 자신이 없이도 로텐다르로 영혼 구하기 권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자 모르드가 말했다.
“케엘, 이탈해서 바깥을 도와줘. 백경은 아마 더 이상 주변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닐 거다.”
“이거 내 말 잘 들을지 모르겠네.”
“괜찮을 거다. 내가 잘 말해뒀으니까.”
“…말하면 들어?”
“듣더군. 우리가 빠지는 만큼 배의 성능이 크게 떨어졌다는 건 염두에 두고. 그럼 간다.”
리케인의 조치 때문에 로텐다르가 완전히 뭔가에 감싸져서 출구로 나갈 수는 없게 되었다.
“공간왜곡장을 막았나.”
놀랍게도 공간왜곡장으로 나가는 것도 막혔다.
정확히는 백경 내부의 좌표를 잡을 수 없었다. 백경 내부가 완벽하게 리케인의 의지로 통제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 힘으로 나가주지.”
모르드는 로텐다르의 입구를 열고 주먹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