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78)
에드 토벌전 (1)
모든 시련과 시나리오가 끝나고, 검성이 된 테일리가 졸업장을 받으며 학교를 떠난다.
실베니아 밖에는 넓은 세상이 펼쳐져있다. 많은 세력과 집단들이 엉켜서 남아있는 사건사고가 잔뜩이다.
맥세스 대교를 나서는 테일리의 뒷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눈에 띄게 듬직해진 그의 등에는 커다란 대검이 매여있고, 양 옆에는 동료들이 가득하다.
아련한 음악소리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기억 속에서 몇 번이나 봤던 그 장면이다.
검은 화면에서 검성 테일리 맥로어가 헤쳐나갔던 시련들이 하나둘씩 오버랩되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영어로 된 네이밍이 올라오는 사이 테일리 맥로어의 삶이 축약되어 드러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무런 재능조차 없이 천대 받던 삶.
동네 불량배에게 두들겨 맞고 돌아온 날엔, 부모에게 상처를 보이기 싫어 밤의 거리를 맴돌았다.
헛간 뒤에서 무릎을 안고 울지만, 별을 올려다 보며 꿈을 꾼다. 언젠가 제 한 몫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날을 꿈꾼다.
그렇게 상처 투성이가 되어 밤의 공기에 묻혀있자면, 소꿉친구 아일라가 조용히 와 나란히 앉는다.
함께 밤하늘을 보며 두런두런 앉아, 상처 따위는 못본 체 하며 내일 먹을 점심 따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테일리는 욱욱 거리며 목소리를 낮춰 울지만, 미약한 자신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게 수많은 시련을 헤쳐나갔다.
1막 보스, 예니카 페일로버의 모습이 드러난다. 조용히 학사 생활을 이어나가던 그녀는 학년 수석이자 장학생으로 졸업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른스러우면서도 조용해진 얼굴이 한층 더 외로워 보인다.
2막 보스, 글래스트의 모습도 크레딧 한 켠으로 지나간다. 고향 땅 코헬톤에 묻힌 그의 묘비 앞에서 그의 아내와 클레어 조교수가 화관을 얹어주고 있다.
3막 보스, 루시 메이릴은 테일리의 검성식에 의해 마력 감응을 크게 잃었다. 허나 강대한 힘은 여전해서, 온갖 기동 마법을 몸에 두른 채 학사 여기저기를 노니는 모습은 똑같다. 크레딧에선 아켄섬 어딘가의 해안 동굴에서 석양을 본 채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다.
4막 보스 크레핀 로스테일러는 커다란 초상화로 드러난다. 그 앞에 조용히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타냐의 모습과 함께, 불타는 저택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5막 보스, 벨브로크의 비늘이 절벽지대에 떨어져 있는 모습이 드러나고, 바다 깊이 떨어져 내려가고 있는 대현자 실베니아의 아뮬렛이 보인다.
벨브로크의 봉인을 위해 아켄섬에서 제 삶을 마무리한 실베니아의 모습. 그 모습이 아뮬렛 안의 초상화로 드러나면서… 조용히 보스들의 후일담이 마무리된다.
그 뒤로는 시나리오가 진행되며 드러났던 여러 엑스트라들의 모습이 빠르게 지나가고… 검성이 된 테일리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나타난다. 장소는 어느덧 고향으로 뒤바뀌어있다.
동네 불량배 하나 이기지 못해 두들겨 맞고 돌아왔던 테일리다. 졸업 후 돌아온 고향에는 여전히 그 헛간이 남아있다.
그 때처럼 별이 빛나는 늦은 밤.
먼 과거 속의 어린 테일리가 눈을 북북 닦으며 일어선다. 멍든 상처를 쓸어내리고, 수련용 건틀릿을 쥔 채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문득 지금의 테일리와 눈을 마주치고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어딘가로 뛰쳐나간다.
빈 자리에 남아있던 기억 속 아일라는 뛰쳐나간 테일리 쪽을 보더니, 지금의 테일리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꾸벅 숙인다.
그리고 수련을 하러 나간 테일리를 따라서 뛰쳐나간다.
검성 테일리는 조용히 그 헛간의 뒷자리에 예전처럼 등을 기대고 걸터 앉는다.
예전과 같은 밤공기가 코를 간질인다. 그러고 있자니 밤의 어둠 사이에서 대현자 아일라가 따라나온다.
어렸을 때와는 달리 제법 성숙해져있지만, 그래봤자 아직 앳된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깔끔하게 몸에 맞는 마법사 복장의 옷깃을 휙 갈무리하더니… 테일리의 옆에 와 앉는다.
세상 모두가 테일리를 패배자로 여길 때조차, 그 옆에서 지키고 앉아 있어주었던 소녀다.
그대로 테일리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추억 속에 묻혀 휴식한다.
크레딧이 마무리되고, 음악이 멎는다.
테일리가 눈을 감는다. 화면이 암전된다.
*테일리 맥로어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땐, 화들짝 놀란 상회 직원들이 전투 태세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였다.
“긴 말 안할게요.”
생활동에서도 맥세스 대교의 바로 앞에 있는 금싸라기 땅. 그곳에 큼지막하게 지어진 엘테 상회 건물.
철창이 높게 드리워져 웅장한 모습이지만, 테일리 맥로어의 검격 한 번에 무너져버렸다.
“아일라 트리스는 어디있죠?”
– 쾅! 콰광!
보고 받은 듄이 재빠르게 상회 앞마당에 나와있을 땐, 한 눈에 상황을 눈치챌 수 있었다.
상회 입구를 지키고 있는 용병들과 더불어서, 한가닥 하는 상회 인사들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열댓명의 사내가 신음성을 내며 자빠져 있는 그 현장의 중앙에, 한 손으로 대검을 쥐고 서있는 소년이 있다.
‘벌써…?’
듄은 미간을 확 좁혔다.
엘테 상회는 에드 로스테일러를 도와 아일라를 납치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로 약정했다.
아무 문제 없이 깔끔하게 처리되면 당연히 좋지만, 사람 하나 납치해서 신병을 확보하는데에 아무런 문제도 없기도 힘들다.
학적 문제나, 수색을 뿌리치는 일 등… 손써야 할 일이 좀 있겠구나 하고 예상이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추적이 너무 빠르다.
적어도 내일 아침은 되어야 아일라의 부재를 깨닫고, 그게 실종이라고 완전히 결론 내리기까지는 며칠은 걸려야 하는 것이 맞다.
제대로 수색이 이루어져, 엘테 상회까지 의심의 칼날이 오기까지는… 그래도 일주일 정도는 잡았다.
허나, 반나절만에 엘테 상회까지 추격이 붙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빠르다.
“여기 아일라가 잡혀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빨리 데리고 나와요!”
테일리를 제압하려고 달려들었던 인부들은 엘테 상회 쪽에서도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었다.
애초에 엘테 상회는 무력집단이 아니다. 자체적으로 계약한 용병대는 있지만, 진짜 실력자를 상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본점도 아니고, 제국 남단에 처박힌 실베니아 지부에 본점 소속의 강력한 용병대가 파견될 리도 없다. 결국 테일리를 막아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력 집단이 아니기에, 오히려 무력으로 해결할 이유가 없다.
“진정하십시오.”
“…당신은?”
“현재 엘테 상회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듄 그렉스라고 합니다.”
듄은 식은 땀이 흘러 나왔지만, 얼른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뇌를 가동했다.
“현 시점에서 엘테 상회의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입니다.”
“엘테 상회 실베니아 지부를 책임지는 사람은 로르텔 케헬른 아니었어?”
“지금 회주 대리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상회 일에 손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듄은 양손을 휙 들고서, 능청스럽게 이야기 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상회 내부에서 난동을 피우시는 건 곤란합니다.”
“너희들이 아일라를 납치했다는 거 다 알고 왔어!”
매사 존대하는 테일리건만, 완전히 이성을 잃어서 반말을 갈겨대며 상회 인부들에게 소리쳤다.
“수작 부리면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알았어?!”
“진정하십시오. 이런다고 피차 간에 좋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아일라 트리스를 납치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군요. 대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이미 아일라 본인한테 편지를 받았어!”
에드 로스테일러의 요청에 의해 미리 전달된 편지였다.
로레일관에서 그녀를 납치해왔을 때에는 이미 테일리에게 편지가 도달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 내용이야 뻔했다.
지금 납치 당하는 중이다. 납치범들이 창문을 부수고 들어오려 하고 있다.
에드 로스테일러와 엘테 상회가 손을 잡았다. 성위 마법 연구를 위해 날 희생시키려는 것 같다.
학사 쪽에 도움을 요청해달라. 어떻게든 버텨보고 있겠다.
그렇게 편지를 쓴 뒤, 책상 구석에 얹어 놓고 온 것이다. 은근하게 눈에 띄지 않는 위치였지만, 에드는 테일리의 눈썰미라면 재빠르게 찾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테일리 성격에 날이 밝아서 학사에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릴 리가 없다. 그렇기에 이미 그는 상회 정문을 쳐부수고 들어온 상황이었다.
“이건 음해입니다. 저희 엘테 상회가 아일라 트리스를 납치해서 무슨 득을 본단 말입니까?”
“에드 로스테일러랑 손 잡았잖아! 너희들의 뒤에 에드 로스테일러가 있다는 사실… 다 알고 있어…!”
그 말은 정곡이었다.
깔끔하게 납치해왔다고 생각했건만, 에드 로스테일러의 일처리에는 빈틈이 있었던 것이다.
상회 인부 몇이 테일리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테일리는 발을 한 번 구르는 것만으로 충격파를 발산해 전부 밀쳐내버렸다.
‘충격 발산’
전투부에서 활용하는 전투 마법들은 마법부에서 전문적으로 익히는 것에 비해서 굉장히 단순하지만, 그만큼 반응이 빨라 직접 전투에 활용하기 좋다.
그대로 테일리는 양손으로 대검을 쥐더니, 크게 한 번 가로로 베어버리는 것으로 주변의 인부들을 대번에 제압해버렸다.
무기와 지팡이를 든 인부들이 상회 문을 박차고 일제히 뛰쳐나왔다. 처음 문을 지키고 있었던 자들보다는 훨씬 더 수준 높고, 그 수도 많았다.
테일리는 미간을 좁히더니, 눈을 지그시 감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이내 그 새까만 머리칼이 희끗하게 물들어가더니, 눈동자는 붉게 변한다. 몸을 감고 있는 마력도 한층 더 강대해져서 주변을 압도한다.
검성식.
초대 검성 루덴 맥로어가 고안해낸 검술로, 그 피가 흐르는 후손들에 의해 전해져 내려온 고유기.
루덴 맥로어가 삶의 목표로 삼았던 검은, ‘존재’를 모두 베는 검이다.
이 세상에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들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모두 베어내고, 그 존재를 지워버리는… 검의 극의를 추구하던 자다.
원소 베기, 사념 베기, 흐름 베기, 공간 절단, 폭검(爆劍), 쌍발검(雙發劍), 신살검(神殺劍), 허검(虛劍), 용살검(龍殺劍), 포식검(捕食劍).
벨 수 있는 건 모두 벤다.
그 의념 하나만으로 길을 걸었기에… 오로지 그 기술의 연마만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맥로어 가문에는 어떠한 부도 재산도 남아있지 않다. 제국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괴물들을 베고 쓰러트리며 살아왔지만 아무런 보답도, 영광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행방조차 묘연해서 그를 만나는 것만도 쉽지않았다.
오로지 검만을 바라보는 그 뚝심이 있었기에, 역사상 가장 강한 검성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피를 타고난 테일리 맥로어의 잠재력은… 일반인들과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다.
약간의 계기만으로도 쑥쑥 성장하는만큼, 그의 삶에 남아있던 숱한 시련도 모두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번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서너명이 나가 떨어진다. 인부들의 비명이 상회의 마당에 아득히 퍼졌다.
늦은 새벽시간이라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고요한 밤거리로 그 비명이 울려퍼져나갔다.
“일단 상회 내부로 피신하십시오! 여기 있으면 다칩니다!”
인부 하나가 듄을 향해 외쳤다. 듄은 이를 악물고, 일단 당장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기 위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야 했다.
듄과 몇몇 측근들이 상회 내부로 얼른 뛰쳐들어가자 인부들이 정문을 닫았다. 마지막에 그 문틈 사이로 보이던 모습은… 가히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온 몸에 두른 마력을 무기 삼아, 수십 수백의 인부를 홀로 뚫어내버리는 소년과 눈이 마주친다.
그대로 문이 쿵, 하고 닫히고 나서야… 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안도하기엔 아직 이르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그를 막아내려면 상회 내부 인력만으로는 모자라다.
“에드 로스테일러를 찾아! 아마 지금… 로르텔 회주 대리의 집무실 쪽에 있을거야!”
“이미 인부가 찾으러 갔습니다! 다만…”
상회 계단에서부터 뛰쳐내려온 인부가 숨을 헐떡이며 보고했다. 그의 등에는 또 다른 인부 하나가 업혀있었다.
“집무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에드 로스테일러도, 로르텔 회주대리도…!”
“뭐?”
“안내 역할로 갔던 티엘이 당했습니다! 그리고… 상회 고층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듄은 베레모를 꽉 움켜쥐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보고 받은 바에 따르면… 지붕에서부터 침입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 확인된 바로는…”
– 쾅! 콰광!
또 다시 폭발음이 밀려들어왔다. 허나 이번 폭발음의 진원지는 상회 입구가 아니라, 고층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테일리 맥로어와는 별개로 다른 인물이 상회 건물 안에 침입해 들어온 것이다.
“…크윽!”
갑작스러운 진동에 듄이 몸을 겨우 다잡았다. 덩달아서 비틀거리던 상회 인부가 얼른 말을 이어나갔다.
“직스 에펠슈타인! 북방 초원지대의 수호자!”
인부가 다급한 어조로 외치며 듄에게 보고했다.
“그가 상회 옥상을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뭐?”
“의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고층 관리인이 보고해온 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정의감 넘치는 성향이라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이런 물밑 싸움에 끼어들만한 인간은 아닐텐데? 일단 입구를 다 틀어막아! 근처에 있는 가구들 다 동원해서 입구를 봉쇄해!”
일단 가장 급한 일은 아일라를 감추는 것이다.
무력으로 테일리 맥로어를 막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아일라 트리스를 어떻게든 감춰서, 테일리의 무력 행위에 정당성을 없애버리면… 그의 이런 막무가내식 행보에 책임을 물을 순 있다.
상인은 상인답게 싸운다. 그걸 방침으로, 듄은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고층 쪽도 봉쇄할 준비를 해!”
듄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동에 정신이 없지만, 이성을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에드 로스테일러를 찾아내!”
짧은 시간 안에 해야할 일이 많다. 인력 분배가 핵심이다.
듄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 쾅! 쾅! 콰앙!
“건축비로만 본점 한 분기 예산이 들어간 건물인데…”
“지금 돈이 문제냐?”
나는 로르텔의 팔을 잡아 끌고 상회 복도를 따라 빠르게 걸었다.
한층 진정이 된 로르텔은 내 팔을 감아 안고는 몸을 딱 붙인 채 따라붙고 있었다.
“어쩔 수 없죠. 그런데…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죠?”
“일단 널 빼돌려야지. 듄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너를 붙잡아 두고 있지 않으면 성립이 안되는 모양이니까.”
“그런 것 치고는 꽤 화려하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테일리랑도 해결봐야 할 일이 있거든.”
테일리의 스펙을 확인하려거든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엘테 상회라는 좋은 희생양을 확보했으니, 이를 이용해서 자리를 만든 것 뿐이다.
테일리가 날뛸 수 있을만한 장소를 만드는 것도, 그 이유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허나, 상황이 이렇게까지 왔으면 테일리를 이용해 듄까지 해결해버리는 게 더 편하다.
“테일리 맥로어요?”
“그래. 차기 검성으로 유력한 그 녀석.”
“잠재성이야 모두가 다 인정하긴 하지만… 확실히, 엘테 상회는 무력집단이 아니니까… 그런 애가 와서 갑자기 날뛰면 곤란하긴 하겠지요.”
엘테 상회의 용병들은 꽤나 실력이 있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나리오의 강자들에 비할 바는 절대로 못 된다.
엘테 상회가 이 아켄섬에서 발 붙이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금권과 정치력이 핵심이다. 저렇게 무턱대고 날뛰기 시작하면 곤란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엘테 상회 자체 무력만으로는 막기 곤란할 거에요. 학사 쪽이나, 학교 내부 경비 인력들이 출동하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늦은 시간일테고.”
“그래. 그러니까 엘테 상회를 좀 도와줄 사람들을 몇 데리고 왔어.”
“뭐라고요?”
로르텔이 대답하는 순간, 코너를 꺾고 곧바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상회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는 인부들을 제압한… 직스 에펠슈타인이었다.
“왔냐.”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하실 줄은 몰랐군요. 에드 선배님.”
모든 종류의 무기를 전부 다를 줄 아는 직스다. 이번에는 자그마한 레이피어를 한 손에 들고서는, 순식간에 복도를 다 정리해버린 참이었다.
“위층은 전부 정리해두었습니다. 옥상에 탈출용 밧줄도 매어두었고요.”
“테일리가 오고 있다.”
나는 긴 말은 하지 않았다.
1층은 엘비라가 막을 것이다.
여기 2층은 직스가 맡는다고 하고, 3층에는 귀빈 대기실에서 예니카가 대기 중이고, 4층에는 그보다 한층 더 까다로운 조력자가 와서 대기중일 것이다.
나는 4층의 옥상으로 가는 길을 따라 나간 뒤, 직스가 매어둔 탈출용 밧줄을 타고 상회를 빠져나갈 계획이다.
테일리가 어디까지 뚫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상태의 테일리가 상대하기엔 너무 강대한 적들이다.
나한테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한다. 애초에 나는 지금 반지의 반동 때문에 힘도 제대로 사용하기 힘든 상태라 더 곤란하다.
“몸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네, 로르텔.”
“직스 너까지 올 줄은 몰랐는걸.”
“긴 사정을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 회포는 다음에 풀도록 하자.”
같은 A반 소속인 로르텔과 직스는 구면이다. 서로 간에 간단하게 담소를 나누고서는, 직스는 나한테 이야기했다.
“그… 3층의 귀빈 대기실 근처는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로르텔과 보란 듯이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직스는 곤란한 듯 이야기했다.
“내려오면서 예니카 선배님을 슬쩍 보고 왔는데, 뭔가… 무서웠습니다.”
“뭐…?”
“그냥… 지금 상황이 별로 맘에 들진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귀빈 대기실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계시는데… 뭐라 형용 못할 기운이 흘러서… 말을 붙이진 못했습니다.”
직스는 그러면서도 로르텔의 눈치를 보았다. 이런 상황을 굳이 예니카 앞에 보이지 말자는 의견은… 솔직히 나도 동의는 하는 바다.
“어머, 저는 한 번 얼굴을 보고 가고 싶은데.”
“로르텔.”
“나 하나 구하자고 이렇게까지 팔 뻗고 나서주는 에드 선배님의 모습이 얼마나 감동이에요.”
한동안 여우처럼 웃더니, 이윽고 로르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공과 사는 구분해야겠지만요. 1분 1초가 아까운 시점이니까. 처리해야할 일도 많고.”
로르텔은 그리 말하고 미간을 좁혔다. 자기를 둘러싼 권력 싸움의 전체적인 그림을 벌써 어느 정도는 가늠하고 있는 듯한 모양이다.
“우리는 상회 건물을 탈출해서 캠프로 간다.”
“알겠습니다. 변동 사항 있으면 따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직스는 근처의 목재 의자에 털썩 걸터 앉았다. 벽에 검을 기대어 놓고는, 양손을 깍지 낀 상태다.
“그럼 어디… 한 번 상황을 지켜봅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로르텔과 함께 상회 건물 위층으로 계속 올라갔다.
*-후우우웅
백 단위가 거의 다 되어가는 상회 인부들을 정리하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인부들의 산 앞에서, 테일리는 조용히 대검을 한 번 털었다.
압도적인 실력차 앞에서는 피 한방울 조차 흘러나오지 않는다. 굳이 살생을 범할 필요까지도 없는 상대였다.
그대로 소름돋을 정도로 붉은 눈동자를 스윽 들어올리자, 꽉 틀어막힌 상회 정문이 보였다.
비장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테일리는, 천천히 상회 정문으로 가서 대검을 들어올렸다. 검격 한 번이면 정문을 통째로 부숴버릴 수 있다.
“어머나, 정말 난리가 아니네.”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가 테일리의 귓가를 간질였다.
산처럼 쌓여있는 인부들. 그 언저리를 돌아다니던 엘비라의 목소리였다.
“…엘비라?”
허름한 마법사 로브를 두르고 있는 엘비라는… 완전 무장이 끝난 상태였다.
가방에는 온갖 연금술 시약과 마공학용품이 가득 들어차있다.
그대로 나가떨어진 인부들의 산에 대충 걸터앉은 엘비라가, 다리를 꼬고 음흉하게 웃는다.
“반가운 얼굴이네, 테일리.”
“너, 왜 여기에…”
“미안한데, 여기서 멈춰줘야겠어.”
에드 로스테일러와 손을 잡은 엘테 상회 실베니아 지부.
그 상회 건물의 1층 정원에 나타난 엘비라는… 그다지 테일리에게 호의적인 것 같지 않았다.
테일리는 그 사실을 감지하고, 조용히 대검을 꽉 움켜쥐었다. 감각만큼은 여전히 날이 서있는 소년이다.
에드 로스테일러가 이르기를, 1 페이즈 담당이다.
2학년 연금부 수석 엘비라 에니스턴.
그녀가 보란 듯이 나타나 테일리를 막아선 시점에서, 벌써부터 소년은 불길한 직감이 밀려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