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0
10화 황태자
“…괜찮겠죠?”
“괜찮겠지… 아마도. 그리고 레이크 하사님 동생이 이쪽 공작가에 취직했다잖냐. 어느 정도까지는 그래도 그 영애에게 따라 주는 게 맞겠지…….”
라이플맨들은 자신들의 짐을 들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번 암시장에서의 작전에, 그 뒤로 이어진 여단장의 문책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인상은 아닌 로피츠 공작가에 신세를 지는 게 그들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음… 그래도 간만에 지붕 있는 곳에서 자는 게 어디입니까. 맨날 천막 치고 살다가.”
스워포드가 말하자, 다른 이들도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왕 초대받은 거 푹 쉬다가 가야 맞지 않겠나.
그들이 마당에서 잠시 멈춰 기다리고 있자, 별장 안에서 알렉스가 나왔다.
“다들 왔냐?”
“네넵.”
알렉스는 그들의 대답을 듣고도 다시 한번 직접 수를 세며 레이크 하사 아니, 이제는 민간인이 되어 버린 안드레이까지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일단 본론부터 말하겠다.”
그는 잠시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은 뒤, 그들에게 말했다.
“일단 숙소가 많이 구하기 힘들어진 건 우리들이 직접 발로 뛰어 봤으니 알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럼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는 대가로 뭘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겁니까?”
한 대원의 질문에, 다른 대원들도 비슷한 걱정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 이번 초대로 인해 아델라인에게 뭔가 약점을 잡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건 알렉스도 걱정하던 바였고, 그렇기에 그는 미리 해결해 둔 상태였다.
“너희들은 여기에 머무는 대신 별장의 경비, 그리고 내가 로피츠 공녀의 근접 호위를 맡기로 했다. 제군들은 그냥 번갈아 가며 경비 서는 시늉을 하다가 푹 쉬면 된다.”
그러자 대원들은 한결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대가 없는 호의만큼 경계해야 할 것이 없었기에, 차라리 뭔가 대가를 지불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한결 마음이 편해진 듯했다.
“우리는 별장의 동관에 있는 손님용 침실 3개를 배정받았다. 알아서 짐 풀고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갈 수는 없으니까 이따가 목욕탕이나 한번 가자고.”
“네!”
“자 그럼, 나 없을 때는 짬순으로 해. 위치로.”
“위치로.”
대원들이 사용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별장 안으로 들어가자, 알렉스는 대원들에게 들리지 않게 한숨을 푹 쉬었다.
세이드 그놈이 여기 있으려나.
부디 그럴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한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그렇게 슥 둘러봐서 발견될 것 같았으면 어디 정보 길드 수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짐을 챙기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그렇게 하려 했다.
“매닝햄 대위.”
아델라인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몇 걸음 떼지 못한 발을 멈추고 그 방향을 바라봤다.
“저랑 같이 바스의 시내 구경을 하는 건 어떤가요. 나이아는 지금 사용인들을 배치하고 있고, 레이디 혼자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 에스코트를 부탁하려 하는데.”
그렇게 말하며 아델라인이 손을 내밀자, 알렉스는 잠시 표정을 찌푸리더니 그 손을 잡고 예법대로 손등에 입맞춤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레이디.”
아델라인은 승낙의 대답을 듣자, 그와 함께 별장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휴양과 관광을 위한 도시이다 보니 유럽풍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아서 눈 호강을 할 수 있었다.
“오오… 저게 그 대욕장인가요? 고대부터 있었다는?”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며 주위를 보자, 대체로 일정한 높이의 건물들 사이에서 좀 더 높고 웅장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도시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은 그 건물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고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네. 저게 대욕장이죠.”
그는 뭘 당연한 걸 그렇게 묻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수백 년, 어쩌면 천년 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던 대욕장을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는 아델라인의 모습은 천진난만하게 보였다.
“헤에에.”
“…뭐가 그리 신기하다고.”
알렉스는 한심하다는 듯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물론 모를 수도 있고 신기해할 수도 있지만 어쩐지 그녀가 그러니 가슴 한편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 감정을 잠시 찬찬히 분석해 본 알렉스는 이내 자신의 결론을 거부했다.
아냐, 아냐. 귀여움은 개뿔.
그냥 귀찮음으로 퉁치자.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알렉스의 눈에 한 골목길 모퉁이에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보였다.
알렉스는 주변을 살핀 뒤 그녀의 손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갑자기 구경하다 말고 어딜 끌고 가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알렉스의 힘을 이길 수 없었던 아델라인은 어쩔 수 없이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렇게 그들은 인파를 뚫기도 하고, 골목길로 들어가기도 했다.
“어, 어딜 그렇게 가는 거예요!”
“가만히 따라오시지요. 호위를 맡기셨으면.”
그렇게 말하는 알렉스의 표정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에, 아델라인은 결국 입을 꾹 닫고 계속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알렉스가 멈춰 선 뒤 숨을 고른 장소는,
“여긴… 아까 거기잖아요!”
대욕장이 보이는, 조금 전 제가 저게 대욕장이냐고 물었던 바로 그 언덕길이었다.
“혹시 길치예요?”
아델라인이 차오르는 숨을 힘겹게 고르며 물었지만, 그는 주위를 둘러본 뒤 중얼거렸다.
“일단 떨쳐 냈네.”
아델라인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생뚱맞은 답을 한 알렉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우리가 저택을 나온 뒤부터 계속 우리를 미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혼자인 듯해서, 떨쳐 내기 위해 이렇게 번거롭게 움직였습니다.”
그러자 아델라인의 팔에 닭살이 돋는 듯했다. 소름 끼쳤다.
자신은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세이드. 그자일 거예요.”
아델라인이 말을 하며 소름 돋았다는 표정을 짓자, 알렉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자, 당신이 공작가 안으로 들인 거 아닙니까?”
알렉스가 묻자, 아델라인은 고개를 격하게 저은 뒤 소리 높여 항의했다.
“제가 그랬겠어요?”
“목소리.”
그녀의 큰 목소리를 지적한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아델라인의 손목을 잡았다.
“그럼 지금 움직이죠. 가만히 있으면 언제 다시 미행당할지 모르니까.”
일리가 있는 말에, 아델라인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하나 잘못 들여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한스러웠다.
어쩌다가 여주인공 바라기인 세이드가 공작가에 굴러 들어오게 된 거야.
“그러면 그때 다친 것도…….”
“세이드와 조우했습니다. 그쪽에서 제 신원을 알 방법은 없었으니, 저인지는 모를 겁니다.”
“…미안해요.”
“애초에 예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가다가 운이 안 좋았다 뿐이지.”
알렉스가 그녀를 바라봤다.
“다만 세이드가 나이아와 같은 장소에 있다는 건 상당히 우려됩니다.”
“어떤 이유에서죠?”
“세이드는 나이아의 취직 이후 달라진 공녀, 당신의 행동을 포착했습니다. 나이아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려 하겠지요. 어쩌면…….”
그러자 아델라인은 그가 염려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세이드를 바로 공작가에서 해고할게요. 이유야 붙이면 그만이지. 그러면 될까요?”
나이아가 자신에게 준 도움을 생각하면, 한낱 마부를 해고하는 것 정도는 그동안 빙의 전 아델라인이 쌓아 온 ‘변덕스러운 귀족 영애’ 이미지 하나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물론 그녀가 해고해야 할 건 평범한 마부가 아니라 마부로 위장한 세이드였지만. 일단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마부니까.
그러나 알렉스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과 달랐다.
“아니요. 해고하지 말고 계속 고용을 유지하십시오.”
“…왜죠?”
“어딘가로 잠행해 버리면 찾기가 더더욱 힘들어질 겁니다.”
그러자 그녀는 알렉스가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세이드를 원했다.
“이 정도는 협조해 주실 수 있으리라 믿겠습니다. 우리 측에서 행동할 때까지 잠시니까요.”
그러자 아델라인이 그를 향해 물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물론 범죄자를 그냥 내보내는 것보다는 잠시 붙들어 두는 게 이치에 맞다는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괜히 알렉스에게 짓궂은 마음이 들어 되물었다.
애초에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도 않는 그인데.
“귀족이니 응당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귀족이라면 그에 맞는 사회적 책무를 지셔야지요.”
알렉스가 귀족의 사회적 책무라는 카드를 쓰자, 아델라인은 할 말이 없어졌다. 결국, 그녀는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그러면.”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보며 말했다.
“저를 도와주세요.”
그러자 알렉스는 딱딱한 얼굴로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이야기는 끝난 거 아닙니까.”
“그것과 이건 다르지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나요?”
“…….”
일리가 없지는 않은 말이기에, 알렉스는 입을 다물고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당신들이라면 분명, 쉽게 해낼 수 있겠지요.”
“우리는 만능이 아닙니다.”
“오면서 잠시 나이아에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델라인은 대욕탕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혹시나 거짓말을 들킬 만한 단서를 내줄까 봐. 그런 다음, 그녀는 나이아에게 들은 게 아닌 간신히 떠올린 소설의 내용을 그에게 말했다.
“라이플맨들은 다른 병과에 비해 관절을 많이 다친다고.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납치된 여주인공을 찾기 위해 황태자가 알렉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을 때, 알렉스는 무릎을 두드리며 약값도 없는데 왜 가야 하냐며 말했지.
그때를 기점으로 색깔 없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던 알렉스가 비호감으로 변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침, 가문이 후원하는 목록 중에 한 사제님이 이끄시는 고아원이 있네요.”
“…….”
“이번에 구조한 아이들을 수용할 만큼 아직 여유가 있기도 하고. 또 의료 봉사를 다니시는 만큼 실력도 좋으시니까요.”
그러자 그에게서 고뇌가 느껴지는 눈빛이 흘러나왔다.
그때, 그들을 향해 일군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알렉스의 얼굴이 싸하게 변하는 걸 보고, 아델라인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가 향한 쪽을 바라봤다.
“아, 로피츠 영애. 지난번 연회 이후 오랜만인가?”
아델라인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황태자님을 뵙습니다.”
아델라인은 고개를 숙이고 치맛자락을 살짝 들며 그에게 인사했다. 황태자. 소설 속 삽화에서만 보던 그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
그러나 알렉스는 그런 그를 멀뚱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황태자 뒤에 있는 수행원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안 좋아지는 게 보였지만, 알렉스는 아무 말 없이 황태자 무리를 응시할 뿐이었다.
엄연히 황태자를 무시하는 태도였지만, 황태자도 아무렇지도 않게 알렉스를 무시하고 아델라인에게 다가왔다.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나?”
“…….”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봤다. 대체 둘이 무슨 사이인 건지, 그녀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내 알렉스가 그녀에게 말했다.
“걱정 마시고 다녀오시지요. 나중에 이어서 이야기하지요.”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델라인의 귀를, 황태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간질였다.
평소 같았으면 마냥 좋은 목소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어째서인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잠시 영애를 에스코트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머릿속은 이 산뜻한 미남을 향해 연신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