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44
44화 그 정원사
별빛이 반짝이는 밤. 아델라인은 알렉스와 함께 황궁의 정원에 나와 있었다.
“근데, 연회의 주인공께서 이렇게 밖에 나와 계셔도 되는 겁니까, 여사님?”
알렉스가 능글맞은 얼굴로 아델라인에게 경칭을 쓰자,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멀쩡한 오른쪽 어깨를 때리며 항의했다.
“자꾸 그 호칭 쓸 거예요?”
그러나 알렉스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아델라인의 왼쪽 가슴에 달린 훈장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에이, 이제 기사 작위까지 가지고 계신 여사님이신데. 함부로 이름 불렀다간 헌병대에게 잡혀가요.”
“헌병대가 어디 있다고. 아델라인이면 충분해요, 아델라인이면.”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델라인이 알렉스의 오른손을 잡았다.
거칠고 차가운 손이지만 한 번 잡으니 놓고 싶지 않았다.
“와 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 그나저나 아쉽지 않으십니까?”
알렉스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물음표를 띄우며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황제 대신 다른 사람에게 훈장을 받았잖습니까. 갑자기 몸이 안 좋으시다고.”
“뭐, 상관없지 않을까요? 어차피 같은 훈장인데.”
아델라인이 천진한 표정으로 답하자, 알렉스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좋다는데 더 말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겠지요.”
“그런데… 팔은 괜찮은 거예요?”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왼팔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분명 심하게 다쳤을 텐데.
“이 정도 다치는 것 정도야, 종종 있는 일이지요.”
그러나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다. 실제로 이런 부상은 종종 발생했다. 가장 위험한 현장에 뛰어드는 게 라이플맨들이니, 부상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더 마음이 무거웠다. 알렉스는 그녀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곧 나을 겁니다, 곧.”
그때, 알렉스와 아델라인은 황태자와 그 친위대 간부들을 마주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아델라인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자, 황태자도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영애. 오랜만이군.”
“말은 똑바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알렉스가 황태자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호칭을 부를 거면 제대로 부르던가.”
아델라인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황태자와 알렉스를 번갈아 봤다. 황태자나 알렉스나, 둘 다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위가, 간섭할 사안인가?”
“오늘까지는 제가 파트너인지라.”
그 말에, 황태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허, 출세했군. 본부장의 사냥개가.”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경비견보다야. 아, 이제 경비견도 안 되려나.”
알렉스의 말에, 황태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의 손은 주먹을 꽈악 쥐고 있었다. 황태자의 뒤에 있던 친위대의 간부들이 앞으로 나오며 황태자를 대신해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런 천한 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뚫린 입이라고 되는대로 뱉어 대다니, 사냥개 따위가!”
점점 살벌해지는 분위기에, 아델라인은 당황한 채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러나 알렉스는 아무 말 없이 아델라인을 보호하듯 그녀의 앞으로 한 발짝 나왔다.
“그 사냥개가 제 어미를 구했다면, 금수 새끼라도 그 사냥개 발을 핥을 텐데 말이야. 아, 애초에 어미도 못 알아보고 물어뜯으려 했으니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못 했던 건가?”
알렉스의 말에, 황태자의 손이 허리춤의 검으로 향했다. 그러자 알렉스는 수풀 너머를 흘끗 본 뒤, 황태자에게 말했다.
“감당되시나? 그거 뽑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텐데.”
“…….”
“사람 사귀는 건 가려 가면서 사귀지. 괜히 뒷골목 기어들어 가서 주문 넣지 말고. 아, 거기서 거기인가.”
알렉스의 말에, 황태자 뒤에 있던 친위대 간부들이 일제히 알렉스를 노려보며 검을 뽑았다. 그때, 길 양쪽의 수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대원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라이플맨들이 마치 황태자와 친위대 간부들을 포위한 모양새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전세 역전에, 친위대 간부들은 뽑은 검을 엉거주춤 든 채 주변을 둘러봤다.
“무장 해제시킵니까, 중대장님?”
사람 키만 한 라이플을 지팡이 삼아 짚은 채 나타난 노먼이 알렉스를 바라보며 묻자, 알렉스는 황태자와 친위대 간부들을 보며 그에게 말했다.
“그럴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요.”
마치 황태자와 친위대 간부를 깔보는 듯한 대화가 오갔지만, 황태자와 친위대는 이 상황에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알렉스와 아델라인만 있을 때는 수적인 우위라도 있었지, 지금 이 상황은 황태자에게 유리한 게 하나도 없었다.
총구를 겨누지도 않았지만, 완전히 포위당한 상황. 그러나 체면 때문이라도 물러서기는 쉽지 않았다. 그걸 읽은 노먼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꽤 늦으셨습니다. 여사님께서도 슬슬 돌아가 보시는 것이. 중대장님께 보고 드릴 사안도 있고.”
노먼의 말에서 황태자에게 도망칠 길을 열어 주자는 제안을 읽어 낸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그럼 슬슬 돌아가 볼까요. 오늘은 긴 하루였으니, 일찍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탓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델라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알렉스는 손으로 전해져 온 아델라인의 감정을 알아채고는 그녀를 이끌어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자 황태자와 그 일행들도 라이플맨들의 살벌한 눈빛을 받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마차로 가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나이아가 그들을 맞았다.
“아, 벌써 나오셨나요?”
“일찍 돌아가려고. 오늘 하루가 짧았던 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나이아는 아델라인이 마차에 오른 것을 본 뒤, 알렉스에게 인사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대위님.”
“뭘, 내가 더 좋았지. 첫 출근이 조금 늦어질 것 같은데, 가능한 일자는 네 앞으로 보내 줄게.”
“알겠습니다, 공녀님의 일정과 맞춰서 수업 일자 확인하고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이아와의 이야기가 끝나자,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알렉스는 창문 너머로 아델라인의 손을 잡은 뒤,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다음에 또 봐요.”
알렉스의 표정에 서린 아쉬움에,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답했다. 자신도 알렉스와 헤어지려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아델라인은 충동적으로 알렉스의 거친 손을 잡고, 그의 손등에 입을 살짝 맞췄다. 그러자 이런 행동을 예상치 못했던 알렉스가 얼굴을 붉히며 화들짝 놀라 손을 뺐다. 알렉스의 반응에, 아델라인은 히히 웃음을 보이며 그에게 손을 저었다.
“다음에 봐요!”
아델라인의 인사와 함께, 마차가 점점 멀어져 갔다. 알렉스는 손등에 닿은 입술의 감각을 잠시 되새겨 봤다가, 곧바로 막사로 발길을 돌렸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 * *
피오나는 책상에 앉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심기가 불편했다. 완벽하리라 생각했던 계획이 단 두어 달 만에 흔들리고 있었다.
“…….”
며칠은 더 질질 끌 거로 생각했던 빈민가의 상황. 하지만 휘태커 경감의 제3 수도경비대와 매닝햄 대위의 라이플여단 파견 중대의 초동 대처는 경이로울 정도로 신속했다. 뒤이어 수도사단이 수도 내부로 진입해 눌러앉으며 인력을 쏟아붓자 사태는 허무하게 종결되었다.
원래는 빈민가를 담당하고 있던 제3 수도경비대를 무력화시키고 세이드에게 무주공산이 된 빈민가를 차지하게 하려 할 계획이었다.
그사이 백작가는 이재민에게 구호물자를 제공하며 착착 입지를 쌓아 나가는 게 목적이었다.
수도의 음지에는 세이드가, 양지에서는 루멘시아 백작가. 겉으로만 보면 여전히 불안정한 빈민가였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손에 수도의 3할이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랬었다. 계획은.
“하아… 이걸 어찌 처분한담.”
피오나는 서랍을 열어 그 안에 든 증서들을 바라봤다. 여러 유령 회사를 이용해 사들인 곡물들의 권리증서였다. 혹시라도 자신을 대신해 구호물자를 뿌릴 사람이 있을까 봐, 유령 회사들을 이용해 곡물 가격을 급등시킨 것도 자신이었다.
거기다가 주식 시장도 함께 흔들어 놓으며 혼란을 가중했다. 특정 종목의 주식들을 통정매매하며 주가를 폭등시키고, 덤으로 수익까지 챙겼다.
그러나 의회의 발 빠른 대응은 피오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의회가 이렇게 발 빠르게 대응하다니.”
피오나는 책상 위의 석간지를 바라봤다. 제1면의 헤드라인에는 대문짝만한 글씨가 박혀 있었다.
[주식 시장과 현물 시장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으며, 내각과 협조해 상황 분석에 나설 것]그 한 마디의 위력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한 마디는 그녀가 조장한 시장의 과열과 혼돈을 단숨에 식혀 버릴 수 있었다.
내일 장이 열리자마자 요동치던 주식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며, 곡물의 가격도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결국, 자신은 수많은 기부자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값비싼 곡물을 아낌없이 기부한 독보적인 인물이 아니라. 그래서야 곡식을 한껏 사 모은 보람이 없었다.
어쩌면 시장의 혼란을 조장한 유령 회사들이 꼬리를 밟혀 조사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면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의회와 내각의 눈길이 닿을 것이다.
자신이야 다른 가면을 쓰고 도망치면 되지만, 루멘시아 백작가는 아직 쓸모가 많았다.
“…할 수 없지. 유용했는데.”
피오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그러자 불길한 붉은 빛을 내는 마법진 한가운데에서 박쥐의 날개를 가진 끔찍한 무언가가 드러났다.
“세이드에게 이 말을 전하거라. 돈을 담는 주머니가 더러워졌다고.”
유령 회사들의 바지 사장들과 몇 안 되는 직원들을 영원히 입 다물게 만들어야 했다. 물론, 그들의 사인은 동일했다.
‘부정 거래의 처벌을 두려워한 이들의 극단적 선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