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115
이제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힘들게 소환한 저 용을 원래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것.
내가 녀석을 컨트롤할 수 있었던 것은 코어와 직접 연결되어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독일을 떠나서 또다시 용을 소환하려고 하면 훨씬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소환한다고 해도 그 유지 시간이 극히 짧을 수밖에 없다.
‘최초의 던전에 더 많이 방문할 수밖에…….’
그렇게 모은 코어의 마나가 용을 소환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줄 것이다.
지금으로서 떠올릴 수 있는 해법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하늘에 일종의 소환진(召喚陳)을 만들었다.
용이 느리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벌써 돌아가는 게 싫은 것 같기도 하고, 내 명령에 일방적으로 따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이쪽 세상에 건너왔을 때처럼 느리고 우아하게 소환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대가 극히 조용한 가운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그 신비로운 광경을 바라보았다.
용이 완전히 사라지고 소환진이 닫힌 뒤에야 나는 코어로부터 양손을 떼어냈다.
넘어지듯 뒤로 눕는 내게 박성일이 달려왔다.
“형님! 괜찮으세요?”
나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의식 속에서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렸다.
“나 좀 잘게…….”
* * *
“으음…….”
눈을 떴더니 밝은 햇살이 커튼 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곳은 독일로 왔을 때 배정받은 호텔 방이었다.
깊이 잠이 들었었다는 걸 깨달았고, 꽤 긴 잠을 잤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왔을 때, 기척을 느꼈는지 침실 문이 벌컥 열렸다.
“태수 씨!”
메건이었다.
그녀가 환한 얼굴로 내게 달려와 안겼다.
“으음~~”
메건을 품에 안자 이곳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머, 혹시 제가 잘못했나요? 아직 몸이 불편해요?”
“아니~ 컨디션 아주 좋아. 나 얼마나 잔 거야?”
“말도 마요. 이틀하고 한나절을 더 잤어요. 코를 골지 않았더라면 정말 잘못된 줄 알았을 거예요.”
“그렇게 오래 잤다고?”
전혀 자각이 없었다.
이런 일을 겪었던 건 제주도 최초의 던전에서 처음으로 그 코어 마나를 흡수했을 때뿐이었다.
심지어 그때도 이렇게 오래 잠들지는 않았다.
“아…….”
나는 고통스러울 만큼 배가 고픈 걸 깨달았다.
공복을 느꼈더니 확실히 메건의 말대로 내가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구나 하고 자각이 왔다.
“왜요? 어디 아파요?”
걱정스러워하는 메건에게 미간을 찡그려 보이며 대답했다.
“배고파…….”
* * *
내가 깨어났다는 말을 들은 총리, 그리고 미하일이 호텔로 찾아왔다.
그들의 얼굴은 처음 봤을 때 걱정으로 거무죽죽했던 것과 완전히 반대가 되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신경 써 주실 일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죠. 사람 목숨에 어떻게 경중을 따지겠습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독일 사정을 위해 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돼 있었던 건 아니다.
51퍼센트 이상의 확률이라면 내가 도움 되는 뭔가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미하일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었다.
“약속드렸던 계약서입니다. 독일 최초의 던전과 관련한 경제적 독점권에 관해 명시되어 있습니다. 원하시는 만큼 검토하셔서 서명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믿고 사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계약을 제시한 독일 정부 측에서도 그걸 바라지는 않을 것이고.
“비공식적으로 드렸던 약속이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독일 정부는 앞으로 김태수 씨가 하는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하겠습니다. 이제는 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미 태수 씨는 독일 국민의 영웅이니까요. 독일의 온 국민이 김태수라는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주무시고 계셨던 며칠간 아주 떠들썩했습니다.”
웬만큼은 알고 있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았던 것도 있지만, 호텔 방 거실에 독일인들이 보낸 꽃과 선물이 가득 쌓여있었기 때문에.
응원과 감사의 말이 적힌 카드도 한가득이었다.
일단 보내준 성의가 있으니까 모두 인벤토리에 넣었다.
앞으로 따로 꺼낼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파트릭은 죽은 것 맞죠?”
“네, 그 직후 다른 S급 헌터들이 본인들은 파트릭의 사상을 지지하지 않았고, 자기들은 독일 정부와 국민의 편이라고 앞다투어 선언했습니다. 웃기는 일이죠. 하지만 잘된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총리의 표정이 씁쓸했다.
언제든 S급 헌터들은 반란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란이라는 것도 성공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정도의 동기는 갖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굳이 독일 국민의 미움을 받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해피엔딩이라서 다행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총리가 밝은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혹시 한국으로 바로 돌아가실 겁니까?”
나는 메건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이왕 왔으니까 관광을 좀 하려고 합니다. 좋은 곳이 있으면 소개해주시겠어요?”
“물론이죠! 조용히 휴가를 보내고 싶으실 테니 최대한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무십시오! 독일은 언제나 김태수 씨와 메건을 환영합니다!”
* * *
스페인에서 그랬던 것처럼 독일에서 휴가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말로만 들었던 독일식 소시지와 맥주는 정말 맛이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맛을 들이자 이만한 게 없다고 할까?
한국에 돌아가서도 생각날 게 뻔해서 충분히 구입해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다.
이왕이면 사람이 적은 휴양지 위주로 시간을 보냈지만, 독일인들은 나와 메건을 알아보았다.
그런 점이 스페인 사람들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정치와 중요 뉴스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웬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
물론 극단주의자들의 득세는 스페인에서 있었던 일과는 그 사안의 중대성이 달랐다는 생각이었다.
독일인뿐만이 아니라 뉴스를 접한 모든 사람이 세계전쟁을 떠올렸을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힘을 가진 헌터들이 인류를 배반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하면 어떡하나.
놀랍게도 유럽에 있는 동안 그런 시도들을 경험했다.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 그렇다는 거겠지.
스페인과 독일에서는 내가 있어서 사건을 막았다고 해도 그러지 못한 나라들이 있을 것이다.
쉽게 넘길 수 없는 무서운 일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용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이 일에 대해서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초의 던전이 부활하면서 잠시 출현한 변종 몬스터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출현했던 용은 명백히 소환수이고 그걸 소환한 건 한국에서 온 김태수라는 의견이 부딪치고 있었다.
진실은 후자이지만 나는 어느 쪽도 긍정하지 않았다.
용을 소환할 수 있는 헌터라니.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믿기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사건 직후에 긴 잠을 잤던 이유도 있어서, 나조차도 그 일이 꿈처럼 여겨졌다.
박성일은 염원하던 분데스리가 관람을 하고 다녔다.
그는 명실상부 인터넷 스타였다.
그가 경기장 상공에 나타나면 카메라가 곧 그를 찾아냈고, 관중들이 환호했다.
경찰이든 누구든 그를 쫓아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하루하루 보내던 중, 정희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 소식은 뉴스로 접하고 있어요. 엄청난 유명인이 되셨더라고요~
“그런가요? 의도했던 건 아닌데 말이죠.”
오랜만에 연락한 것이니만큼 몇 마디 안부인사를 나눈 뒤에, 그녀가 다소 심각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 일본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