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대기업의 횡포 (7)
영상이 올라간 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 하지만 게임 속 슈림에서는 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사의 함성!”
“파이어 익스플로전!”
“발 구르기! 도발!”
중학생 정도의 앳돼 보이는 이들부터 다 큰 성인들까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다발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행동들. 그것은 바로 지엠 상단을 대상으로 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무차별적인 테러였다.
“키에에에에엑!”
콰아앙.
콰앙.
사막 한가운데에까지 얌전히 따라와 놓고는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며 허공에다 온갖 요란하고 화려한 스킬들을 난사하는 유저들. 그리고 그들의 이런 행동을 사막 깊은 모래 속에 숨어 있던 전갈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화려하게 등장해 반겨 주었다.
“여기 전갈 두 마리 추가요오~!”
“이…… 이 미친 새끼들아!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건데!”
귀중한 물건들을 가득 실은 채 돌아가던 상단. 제일 취약하고 조심해야 하는 상황에 전갈들을 불러 모은 유저들에게 지엠 상단의 한 상인이 분노 어린 절규를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절규에도 테러를 저지른 유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악덕 기업은 혼 좀 나 봐야지.”
“맞아. 대기업이라도 게임 속에서 그러면 쓰나. 공정하게 경쟁해야지.”
“아, 님. 마법사면 쇼크 웨이브 같은 진동 스킬들 쓰세요. 그게 전갈들 잘 끌려요.”
“어? 진짜요? 꿀팁 감사합니다.”
“뭘요, 그럼 이제 전갈들도 몰려오는데, 도망치죠.”
“네. 경로는 제가 아니까 잘 따라오세요. 그럼 수고하세요, 대기업 아조씨들~”
마치 이미 사전에 계획이라도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도주로까지 확인하며 달려 나가는 이들. 하지만 지엠 상단은 도망치는 그들을 붙잡지 못했다. 군침을 잔뜩 흘리며 상단을 박살 내기 위해 달려오는 전갈들로부터 교역품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저 저들에게 악에 받친 저주를 퍼붓는 것이 전부였다.
“크윽…….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사막을 가로지르던 수십 개의 지엠 상단 행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일. 그리고 제규는 이 유저들의 테러로 인해 발생한 피해 상황을 보고받으며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드워프와의 거래를 전담하던 상단의 60%가 전멸했다고……?”
드워프들이 만들어 낸 장비들의 가치를 알기에 그 어느 곳보다도 우선한 초기 장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제규. 그는 지엠 상단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도로 투자해 드워프들과의 교역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기에 지금 이 피해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최대한 물품들을 지키고 피해액을 줄이려고 해 보았지만…… 사막 전갈들에게 전멸해 소실한 교역품들과 부대 비용을 전부 추산해 보니 대략 200만 골드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200만 골드. 한화로 2,000억 원에 달하는 손실.
지엠 상단의 기둥뿌리 하나가 통째로 뽑혀 나간 것과 다름없는 피해. 하지만 지금의 사태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직접 드워프들의 족장을 만나 현재 지엠 상단과의 거래를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알아봤는데? 뭐?”
“그게…… 탐욕스러운 돼지 새끼들이랑은 거래하지 않는다고…….”
인공지능이자 NPC들인 드워프 종족. 아르카디아가 일반적인 게임이었다면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하는 이들에게 지엠 상단의 악행은 아무것도 아니었겠지만, 가상현실 아르카디아에서는 달랐다.
“헹, 하여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저런 상도덕도 모르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군.”
“우리 드워프 일족이 예전에 네놈들처럼 우리가 만든 물건에 욕심부린 돼지 같은 새끼들 때문에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알아? 대가리 깨지기 싫으면 지금 당장 꺼져!”
종족별 고유한 역사와 특성이 존재하고, 가치판단과 도덕의식 그리고 자의식이 있는 고도의 인공지능들. 그렇기에 그들은 지엠 상단의 만행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며 거래를 거부했다. 물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제규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중얼거렸다.
“그게 말이 돼……? 무슨 게임 속 인공지능이 그런 이유로 거래를 거부해?”
“저도 그들의 반응을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만…… 지금으로서는 드워프들과의 거래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입니다.”
지엠 상단과 거래를 하는 상단까지 제재를 먹이는 세컨더리 보이콧.
그야말로 마음먹고 제대로 후려 패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 있는 제재 때문인지 지엠 상단과의 거래를 취소하는 상단들까지 늘어나며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켜져 가고 있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우우웅.
요란하게 진동을 울리며 걸려 오는 전화. 전화기를 힐끗 보며 화면에 표시된 발신자를 확인한 제규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의 아버지이자 지엠 그룹의 회장인 최춘식.
평상시에 전화를 먼저 거는 일이 없는 그가 이렇게 받을 때까지 계속 전화를 걸자, 제규는 그가 무슨 목적으로 전화를 거는지를 직감하고는 굳은 각오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
[야, 이 새끼야! 도대체 무슨 짓을 또 벌이고 다닌 거야!]전화를 받자마자 귀청이 떨어질 것처럼 울려 퍼지는 최춘식 회장의 사자후. 딱 들어도 빡이 쳐도 제대로 치셨다는 느낌에 제규는 적잖이 당황하며 물었다.
“아, 아버님,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게임 속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알 리가 없는 최춘식 회장. 현재 언론에 또다시 물어뜯기고는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이골이 날 대로 난 그였기에 이 정도로 격노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왜 그러냐고? 지금 TV에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그래? 네놈은 지금 그룹 전체를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어? 이 새끼가 요즘 알아서 잘하고 있다 싶어서 가만히 놔뒀더니 이런 대형 사고를 쳐 놔!]“아버…… 아니, 회, 회장님. 잠깐 진정하시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
수화기 너머로까지 울려 퍼지는 최춘식 회장의 고함에 다급히 TV를 켜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수행 비서. 그는 긴급 속보로 발표되고 있는 기자회견 하나를 보고는 넋이 나간 얼굴로 입을 벌렸다.
“이런 씨발…….”
TV 화면 너머에서 진행되고 있는 긴급 기자회견. 그것은 바로 지엠 그룹을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에 대한 것이었다.
국세청 직원들이 지엠 그룹 본사를 뒤엎고 있는 장면이 이어지는 속보를 보며 제규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 중얼거렸다.
“이런 미친…….”
자신이 X됐음을 알아챈 제규. 하지만 그는 끝끝내 몰랐다. 사소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되어 넘어갈 수도 있을 게임 속 갑질이 왜 이렇게 거대한 사건으로 뒤바뀌어서 세상을 뒤흔들게 되었는지 말이다.
* * *
지엠 상단이 온갖 고초를 겪고 있는 그때.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인 재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태평하게 어딘가로 이동 중인 짐 마차에 몸을 맡긴 채 쉬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동안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던 탄이 갑자기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야, 주인. 또 시끌시끌해진 모양인데?”
“뭐가?”
“아니, 싹수없다고 주인이 무지 싫어하던 그 인간들 말이야.”
“지엠 상단?”
“응, 정확히는 모르지만 주인 때문에 아무튼 난리가 난 모양인데? 임프 놈들이 뭐라고 그거 때문에 시끄럽게 떠들어.”
어디 마계에서 무슨 소식을 들은 것인지 눈을 반짝이며 말을 거는 탄. 그런 그의 말에 재영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
“……넌 무슨 내 옆에 맨날 달라붙어 있으면서 마계의 임프들이 떠드는 이야기까지도 알고 있냐? 아니, 그보다 임프들은 그런 것들 가지고도 떠들고 있어?”
최하급 악마이면서 어두운 뒷골목과 같은 곳에서도 가끔 출몰하는 임프. 그들은 아르카디아에 제일 많이 분포하고 있는 악마종이자 초보 흑마법사들의 교과서적인 소환수이기도 했다. 마왕이라는 마계의 군주의 지위에 있는 탄에게는 비천하고 하찮기 그지없는 존재들. 그런 그들의 이야기에 탄이 귀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 재영에게는 어처구니없었지만, 탄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주인…… 모르고 있었구나?”
“뭘 몰라……?”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 재영. 탄은 그런 그에게 가끔 꺼내서 무언가를 휘갈기던 음침한 종이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요즘 밑의 놈들 교육 자료로 주인의 일상을 알려 주고 있거든? 그런데 상상해 보지 못했던 악랄하고 사악한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주인 좋아하는 악마들 엄청 많아. 임프들이 특히 주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 놀라 나자빠질걸? 거의 나 다음으로 추앙하고 떠받들던데?”
“…….”
본인도 모르는 새에 악마들 사이에서 슈퍼스타가 되어 버린 재영. 탄의 말에 할 말을 잃고 재영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은근한 기대 어린 눈으로 물어 왔다.
“혹시 진짜 진지하게 마계에 와서 한번 애들 데리고 강연 같은 거 해 볼 생각 없어? 내가 강연 제목도 생각해 봤어. ‘인간이 직접 알려 주는 인간을 엿 먹이는 방법’. 크으…… 상상만 해도 멋있을 것 같지 않아?”
진짜 수락만 한다면 지금 당장 마계로 가는 차원 문을 열어 지옥불과 유황이 들끓는 곳에서 험악한 악마들을 앞에 두고 재영에게 악(惡)에 대한 강연을 시킬 것 같은 기세의 탄. 그런 그의 적극적인 공세에 재영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싫어.”
“아, 왜!”
“자꾸 나보고 사악하다 하는데, 나는 나름 착하게 살아왔거든? 무슨 악마들 데리고 강연이야.”
다른 사람한테 피해 안 주고 평범하게 살아온 소시민으로서, 재영은 자꾸 악마들의 귀감이라며 치켜세우는 탄의 말에 화를 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고민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탄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내가 본 인간 중에서는 주인이 제일 사악한 건 맞는…….”
찌릿.
하지만 재영의 눈빛에 입을 두 손으로 막는 탄.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엘이 쏜살같이 날아와 탄의 머리를 가격했다.
“왜 자꾸 내 계약자한테 지랄이야, 이 추악한 박쥐 새끼야!”
퍼억.
“쿠에엑!”
방심하고 있다가 제대로 한 방 먹은 탄은 분노를 담은 엘의 일격에 마차 안에서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벽면에 부딪혔다.
“잊었나 본데, 나는 수호천사로 지금 이곳에 있는 거라고. 바로 네놈 같은 망할 박쥐 새끼들이 자꾸 이상한 길로 가도록 꼬드기지 못하게 막는 것, 그게 내 사명(使命)이라고. 알아들어?”
그 어느 때보다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으르렁거리는 엘. 진심으로 화난 것 같은 그녀의 반응에 탄조차도 발끈하며 달려들지 못하고 연신 그녀의 눈치를 봤다.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마계로 가자니 뭐니 악마들이랑 이상한 짓 하자고 수작질 부리기만 해 봐. 내가 직접 무스펠하임 들고 가서 네놈들 소굴 싸그리 다 성화로 불태워 버릴 거니까.”
진심이 담겨 있는 그녀의 험악한 협박. 탄과 재영은 저 말이 그냥 농담이나 협박이 아니라 그녀가 진짜 행동으로 옮기고도 남으리라는 것을 아주 잘 알았기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덜그럭 덜그럭.
그렇게 악마보다 더 폭력적(?)인 것 같은 천사의 협박을 듣고 있을 무렵, 재영이 타고 있던 짐마차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 이내 짐마차를 끌던 늙은 마부가 천막을 걷어 올리고는 재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보게, 자네가 아까 말한 곳에 도착했네. 지금부터는 다른 방향으로 갈 거라서, 내가 데려다줄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야.”
짐마차에서 내린 재영의 눈앞에 펼쳐진 두 개의 갈림길. 그중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길을 설명해 주는 노인의 말을 들으며 재영은 주머니에서 금화 몇 개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고맙구만……. 그리고 조심하시게나.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가려는 그 도시는 이 대륙에서 제일 위험천만하고 잔혹한 곳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재영이 갈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황급히 마차를 모는 노인. 그는 마치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은 듯 마차를 재촉하며 빠르게 떠나갔다. 그리고 재영은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우리도 가 볼까?”
탄과 엘을 바라보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기는 재영.
그렇게 그는 당도했다.
범죄와 해적이 들끓는 범죄자들의 무법 지대. 유저들이 선정한 5대 금역 중 하나인.
캐러비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