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rdener in a Hunter World RAW novel - Chapter (9)
꼬마들의 전쟁 – 1
지하는 던전 클리어 후 밥이나 먹자는 성호 부부의 말을 뿌리치지 못하고 거하게 배를 채운 후 집으로 왔다.
주미는 마른 편인 지하가 안쓰러웠는지 이것저것 자꾸 먹이려 애썼고, 덕분에 더부룩한 배를 부여잡고 돌아와야 했다.
‘그나저나 이 분들도 아직 아기가 없네.’
성호네 부부는 결혼한지도 꽤 되었지만 아기를 가지지 못했다.
부부간 금슬은 좋은 편이고 의지도 충만한 것 같은데 한쪽에 문제가 있을까?
‘안타까운 일이야.’
둘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정말 귀여울 텐데.
그는 더부룩한 배가 신경 쓰여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꿈속의 숲은 하루 동안 꽤 달라져 있었다.
‘허밍벨···진짜 종처럼 생겼네.’
그 왜, 벨하면 생각하는 골든벨과 거의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이 꽃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소리를 내는 것 까지는 알겠는데···’
지하는 허밍벨을 툭툭 건드려보다가 개울이 꽤 넓어진 것을 확인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우와.”
절로 경탄이 나온다.
좁은 물줄기에 불과했던 개울이 꽤 넓게 바뀌었다.
이전에는 생명체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작은 물고기가 꽤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재도 있네.’
20년 전만 해도 이런 개울에서 돌을 들추면 민물가재를 볼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몬스터 때문에 엄두도 못 낸다.
지하는 쪼그리고 앉아 잠시 물고기와 가재 등을 구경하다가 뭔가가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우웅우웅―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아, 이게 허밍벨이구나.’
허밍벨에 접근했지만 소리는 좀 더 밖에서 나고 있었다.
동굴 옆의 안개에 접촉하자 허밍벨 소리가 잦아들었다.
‘여긴가 보네.’
하지만 안개 밖은 뿌옇기만 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특이한 것도 없는 것 같고···
이것저것 살펴보던 그는 발밑에서 테라드론들이 뽈뽈거리는 걸 보고 무릎을 꿇었다.
‘···집게가 비슷하긴 한데.’
극지 던전에서 트롤을 동강내 죽인 그 집게와 매우 닮았다.
하지만 덩치가 너무 차이난다.
이 녀석들은 손톱만한 데 비해 그 몬스터들은 SUV차량보다 더 거대했으니까.
역시 같은 종이 아닌 걸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테라드론들이 안개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지하는 벽에 막힌 듯 꼼짝없이 갇혔는데 이 조그마한 곤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출입하는 것이다.
손으로 땅을 짚고 경계선을 자세히 관찰하자 주변의 안개가 투명하게 변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우와···”
지하의 입이 딱 벌어졌다.
안개 밖의 세상은 그가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것이었다.
평범한 숲을 수백분의 1로 축소한 것 같았다.
숲은 숲인데 나무라든가 바위, 호수 등의 크기가 너무 앙증맞다.
마침 아주 작은 사슴이 후다닥 지나가는 모습을 발견한 지하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뭔가 걸리버가 된 것 같네.’
그러나 그는 이 앙증맞은 숲에 간섭할 수가 없다.
조금 더 집중해서 들여다보니 테라드론들이 뭔가와 싸우고 있었다.
‘마귀개미다!’
한국에서 명명한 위험등급의 몬스터.
하지만 현장에서 구르는 헌터들은 놈들을 혐오등급 이상으로 싫어했다.
떼거지로 나오는데다가 괴악한 냄새가 나는 독을 뿜어 대서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놈을 죽이면 열 놈을 상대해야 하니 어지간한 광역기를 가진 헌터도 기가 질릴 수밖에.
테라드론들은 마귀개미보다 덩치가 크기는 했지만 몇 배나 되는 물량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잠깐···이 녀석들이 작은 거야, 내가 큰 거야?’
미니어처를 연상케 하는 숲도 그렇고, 마귀개미도 그렇고 그에겐 모든 것이 작게 느껴졌다.
영역 안의 지형지물과 동식물을 제외하고 말이다.
‘저놈들이 여기로 들어오려 하는 거구나.’
딱 보니 마귀개미들이 자꾸 지하의 영역을 침범하려 하는 게 눈에 띠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안개의 벽을 몸으로 밀어봤지만 꿈쩍도 않는다.
그 때 상태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테라드론 군단과 침입자 마귀개미 군단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신의 군단에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YES/NO」
“어?”
황당해진 지하는 멍청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 꼬마들의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건가?
.
.
.
‘당신의 테라드론 군단이라···’
왠지 가슴 울리는 문구였다.
이 작은 곤충들을 조종할 순 없지만 후방에서 지원하며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아마도 작은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약간이나마 정이 든 곤충들이 마귀개미들의 독에 쩔쩔매고 물리고 하는 게 안쓰러웠다.
‘저 마귀 같은 놈들.’
YES에 시선을 가져가자 새로운 선택지가 나타났다.
「테라드론 군단에겐 현재 이러한 것들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지원하시겠습니까?
1) 독저항 포션
2) 체력 포션
3) 기호도가 높은 식량
4) 물리저항 포션」
‘음···’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필요하단 말이지?
포션류는 사람이 마시는 건데 테라드론에까지 적용될 줄이야.
다만 지금은 가진 게 없었다.
‘기호도가 높은 식량이라면 그것뿐인데.’
혹시나 해서 극지 던전에서 가져왔던 수액젤리.
분명 테라드론들이 먹는다고 했었지.
지하는 등에서 수액젤리를 담은 비닐을 꺼내 땅에 조금 덜어 놔주었다.
마귀개미와의 전투에서 밀린 테라드론들이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거 먹고 힘내.”
지하는 단지 그 말밖에 할 수 없는 신세였다.
조금 있으려니 상당수의 테라드론들이 수액젤리 덩어리에 몰려들어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먹으니까 덩치가 조금 커지네.’
하도 쫄쫄 굶어서 덩치가 쪼그라들었던 걸까?
덩치가 커지면 힘도 세져야 할 텐데.
테라드론들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커다란 집게로 마귀개미들의 허리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와, 대단하구나.’
테라드론들의 순간적인 돌격에 밀린 마귀개미들은 물량으로 대응했다.
한 놈이 죽으면 세 놈이 튀어나와 테라드론을 상대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꾸역꾸역 밀려와 점점 점령지를 확장해가고 있었다.
테라드론들은 순간적으로 힘을 되찾았지만 아무래도 체력이 달리는 모양새였다.
‘독저항이나 체력 둘 중의 하나는 줘야 될 텐데.’
아쉽지만 지하가 가진 건 하나도 없다.
그 때 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테라드론 군단이 밀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에센스를 사용해서 광역버프를 걸어줄 수 있습니다. YES/NO」
‘에센스를 여기서 쓴다고?’
극지 던전에서 겨우 구한 귀중한 에센스였다.
아무런 전투스킬도 없는 지하가 앞으로 더 구할 일은 없을 것이니 별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준 건데···
망설이는 지하의 눈에 패퇴하고 있는 테라드론 군단이 보였다.
‘어쩌면 테라드론들이 이 숲을 수호하는 역할일 수도 있어.’
테라드론이 완전히 패퇴하는 순간, 그의 평화도 끝장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까지 생각한 지하는 YES를 골랐다.
다음 선택지가 떠올랐다.
「테라드론 군단에겐 현재 이러한 것들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지원하시겠습니까?
1) 1시간 동안 체력 30% 증가 -1 에센스
2) 1시간 동안 독저항 30% 증가 -1 에센스
3) 1시간 동안 물리저항 30% 증가 -1 에센스
4) 일꾼의 축복 -2 에센스」
‘4번은 뭐야? 일꾼이란 건 나를 말하는 건가?’
클래스명 일꾼.
2에센스가 필요한 만큼 효과는 위의 선택지보다 나을 것 같았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지하는 고민 끝에 4번을 골랐다.
‘아무리 그래도 위의 것들보다는 낫겠지.’
선택지를 주시하는 순간, 그의 몸에서 엷은 황금빛 광채가 뿜어졌다.
비교할 순 없지만 그가 숲에 심은 나뭇가지가 발한 광채와 같은 종류였다.
테라드론들이 힘을 얻었는지 매우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헐, 이제 마귀개미 독도 버티네.’
물리저항이 높아져서 그런지 한 마리의 테라드론이 네 마리의 마귀개미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다.
일꾼의 축복은 체력과 독저항, 물리저항을 모두 올려주는 것 같았다.
‘버프 3개를 쓰는 대가로 2 에센스면 저렴한 편이지.’
지하는 묶음상품의 위력에 감탄했다.
마귀개미들은 자신들이 밀리는 걸 깨달았는지 뒤로 후퇴해 전열을 정비했다.
그러나 테라드론도 그걸 기다릴 만큼 얼간이들은 아니라서 집중적으로 전열을 파고들어 마귀개미들의 허리를 분리했다.
‘도망가지 마, 맞서 싸워!’
속으로 외쳤지만 마귀개미들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놈들은 독을 집중적으로 뿜어 테라드론들을 저지하더니 기어코 안개 속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에이, 아쉽네.’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 완전히 승리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 숲을 지켰으니 만족스럽다.
테라드론들이 아주 작은 황금빛 덩어리를 집게로 물고 줄줄이 숲으로 돌아왔다.
전리품인 것 같은데, 지하는 그게 에센스와 에테르 스톤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테라드론 몇 녀석이 집게에 에센스와 에테르 스톤을 물고 지하에게 다가와 발치에 슬쩍 놓았다.
“나한테 주는 거야?”
뽈뽈거리며 돌아가는 걸 보면 먹으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 작은 걸 먹을 수는 있긴 하나?
슬쩍 손가락을 접근시키자 놀랍게도 극지 던전에서와 같이 체내에 스며들었다.
에센스가 5로 바뀌었고, 지하는 포근한 감각에 휩싸였다.
‘이거 진짜 에센스 맞구나.’
그렇다면 에테르 스톤도 진짜가 맞을 것이다.
깨알같이 작은 돌을 찾아 겨우 손바닥에 올리자 퐁, 하고 커다랗게 바뀌었다.
“하하.”
이쯤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하는 다섯 개의 에센스와 에테르 스톤에 만족했다.
마귀개미는 위험등급 몬스터라 에테르 스톤도 꽤 비싸게 팔릴 것이다.
테라드론들이 더 많은 에센스와 에테르 스톤을 물고 왔지만 그는 사양했다.
“난 이걸로 만족하니까 니들 먹어. 니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녀석들이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땅속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이 녀석들 꽤 귀엽잖아.
‘에센스 조금 투자한 대가가 크게 돌아왔네.’
2에센스로 5에센스와 5에테르 스톤을 맞바꿨으니 크게 성공한 장사라 할 수 있다.
지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에테르 스톤 다섯 개를 배낭에 넣었다.
.
.
.
저녁이 되어 지하는 숲 가운데에 모닥불을 지폈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점화석을 부싯돌로 가공하고 있으려니 테라드론 한 마리가 근처로 다가왔다.
“어어, 너 여기 오면 위험한데.”
위험한 걸 알고 있는지 녀석은 모닥불과는 약간 거리를 두었다. 자세히 보니 이 녀석, 낮의 테라드론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크다.
손톱만 하던 녀석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커졌는데 이건 에센스를 얻어서일까, 아니면 큰 개체가 온 걸까.
“니가 대장이니?”
녀석은 대답 대신 집게로 물고 있던 것을 밑에 내려놓았다.
“응? 그건 뭔데?”
아주 작은 씨앗이었는데 손에 올려놓자 제법 크게 변했다.
「안개쫓이꽃의 씨앗」
‘안개쫓이꽃이면 저 안개를 몰아낼 수 있는 건가?’
어쩌면 이 숲의 확장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숲이 너무 커져도 좋지 않지만 역시 새로운 걸 보고 싶었다.
지하는 이 씨앗을 가져다 준 테라드론의 등껍질을 아주 살짝 쓰다듬었다.
칭찬으로 받아들여 준건지 녀석은 날개를 꺼내 바르르 떨었다.
“너 날개가 있었네.”
하긴 드론이니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지하가 책을 뒤적이는데 상태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테라드론이 당신에게 여왕의 구출을 요청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YES/NO」
“응?”
이 녀석들 여왕이 없었구나.
여왕을 선택하면 새끼를 낳고 군단을 불리겠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YES를 선택하자 녀석이 바쁘게 돌아갔다.
이런 식으로 테라드론과 소통할 수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 아닌가.
지하는 모닥불을 조명삼아 안개쫓이꽃의 씨앗을 심었다.
그러자 하루도 지나지 않아 꽃이 자라며 그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새로운 식물 군락지가 보였다.
「달맞이꽃 : 30분간 독저항 20% 증가」
‘이건 독저항 포션에 쓰는 식물이네.’
하지만 보통의 던전에서 보이는 달맞이꽃과는 차원이 다른 독저항 수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뭐 이 숲에서 나는 건 다 이렇지.
지하는 달맞이꽃의 꽃잎에 분포되어 있는 액체를 수집했다.
이걸로 좋은 독저항 포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체력포션하고 독저항 포션이면 마귀개미들과 맞서 싸울 수 있겠지.’
꼬마들의 전쟁을 지원할 준비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