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decided to become a star RAW novel - Chapter 10
10. 처음이었다
물론 이 사람이 그 이봉춘 감독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었다.
제임스가 소개해준 내용은 그가 앞으로 쌓아갈 프로필이지 현재의 상태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사진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진혁은 이 사람이 그 이봉춘 감독이라 확신했다.
일단, 이름과 나이. 굳이 정확해지자면 제임스의 발음은 이봉춘과 이봉천 사이 어디쯤이었지만.
봉춘이나 봉천이나 이 나이대의 이름으로 흔하지 않긴 매한가지.
지금 영화를 하는 사람 중에, 제임스가 말해준 나이와 이름이 일치하는 남자가 몇 명이나 될까.
게다가 자신의 영화 얘길 하며 불타오르는 저 눈빛을 보고 있자면 확신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가 도움이 될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다면 제겐 영광스러운 일이 되겠네요.”
미래의 거장에게 건네는 인사.
“으하하. 이 녀석 봐라? 영광? 얀마. 그런 경건한 단어는 나한테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야. 하하.”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이봉춘을 보며, 우진혁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
“쳇.”
우진혁과 눈을 마주친 장석환이 휙 하고 고개를 돌렸다. 분노를 표출한다기보다는, 뭔가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장석환은 더 이상의 시비를 거는 건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요 며칠 동안 계속 저런 모습인 걸로 봐서는.
녀석으로서는 다행이었다. 만일 한 번 더 덤벼온다면 진혁은 진심으로 상대해 줄 생각이었으니까. 배려는 한 번뿐이었다.
“우진혁. 국어 숙제.”
회장 김민영이 진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여기.”
우진혁이 민영의 내민 손에 공책을 건넸고, 민영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공책을 받아들었다.
도민우 역시 신기하다는 듯 우진혁에게 말했다.
“와. 진혁아. 너 요즘 이상하다. 왜 그렇게 숙제를 열심히 하는데.”
대답을 한 것은 진혁이 아닌 김민영이었다.
“도민우. 원래 숙제를 하는 게 당연한 거야.”
“응? 그래? 언제부터?”
천연덕스러운 도민우의 얼굴을 향해 김민영이 손을 내밀었다.
“숙제.”
도민우가 김민영이 내민 손을 악수하듯 잡았다.
“고생이 많아. 회장.”
“아휴. 장난하지 말고 숙제 주라고.”
“미안.”
도민우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김민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떠났다.
민영의 뒷모습을 흘깃 쳐다보던 민우가 진혁에게 말했다.
“진혁아. 살살해.”
“뭘.”
“뭐긴. 너 요즘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아. 꼭 딴 사람 같다니까. 원래 큰 사고를 당하거나 하면 이렇게 확 바뀌고 그러는 건가?”
도민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작게 속삭였다.
“아님, 전에 네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기억이 없어서 그러냐?”
“글쎄.”
우진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딩동댕 동.
경쾌한 벨 소리가 수업의 시작을 알렸다.
동시에 도민우가 취침 준비에 들어갔고, 진혁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책을 폈다.
오후 수업. 식곤증으로 시작 전부터 풀려 버린 눈들 가운데 번쩍이는 용병의 눈빛.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씹어먹어 버리겠다는 듯, 용병 우진혁은 수업도 전투처럼 수행했다.
‘뭐, 뭐야?’
처음엔 교사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전부 우진혁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수업하고 있었다.
그토록 강렬한 배움의 열망이 담긴 눈빛과 마주치면 없던 교사로서의 사명마저도 불타오를 지경이었으니.
자신의 수업을 저렇게 갈증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제자를 외면할 수 있는 선생님은 없었다.
거기다가 가만있어도 시선을 한 번씩 멈추게 되는 우진혁의 외모는 매일 매일 리즈를 갱신하고 있었고.
“이해돼?”
우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면 수업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런 경우는 잘 없었지만, 진혁이 고개를 조금이라도 갸웃할라치면 선생님들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게 배움에 불타오르는 진혁은
“자, 이상.”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는 종례 후에도 홀로 진혁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자리에서 일어서곤 했다.
“우진혁.”
이영준이 진혁에게 다가왔다.
“오늘 삼촌하고 약속 잊지 않았지?”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영준과 함께 교문을 빠져왔을 때, 미래의 거장 이봉춘 감독이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여―! 여기!”
***
연기 학원은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이면도로 한편의 낡은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SH 연기 학원]낡은 건물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간판.
이봉춘을 따라 올라간 우진혁의 눈에 들어온 실내도 간판만큼이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작은 로비와 바로 붙은 방 앞. 반투명 유리에 ‘원장실’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이봉춘이 주저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형, 나 왔어요.”
“아. 어서 와.”
연성훈 원장이 이봉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가 싶더니 우진혁에게 시선을 옮겼다.
“네가 진혁이구나. 잘 왔다.”
“네. 안녕하세요.”
연성훈이 인사하는 우진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 아래 씨익하고 미소가 걸렸다.
“오, 듣던 대로…”
“그쵸?”
“하긴. 이봉춘이가 외모만 보고 반할 정도면. 쥐뿔도 없으면서 눈은 엄청 높으니까. 우리 봉춘이가.”
“에헤이. 형. 쥐뿔도 없다니. 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진주일 뿐이라니까.”
“크크. 농담. 농담.”
발견되지 않은 진주라. 맞는 말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역대급 진주.
“근데. 연기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네.”
“그래. 잘 왔어. 일단 넌 재능이 있다. 이 바닥 최고 재능은 외모거든.”
농담이었지만 사실이었고, 사실이었지만, 또한 조금은 비틀린 말이었다. 성훈은 그런 현실이 싫었다. 현실이니까 적응을 하고 있을 뿐.
“외모만 받쳐주면, 어지간한 발연기가 아닌 한 기회는 계속 주어지니까.”
하지만 적응한다는 말이 모든 걸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성훈이 찾고 있는 건 스타가 될 가능성이 아니었다.
진짜 배우가 될 재목이었지.
연성훈은 스타급 배우는 아니었지만, 연기력만큼은 자부심을 가질만한 배우였다.
성훈이 연기 활동을 희생하고, 학원을 차린 건 최고의 배우를 자기 손으로 발굴하고 키워 내고 싶은 순전한 열망 때문이었다.
직접 연기를 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후배를 지도하고 키우는 일에 더 간절한 꿈을 가진 그였다.
“하지만 내가 찾는 건 외모적 재능만 갖춘 사람은 아니야. 난 스타가 아니라, 진짜 연기자를 키워보고 싶거든.”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의 외모는 필요하다. 연성훈의 현실 적응은 딱 거기까지였다.
외모가 좀 받쳐준다고 해도 전혀 배우로서 자질이 없거나, 되지도 않게 헛바람이든 녀석을 학원생으로 받을 생각은 없었다.
어디 어디처럼 학생들에게 연예인의 자질이 있다고 바람을 잔뜩 넣어서 학원을 등록하도록 한다든지.
등록만 하면 데뷔든 입시든 전혀 문제없을 것처럼 사탕발림을 한다든지.
자질이나 태도야 어떻든 일단 대충 받아 준다든지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고집 덕분에 학원 운영은 늘 팍팍했고.
‘아휴. 형. 그래도 적당히 좀 받아주고 그래. 학원 운영은 돼야 진짜 배우건 뭐건 길러 볼 거 아니야.’
늘 걱정해주는 후배 이봉춘. 사정 빤히 아는 녀석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 학원비를 들고 왔다. 그런 마음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성훈이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이 있었다. 그걸 포기한다면 자신이 학원을 운영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기에.
봉춘의 부탁이니 일단은 받아주었지만, 싹수가 없는 녀석 같으면 냉정하게 자를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 녀석은… 부디 싹수가 보이는 녀석이면 좋겠네.’
만약 정말 가망이 없는 녀석이라면 가슴이 아주 쓰릴 것 같았다.
빼어난 외모는 차치하더라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 같은 저 눈빛은 정말 아까울 일이었다.
“자, 그럼 테스트를 한번 해 볼까.”
우진혁의 표정에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연성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짧은 대사 한번 해 보라고. 그냥 가볍게 현재 상태를 보려는 거니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보면 돼. 부담 갖지 말고.”
연성훈이 책상 위에 있던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거기 학생 역할이야. 그냥 대본 보고 부담 없이 편안하게 한번 해봐.”
우진혁이 받아든 대본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다시 연성훈과 이봉춘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분명 부담 갖지 말고 해보라고 한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매우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저렇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두 중년 남자의 시선이란 건.
하지만 눈빛 따위에 주눅 드는 우진혁은 아니었다. 그것이 어떤 상황, 어떤 눈빛이건.
진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본을 살폈다. 대본의 내용은 간단했다.
[진수 : (짜증 난 목소리로) 아이 씨, 진짜.]교복을 입은 학생. 그러니까. 아마도 진혁이 또래의 학생이 집으로 들어와서는 가방을 내동댕이친다.
[진수 엄마 : 이 녀석이! 왜 가방을 집어 던지고 난리야! 뭐야? 무슨 일인데?] [진수 : (더욱더 짜증이 나는 듯) 아, 몰라. 말 시키지 마!]무슨 일이 있느냐 묻는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는 상황.
[진수 엄마 : 야, 문 열어 봐.] [진수 : 아, 좀. 내버려 두라고!] [진수 엄마 : 뭔데. 무슨 일인지 얘기를 해야 알 거 아니야!] [진수 : 아, 몰라. 할 얘기 없어. 귀찮게 하지 좀 말고 좀 내버려 둬!]그렇게 문을 사이에 두고 진수와 엄마 사이의 실랑이가 이어진다.
사춘기 학생들 둔 집에서라면 한 번쯤은 일어날 법한 그런 상황이었다.
고등학생 우진혁이 가장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상황을 일부러 배려한 것이 분명했다.
매우 간단한 내용과 대사였음에도, 대본을 보는 시간이 길어지자, 연성훈이 달래듯 말했다.
“왜 막상 하려니까 쑥스러워?”
“……”
“처음엔 그럴 수 있어. 남들 앞에서 대사를 친다는 게. 괜찮으니까. 충분히 시간 갖고 편하게 해. 정 어려우면 일단 한번 소리 내서 읽어 보는 것도 좋고.”
대본을 보던 우진혁의 시선이 연성훈에게로 옮겨졌다.
“아, 그게 아니고…”
“응?”
“쑥스러워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우진혁 자신도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대본을 받아 대사를 읽는 순간, 이 짧은 대사의 창을 통해 뭔가가 들여다보였다. 그건…
“왜 짜증이 났는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머리에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을 살펴보고 있었다.
“뭐?”
“얘가 짜증 난 이유…”
연성훈의 심장에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 이 녀석이…?’
보통 처음 연기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대본을 주면 열 명 중 열 명이 그랬다.
대번에 인상을 쓰며 짜증 난 감정을 흠뻑 싣고는 대사를 내뱉는다.
연기에 나름대로 소질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감정 표현이 제법 그럴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럴 듯’하다는 것.
시원하게 대사를 쏟아내고는 뿌듯해 하는 이들에게 연성훈은 꼭 이렇게 묻곤 했다.
‘지금 왜 짜증을 냈습니까?’
그러면 다시 십중팔구의 대답이 돌아온다.
‘여기 지문에 (짜증 난 목소리로)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러니까 다들 짜증 난 감정을 인위적으로 흉내 냈다는 말이었다.
물론 연기는 본질적으로 흉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도 연기를 보면서 실제라고 생각진 않으니까.
하지만, 연기의 역설은 거기 있다.
분명 연기인 걸 알고 보지만, 연기를 보고 난 후에는 마치 극중 인물이 어딘가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실제를 느끼게 하는 것.
그런 연기는 단순한 흉내로는 되지 않는다. 연기를 하는 순간 대본의 그 사람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만약 연기자가 이 대본의 학생이 된다면, 그냥 아무런 맥락이 없이 짜증이 나 있을 리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맥락과 동떨어진 삶의 장면이란 없으니까.
학교에서 친구하고 싸웠건, 숙제를 까먹고 가서 혼났건, 무슨 억울한 일이 있었건.
그도 아니라면, 사춘기 감정의 변덕이건, 뭐건 간에.
뭔가 이유가 있었기에 이런 감정과 장면이 삶에 벌어진 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그걸 이해하려는 지점에서 연기자는 대본 속 그 사람으로 이입되게 되고, 결국 자신이 그 인물이 된다.
연기자가 그 인물이 되고 나면 비로소 그가 내뱉는 대사가 연기가 아닌 실제가 되는 것이고.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이 당연한 걸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자신도 처음엔 마찬가지였고.
베테랑 배우 연성훈은 그간 숱한 후배들과 학생들을 만나 보았었지만,
처음이었다.
연기를 배운 적도 없이, 대본을 받아들자마자 삶의 맥락을 짚어내려고 하는 녀석은.
연성훈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쩌면…
성훈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 순간,
진혁의 첫 대사가 그의 앞에 떨어졌다.